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오만 (2)
노보쿠즈네츠크는 크라스노야르스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도시였다.
“당장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연락하게.”
포틴 대통령이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럼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일단 내버려 두게.”
크라스노야르스크는 현재 생존자가 몇 명인지 파악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
그러나 노보쿠즈네츠크는 이제 막 언데드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된 상태다.
그럼?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노보쿠즈네츠크를 우선해야 했다.
“다른 도시에도 비상 경계령을 내리게, 심상치가 않아.”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플레이어가 부족합니다.”
“군대를 더 동원하면 되지 않나?”
“시가전에서는 군대를 동원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몬스터를 잡겠다고 민간인들이 사는 도시에 미사일을 쏘거나 포격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투입시키게.”
“차라리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자네, 제정신인가? 그간 중국은 계속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 우리가 계속 거부했네. 그런데 이제 와서 받아들인다? 그럼 중국 놈들이 우리를 뭐로 보겠나? 명색이 외교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그런 문제를 떠올리지 못하다니! 능력이 없는 건지, 자질이 부족한 건지.”
포틴 대통령이 입을 여는 순간.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이 묵살되었다.
‘병사들을 투입해 봤자, 피해만 커질 확률이 높을 텐데.’
중화기로 무장한 최정예병들을 투입해도.
상대할 수 있는 건 고작 중하급 몬스터가 한계였다.
상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언데드 몬스터라고 했는데.’
다른 몬스터는 어쨌든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러니 기관총과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트리면 효과가 있다.
하나 이미 숨통이 끊어진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게 분명했다.
‘이걸 말씀드려야 하는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
‘괜히 입을 열었다가 포틴 대통령 각하의 노여움을 사면 나만 손해지.’
이 자리에 모인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은 결코 어리석은 이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독재자 포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의견을 제시할 용기는 없었다.
이미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외교부 장관이 제대로 깨지는 걸 보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번 일로 외교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게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
국가에 손해가 되는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독재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중요했다.
중국의 모택동이 대약진운동 중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보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했을 때.
참새가 곡식보다 해충을 더 많이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모택동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참새 박멸 운동’에 들어갔을 때.
훗날 중국에 최대 6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당장은 몰랐더라도 나중에 알게 된 이가 없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독재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
독재자의 말을 거스르면 목숨이 위태로웠기에 조용히 따랐을 뿐이다.
그건 독재자가 다스리는 국가인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 * *
‘멍청한 인간 놈들.’
인간들의 군대가 투입되었고,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 결과.
리치 아르타스는 마이너스한 감정과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를 통해 더 많은 마기를 축적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움직일 걸 그랬나?’
단 이틀 만에 엄청난 마기를 쌓아 올렸다.
‘아니야.’
하급 마족이었을 시절에는 이렇게 많은 숫자의 언데드 몬스터를 동원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제 슬슬 이동해야겠구나.’
첫 번째 목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도, 두 번째 목표인 노보쿠즈네츠크도.
완전히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지.’
러시아 플레이어들의 이동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또 효율도 떨어졌다.
숨어 있는 인간들을 일일이 찾는 수고를 하느니.
그 시간에 다른 도시를 습격하는 게 더 큰 이득이었다.
거기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들은.
공포와 절망에 질려 쉼 없이 마이너스한 감정을 뿜어내며 리치 아르타스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이제 다음 도시로 향해야겠군.’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 있겠지.’
아마 이전 두 개의 도시처럼 손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군대와 플레이어들이 강하게 저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더 좋아.’
믿음이 깨졌을 때 느껴지는 공포와 절망은?
리치 아르타스의 성장에 더 큰 양분이 된다.
‘이틀 안에 끝낸다.’
이틀 후, 러시아의 도시들을 초토화시키며 모스크바에 도착할 것이고.
리치 아르타스의 예상대로라면 그때쯤.
‘마계 백작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지구라는 차원에서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 * *
“노보시비르스크에 언데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정보장교의 보고에 포틴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 160만의 대도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와 노보쿠즈네츠크도 아직 다 수습하지 못했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어물쩍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당장 플레이어와 군대 이동시켜!”
“알겠습니다!”
그러나 노보시비르스크가 정리될 쯤이 되자.
“바르나울에 언데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다시 사고가 터졌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언데드 몬스터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출몰하는 건가!”
이미 해가 지고 늦은 새벽 시간이 되었지만.
포틴 대통령을 비롯한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은 잠은커녕 잠시 쉴 시간조차 없었다.
“언데드 몬스터를 소환하는 특수 개체 몬스터가 존재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그런 특수 개체 몬스터가 등장한 적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귀환자들에게 물어보니 언데드 계열의 마족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마족?”
포틴 대통령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귀환자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확보한 러시아 정부였다.
당연히 침공하는 적들의 정체가 마왕군이라는 것.
몬스터 이후에는 마족이.
최종적으로는 마왕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 빠르지 않나?”
“언데드 계열 마족 중 리치의 경우는 불사의 존재입니다. 실패해도 부활하니 무리한 도전을 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럼 우리 러시아에 세계 최초로 마족이 등장했다는 건가?”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마족 강림.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 떨어질 것이지.
왜 러시아 영토에 떨어져서 이렇게 골치를 썩인다는 말인가?
“지금이라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세계 최초로 등장한 마족을 토벌하는 일이니, 결코 자국의 명예가 손상될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토벌에 성공하면 명예로운 일이 될 겁니다.”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까지 하나로 의견을 모아 국제기구인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의견 제시는 할 수 있어도 결정을 내리는 것은 포틴 대통령만이 가능했다.
“이미 피해는 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미국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 마족을 토벌하면! 그러면 국민들이 좋아할까?”
당연히 아니다.
왜 진작 안 불렀냐고 불만이 폭발할 게 뻔하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정도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냐며 불만을 토로할 것이고.
어쩌면 미국의 도움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외치며 러시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고 화를 낼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도움을 요청했다면 몰라도 이미 너무 늦었어.”
지금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서 이번 일을 해결해 봐야.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한 이상 국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는 무리다.
“그럼 어쩌시겠는 건지?”
“당연히 자체적으로 해결해야지. 세계 최초로 마족이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온 상황이네.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의 피해는 큰 게 아니라는 여론을 조성할 수 있어.”
이건 여론을 그렇게 조성하라는 뜻이다.
“거기다 피해는 크지만, 세계 최초로 지구에 넘어온 마족을 자국의 힘만으로 쓰러트렸다는 상징성은 우리 러시아의 명예를 높여 줄 거네.”
대대적으로 포장해서 선전하라는 뜻이었다.
“또 인류 전체를 대신해 마족을 쓰러트린 거니, 세계 각국의 정부와 민간인들에게 복구 자금을 모금하기도 용이하겠지.”
포틴 대통령의 말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그렇지만 마족은 강력한 무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또 우리 인간과 대등한 지성을 지닌 지성체입니다.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지.”
“맞습니다. 지금만 봐도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며 게릴라만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굳이 러시아가 전 세계를 대신해 총대를 멜 필요가 있겠습니까?”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이 일제히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하자.
포틴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와 동시에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그 마족 놈이 게릴라를 펼치는 이유가 뭐겠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포틴 대통령이 자신들의 대답을 원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바로 그 마족 놈의 힘이 약해서네. 우리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이 도착하기만 하면 도망치는 나약해 빠진 놈이 아닌가? 자네들 말대로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을 받아서 세계 최초로 지구에 넘어온 마족을 쓰러트렸는데, 터무니없이 약하다? 그럼 그렇게 약한 마족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은 우리 러시아의 입장은 뭐가 되겠나?”
분노가 줄기줄기 담긴 포틴 대통령의 말에.
“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역시 대통령 각하의 선견지명은 탁월하십니다.”
“맞습니다. 저희 같은 평범한 자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는 없는 수준입니다.”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이 일제히 태도를 바꿨다.
여기서 더 입을 열다가는?
그대로 실각이다.
결정적으로.
‘포틴 대통령 각하의 말씀은 틀린 게 없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으면 국민들의 피해는 줄어들겠지만, 우리의 입지가 애매해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들 역시 정치인이자, 포틴 대통령의 수족이었다.
국민들이 겪을 고통?
국민들이 입을 피해?
국민들이 느낄 절망?
그딴 것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1백만 배는 더 중요했다.
‘어차피 포틴 대통령 각하가 실각하면 우리 모두 끝장이다.’
‘자력으로 해결해야, 정권의 지지도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 와서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해 봐야. 정권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면 끝장이다.’
상황 파악이 끝났다.
“해외로 정보가 퍼지는 걸 막아야겠습니다.”
“해외로 통하는 광케이블과 위성통신을 끊어 버리죠. 국내 통신망만 살아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게 좋겠군. 명분이야 몬스터의 난동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그만이니.”
포틴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러시아의 수뇌부.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맹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