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 (5)
영국을 정리한 강현수는 스위스로 향했다.
크아아아앙!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으로,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그러나 상위종의 몬스터들은.
현대 무기로 제대로 된 타격을 주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고.
아무리 군사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어도, 인구수가 적은 이상 플레이어의 수가 적은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스위스는 이번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에서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국제기구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들어 있는 이상 정치 체계나 경제 체계로 인한 대립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가입해도 이상할 건 없다.
오랜 시간 긴급 개입 조치는커녕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가입국조차 아니었던 스위스는.
국가가 무너질 위기가 닥치는 순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고.
곧바로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가입함과 동시에 긴급 개입 조치에도 동의했다.
‘스위스가 스타트를 잘 끊어 줬어.’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손을 잡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유럽의 중립국들 역시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손을 잡기 위해 연락을 취해 왔다.
‘다들 약삭빠르네.’
스위스가 가장 빨랐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페인, 독일의 행보도 상당히 빨랐다.
‘이탈리아가 상당히 의외였지.’
룩셈부르크는 소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보다 영토와 국민의 수가 적은 초미니 국가로, 사실상 자력 방어가 불가능했으니 도움을 청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탈리아의 경우는.
자신이 만든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믿지 못하고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니.
그 파장이 어마어마하리라.
‘독일도 결국 무릎을 꿇었고.’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다.
그 넷이 백기 투항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사실상 유럽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그늘 아래로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
강현수로서는 차원 게이트 사태로 인해 원하던 목적을 너무나 손쉽게 이룬 셈이었다.
그렇지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몬스터로 인해 목숨을 잃어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강현수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다.
* * *
강현수와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유럽의 차원 게이트 사태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정세에 들어갔다.
큰 피해 없이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아 냈지만, 정치인들을 향한 유럽의 여론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도대체 EU 플레이어 협회는 뭐 하러 만든 거냐!
-EU판 긴급 개입 조치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럽은 왜 미리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하지 않았나?
-다급하게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된 유럽!
국민들이 들고일어났고.
유럽의 정치판은 개판 5분 전 상황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정치판은 최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는.
-영국 존스 총리의 혜안! 프랑스 마크룽 대통령의 독단!
-큰 위기를 넘겼지만, 프랑스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타국에서 먼저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다면?
-우리 프랑스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EU 플레이어 협회 지지한 마크룽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프랑스와 영국이 오랜 앙숙이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이득을 위해 손을 잡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간의 앙금이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거의 동시에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 상황은?
프랑스와 영국 모두 그리 크지 않았다.
사실상 둘 다 잘 막아 냈다고 자화자찬을 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대비를 잘해서 막은 것이고.
프랑스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이건 마크룽 정부에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다.
특히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아직까지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이탈리아의 경우.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들어 놓고 가장 먼저 배신한 이탈리아.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의 아버지 이탈리아. 자식을 버리다.
-이탈리아는 왜 유명무실한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들어 유럽의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나?
-유럽을 수렁 속으로 빠트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이탈리아.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는 이탈리아가 판 함정이었나?
자국에서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이번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로 피해를 본 유럽 각국의 국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독일의 경우는?
-영국은 미래를 내다본 뛰어난 안목으로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한 덕에 큰 위기를 넘겼다.
-프랑스는 운이 좋아 위기를 넘겼다.
-이탈리아는 약삭빠르게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우리 조국 독일은 미래를 내다볼 안목도 없었고, 운도 없었으며, 약삭빠르지도 못했다.
-솔츠 총리는 도대체 왜 EU 플레이어 협회에 가입한 것인가?
-미국, 러시아, 중국 대신 프랑스, 이탈리아의 손을 잡은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솔츠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국민들에게 온갖 이유로 욕을 먹었다.
차원 게이트 사태에 대한 대비도 충분했고, 플레이어 전력도 미리미리 배치시켜 놨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는 피해가 적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하지 않은 타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의 경우.
선견지명이 있는 영국, 운이 좋은 프랑스, 약삭빠른 이탈리아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큰 분노를 느꼈다.
유럽 각국들이 자국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동안.
강현수는 유럽 각국의 귀환자 출신 랭커들과 접촉하며 그들을 하나둘 휘하에 편입시켰다.
꼭 귀환자 출신 랭커만 기준을 둔 건 아니었다.
귀환자 출신 랭커의 인맥을 통해 일반 랭커들 역시 속속 강현수의 휘하로 들어왔다.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여론을 겨우 다독일 무렵.
사실상 유럽의 랭커 80%가량이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간 상태가 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뒤늦게 자국의 랭커들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랭커들을 포섭한 강현수는 다시 유럽을 순회했다.
이번 순회의 목적은 랭커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었다.
강현수의 존재를 알리고 좀 더 적극적인 협조를 받기 위함이었다.
‘비교적 온건하게 처리가 가능하겠네.’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가 없었다면 다소 과격하게 나갔어야 했겠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유럽 국가들 전부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신세를 진 꼴이 되었고.
각국의 랭커들의 대다수가 강현수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결정적으로.
‘자기들도 머리가 있으니 생각이라는 걸 하겠지.’
정치적인 이유로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했던 유럽이지만.
이번 사태로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하나로 뭉쳐야 했고.
그 중심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 * *
강현수는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유럽에 남아 있었지만.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일원이 되어 유럽으로 지원을 나갔던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은 대다수가 조국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몬스터 퇴치를 다 했는데 굳이 유럽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복구야 전문 인력이 알아서 할 것이고.
타국에 너무 오래 머물면, 자국의 던전이 몬스터 필드로 확장될 위험성이 었었다.
그렇기에 장석원, 신창호, 송하나 같은 귀환자 출신 랭커부터 장용철, 서동진 같은 일반 랭커.
그리고 랭커는 아니지만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기에 동원되었던 권소희까지.
모두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권소희는 다시금 사냥에 열을 올렸다.
‘아직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해.’
강현수의 경우야 천외천이었고 귀환자들 역시 특별한 경우니 논외로 칠 수 있었지만.
일반 랭커들의 놀라운 실력을 직접 목격하며 권소희는 자신도 반드시 랭커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
그간 권소희가 빠르게 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아마 진실의 눈이라는 고유 스킬이 없었다면?
실력 부족으로 굳이 소집되지도 않았으리라.
권소희는 자신의 실력이 그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사냥에 매달렸다.
사실 각성한 시기만 가늠해 보면, 권소희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권소희에게 일절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현재 자신의 실력이 강현수의 휘하 플레이어들 중 가장 떨어진다는 게 중요했다.
권소희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던전을 돌았고.
항상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진실의 눈 랭크를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어?’
그런 그녀의 눈에 지구에 절대 없어야 할 존재가 목격되었다.
‘빨리 알려 드려야 해.’
권소희가 다급히 강현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방금 도플갱어라는 마족을 봤어요.
짧고 굵은 권소희의 보고에, 유럽 각국 정상들을 순차적으로 면담하고 있던 강현수가 다급히 한국으로 복귀했다.
* * *
‘도플갱어라.’
강현수의 마음이 급해졌다.
휘하에 도플갱어였던 소환수들이 많기에 알고 있는 정보도 많았다.
‘전투력은 위협이 될 수준이 아니지.’
도플갱어들은 대부분이 중하급 마족이고, 동급 마족에 비해 전투력도 떨어진다.
그러나.
‘도플갱어의 무서운 점은 전투력이 아니지.’
바로 감쪽같은 위장 실력과 죽은 자의 기억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정치, 경제, 법, 군경, 길드 등등.
어느 쪽이든 파고들어 갈 수 있다.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재벌 회장이 될 수도 있으며.
거대 정당 대표나 장관, 판사, 검사가 될 수도 있다.
또 강력한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군사령관이나 치안총감 또는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다.
‘인간 사회를 점령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전 세계에 큰 혼란을 일으킴과 동시에 인간끼리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막말로 독재자로 위장하기라도 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지.’
그런 만큼 도플갱어는 보이는 족족 박멸시켜야 했다.
‘한 놈만 넘어오지는 않았겠지.’
아마 이번에 열린 대량의 차원 게이트를 통해 다수의 도플갱어들이 인간 사회에 침투해 왔으리라.
‘쉽지는 않을 거다.’
이미 각국의 수장 중 대다수가 강현수의 수족이었고.
곁에 소환수 도플갱어를 붙여 놨다.
‘도플갱어는 도플갱어가 잘 아는 법이지.’
소환수라고는 해도 본판이 같은 만큼 충분한 방비가 될 것이다.
전투력 자체도 소환수 도플갱어가 더 높았다.
지휘관으로 임명되며 버프도 받았고, 그간 강현수가 꾸준히 마기를 주입시켜 어느 정도 쓸 만한 수준으로 강화시켜 놓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마계 귀족급인 도플갱어 킹이 왔다면 좋을 텐데.’
일단 쓸모가 많다.
같은 도플갱어 킹 출신의 탈리만의 경우도 얼마나 써먹을 일이 많았는가?
또 지능도 높고 휘하 도플갱어들 통제도 가능하다.
그러나 강현수가 마계 귀족급인 도플갱어 킹을 간절히 원하는 진짜 이유는.
‘마계 귀족쯤 되면 마왕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틀란티스에서는 마왕의 이름을 알아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이름만 알아내면.
‘그레모리를 통해 지구를 침공하는 마왕의 서열을 알아낼 수 있어.’
상위 서열의 마왕이라면,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하위 서열의 마왕이라면, 난이도가 떨어지리라.
그렇지만.
‘난이도를 떠나 정보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지.’
지피지기 백전불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