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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를 원하는 자 (4)

“그럼 그렇게 하지.”

강현수가 소피아를 소환했고.

그 후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슈욱!

그 순간 시야가 바뀌었다.

“여기는?”

오늘 방문했던 김철우 대통령 집무실이었다.

“어쩐 일로 이렇게 갑자기 방문하셨는지?”

갑자기 변한 환경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눈에.

낮에 자신을 만났을 때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던 김철우 대통령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김철우 대통령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강현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고개까지 숙였다.

“별일 아니다.”

“조성훈 회장과 함께 오셨군요? 혹시 일성 그룹 일로 따로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

“지금 당장은 없다. 앞으로는 생길지 모르지만.”

“알겠습니다. 지시할 사항이 생기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김철우 대통령이 아랫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본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김철우 대통령은 현재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삼권분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입법부인 국회도, 사법부인 법원도 김철우 대통령 앞에 납작 엎드린 형상이었다.

심지어 언제나 정권과 각을 세우는 언론 역시 김철우 대통령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기에 오늘 낮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찍소리도 못 하고 곱게 물러났던 것이다.

전처럼 언론을 통해 정권을 압박하거나.

국회의원, 판사, 검사를 구워삶아도 김철우 대통령을 압박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괜한 역풍을 맞을 확률이 컸다.

그런데.

그런 김철우 대통령이 간과 쓸개를 빼놓기라도 한 듯이 강현수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다음으로 가지.”

강현수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소피아가 아닌 다른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슈욱!

다시금 시야가 바뀌었다.

‘여기는?’

강현수와 함께 이동한 곳은.

신한민국의 대통령 집무실.

과거 주석궁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오셨습니까.”

강현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TV에서 항상 당당하고 강경한 모습을 보였던 신한민국의 종신 통령 현충복이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그 이후는?

김철우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 비슷했다.

다시 시야가 바뀌었고.

이번에는 중국의 국가 주석 진구평을 만났다.

설마설마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후 러시아 크렘린 궁, 일본 총리 관저, 인도 총리 관저, 미국 백악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렇게 만난 그들의 태도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자로 잰 듯 똑같았다.

다시금 자신의 자택으로 돌아온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입에서.

“하, 하하하.”

허탈함이 가득 담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 이제 서명해.”

강현수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에게 영혼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내용은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것과 동일하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영혼의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내용을 읽어 나갔다.

‘권영수 이 망할 놈이.’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영혼의 계약서 내용은 사실상의 노예 계약이었다.

괜히 아까 노예가 어쩌고 족쇄가 어쩌고 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거였다면 진작 말을 해 줄 것이지.’

먼저 욕심을 부리기는 했지만 이건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만든 함정에 빠진 것같이 느껴졌다.

아니, 이건 함정이 맞았다.

‘거절할 수는 없다.’

먼저 요청했고, 증거도 요구했다.

대한민국, 신한민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의 수장들을 수하로 부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나만이 아니라 일성 그룹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굳이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자신과 일성 그룹을 동일시하고 있는 조성훈 회장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강현수의 생각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인 일성 그룹의 회장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얌전히 영혼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 녀석을 붙여 주마. 항상 곁에 데리고 다녀라.”

강현수가 도플갱어 소환수 한 기를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곁에 붙였다.

일종의 감시이자 경호원이었다.

“앞으로 지시는 이 녀석을 통해 내리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강현수의 몸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강현수가 사라진 후.

잠시 멍하니 있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강현수가 붙인 도플갱어가 화장실 안까지 따라오는 일은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 털썩 주저앉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과 이야기는 잘 나눴나?

“자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그간 억눌려 있던 감정을 토해 냈다.

“일성 그룹이 어떤 기업인데! 2대에 걸쳐서 어떻게 키워 온, 키워 온 기업인데! 그런데 그걸 고스란히 빼앗겼어!”

-빼앗기다니? 엄연히 법적으로 자네가 회장 아닌가? 그리고 먼저 연락해서 도와 달라고 한 건 자네였네.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말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노예 신세로 전락할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그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으리라.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입장에서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자신에게 한 짓은.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 보라는 일종의 물귀신 작전에 가까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자네가 원하는 걸 들어줬을 뿐이네. 그리고 자네도 영혼의 계약서를 썼지 않나? 그럼 내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그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얄미웠다.

욕심이 생겨 먼저 부탁한 건 자신이지만.

누군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려고 하면 말리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겠네.”

-자네가 안 잊으면 뭘 어쩔 건데?

당당한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말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이제는 동료가 되어 버린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에게 그 어떤 불이익도 줄 수가 없었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죽는다는 소리는 왜 하는 건지.

“자네는 참 태평하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럼 태평하지 못할 건 뭔가?

“혹시 혼자 죽기 억울해서 그러나? 그래서 대한민국 기업인 전부를 그분의 노예로 만들 생각인가?”

-이런 축복을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나눠 줄 수는 없지. 자네의 부탁을 받고 그분께 말을 전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자네가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만 늘어놓다니.

“축복? 노예 신세가 된 게 축복이라고? 자네 제정신인가?”

-대신 젊었을 시절의 건강한 육신을 손에 넣지 않았나? 사고나 질병으로 죽을 걱정도 사라졌고. 수명이 최소 수십 년은 늘었을 텐데, 그 정도면 큰 축복 아니겠나?

“젊었을 시절의 건강한 육신? 사고나 질병으로 죽을 걱정이 사라지고 수명이 늘어?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혹시 그분이 자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지 않았나?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축복이라니? 그게 뭔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게.”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도 그렇지만,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 역시도 적잖은 고령이었다.

건강 관리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노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체력이 떨어지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이유 없이 몸이 아프다.

몸이 서서히 고장 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경우는.

심장 부정맥이 심해서 몇 차례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지금도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언제 심장 부정맥이 재발할지 모르는 처지였다.

죽음은?

돈이 많거나 적거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건강을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돈 많은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죽음이고.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게 젊음과 건강이다.

-사실 그분을 만나기 전의 나는 췌장암 말기 환자였네. 사실상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지. 그런데 그분의 수하가 된 후, 그분께서 나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네. 말기였던 췌장암이 완치되고 젊었을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활기가 넘치는 몸이 되었지.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병마와 외상으로 죽을 일은 없다고 하시더군. 수명도 수십 년 정도는 늘어났을 거라고 하셨고 말이야.

“그게 정말인가?”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말을 들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눈이 번뜩였다.

-내가 굳이 자네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또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도 순식간에 치료되어 버리더군. 그래서 요즘은 다시 축구에 재미를 붙이고 있네.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은 원래 유명한 축구 마니아였다.

그래서 K리그 프로팀도 소유하고 있었고.

젊었을 시절에는?

아마추어 축구 대회를 개최해 직접 선수로 뛰기도 했다.

뭐, 나이가 든 후에는 체력이 따라 주지 않기도 했고.

작은 부상이 골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직접 경기를 뛰니 정말 좋더군. 내 몸이 젊어진 게 확실히 실감이나. 거기다 부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젊었을 때보다 더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있더군.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자랑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한편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아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자랑을 듣고 있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까맣게 죽어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축복을 받지 못했는지 모르겠군? 난 당연히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물음에.

‘빌어먹을.’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강현수를 만난 후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되돌아봤다.

그러자 왜 자신이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과 달리 축복을 받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지 말걸.’

어차피 지금의 자신은 강현수의 노예가 되었다.

그건, 자신이 강현수를 만나기를 요청한 순간 정해진 운명이었다.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런데 괜한 객기를 부리다.

잃기만 하고 얻지를 못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 줄 것이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을 원망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니까. 자네 말을 들어 보니 일이 꼬였나 보군. 하긴 자네의 오만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으르렁거리는 음성로 물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내가 뭐 하러 자네를 놀리겠나? 그래도 수하가 된 걸 보니 기본은 지킨 모양이군.

“아무리 봐도 놀리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분의 환심을 사는 걸 고민하는 게 빠르지 않겠나?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말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생각해 보니 아직 기회가 남아 있어.’

강현수가 자신을 어여삐 봐 준다면?

그 축복을 자신에게도 내려 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크흠, 미안했네. 내가 말이 좀 심했군.”

먼저 강현수의 수하로 들어가서 그에 대해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부탁이네. 나 좀 도와주게.”

-뭐, 그러도록 하지. 사실 그리 까다로운 분은 아니시네. 자신에게 충성하고 지시한 일만 잘 처리하면 아랫사람에 대한 터치 자체가 없으신 분이니까.

“정말 훌륭하신 분이군. 그런데 난 지금 지시받은 일이 없네? 혹시 내 충성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겠나?”

-그럼 일단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아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도 꼼꼼히 메모까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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