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이빨 토끼 던전 사고?”
“예.”
“그게 굳이 나한테까지 보고가 올라올 만한 사안인가?”
이빨 토끼 던전에서 던전 확장이 일어났다.
부상자는 있지만.
사망자는 없다.
이 정도면?
훌륭히 잘 마무리했고.
플레이어 협회에서 진행하는 교관 프로그램의 성과를 홍보하기에 적절한 예시였다.
하지만.
플레이어 협회장인 자신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올 사안은 아니었다.
그저 홍보팀에서 적당히 마무리하면 끝날 일이 아닌가?
“웨어 울프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교관 레벨이 높았나?”
“D급이었습니다.”
“제법 실력이 있나 보군.”
“아닙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교관의 말로는 검은 갑주로 무장한 플레이어가 핏빛 오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플레이어 협회장 백정혁의 눈이 번뜩였다.
“나한테 꼭 올라와야 하는 보고가 맞았네.”
어제 샤이닝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찾아와 제대로 진상을 부리고 갔다.
백정혁으로서는 영문 모를 봉변이었지만.
정체불명의 플레이어가 던전을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것과.
그 플레이어가 샤이닝 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 30여 명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분간 찾기 힘들 줄 알았는데.”
설마 하루 만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우연은 아니겠지?”
고레벨 던전에 나타나 사냥을 하던 플레이어가 저레벨 던전에 나타났다.
절대 우연일 리가 없었다.
“교관 가족이랑 지인 쫙 다 털어 봐. 또 그날 던전에 출입했던 초보 플레이어들 명단 확보해서 주변인 조사해 보고.”
“알겠습니다.”
보고자가 나가자 백정혁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분명히 관련이 있을 거야.’
가장 확률이 높은 건 교관과 관계가 있을 경우.
그게 아니라면?
‘초보 플레이어들 중 누군가 관계를 맺고 있겠지.’
운 좋게 들어온 정보다.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최소 랭커.’
어쩌면 규격 외라고 불리는 SSS급 플레이어 수준일지도 모르는 이가 나타났다.
‘무조건 포섭해야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샤이닝 길드가 이미 플레이어 협회 소속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만.
‘아니라는 게 드러나면?’
분명 사설 길드들도 그 플레이어를 포섭하기 위해 움직일 게 뻔했다.
‘무조건 선수를 쳐야지.’
보유한 플레이어의 숫자와 수준이 곧 국력인 시대.
사설 길드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있는 지금.
저런 인재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 * *
강현수는 고레벨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략……
손쉽게 레벨을 올렸다.
‘확실히 아틀란티스 차원보다 레벨이 잘 오르네.’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얻은 힘을 모조리 잃은 상태라면?
아무리 이런 보상을 줘도 화가 가라앉지 않겠지만.
‘나는 예외니까.’
업적, 스텟, 스킬 무엇 하나 너프당한 게 없는 강현수 입장에서 2회 차 특전은?
‘달달하네.’
아주 제대로 된 꿀단지나 마찬가지였다.
‘도플갱어 숫자부터 늘리자.’
전투력은 하급이지만.
위장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만큼.
지금은 도플갱어 숫자를 늘리는 게 좋아 보였다.
‘지금은 누나한테만 붙여 놨지만. 나중에는 가족들에 전부 붙여 놔야지.’
그래야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거 아니겠는가?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갑자기 차원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고.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수도 있으며.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때 가족들을 지켜 줄 호위병으로는 도플갱어가 가장 적합했다.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인간으로 위장이 가능하니까.’
다른 몬스터나 마족은?
외형이 너무 튄다.
아마 다른 소환수들이 도시를 활보하면?
‘당장 비상이 걸리고 토벌되겠지.’
강현수의 소환수라는 사실을 밝히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럼 괜히 귀찮은 일만 많아지지.’
지구는 아틀란티스 차원과 다르다.
그런 만큼.
‘적당한 수준의 힘만 보여 주는 게 좋지.’
너무 튀면 곤란했다.
큰 힘에는?
‘큰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따르니까.’
사생활도 없어질 게 뻔했고 말이다.
강현수는 던전에서 사냥을 해 도플갱어 소환수를 부활시킨 후.
집으로 복귀했다.
‘누나는 잘 지내고 있네.’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위장 실력은 실로 뛰어났다.
던전 내부까지 무난히 잠입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방법을 쓸 줄이야.’
도플갱어 킹 탈리만은 날짐승으로 위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반인이나 플레이어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가 우연히 던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정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강현수는 도플갱어에게 자신의 임시 플레이어 등록증을 주고 저레벨 던전으로 보냈다.
그 후 고레벨 던전을 순회 공연하며 달달하게 꿀을 빨았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 * *
‘이제 정식 등록증이 나왔네.’
정식 플레이어 등록증.
이것만 있으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지.’
금화를 팔아 번 돈 1억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어디까지 급한 불일 뿐이지.’
돈의 출처를 밝힐 수도 없고.
손이 워낙 소액이라 이사도 못 간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각성한 지 2주 된 병아리가 고레벨 던전에 가는 건 좀 이상하겠지.’
그럼 저레벨 던전으로 가면 그만이다.
‘저레벨 던전에서 대박이 터질 수도 있는 거니까.’
강현수는 저레벨 던전에 들어갔고.
적당히 시간을 보낸 뒤 던전 밖으로 나왔다.
“사냥하고 얻으신 마석과 아이템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출입을 관리하는 협회 직원의 말에 강현수가 저레벨 몬스터를 사냥해 얻은 마석과 미리 아공간에서 꺼낸 아이템을 올려놨다.
협회 직원은 마석의 수량과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역시 한국이네.’
출입 관리 시스템이 아주 철저했다.
“어?”
강현수가 꺼낸 아이템을 확인하던 협회 직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유는 강현수가 가지고 온 아이템이 바로 A랭크였기 때문이다.
“뭐, 문제 있습니까?”
강현수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이 던전에서 E랭크 이상 아이템이 나온 적이 처음이라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운이 좋으시군요.”
협회 직원의 말에.
“수고하세요.”
강현수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마석과 아이템을 챙겼다.
‘조만간 이 던전이 미어터질지도 모르겠네.’
고랭크 아이템이 나왔으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이 저레벨 던전이 플레이어로 미어터지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강현수는 곧바로 플레이어 전용 상점으로 향했다.
“A랭크 아이템이군요.”
마석을 시큰둥하게 보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예, 운이 좋아서요.”
강현수가 꺼낸 아이템은 A랭크 팔찌로 스킬 공격력 증가 옵션이 붙어 있었다.
‘스킬 공격력 증가가 좋지.’
근접 딜러가 쓰기도 좋고.
원거리 딜러가 쓰기도 좋다.
돈이 많다면?
탱커가 써도 나쁠 건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무기나 방어구가 아니라 액세서리니까.’
강현수도 그간 나름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범용성이 좋은 액세서리 종류의 가격이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무기나 방어구는 제약이 크다.
검은 검사 계열 플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고.
그건 도, 창, 활, 지팡이도 마찬가지다.
방어구 역시.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다 선호하는 게 다르지.’
범용성이 없어 옵션이 특별히 좋지 않으면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반면 액세서리는?
‘그런 제약이 없지.’
원하는 이는 많은데 수요는 적으니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에 매입 가능한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황급히 자리를 비웠고.
잠시 후 좀 더 직급이 높아 보이는 직원이 나왔다.
그 후 열심히 감정을 하다니.
“100억에 사겠습니다.”
100억을 불렀다.
“에이, 너무 짜시다.”
강현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고.
직급이 높아 보이는 직원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인터넷 검색만 해도 대충 시세가 나오는 세상이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이 풀려 있지 않다.
그러나.
‘그래도 A랭크가 최소 몇백억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거기다 액세서리 아닌가?
강현수가 괜히 A랭크 아이템을 꺼낸 게 아니다.
괜히 B랭크 아이템을 찔끔찔끔 여러 개 팔아 봐야.
‘오히려 괜한 주목만 받지.’
저레벨 던전에서 A랭크 아이템 하나가 나오면?
당연히 시선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여기고 넘어가겠지.’
그러나 연속적으로 B랭크 아이템이 나오면?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좋은 아이템을 얻는 스킬이 있다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고.’
또 던전에서 상위 랭크의 아이템을 얻는 로또가 드물기는 하지만.
‘아예 안 터지는 것도 아니니까.’
강현수는?
로또 2등에 연속으로 당첨되는 것보다.
로또 1등 한 번 크게 당첨되는 게 덜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헐값에 팔 생각은 없지.’
강현수는 대략 1,000억 내외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세금 떼고 어쩌고 하면 500억밖에 안 남겠지만.’
그 정도면 급한 불도 끄고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었다.
“그게 제 재량으로 부를 수 있는 금액은 그게 전부입니다.”
“더 높은 사람은 없나요?”
“본사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아, 괜찮아요. 그냥 경매로 올릴게요.”
플레이어 전용 상점은 경매 서비스도 제공했다.
판매 금액의 5%를 수수료로 떼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1,000억을 불렀으면 그냥 팔았을 수도 있지만.
고작 100억에 팔 생각은 없었다.
“아, 경매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
“네, 경매 등록해 주세요.”
강현수가 보관증을 받고 액세서리를 직원들에게 넘기고 자리를 떴다.
* * *
강현수가 돈 벌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을 때.
한국 플레이어들은 난리가 났다.
아니,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 플레이어들까지 난리가 났다.
강현수는 그저 많고 많은 A랭크 아이템 중 하나를 판 것뿐이지만.
지구와 아틀란티스는 많은 것이 달랐다.
아틀란티스에 비해 지구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고작 5년이다.
당연히 아이템.
그중에서도 고랭크 아이템은 항상 부족했다.
사냥 와중에 고랭크 아이템 드랍 확률은?
극악 중에 극악이었고.
장인 플레이어들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스킬 랭크가 낮아 최고 등급 아이템이 고작 B랭크가 한계인 상황.
A랭크 이상의 아이템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장인 플레이어들의 스킬 랭크가 올라갈 것이고.
A랭크 아이템 가격이 폭락할 게 확실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액세서리.
범용성이 좋으니 경쟁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각국의 랭커들이 경매에 참가했다.
사실 랭커쯤 되면?
A랭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무기와 방어구였고.
액세서리는 없었다.
플레이어의 존재가 각국의 국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취급되는 시대.
아이템 역시도 당연히 국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각국 정부, 거대 길드의 지원을 받는 랭커들의 참전에 경매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얼마라고요?”
강현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4,500억입니다.”
“엄청 비싸게 팔렸네요.”
대충 1,000억 정도를 예상했는데.
무려 4배나 더 높은 가격에 팔렸다.
‘고작 A랭크일 뿐인데.’
강현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이기에 그 가격에 낙찰된 것일 뿐.
장인 플레이어들이 C랭크 장비를 겨우 완성할 때였다면?
아마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팔렸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B랭크 아이템이 많이 풀렸고.
조만간 장인 플레이어들이 A랭크 장비를 제작할 수준에 오르기에 이 정도 가격에 낙찰된 것뿐이다.
강현수도 대충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1,000억 정도를 예상한 것이다.
A랭크 아이템 가격이 머지않아 떨어질 게 확실했으니.
‘1,000억도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