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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를 원하는 자 (3)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군.”

강현수의 말에.

“제가 원한 것은 동반자이지 노예가 아닙니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역시 권영수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군.’

강현수는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요청을 받고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을 찾아왔다.

그렇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줬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강현수와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쓴 영혼의 계약서에는.

비밀 유지 조항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은 영혼의 계약서로 인해 강현수에게 종속된 존재다.

사실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현수에게 큰 실수를 하기도 했고.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 본인의 목숨과 손녀 권소희의 목숨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욕심 때문에 움직인 거니까.’

욕심 때문에 움직인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에게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과 같은 조건을 내민다면?

납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리라.

‘하지만 내가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스스로 자청해서 강현수의 아래로 들어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 강현수가 직접 큰 수고(?)를 들여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을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싫다며 거절을 한다?

그건 강현수를 헛걸음하게 만든 것이자 속인 것이고.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동반자라?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과 같은 대우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강현수의 물음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이 그 플레이어 연합 세력의 노예라는 말씀이십니까?”

“플레이어 연합 세력? 뭔가를 근본부터 착각하고 있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플레이어 연합 세력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포함해.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또 그 중심에는 분명히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플레이어 세력이 없다니?

‘말장난을 하는 건가?’

세력이라는 게 뭔가?

힘을 가진 집단 아닌가?

물리적인 힘과 정치적인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에도 세력이 아니라니?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입장에서는 강현수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납득할 수 없나?”

“제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대한민국, 신한민국은 분명 힘을 합쳤고, 그 중심에는 플레이어들이 있습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플레이어 연합 세력이 없다고 하신다면,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들군요.”

애초에 진짜 그런 세력이 없었다면?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굳이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도 힘들었고.

“제 앞에 있으신 분부터도, 그 플레이어 연합 세력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까?”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눈에 강현수.

그 세력에서 꽤 힘 있는 실세였다.

그런데 세력의 실세가 세력을 부정하니.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세력이라. 그래, 어떻게 보면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강현수의 말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뭉친 자들이 세력이 될 수 있겠어.”

강현수 입장에서는 개인의 힘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에.

그저 인류 평화와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굴복한 국가나 플레이어 들에게 자신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반대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세력이라고 판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또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줘야 하는 존재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어쨌든 자신의 아래 있으니 엄연히 하나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한편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강현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뭉친 자들이 세력이 될 수도 있다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설마!’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을 해석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저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 수하들을 늘렸을 뿐인데,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어.”

이어지는 강현수의 말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 일말의 가능성이 진실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혹, 그 세력의 수장이십니까?”

“그렇다.”

담담한 강현수의 대답에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경악했다.

그저 더 많은 이득을 위해서 그 세력에 합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설마 그 세력의 수장이 직접 찾아오다니?

이건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었다.

‘진짜인가?’

오죽하면 강현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이 세 나라만 해도.

경제력과 군사력을 종합해 봤을 때, 전 세계 최강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그런데 이 세 개 나라를 발아래 뒀다.

여기에.

대한민국, 신한민국, 일본에 이어 인도까지 합류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력의 수장이 저렇게 젊을 수가 있는가?

아니, 모든 걸 다 떠나서.

‘어떻게 한국인일 수 있는 거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그 말씀을 믿을 수 있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증거?”

강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수하가 되고 싶다고 청해 왔으면서, 이제 와서 증거를 요구하다니?

“내가 찾아온 건 네가 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증거를 제시해야 하나?”

강현수로서는 기가 막혔지만.

“저로서는 중요한 일입니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으로서는 강현수의 말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존대를 하며 저자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강현수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권영수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중간 관리자가 농간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증거라. 나에게 있어 너라는 존재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일성 그룹.

대한민국 1위 기업이고.

전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기업.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건 상당히 강력한 힘이다.

일성 그룹 회장인 조성훈의 경우.

웬만한 국가의 지도자보다 더 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중요치 않지.’

이미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을 발아래에 두고 있는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일성 그룹이 아니라 전 세계 1위 기업이라고 해도.

그저 쓸 만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물며 기업 자체도 아니고 기업의 오너는.

그 기업이라는 이름의 기계를 구성하는 데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들 중에서.

제법 쓸 만한 주요 부품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봐야 부품은 부품.’

중요도가 높다고 해도 얼마든지 갈아치우거나 대체할 수 있다.

강현수는 독보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를 발아래 두고 지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사실상 지구 전체를 다스리는 군주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바로 강현수였다.

그런 강현수에게 있어 일성 그룹 회장인 조성훈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부품 중 하나인 조성훈이 없다고 일성 그룹이 무너지거나 사라질까?

그럴 리가 없다.

부회장이 있고.

여러 사장들이 있으며.

더 많은 수의 임원들이 있다.

강현수의 눈높이에서는.

일성 그룹 오너인 조성훈이나 일성 그룹 신입 사원 김 아무개나 어차피 중요도의 차이일 뿐.

언제나 교체가 가능한 부품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직접 온 것은.

현 일성 그룹 회장인 조성훈이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오고 싶다고 먼저 요청했기 때문이다.

일성 그룹이라는 쓸 만한 도구의 오너가 스스로 종이 되고 싶다고 청하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일성 그룹이라는 쓸 만한 도구의 오너가 지나친 자부심으로 만용을 부린다면?

‘바꿔 버리면 그만이지.’

일성 그룹 오너를 조성훈에서 다른 이로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강현수에게 도움이 되는 쓸 만한 도구는 일성 그룹이지 조성훈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일성 그룹에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어금니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니, 일성 그룹 말고, 인간 조성훈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겠느냐고?”

강현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식회사로 이루어진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주주다.

그런데 한국 재벌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식을 51% 정도 보유하고 있다면.

사실상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봐도 무방하기는 하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기업은 주주의 것이지 회장이나 사장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재벌들은?

100%도 아니고.

51%도 아니고.

고작 한 자릿수 퍼센트의 주식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순환 출자라는 마법을 부린다.

‘솔직히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운용하든.

그건 일성 그룹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강현수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성 그룹과 인간 조성훈을 동일시해서 저울에 올려 강현수와 거래를 하려는 건?

‘용납할 수 없지.’

그런데 조성훈 회장의 경우는 강현수의 말을 납득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 가치는 없어 보이는군. 괜한 헛걸음을 했어.”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의 경우, 쓸 만한 장기짝이 될 것 같았고.

우광 그룹이라는 기업을 강현수의 일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의 경우는?

일성 그룹이라는 기업을 강현수의 일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수 없어 보였다.

‘나보다는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더 챙기려고 하겠지.’

그게 자신의 이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영혼의 계약서를 쓰라고 해도 순순히 동의할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강현수가 무슨 요구를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강현수를 찾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상황이 달랐고 절박함도 달랐다.

‘돌아갈까?’

단 이대로 돌아간다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강현수가 이런 수고를 하게 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강현수를 붙잡았다.

“작은 수고를 들여 주신다면, 충분히 그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대가?”

“예, 괜한 헛걸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잠시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을 바라보던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수로서는 딱히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어차피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이 자발적으로 대가를 지불하나.

강현수가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에게 강제적으로 대가를 받아 내나.

수고를 들이는 건 똑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순순히 주는 게 편하기는 하지.’

그러나.

‘이미 반쯤 헛걸음이 되어 버렸단 말이지.’

그런 만큼.

일성 그룹 조성훈 회장은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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