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왜 미쳐 버렸는지 대충 짐작이 가네.’
아마 계속되는 가스라이팅으로 광혈마녀 유카의 자존감이 계속해서 깎여 나갔을 것이다.
또 강현수에게 하는 짓을 보니.
‘절대 주변에 친한 지인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겠지.’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고가 생겨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광혈마녀 유카를 버린다면?
바닥까지 깎여 나간 정신이 완전히 붕괴해 미쳐 버렸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폭발했을 수도 있고.’
그러나 광혈마녀 유카가 어떻게 미쳤는지는 강현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야토, 저놈이 시발점이라는 게 중요하지.’
그간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일까?
광혈마녀 유카는 강현수의 지속적인 권유에도 하야토 파티를 떠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광혈마녀 유카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긴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근처에 있는 오크들을 토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근방 오크들의 씨가 마를 것이다.
그럼?
강현수는 경험치와 업적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환수들이 사냥하는 경험치를 내가 먹는 것도 거리 제한이 있단 말이지.’
사단장이 된 후 그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 봤자 20킬로미터 남짓.
‘지금도 아슬아슬해.’
오크들의 씨가 마르면?
강현수는 경험치와 업적을 포기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지.’
일단 이벤트를 만들어서라도 하야토와 광혈마녀 유카의 신뢰 관계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릴 필요성이 있었다.
‘말로는 안 통하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아마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런 사고가 터지면?
광혈마녀 유카가 흑화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커버해 주면 그만이야.’
마리오네트 스킬 덕분에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친분을 쌓았다.
광혈마녀 유카는 강현수를 하야토 다음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아마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진작 강현수의 파티에 들어가겠다고 했으리라.
‘그럼 이벤트를 준비해 볼까?’
만약 이 이벤트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광혈마녀 유카를 버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와 광혈마녀 유카의 유대가 더 끈끈해질 것이다.
그러면?
‘같이 스카우트해 주마.’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는 흔하디흔한 플레이어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지만.
광혈마녀 유카가 회귀 전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게 막는 자물쇠 역할을 해 준다면?
얼마든지 품어 줄 수 있었다.
* * *
강현수 일행, 하야토 파티, 민간인들이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 죽어라!”
중간중간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서걱! 좌악!
빛보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그때.
쿠웅!
커다란 발소리와 함께.
5미터에 가까운 체구를 지닌 거대한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오크야, 오우거야?”
모두가 크게 놀랐다.
“가라!”
쿠오오오!
골렘술사 유카가 진흙 골렘을 돌격시켰다.
그러나.
콰직!
거대한 오크의 도끼질 한 방에.
진흙 골렘들이 박살 났다.
“이럴 수가!”
골렘술사 유카가 크게 놀랐다.
“대족장급 오크입니다. 제가 상대하죠.”
강현수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오러를 끌어 올렸다.
꽈아아앙!
강현수의 검과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충돌하며 공기가 떨릴 정도의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꽈앙! 꽈앙! 꽈앙!
오러의 파편이 비산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충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강현수와 오크 대족장이 팽팽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쿠웅! 쿠웅!
3미터의 체구를 가진 오크 족장 넷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송하나와 투황의 모습을 흉내 낸 도플갱어들이 나서서 네 마리의 오크 족장들을 막아 냈다.
그러는 와중에.
쿠오오오!
추가로 족장급 오크와 대전사급 오크들이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칫! 사단 소환.”
강현수의 외침과 함께 소환수들이 나타나 오크 무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방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여기는 저와 파티원들이 막겠습니다! 일단 도망치세요!”
강현수의 외침에.
“히익!”
“어서 도망치자.”
하야토 파티와 민간인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저도 도울게요!”
그때 골렘술사 유카는 강현수를 돕겠다고 나섰다.
“지금 유카 씨는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세요! 그게 저를 도와주는 겁니다!”
강현수의 말에.
“알겠어요.”
골렘술사 유카가 풀이 죽은 표정을 지으며 하야토 파티원들, 민간인들과 함께 도망쳤다.
잠시 후.
하야토 파티원들과 민간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희들은 마력이랑 오러 터트리면서 치열하게 싸우는 척해.”
강현수의 말에.
“충!”
“충!”
오크를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들과 도플갱어를 베이스로 한 소환수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꽈아앙!
퍼어엉!
치열한 전투를 이어 나갔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
강현수가 오크 대족장으로 변신한 도플갱어 킹 탈리만에게 물었다.
“예, 주군.”
“가라.”
강현수의 말에 도플갱어 킹 탈리만의 외형이 오크 대족장에서 오크 족장으로 변했다.
그 후 도망친 하야토 파티원들과 민간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나는 구경이나 해 볼까?’
강현수는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한 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헉헉헉!”
하야토 파티원들과 민간인들은 정신없이 도주 중이었다.
“더 이상은 못 뛰겠어요. 저 좀 업어 주세요.”
민간인들 중 한 명이 하야토 파티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골렘술사 유카가 도움을 청한 민간인을 등에 업었다.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로 마력과 정신력을 주로 찍기는 했지만.
명색이 플레이어.
민간인 한 명 정도는 가뿐히 업을 수 있을 정도의 힘과 체력은 있었다.
“헉헉! 저, 저도 좀 업어 주세요.”
“저도 더 이상은 못 가겠어요.”
한 명이 도움을 요청해 골렘술사 유카의 등에 업혀 가자.
체력이 고갈된 민간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하야토 파티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런 씨발!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개소리야!”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가장 먼저 욕설을 토해 냈다.
“하야토! 언제까지 저 짐덩어리들이랑 같이 다닐 거야? 저놈들 때문에 이동속도가 느려지잖아! 이러다가는 우리도 오크 놈들에게 잡혀 죽는다고!”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의 불평에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표정이 굳어졌다.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의 말에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대로 가면 우린 다 죽을 수밖에 없어.’
지금까지는 골렘술사 유카가 골렘을 소환해 시간을 벌어 겨우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골렘술사 유카의 마력도 완전히 바닥났기 때문이다.
‘차라리 민간인들을 미끼로 던지고 가면?’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브레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럼 이 사람들은 여기서 다 죽으라는 말이야?”
골렘술사 유카의 반발이었다.
“그럼 우리도 저 사람들이랑 같이 죽을까? 전에도 네가 고집부려서 우리가 다 죽을 뻔했어! 그 수인족 네임드 플레이어가 안 왔으면 확실히 죽었겠지!”
“맞아! 그때 우리 파티가 전멸할 뻔했다고!”
“이 정도까지 지켜 줬으면 인간으로서 할 도리는 다한 거지!”
“난 더 이상 저 사람들이랑 같이 못 가!”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로 시작된 파티원들의 집단 반발에 골렘술사 유카의 표정이 굳어졌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마세요!”
“걸어갈게요! 얼마든지 더 걸어갈 수 있어요!”
방금 전까지 더는 못 걷겠다고 했던 이들이 일제히 더 걸을 수 있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모습을 본 골렘술사 유카는.
“그럼 너희들끼리 가. 난 저 사람들 못 버려.”
홀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대도시 내부에서도 골렘술사 유카는 이런 식으로 고집을 피웠다.
그 결과 파티원 전부가 남게 되었고.
파티원 전체가 죽을 뻔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럼 너 혼자 저 사람들이랑 죽어. 난 싫으니까.”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먼저 몸을 돌렸고.
“난 살고 싶어.”
“나도 네 고집 때문에 죽기는 싫다.”
다른 파티원들도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의 뒤를 따라 차례로 몸을 돌렸다.
“하야토!”
골렘술사 유카가 하야토를 바라봤지만.
“유카 네 고집 때문에 파티원을 전멸시킬 생각이야?”
“그게 아니고…….”
짜악!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골렘술사 유카의 뺨을 후려쳤다.
“유카,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난 이 사람들을…….”
“따라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골렘술사 유카의 등에 업힌 사람을 강제로 내려놓고 힘으로 잡아끌었다.
쿠오오오!
쿵쿵쿵!
오크들의 포효와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난 안 가! 안 갈 거라고!”
골렘술사 유카가 고집을 피웠지만.
힘으로는 탱커 플레이어인 하야토를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마력이 바닥난 골렘술사 유카로서는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살려 주세요!”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
민간인들이 애원했지만.
하야토는 강제로 골렘술사 유카를 들쳐 업고 파티원들의 뒤를 따랐다.
쿠웅! 쿠웅!
그때 오크 무리가 민간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아악!”
“히익! 살려 줘!”
“우린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살려 주세요! 제발 돌아와 주세요!”
“야이! 나쁜 놈들아! 우리도 살려 달라고!”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쿠웅! 쿠웅! 쿠웅!
오크 무리는 민간인들을 무시하고 지나가.
하야토 파티의 뒤를 추격했다.
“뭐야?”
“우리 산 거야?”
“그런가 본데?”
그 덕분에 민간인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 *
‘싫어! 싫어!’
골렘술사 유카의 귀에 민간인들의 살려 달라는 외침과 비명 그리고 원망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때.
“이제 네가 걸어.”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골렘술사 유카를 바닥에 내려놨다.
“하야토!”
골렘술사 유카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를 노려봤다.
당장 욕설을 쏟아부으려 했지만.
“하야토, 잘했어.”
“유카 네가 너무 고집을 피웠어.”
“하야토가 아니었으면 너도 죽었을 거라고.”
“앞으로 또 그러면 그때는 진짜 끝이야.”
파티원들의 말을 듣는 순간.
저절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유카 네 잘못으로 파티원들이 전멸할 뻔했어. 네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설교가 이어졌고.
골렘술사 유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욕설이 아닌 사과였다.
30명의 민간인들.
그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고.
죽은 사람은?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미움을 줄 수도 없다.
골렘술사 유카에겐 그런 죽은 사람들보다는.
아직 자신의 눈앞에 살아 있는 하야토와 파티원들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가자.”
하야토가 이끄는 파티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쿠오오오!
족장급 오크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체력이 약한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와 골렘술사 유카가 가장 먼저 뒤처지기 시작했다.
“나 좀 업어 줘!”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도움을 청했다.
“웃기고 있네! 너만 힘드냐? 우리도 힘들어!”
“내 체력도 바닥이야! 널 업고 가다가는 나까지 따라잡힌다고!”
“너 하나 구하자고 우리가 다 죽어야겠어?”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동료들의 폭언이었다.
힐러라는 이유로 항상 특별 대접을 받으며 파티원들에게 갑질을 했던 브레드의 업보가 고스란히 돌아온 것이다.
“이 자식들이!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놈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목숨을 붙이고 살아 있는데! 내 힐이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진작에 죽었어!”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악을 썼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내가 업어 줄게.”
그때 파티장인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다가오자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너라면 내 가치를 알 줄 알았어! 날 살려야…….”
그러나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등에 업은 사람은.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아니라 골렘술사 유카였다.
“너 이 자식!”
“그러게 평소에 심보를 좀 곱게 쓰지 그랬냐?”
“뭐?”
“잘 가라. 그동안 지긋지긋했고, 다시는 보지 말자.”
그 말과 함께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골렘술사 유카를 등에 업고 사라졌다.
“헉헉!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애타게 파티원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짐이 된다고 민간인들을 버렸던 그가.
결국은 그 민간인들처럼 버려지는 처지가 된 것이다.
크르르르!
어느새 오크 무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히익!”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쿵! 쿵! 쿵!
오크 무리는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를 무시하고 그대로 다른 파티원들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사, 살았다.’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하지?’
오크 무리가 득실거리는 숲 한가운데 홀로 남아 버렸다.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힐러인 브레드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