일인원수부 (2)
‘당장 테스트를 해 보고 싶지만.’
아직 전투가 한창이었다.
‘아주 작정을 했네.’
죽은 몬스터와 마족의 숫자는 십만 단위를 넘어 백만 단위를 헤아리고 있었고.
강현수의 손에 죽은 마계 귀족만 서른 가까이 됨에도.
몬스터와 마족 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괜히 방심했다가는.
‘없어도 될 피해가 생길지도 모르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지만,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것 역시 중요했다.
지구 플레이어의 성장을 위해 전투 경험을 쌓고 레벨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괜히 방심해서.
‘감당 못 할 적을 만나 허무하게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강현수는 매의 눈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그리고 일반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기 힘든 마계 귀족들이 나타나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뭐야? 왜 아무도 없어?”
그런 강현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작급으로 보이는 고위 마계 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새롭게 차원 게이트를 넘은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은 적잖이 당황했다.
먼저 넘어간 마계 귀족들이 날뛰면 날뛸수록 자신의 몫이 줄어들 걸 걱정했는데.
사납게 날뛰어 자신의 몫을 빼앗아 가기는커녕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방에서 몬스터와 마족 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설마?”
당황한 공작급 마계 고위 귀족이 몸을 피하려고 할 때.
콰콰콰콰콰콰!
강현수가 날린 핏빛 오러가 공작급 마계 고위 귀족을 덮쳤고.
“히익!”
화들짝 놀란 공작급 마계 고위 귀족이 마기를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했다.
꽈아아앙!
그럼에도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커억!”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도대체 누가?”
명색이 마계 공작이다.
그런 자신에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런 부상을 입히다니?
이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마왕급밖에 없었다.
‘눈치가 빠른 놈이네.’
강현수가 목숨을 건진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몸을 피한 것이나 마기를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한 것이나.
둘 중 하나라도 늦었다면 허무하게 첫 일격에 목숨을 잃었을 텐데, 용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도망칠 수는 없어.’
하급 마계 귀족이 빠져나가기만 해도 문제가 커지는데.
고위 마계 귀족, 그것도 공작급을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강현수가 다시 검을 들어 올렸고.
콰콰콰콰콰콰!
핏빛 오러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강현수의 핏빛 오러와 공작급 마계 귀족이 뿜어내는 칠흑빛 마기가 연달아 충돌했다.
그러나 승패는 명확했다.
강현수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고.
공작급 마계 귀족은 반격은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했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때 상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항복?”
“예, 항복하겠습니다.”
“하!”
평범한 마족도 아닌 마계 귀족이, 그것도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이 항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필요 없다.”
어차피 죽여서 소환수로 만들면, 약간의 손실이 있기는 하지만 생전의 기억을 복원시킬 수 있다.
그런 만큼 강현수 입장에서는 굳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생포할 필요가 없었다.
“저를 이용하면 거짓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의 외침에 강현수가 검을 거두어들였다.
정보를 얻을 필요는 없지만.
‘마계로 거짓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건 도움이 되지.’
지금은 죽어서 소환수가 되어 버린 백작급 고위 마계 귀족 다티, 우쿠르, 스타루드가 한번 잘못된 보고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보고가 없었으니.’
마왕 단탈리온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저 녀석을 살려 둔 후 정보를 계속 조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문제가 하나 있다면.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저놈이 목숨을 걸고 거짓 정보를 전달하면, 강현수만 곤란해진다.
거기다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너무 쉽게 군주였던 마왕 단탈리온을 배신하겠다고 한 게 뭔가 꺼림칙했다.
“그건…….”
“충성 맹세를 해라. 그럼 믿어 주마.”
강현수의 말에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의 표정이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당신의 종이 되어 영원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의 말에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거짓 충성 맹세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마왕 단탈리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일단 살아남은 후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현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공작급 고위 마족의 충성 맹세를 받는 순간.
[공작 이상의 마계 귀족의 충성을 받아 내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공작의 군주 EX랭크가 주어집니다.]
순식간에 EX랭크 업적 하나를 얻었다.
‘역시.’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과거 아틀란티스에서 언데드 군단의 수장이었던 마계 백작이자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를 휘하에 거둔 적이 있었다.
‘그때 업적을 얻었지.’
거기다 마족의 지배자라는 EX랭크 스킬까지 손에 넣었다.
아쉽게도 리몬쉬츠의 한계치는 한 단계 위인 후작에 불과했다.
‘그 이상은 가성비가 안 나왔지.’
리몬쉬츠를 공작급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라이프 포스 베슬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는데.
마기가 너무 많이 들어서 가성비가 떨어져 포기했다.
그렇기에 강현수는 후작급 마계 귀족까지 충성 맹세를 받은 상태였는데, 이번 기회에 그 단계를 올리게 된 것이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배신할 수 없는 족쇄를 채움과 동시에.
‘공짜로 업적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가이아 시스템의 힘으로 배신할 수도 없겠지만.
‘배신하면 제거해 버리면 되고.’
말을 잘 들으면, 마기를 주입해 성장시켜 업적을 더 뽑아내면 그만이다.
눈앞의 공작급 마계 고위 귀족은 그저 강현수의 업적 자판기이자, 언제든 소환수로 만들 수 있는 재료에 불과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가이아 시스템의 힘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느낀 공작급 고위 마계 귀족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역시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이었군.’
강현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강현수의 옭아매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었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에게는 불가능했던 걸 시도했다.
‘지휘관 임명.’
강현수가 공작급 마계 귀족을 향해 지휘관 임명 스킬을 시전했다.
“이건?”
“뜨기는 했나 보네. 수락해.”
강현수의 지시에.
“알겠습니다.”
공작급 마계 귀족이 지휘관 임명 스킬을 수락했고.
그 순간.
[마족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족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하급 이상의 마족을 휘하에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하급 마족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중략……
[최상급 이상의 마족을 휘하에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최상급 마족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마계 귀족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귀족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준남작 이상의 마계 귀족을 휘하에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준남작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중략……
[공작 이상의 마계 귀족을 휘하에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공작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미친.’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업적의 향연에 강현수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고작 마족 하나의 충성 맹세를 받았을 뿐인데, 무려 12개의 EX랭크 업적을 손에 넣었다.
아까 얻은 마계 공작의 군주까지 합치면, 마족 하나 잡아 EX랭크 업적을 13개나 얻은 셈이 된다.
‘뭐, 평범한 마족은 아니지.’
무려 마계 공작.
그렇기에 하급 마족을 휘하에 거뒀을 때의 업적부터 공작급 최고의 마계 귀족을 휘하에 거뒀을 때 얻을 수 있는 업적까지 싹쓸이했다.
‘복덩이네, 복덩이야.’
강현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나 했는데, 이런 초대박이 터질 줄이야.
그러나 조사는 필요했다.
“네 정체부터 이야기해 봐.”
강현수의 지시에.
“마왕 단탈리온을 따르던 케르논 공작입니다. 이번 침공의 총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절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이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왜 항복했지?”
“일단 목숨을 부지한 다음 후일을 도모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지만 말입니다.”
스스로를 케르논 공작이라 밝힌 고위 마계 귀족이 힘없이 대답했다.
완전히 자포자기한 것 같은 태도였다.
“마왕에 대한 충성을 그렇게 쉽게 저버릴 줄은 몰랐어. 벌레처럼 여기던 인간에게 충성 맹세를 할지도 몰랐고.”
강현수의 말에 케르논 공작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죽으면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너, 마계 공작 맞아?”
하급 마계 귀족만 해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흘러넘치는데.
이놈은 최고위 마계 귀족임에도 권위 의식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고위 마계 귀족들이랑은 많이 달라 보이는데.”
특히 살아남아야겠다는 집착이 상당해 보였다.
고위 마계 귀족급까지 갈 것도 없이.
하급 마계 귀족조차도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같은 마계 귀족이나 마왕도 아니고 벌레처럼 여기는 인간에게 투항하는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놈들은 태생부터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지만, 전 아니니까요.”
“넌 무슨 종족인데?”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공작 케르논의 외형은 다소 기이했다.
굴강한 뿔과 세 쌍의 날개.
마룡족과 같은 용종의 흔적이 몸 곳곳에 드러나 있기는 했는데, 형태는 드레고니안과 같은 인간형이었다.
‘마룡족이 인간형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작 편하게 부려 먹었을 것이다.
“저도 모릅니다. 용종 몬스터 혼혈에 고아인 최하급 마족 출신이라서요.”
케르논 공작의 말에 강현수는 살짝 놀랐다.
용종 몬스터의 피가 섞인 혼혈에 고아인 최하급 마족이 마계 공작이 되었다는 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지금 강현수에게 중요한 건 케르논 공작이 마왕 단탈리온에게 거짓 보고를 올릴 수 있다는 거였다.
‘전투가 서서히 끝나 가고 있어.’
차원 게이트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뿜어져 나오는 마족의 대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럼 알아서 거짓 보고를 올려라.”
“마기가 부족한데요?”
수많은 마족과 몬스터 들이 죽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모두 강현수가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주지.”
강현수가 자신의 마기 일부를 케르논 공작에게 전달해 주었고, 케르논 공작은…….
-인간들이 너무 나약합니다. 제대로 된 저항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먼저 간 선발대의 흔적을 찾아보겠습니다.
곧바로 거짓 보고를 올렸다.
“잘했다.”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 절 죽이실 겁니까?”
케르논 공작이 떨리는 눈동자로 강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단은 살려 두도록 하지.”
소환수로 부활시키는 것보다 살아 있는 채로 부리는 게 활용도는 더 높다.
‘가이아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효율을 따져 봐야 하기는 하지만, 마기를 더 투입해 대공 급으로 만들면?
전투에도 더 쓸모가 있고, 업적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강현수는 케르논 공작에게 허튼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후, 곧바로 달라진 스킬들을 자세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