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230화 (230/365)

재회 (3)

“글쎄, 그건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아마 네 태도에 따라 결정이 되겠지.”

서동진이 그 말과 함께 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영혼의 계약서?’

강현수는 서동진이 꺼낸 문서의 정체를 손쉽게 알아차렸다.

“순순히 고개를 숙이면 목숨은 살려 주마. 하지만 끝까지 반항하면 죽여 버리겠다.”

서동진의 말에 강현수가 결정을 내렸다.

“진심이군. 살기가 넘쳐. 그때와는 다른 결정을 내려야겠어.”

“뭐?”

“그때는 병아리들이기도 하고. 날 죽일 의지도 없어서 살려 줬는데. 넌 아니잖아?”

사실 그때 샤이닝 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죽였다면?

이런 귀찮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현수는 그들을 살렸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강현수는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았으니까.

하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서동진은 자신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 생각이다.

그러니.

“똑같이 해 주마.”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다.

그게 강현수의 결론이었다.

‘실력이 있다면 노예로 부리고. 그럴 가치조차 없다면.’

죽이면 그만이다.

사실 강현수는 지구에서는 되도록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또 애초에 지구는 아틀란티스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감성적인 영역이었고.

근본적으로 지구와 아틀란티스가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니 단순히 이곳이 지구라고 해서 자신을 죽이겠다고 찾아온 이들을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 이는.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했고.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이는.

자신도 노예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그건 아틀란티스뿐만이 아니라.

지구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였으니까.

“도대체 뭘 똑같이 해 준다는 거냐?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손쉽게 꺾으니 우리 샤이닝 길드가 우습게 보이나? 하지만 난 조금 다를 거다. 랭커의 무서움을 보여 주마.”

저레벨 플레이어나 고레벨 플레이어나 강현수 눈에는 똑같은 병아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를 랭커라고 자처하는 서동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랭커든.

세계 랭커든.

어차피 플레이어가 등장한 지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은 세상.

비록 꽤 많은 스텟을 잃었다고는 하나.

한 차원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강현수의 상대는 아니었다.

“우선 팔부터 자른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

타악!

서동진이 엄청난 속도로 강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반응도 못 하는군.’

서동진이 강현수를 비웃었다.

근접 딜러인 서동진은 민첩 스텟을 극한까지 올린 검사였고.

그런 만큼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거기다.

파지지직!

주력으로 사용하는 오러는 뇌전의 힘이 깃들어 있어.

타국 플레이어들이나 한국의 어린아이들에게서 번개맨이라는 우스운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뭐, 서동진이 그 별명을 싫어해 면전에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일단 팔 하나를 가지고 가마.’

강현수가 샤이닝 길드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팔 하나를 자른 것처럼.

우선 팔 하나를 자른 후 농락해 주리라.

휘익!

서동진의 검이 강현수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강현수가 검지를 내밀었고.

탁!

시퍼런 뇌전을 품고 있는 서동진의 검이 어이없게도 고작 손가락 하나에 막혀 버렸다.

“길드원들보다는 낫구나.”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검지를 휘둘렀고.

콰콰콰콰콰!

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핏빛 오러가.

파각!

검을 부수고 서동진의 몸을 두 동강 낼 듯 날아왔다.

“이익!”

화들짝 놀란 서동진이 재빨리 몸을 뒤로 뺐고.

서걱!

“헉헉헉!”

다행히 갑옷이 시간을 벌어 준 틈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르륵!

갑옷을 두부처럼 자르며 날아든 핏빛 오러는.

서동진의 몸에 가늘고 긴 상처를 남겼다.

‘조금만 늦었으면.’

분명 죽었으리라.

“음, 제법 실력이 있기는 하네.”

1차 노예 테스트는 합격이었다.

그러나 2차 노예 테스트가 남아 있고.

1차와 마찬가지로 2차 역시 불합격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오러의 출력을 더 높여야겠네.”

콰콰콰콰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현수의 검지에서 피어난 핏빛 오러가 쭉쭉 뻗어 나와 채찍처럼 늘어나며 서동진을 향해 날아왔다.

“저놈을 죽여!”

서동진의 명령에 멍하니 있던 샤이닝 길드의 정예들이 공격 스킬을 날렸다.

그러나.

사르르륵!

강현수의 검지에서 뿜어져 나온 핏빛 오러에 닿는 순간, 샤이닝 길드의 정예들이 날린 공격 스킬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런 미친!”

그 광경을 목격한 서동진이 입을 쩍 하니 벌렸다.

그러나 당황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파지지직!

서동진이 반쯤 부러져 날이 짧아진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푸른 뇌전으로 이루어진 오러는.

샤이닝 길드의 정예들이 날린 공격 스킬과 마찬가지로.

강현수의 핏빛 오러에 닿는 순간 눈처럼 녹아내렸다.

좌악!

서동진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첫 번째 테스트를 통과한 게 운은 아니었던 모양이네.”

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동진을 바라봤다.

현재의 강현수의 스텟은 그리 높지 않았다.

누적 스텟이 날아갔고.

레벨 업으로 쌓은 스텟은 최소치만 남기고 모조리 소환수 부활에 투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서동진이 이렇게 무난하게 1차 2차 노예 테스트를 통과할 줄은 몰랐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구 랭커들의 수준을 조금 상승시켜야 할 것 같았다.

강현수에게 맞서 싸우는 건 꿈도 못 꾸고.

그저 쥐새끼처럼 아슬아슬하게 도망만 다닐 뿐이지만.

그것만 해도 상당히 놀라운 실력임은 틀림이 없었다.

잘만 키우면?

‘지구를 침공한 마왕군과의 전면전에서 쓸 만한 장기짝이 되겠어.’

그러나 아직 테스트는 더 남아 있었다.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노예로서 삶을 이어 나가겠지만.

떨어진다면?

죽는다.

‘그게 끝은 아니지.’

강현수가 부리는 도플갱어에게 기억과 외모를 빼앗긴 후.

서동진이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강현수에게 빼앗길 테니까 말이다.

어차피 서동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노예가 되어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죽은 후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어느 쪽이 더 비참할지는?

강현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강현수의 테스트 대상은 서동진만이 아니었다.

서걱!

핏빛 오러가 휘둘러지고.

“아악!”

“커억!”

서동진이 데리고 온 플레이어들이 무참히 죽어 나갔다.

“으흠.”

서동진은 연속된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그 수하들은 강현수의 테스트를 통과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다.

“이 개자식이!”

서동진의 두 눈이 핏발이 돋아났다.

그간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동료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고 있다.

서동진의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동진이 할 수 있는 건.

꽈아아앙!

“큭!”

아슬아슬하게 강현수의 공격을 피해 가며.

힘겹게 목숨을 부지해 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크아아악!”

서동진이 데리고 온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줄어들다가.

결국은 전멸해 버렸다.

“통과한 사람은 너 하나네.”

강현수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기왕이면 더 많은 플레이어가 테스트에 통과했으면 했다.

쓸 만한 장기짝이라면?

인류 공적이라도 써먹었던 인물이 강현수다.

자신을 습격했다고 해도 실력이 있다면 노예로 부려 줄 의향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단 1명밖에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도대체 뭘 통과했다는 거냐!”

서동진이 악을 쓰며 외쳤다.

“노예 테스트. 축하한다. 넌 내 노예가 될 자격을 얻었다.”

강현수의 말에 서동진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개소리하지마! 내가 네 노예가 될 것 같아!”

서동진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냥 죽든지. 어차피 네가 꼭 필요한 건 아니거든.”

강현수 입장에서 서동진을 노예로 삼으려고 한 것은?

일종의 선의였다.

그런데 그걸 거절할 정도의 반골이라면?

죽이면 그만이다.

강현수는 인류 공적 중 노예로 갱생이 가능한 이들은 살려 뒀지만.

갱생이 불가능한 이들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모두 죽였다.

서동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골 기질이 강해 노예로 부리기 힘들다고 생각되면?

죽이면 그만이다.

어차피 서동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존재는?

강현수의 휘하 소환수들 중에서 널리고 널렸으니까.

단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아량을 베풀어 준 것뿐이지.’

서동진 정도라면?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을 테고.

그럼?

못해도 아틀란티스 차원의 상위 네임드 플레이어 수준.

잘만 하면?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 수준에도 도달할 수 있어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니까.’

노예로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

선택은 어디까지나 서동진의 몫이었다.

“그럼 그만 죽어라.”

그 말과 함께 강현수가 검지를 휘둘렀고.

그와 동시에.

콰콰콰콰!

압도적인 마력으로 이루어진 핏빛 오러가.

고작 한 가닥이 아니라 수십 가닥으로 늘어나 서동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동진이 아니라 빠르다고 해도.

사방에서 포위하듯 날아드는 핏빛 오러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핏빛 오러의 그물이 서동진의 몸을 수십 수백 조각으로 베어 버리기 직전.

“노, 노예가 되겠습니다!”

서동진이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히 핏빛 오러들은 아직 서동진의 몸을 베지는 않았다.

“진심이냐?”

“네, 진심입니다.”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계약서에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적어라.”

강현수의 말에 서동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의 계약서라고 해도 완벽하지는 않다.’

서동진은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강현수는?

영혼의 계약서 작성에 있어서 스페셜리스트나 마찬가지인 존재.

‘내가 영혼의 계약서 한두 번 써 본 줄 아나.’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회귀 전 최소 수백만에서 수천만의 인명을 학살했던 살인마들을 수하로 만드는 일이다.

절대 빠져나갈 꼼수가 없는 영혼의 계약서 작성 방법을 강현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 썼나?”

“예.”

서동진이 좌절에 가득 찬 표정으로 영혼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좋네.”

강현수가 서명을 했고.

화악!

완성된 영혼의 계약서가 빛무리로 화해 강현수와 서동진의 몸에 스며들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받아들여.”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알겠습니다.”

서동진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예를 선택했다.

[분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1% 증가합니다.]

“어?”

모든 스텟이 늘어났다는 알림에 서동진이 화들짝 놀랐다.

고작 1%라고는 하지만.

모든 스텟에 적용된 만큼.

결코 쉽게 여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좀 더 쓸 만해진다면 직위를 올려 주마.”

그 말은 버프도 더 상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죽음은 어떻게 덮으실 생각이십니까?”

서동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죽은 플레이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은 샤이닝 길드의 핵심 간부.

단순히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넘기기에는.

그 파장이 컸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강현수는 이미 최상급 도플갱어들을 소환해 놓았다.

그들은 죽은 플레이어들의 기억을 흡수하고 외형을 익힌 상태.

저벅저벅.

도플갱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 이게 무슨?”

서동진의 입이 쩍 하니 벌어졌다.

저들은 분명 강현수가 뿜어낸 핏빛 오러에 적중당해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멀쩡히 살아났다는 말인가?

“진성아, 철우야.”

서동진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예, 길드 마스터.”

“왜 부르십니까?”

그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서동진의 말에 대답했다.

“죽은 자를 살리신 겁니까?”

서동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저들은 그저 변한 것뿐이다.”

강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동진의 동료였던 플레이어들의 얼굴과 외모가.

스르륵!

서동진과 똑같이 바뀌어 버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