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의 고민 (3)
강현수는 보유한 마석을 현재 시장가격의 1/10에 달하는 헐값에 판매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1/10이라고 해도 실로 엄청난 금액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강현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강현수는 물질적 가치를 초월한 존재였다.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화, 중국의 위안화.
기축통화를 쓰거나 준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들이 사실상 강현수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강현수에게 있어 돈은 원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조심해야겠지만 말이다.
지구의 군주라고 할 수 있는 강현수에게 있어서 돈은?
더 많이 소유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할 수많은 품목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강현수는.
그 품목에 석유라는 것도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슬슬 쓸어 담아.”
강현수의 지시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틴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나 마틴 역시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전의 가격과 석유 회사들의 가치가 바닥을 친 상황.
강현수가 막대한 돈을 풀어 유전과 석유 회사들을 사들여 봐야.
‘마석이 계속 나온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을 텐데.’
지금은 강현수가 전 세계 마석 생산량을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현수가 생산하는 마석의 양보다 플레이어들이 생산하는 마석의 양이 더 많아질 것이다.
‘뭐, 생각이 있으시겠지.’
사실 헐값에 사들인 원유와 석유 회사들의 가치가 제로가 된다고 해도.
금전이라는 것을 초월한 강현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 *
베네수엘라의 실권자가 된 외교부 장관 앤서니는 총리로 승급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강현수의 지원 덕분에 노후화되어 있던 원유 생산과 정제 시설이 빠르게 복구되었고.
그렇게 복구된 장비들을 가동시켜 원유를 대량으로 뽑아내고 있었는데.
‘석유 가격이 바닥을 치다니.’
땅에 파이프만 박아 넣어도 석유가 펑펑 나오고.
큰 정제 과정 없이 즉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질이 좋은 석유를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원유 가격이 바닥인 상태에서도 생산 단가를 맞춰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뽑아내기도 힘들고.
그렇게 뽑아낸 석유도 정제 과정이 복잡한 중질유이기에 생산 단가가 비싼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뽑아내 정제해서 지금 시장에 팔면 팔수록 엄청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고 지시를 어길 수도 없고.’
강현수가 원하는 건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펑펑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으로는.
외부 지원이 있지 않는 한 절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민이 많은가 보네.”
그때 앤서니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강현수의 목소리였다.
“오셨습니까?”
앤서니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선택지를 두 가지 줄게.”
“두 가지 말씀이십니까?”
“그래, 첫 번째는 베네수엘라의 원유에 대한 권리를 나한테 파는 거야.”
“지금 가격으로 말씀이십니까?”
“그것보다는 좀 더 쳐줄 생각이야.”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나한테 돈을 빌리는 거야.”
강현수의 말이 끝나자 앤서니가 고심에 들어갔다.
사실 원유에 대한 권리를 팔든, 돈을 빌리든.
둘 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자체가 강현수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 것은 동일했다.
그러나.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원유에 대한 권리를 팔면, 당장 돈이 들어온다.
그러나 나라를 개혁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들기 힘들다.
특히 만약 다시 석유 가격이 오르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돈을 빌리면,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영원히 강현수에게 종속될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석유가 에너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리면?
그나마 건질 수 있는 최소한의 돈도 건질 수 없어진다.
잠시 고민하던 앤서니가.
“돈을 빌리겠습니다.”
선택을 했다.
“호오,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석유의 종말이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강현수 님께서 석유를 원하시니까요.”
앤서니의 생각은 간단했다.
강현수가 원유를 원한다?
그건 석유의 종말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진 게 원유밖에 없는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돈을 빌려준다.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석유의 종말이 온다면, 도대체 뭘 믿고 베네수엘라에 돈을 빌려주겠는가?
석유의 종말이 오지 않는다면.
원유를 파는 것보다 돈을 빌리는 게 낫다.
“현명하네.”
강현수가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냥 원유를 팔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놓으나.
왼쪽 주머니에 넣어 놓으나.
‘어차피 내 것이니까.’
사실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파는 선택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배려는 해 줄 생각이었다.
‘애초에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강현수가 원유와 석유 회사들을 사들이는 이유는.
큰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라.
이번에 산유국과 석유 회사 들이 일으킨 소요와 분쟁이 두 번 다시 없었으면 해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단합을 강조한다고 해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분쟁이 없을 수는 없다.
그건 단순한 이상주의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그 분쟁을 제거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분쟁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전 인류가 하나로 똘똘 뭉쳐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할 상황인 만큼.
‘더 이상 제 살 깎아 먹기를 방치할 수는 없지.’
강현수는 베네수엘라에 적당한 돈을 빌려주고.
베네수엘라가 생산하는 원유를 휘하 국가들이 적정 가격에 사 주는 장기 계약을 맺었다.
‘지금이야 마석이 넘쳐 나지만, 그건 일시적인 거니까.’
섣불리 석유를 버리면, 훗날 마석 생산이 끊겼을 때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대비는 필요했다.
또 지금 당장 석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러시아와 중국이 노력한다고 해도.
‘원유라는 건 단시간에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화력발전소를 마석으로 돌리는 것도.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아무리 화력발전소를 돌리는 데 필요한 마석 정제 과정이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그 간단한 작업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사실 강현수가 마석을 대량으로 풀었다고 해도, 당장 석유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냉정하게 말해서 원유 가격은 올라야 했고.
석유 업체 주가도 상승해야 했다.
그러나 전 세계 화력발전소를 1년간 돌릴 수 있는 마석 물량이라는 파괴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상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유 가격이 상승하겠지만.’
아마 그때는 대다수의 원유와 석유 업체들이 강현수의 손에 들어온 후일 것이다.
* * *
“이런 어리석은 놈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머드 왕세자는 크게 분노했다.
돈을 풀어 언론을 동원하고 공식적인 발표까지 했다.
그럼에도 원유 가격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몇몇 석유 업체들이 정부의 압박과 유가 하락이라는 공포에 질려 물량을 풀기 시작했다.
‘단합해야 이길 수 있거늘.’
무함머드 왕세자는 냉정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기부를 통해 그런 마석 물량이 대량으로 풀릴 수 없다고 믿었고.
설사 마석 물량이 정말 그렇게 많다고 해도.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당장은 석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끝까지 버텼다.
그러나.
함께 담합을 결정한 이들은 무함머드 왕세자처럼 냉정하지 못했고.
설사 냉정하다고 해도 절대왕정의 실질적인 군주인 무함머드 왕세자처럼 독단적인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주주들이 들고일어나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인간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역시 현재의 최선일 뿐 완벽할 수는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인류는 보다 완벽해 보이는 길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뿐.
누구나 만족하고 항상 최상의 결과를 가지고 오는 완벽한 체계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등장하지 못하리라.
그게 인간은 본성이었고.
그런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이와 비슷한 일은 역사상 수십 수백 번 반복되어 왔다.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확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채권을 공포에 질려 헐값에 내다 팔거나.
상장폐지가 확정되어 최종 가격이 정해져 있는 유상소각 주식의 가격이 수십 배 뛰기도 한다.
어떤 게 손해고 어떤 게 이득인지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
함께 단합하고 버티면 이긴다는 걸 알지만.
그러지 못하고 분열하는 게 인간이었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감정적으로 일을 그르쳐 버리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무함머드 왕세자의 착각은.
모든 인간이 정해진 목적을 위해 자신처럼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원유 판매량을 늘리게.”
그렇기에 스스로를 냉정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무함머드 왕세자 역시.
원유 판매량을 늘리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멍청이들.’
마음 같아서는 어리석고 멍청한 놈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원유 가격은 바닥이었고.
단합이 깨진 이상, 전 세계 경제와 물류가 마비되고 물가가 오를 일도 없었다.
당연히 마석을 에너지 시장에서 퇴출하자는 반협박식의 제안이 승낙될 가능성도 없다.
가치 하락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혼자만 원유를 안 팔면?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만 손해를 보게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싼 가격이라도 원유를 팔아서.
‘그놈들을 고사시키기라도 해야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원유를 뽑아내고 정제할 수 있는 나라다.
쉽게 말해서 생산 단가가 극단적으로 낮다.
이런 상황에서 치킨 게임에 들어가면?
‘우리가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다.’
무함머드 왕세자는 첫 번째 플랜이 박살 났다고 좌절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곧바로 두 번째 플랜을 발동시켰다.
‘다른 석유 업체를 고사시키고 박리다매를 노린다.’
그게 최악의 상황에 놓인 무함머드 왕세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독점할 수만 있다면.
석유가 에너지 시장에서 퇴출될 때까지 최대한 이득을 거둘 수 있고.
또 석유는 에너원으로서의 활용성 외에도 다양한 효용이 있으니.
지속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함머드 왕세자는 강현수의 존재를 몰랐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강현수가 전 세계 원유와 석유 업체들을 대부분 인수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함머드 왕세자는.
망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플랜을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가동시키는 악수를 두고야 말았다.
* * *
“이제 정리가 다 끝난 건가?”
강현수의 물음에.
“예, 그렇습니다.”
마틴이 공손히 대답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원유와 석유 업체 대부분의 소유권이 강현수에게로 옮겨졌다.
“앞으로 지구에서 석유 생산으로 곤란을 겪을 일은 없겠군.”
강현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나 마틴에게는 아니었다.
미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유럽, 중국.
중국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러시아, 베네수엘라만 하더라도 사실상 전 세계 석유 시장을 움켜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남미, 중동, 아프리카의 유전 역시 상당수가 강현수의 손에 들어온 상태.
마석 역시 강현수의 손에 있으니.
사실상 전 세계의 에너지 시장 패권이 강현수의 손에 쥐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분이기에 별일이 아닌 것이지.’
강현수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다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손에 쥐지도 못했겠지만.
설사 쥐었다고 해더라도 금방 빼앗겼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