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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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선택

유럽 국가들 중 시위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당연히 프랑스였다.

괜히 시위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현재 프랑스 마크룽 정부는.

애초부터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으니.

프랑스 마크룽 정부로서는 당연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시위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는 게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가 당장 내일이라도 프랑스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각부 장관과 참모 들의 보고에 프랑스 마크룽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차라리 선거까지 시일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시위 강제 진압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었다.

프랑스는 시위의 역사가 깊은 만큼.

그에 대처하는 정부의 강경책 역시 만만치 않다.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최루 가스나 물대포를 쏘는 강경 진압을 하는 건 기본이었고.

시위가 과격해지고 총기 사용이나 상점 약탈 사태가 벌어지면.

경찰 특공대나 심지어 헌병 특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한 적도 있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시위에 총기가 등장하고.

시위대가 상점을 약탈하고.

진압을 위해 실탄으로 무장한 경찰 특공대와 헌병 특수부대가 투입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사실 총기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치안이 좋은 한국이 특이한 것이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에서도 의외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했다.

‘너무 어리석어.’

마크룽 대통령이 주먹을 움켜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마크룽 대통령은 공포에 휩싸여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벌써 과거를 잊은 건가?’

나라에 힘이 없으면, 짓밟힐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 중 하나였지만.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에게 본토가 점령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프랑스는 핵보유국이다.

그러나 이는 그냥 얻어 낸 결과가 아니었다.

미국은 전 세계 최초로 핵보유국이고.

소련이 두 번째.

영국이 세 번째다.

그러나 애초에 영국은 미국보다 먼저 핵 개발에 들어간 나라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구 자료와 인력을 미국에 넘기며 합동으로 핵 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핵이 완성되자 미국이 시원하게 영국의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이에 이를 바득바득 갈던 영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던 영국인 과학자와 기술자 들을 본국으로 복귀시켜 핵을 개발했다.

먼저 핵을 보유한 미국, 소련, 영국은.

추가로 핵보유국이 나오는 걸 원하지 않았고.

미국의 경우 프랑스를 핵우산이라는 달콤한 말로 달래려고 했다.

그때 프랑스의 샤를 드 골 대통령은.

미국은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냐고 물으며 핵 개발을 강행한다.

이에 온갖 제재와 압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핵 개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핵을 보유해 지금 현재.

NPT가 인정한 다섯 개의 핵보유국 중 하나이자.

UN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었다.

‘이번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크룽 대통령 입장에서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하는 건.

과거 미국이 프랑스에 한, 핵우산에 들어오라는 달콤한 제안과 같다고 생각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미국의 꼭두각시나 마찬가지다.’

지금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했다가는 프랑스의 안보를 미국에게 맡기는 꼴이다.

‘중국, 러시아, 인도의 사태도 심상치가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쿠데타와 함께 정권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중국과 러시아 정권은.

미국에 엄청나게 우호적으로 나오며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언데드 몬스터 사태로 큰 타격을 받은 인도 정권 역시.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 중심에 있다.’

정권이 바뀐 중국과 러시아가 이 사태를 주도했다?

‘불가능한 일이다.’

인도 역시 이번 일의 주도국이 되기에는.

모든 면에서 부족한 데다 최근 언데드 몬스터 사태로 받은 타격이 너무 크다.

‘오히려 인도는 미국에 무릎을 꿇었다고 봐야겠지.’

그건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증거는 없지만,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고.’

최근 유럽에는 한 가지 음모론이 돌고 있었다.

그 음모론은.

미국이 북한 정권을 무너트리는 쿠데타에 관여했다는 루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항상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미국을 공식적으로 승냥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그 후 중국이 쿠데타로 무너졌고.

이번에도 그 쿠데타에 미국이 관련되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러시아의 독재자 포틴 대통령이 몰락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루머에 불과했고.

흔하디흔한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지.’

북한이 멸망하고 탄생한 신한민국이 친미 행보를 보이는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주의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친미 행보를 보이는 건?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쿠데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플레이어 주권을 지켜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것은.

핵이었다.

냉전 시대가 전쟁 없이 끝날 수 있었던 원인도.

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플레이어의 시대지.’

나라가 망할 각오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핵.

고작해야 중저레벨 몬스터에게나 통하는 총화기.

그런 것으로는 점점 늘어나는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은 EU 가입국들끼리 연대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유럽 국가들의 영토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인구 역시 마찬가지다. 다 합쳐 봐야 고작 6억 정도에 불과하다.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하면.

사실상 유럽의 플레이어 전력이 미국에 종속되는 결과가 나올 뿐이다.

‘시간을 끌고 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가 손을 잡은 이상.

무작정 버틸 수는 없다.

또 차원 게이트가 늘어나는 속도 역시 범상치가 않았다.

일회성이라고는 하지만 아시아 전역을 뒤덮을 정도였고.

러시아에 나타난 마족이나.

인도를 초토화시킨 카우르 사태 등.

최악의 경우.

유럽이 단독으로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결국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권한은 받아 내야지.’

유럽은 세계의 패권을 움켜쥔 적이 있었고.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 중 하나다.

유럽의 대표인 것이다.

‘중국, 러시아, 인도가 계속 미국에게 끌려다니지는 않을 거야.’

중국과 러시아의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루머가 사실이라고 쳐도.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지.’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독재자들이 계속해서 미국의 충견 노릇을 할 확률은?

제로다.

그건 큰 도움을 받은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크룽 대통령은 권력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의 균열을 유도한다.’

그사이 유럽이 하나로 똘똘 뭉치면?

‘미국이 큰 양보를 하면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구도를 만들 수 있어.’

독재자들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믿을 수 있는 우방이 아니다.

그건 그간 이리저리 간을 보던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우방은?

‘우리 유럽밖에 없어.’

유럽을 주도하고 있는 건.

누가 뭐라 해도 프랑스와 독일이다.

섬나라인 영국?

애초부터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는 결이 좀 다르기도 했고.

EU까지 탈퇴했다.

‘그 해적 놈들은 배제하면 그만이야.’

그럼 독일만 꺾으면, 프랑스가 유럽의 전체를 대변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마크룽 대통령은 자신이 있었다.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EU 가입국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경제력에서만큼은 독일이 프랑스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나.

‘군사력은 아니지.’

굳이 핵을 꺼낼 필요도 없다.

전범국이지만 소련 견제를 목적으로 나토의 허락하에 군대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명분이 중요하지.’

독일이 프랑스와 함께 유럽 경제 협력체의 수장 역할을 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간 프랑스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독일을 몰아내고 1강 체재를 만들기는커녕 2강 체재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군사 문제에서만큼은.

‘무조건 우리 프랑스가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어.’

플레이어의 질과 양으로 각국의 군사력을 측정하는 세상이다.

사실상 플레이어는 각국의 군사조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독일이 유럽 군사조직의 수장 역할을 맡는 건 불가능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그건 독일에게 있어서 영원히 씻기 힘든 굴레였다.

‘문제는 시위대인데.’

마크룽 대통령으로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하라고 난리인데.

이런 상황에서 마크룽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EU 플레이어 협회를 만든 후 따로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당장 내일이라도 유럽 전역에 수천 개의 차원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아마 엄청난 역풍이 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 대신 총대를 메 줬으면 좋겠는데.’

잠시 고민하던 마크룽 대통령이 이탈리아 대통령 마타렐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한편 그 시각.

프랑스 못지않게 시위 열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가 있었다.

바로 영국이었다.

프랑스가 시위의 나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시위하면 영국도 만만치 않다.

아니, 어떨 때는 프랑스보다 더욱 큰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가장 큰 문제는?

‘대안이 없다.’

영국의 총리 존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EU 가입국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플레이어 협회나 긴급 개입 조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하나 EU를 탈퇴한 영국에게는 불가능한 옵션이었다.

지금 다시 EU에 가입해 봐야.

‘독일과 프랑스의 들러리가 될 뿐이지.’

그건 존스 총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영국 국민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기에는.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

영미 동맹이 굳건하기는 하지만, 최근 미국의 행보가 심상치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먹힐 수도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과거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영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되게 생겼다.

존스 총리가 한창 골치를 썩고 있을 때.

미국 대사가 찾아왔다.

‘또 설득할 생각인가?’

그간 미국 대사는 뻔질나게 영국 총리실을 드나들었다.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라는 압박을 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누구지?’

미국 대사와 함께 낯선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양인?’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니까.

그렇지만.

‘너무 어린데?’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어려 보인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신과 만나는 자리에 동석할 정도 직책에 있는 인물이라기에는.

어려도 너무 심하게 어려 보였다.

또 면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편한 옷차림 역시 격식에 맞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존스 총리가 해야 할 건.

미국 대사를 적당히 구슬려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어서 오시오.”

존스 총리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미국 대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때.

“당신이 영국 총리군.”

미국 대사와 동행한 동양인 청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존스 총리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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