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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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결과 (4)

영국에 차원 게이트 수백 개가 발생했다.

당연히 비상계엄령이 발동했고, 플레이어들과 영국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지만.

‘든든하군.’

영국의 수상 존스 총리의 얼굴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분의 방문을 받은 게 이렇게 큰 행운이었을 줄이야.’

현 유럽 국가들 중 유일무이한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 동의국.

그 말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 1순위를 맡아 놨다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다.

‘그분의 축복을 받은 귀환자 출신 랭커들의 실력이 급상승했어.’

그 덕분에 영국 랭커들의 수준이 훌쩍 올라갔다.

그에 대한 만족감이 얼마나 컸는지.

존스 총리는 그분이 귀환자 출신 영국 랭커만이 아니라, 일반 영국 랭커들에게도 축복을 내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정도였다.

‘어차피 그분에게 복종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야.’

미국, 중국, 러시아가 이미 굴복했다.

저항이 무의미하다면?

철저하게 충성을 바치고, 어떻게 해서든 그분의 총애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이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 병력이 도착했습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의 말에 존스 총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리석은 놈들.’

아마 지금쯤 다른 나라들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한창 고민하고 있을 터였다.

설사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해도.

‘우리 영국보다 빠를 수는 없지.’

현재 존스 총리의 머릿속에 반쯤 협박을 당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했던 기억은.

이미 말끔하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몬스터 토벌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영국에서 발생한 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그분의 소환수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분쇄되고 있었다.

“인명 피해는?”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1백 명 미만으로 추정됩니다.”

그 정도라면.

정말 지지리 운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피해가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플레이어와 군의 피해는?”

“현재까지 사망자 제로입니다.”

부상자야 어차피 힐러가 치료하면 그만.

그렇기에 사망자만 보고를 올렸는데, 그 결과가 실로 놀라웠다.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발 빠른 지원 덕입니다. 이 모든 게 총리 각하의 혜안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총리 각하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했습니다.”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사방에서 아부 세례가 날아들었다.

“하하하하!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큰 신세를 졌군.”

어떻게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존스 총리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번 일로 존스 총리의 지지율이 급등할 것은 당연했고.

지지율이 급등하면?

당연히 존스 총리의 권력도 강해진다.

“플레이어들에게 긴장을 풀지 말라고 전하게. 전투가 끝나면 곧바로 타국으로 지원을 보내야 하니. 우리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이지 않나?”

존스 총리의 말에 참모들과 각부 장관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피해를 막기 바빠서 허덕이고 있는데, 영국은 반대로 지원군을 보낸다면?

그 차이가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총리 각하.”

“국민들의 자부심을 세워 줄 최고의 업적이 될 겁니다.”

영국인들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프랑스인들 못지않다.

지금도 영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기는 하지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고 불렸던 시절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영국의 위명이 한껏 높아질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자부심도 올라갈 터.

그렇게 올라간 자부심은 나라의 명예를 빛내 준 현 정부의 지지율로 환산되리라.

영국은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회의실의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사정이 180도 달랐다.

* * *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차원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플레이어 병력 지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하노버에서 플레이어 병력 지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브레멘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라이프치히에서…….”

수도 베를린을 향해 지방의 원군 요청이 쇄도했다.

‘빌어먹을.’

솔츠 총리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독일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사태를 보고 미리 어느 정도 대비를 했다.

문제는.

차원 게이트 사태의 경우, 미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피해를 제로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피해 최소화.

그게 현재로서의 최선이었다.

독일은 유럽의 강국 중 하나, 플레이어 전력 역시 강력했다.

그렇기에 독일 전역을 지켜 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민간인과 플레이어의 인명 피해였다.

특히 민간인의 경우는 치명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지원 요청을 한 건 어떻게 됐나?”

솔츠 총리가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 차원 게이트 사태가 터지며, 솔츠 총리는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가 유명무실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차원 게이트가 감지되자마자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문제는.

“지원 병력이 수송기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난 지금 프랑스에 있던 세계 플레이어 협회 병력의 행방을 묻는 거네.”

“그게, 영국을 지원하는 중이라고…….”

외교부 장관의 대답에 솔츠 총리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프랑스 놈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솔츠 총리는 이탈리아를 동원한 프랑스의 수작을 알아차렸지만,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다.

그게 자국에 더 큰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데 막상 사고가 터지니, 그게 아니었다.

‘영국이 옳은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영국은 큰 축복을 받았고, 독일은 큰 징벌을 받았다.

‘차라리 우리 독일에서 먼저 차원 게이트 사태가 터졌다면.’

오히려 프랑스처럼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프랑스 이후 유럽 각국에서 동시에 차원 게이트 사태가 터져 버렸기에.

단순히 세계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이라는 이유로 빠른 지원군 파병을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꼬여 버렸다.

“지금 당장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하겠다고 전하게.”

이미 일등석 표는 매진이 되어 버렸다.

그럼?

이등석 표라도 끊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솔츠 총리의 결단을 전해 들은 외교부 장관이 다급하게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다시 연락을 했다.

“영국이 정리되면 바로 우리 독일로 오겠다고 하던가?”

솔츠 총리가 통화를 끝낸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저, 그게……..”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겠다는데 왜? 그래도 못 오겠다고 하나?”

“그런 게 아니라, 다섯 번째라고 합니다.”

“뭐?”

“이미 스위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페인이 먼저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었다고.”

외교부 장관의 말을 들은 솔츠 총리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나름 빨랐다고 생각했는데.

‘더 빠른 놈들이 있었다니.’

특히 스위스의 경우, 영세중립국이라며 EU 가입국도 아니었다.

심지어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데.

‘그사이 잽싸게 세계 플레이어 협회와 긴급 개입 조치 가입을 해치워 버리다니.’

정말 약삭빨랐다.

그러나 스위스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EU 가입국도,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탈리아 이 망할 놈들이.’

비록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느낌이 농후하기는 했지만.

사정이 어찌 되었든 이탈리아는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든 창립국이었다.

그런데 창립국이라는 놈이 가장 먼저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버리고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하다니?

이런 배신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들어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반기를 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자, 그 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반면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했던 독일은.

어쩌다 보니 가장 늦게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게 생겼다.

‘그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솔츠 총리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였다.

* * *

강현수는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유럽 전체에 차원 게이트 사태가 벌어진 만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프랑스에서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세계 플레이어 협회 차원에서 대대적인 병력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안 끊기를 잘했어.’

강현수의 활약과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에게 배치해 준 소환수로 프랑스 사태는 조기 종결했지만.

강현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송기를 타고 날아오는 지원군들을 회항시키지 않았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만약 프랑스 차원 게이트 사태를 정리했다고 유럽으로 향하던 지원군을 다시 돌려보냈다면?

유럽은 지금보다 더욱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리라.

-러시아 플레이어 부대가 현장에 도착해 교전 중입니다.

적염제 도르초프의 보고가 가장 먼저 올라왔다.

‘역시 가까운 만큼 지원 속도도 빨라.’

유럽과 러시아는 서로의 영토가 붙어 있는 만큼 오랜 앙숙 관계였지만.

반대로 손만 잡으면, 이렇게 빠르게 병력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 플레이어 부대가 도착해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플레이어 부대도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대한민국과 신한민국 플레이어…….

-인도 플레이어…….

-일본 플레이어…….

러시아의 뒤를 이어 미국, 중국, 대한민국, 신한민국, 인도, 일본 순으로 속속 지원군들이 도착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를 겪으며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했던 가입국들도 지원 병력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네.’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 때는, 어찌 보면 반쪽짜리 연합이었다.

그러나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에 대응할 때는 사실상 아시아, 유럽, 북미가 하나로 어울린 진정한 의미의 세계 연합이었다.

‘뭐, 그래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는 하지.’

남미,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를 비롯해, 아직 한 몸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나라들이 꽤 있었지만.

‘그건 천천히 해결하면 그만이야.’

그간 가장 골칫거리였던 유럽이, 이번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를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는 이미 존재 의미를 상실했고.

사실상 EU 가입국들 중 대다수가 그간 꺼리던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했다.

거기다 중립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과 러시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던 발트삼국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도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EU 가입국들만이 아니라.

사실상 유럽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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