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혈마녀
“이 사람들을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부탁드릴게요.”
탱커 플레이어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광혈마녀가 강현수에게 다가와 부탁했다.
“아, 저 정신병 걸린 년.”
탱커 플레이어는 그런 광혈마녀를 욕했다.
“그럼 제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
“네, 들어드릴게요!”
“저한테 상태창을 오픈해 주실 수 있나요?”
강현수의 물음에.
“그럴게요.”
광혈마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락했다.
“그걸 왜 공개해!”
오히려 방금 전까지 싸우던 탱커 플레이어가 기겁해서 나섰다.
상태창은 플레이어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믿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여기서 죽을 거야?”
광혈마녀가 외침과 함께 자신의 상태창을 공개했다.
‘레벨은 생각보다 낮네.’
광혈마녀의 레벨은 735.
고레벨 플레이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절대 네임드 플레이어 수준은 아니었다.
주력 스킬들 역시.
‘겨우 S~SS랭크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환 계열 플레이어답게 힘, 민첩, 체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마력과 정신력 스텟이 4,000을 넘어설 정도로 높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레벨에 비해 준수한 정도지.’
그간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700레벨, S~SS랭크의 주력 스킬, 4,000대의 주력 스텟은.
‘고레벨 플레이어 중에서도 중하위권 수준에 불과해.’
광혈마녀의 상태창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고작해야 강현수가 보유한 중대장급 소환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혼자서 오크 족장 두 마리를 상대한 거지?’
그건 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력 스킬 중에 규격 외 스킬이 있는 게 확실해.’
그게 아니고서는?
절대 이런 효율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인류의 재앙이라 불렸던 자의 스킬이라 이건가?’
고작 S~SS랭크임에도 이 정도 효율을 보여 주는데.
EX랭크가 된다면?
‘회귀 전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겠지.’
그 전에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미분배 스텟을 정신력에 몰아주면 100% 성공할 수 있어.’
강현수가 미분배 스텟을 정신력에 집중투자 했다.
그리고 스텟 고정 스킬을 사용한 후.
‘마리오네트.’
SSS랭크 스킬 마리오네트를 시전했다.
[정신계 지배 스킬 마리오네트 – SSS랭크를 시전합니다.]
[마력 스텟의 절반이 영구적으로 소멸합니다.]
[대상 플레이어가 정신계 지배 스킬 마리오네트 – SSS랭크의 저항에 실패합니다.]
[플레이어 사카자키 유카가 시전자의 마리오네트로 지정됩니다.]
[마리오네트 지정 가능 플레이어의 숫자가 9명에서 8명으로 감소합니다.]
‘이런 거였나?’
마리오네트 스킬을 처음 시전해 본 강현수는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감각을 느꼈다.
‘소환수들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강현수와 광혈마녀 사카자키 유카가 보이지 않는 선을 통해 하나로 묶인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대충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것 같네.’
이 보이지 않는 선을 이용하면?
광혈마녀 사카자키 유카에게 강현수가 원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유도할 수 있었다.
‘호의, 신뢰.’
강현수가 광혈마녀 사카자키 유카가 자신에게 느낄 감정을 세팅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어차피 당분간은 프랭크 왕국에서 활동할 생각이었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이제 도와주세요!”
광혈마녀가 강현수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강현수는 광혈마녀 파티와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이들을 데리고 오크들의 포위망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쿠어어어!
“인간이다!”
“죽여라!”
가는 곳곳마다 사방에서 오크들이 달려들었지만.
휘익!
강현수의 검이 한번 휘둘러지는 순간.
좌악! 서걱!
등장하기 무섭게 차가운 시체로 변해 버렸다.
-물러나라.
강현수의 지시에 오크와 전투를 치르던 소환수들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그 덕분에 광혈마녀 파티는 소환수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대도시 내부에서 쉼 없이 전투가 지속되고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현수의 보호를 받은 광혈마녀 일행은 결국 국경 지대 대도시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살았어!”
“다행이다!”
오크들로 가득했던 대도시에서 빠져나오자 광혈마녀 파티와 그들의 보호를 받던 사람들이 일제히 강현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여기는 국경 반대 방향이잖아?”
“프랭크 왕국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하지?”
오크들에게 점령당한 프랭크 왕국을 탈출해 타국으로 넘어가려면?
방금 전 겨우 탈출한 국경 지대 대도시를 통과해야 했다.
광혈마녀 파티와 그들의 보호를 받던 이들이 기대로 가득 찬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역시 인간의 이기심은 어쩔 수가 없나?’
방금 전까지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안전하게 타국까지 탈출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예? 어디 가시는데요?”
“우리를 버리시는 건가요?”
“오크들이 나타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라고요!”
광혈마녀 파티원과 민간인들 모두 강현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제 동료들이 아직 저곳에 있습니다. 일단 이 근처에는 오크 무리가 없는 것 같으니 잠시만 버티시면 됩니다.”
“하지만 오크 무리가 나타나면 어떻게 합니까?”
“대규모 오크 군단이 또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광혈마녀 파티원과 민간인들의 외침에 강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리 이기적이고 어리석지?’
자신들이 저런 태도와 언행을 보이면.
‘순수하게 호의로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다가도 달아나 버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저들이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 것일 뿐.
“알았어요. 다녀오세요. 저도 마력을 조금 회복해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광혈마녀가 나서서 강현수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강현수의 도움을 받은 이들 중 유일하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바로 광혈마녀였다.
‘마리오네트 스킬 효과 때문일까, 진짜 광혈마녀의 심성이 좋은 걸까?’
당연히 전자여야 하지만.
왠지 모르게 후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렘 생성.”
우드드득!
광혈마녀가 진흙 골렘 한 기를 소환했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면 1시간 이상은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동료분들을 데리러 가세요.”
광혈마녀의 말에.
“알겠습니다. 그럼.”
강현수가 자리를 떠났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자.’
다시금 국경 지대 대도시로 들어온 강현수는 대전사 이상의 오크들을 찾아다녔다.
사실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을 데리러 갈 필요는 없었다.
그저 다시금 대도시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필요했기에 그렇게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신성 스텟 축적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만, 소환수는 나만 만들 수 있지.’
송하나와 투황을 비롯한 소환수들이 오크 무리를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있었고.
당연히 신성 스텟의 축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죽은 대전사 이상의 오크를 소환수로 만드는 건 오직 강현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별로 가치가 없지만.’
상급 마족으로 분류되는 오크 대전사부터는 무조건 소환수로 만들어야 했다.
‘상급 마족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형 소환수는 드물다고.’
강현수는 오크 군단의 침공을 막으면서.
겸사겸사 소환수의 질도 최대한 업그레이드시킬 생각이었다.
광혈마녀라는 변수가 등장해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파티원과 보호하고 있던 민간인들이 겁에 질려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 같지도 않았고.
‘이동해 봐야 찾으면 그만이야.’
마리오네트 스킬을 걸어 놨기에 광혈마녀의 위치는 상시 파악이 가능했다.
* * *
“도대체 저 사람은 정체가 뭐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마 네임드 플레이어겠지.”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런데 핏빛 오러를 사용하고 전신을 검은 갑주로 중무장하고 다니는 네임드 플레이어가 있었나?”
“뭐, 우리가 모든 네임드 플레이어를 아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정체를 감추고 싶어서 전신 갑옷을 입는 걸 수도 있는 거고.”
“그렇기는 하지.”
“그게 아니면 실력은 네임드 플레이어급인데 아직 칭호를 얻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유카도 그렇잖아.”
근접 딜러 플레이어가 골렘술사 유카를 언급하자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카는 아직 레벨이 너무 낮아. 네임드 플레이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플레이어한테 레벨보다 중요한 게 바로 실력이야. 실력만 따지면 유카는 네임드 플레이어가 되고도 남지. 아까 그 사람도 유카한테만 상태창을 보여 달라고 했었잖아. 이유가 뭐겠어? 실력이 뛰어나니까 스카우트하려고 하는 거지.”
“스카우트? 그게 정말이야?”
골렘술사 유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볼 때는 확실해. 네임드 플레이어라면 거대 길드 소속일 확률이 높기도 하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일단 조건이라도 들어 봐.”
“조건?”
“그래, 장비 지원이나 자금 지원 같은 거 말이야. 유카 네 실력이면 충분히 좋은 조건으로…….”
“거대 길드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야.”
텡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힐러 플레이어 브레드의 말을 끊었다.
“자칫 잘못하면 노예 계약서에 서명하는 거랑 똑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다고. 거기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어쨌든 우리를 구해 줬잖아.”
골렘술사 유카가 강현수의 편을 들었다.
이에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냥 구해 준 건 아니잖아. 네 상태창을 봤다고.”
“그게 뭐? 브레드 말을 들어 보니까 나쁜 건 아닌 거 같은데.”
“상태창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잊었어?”
“그건 알고 있지만, 스카우트를 위해서라고…….”
“길드 입단 심사를 볼 때도 실력을 보여 주지 상태창을 보여 주지는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한테 상태창을 보여 주지 마. 알았어?”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강압적인 말에.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골렘술사 유카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앞으로 조심해 줘.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지금까지 너 혼자 일을 벌이면 항상 결과가 안 좋았잖아. 안 그래?”
“그렇게는 했지만.”
“넌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고. 예전에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나랑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약속했잖아. 그런데 자꾸 왜 그러는 거야?”
“미안. 앞으로는 안 그럴게.”
“난 네 걱정만 하는데, 넌 왜 항상 네 감정만 앞세우는 거야?”
“미안.”
“지금부터라도……. 앞으로는 조심해 줘.”
“응, 그렇게 할게.”
한참 잔소리를 퍼부은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마 유카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는 게 맞겠지?’
그건 곤란했다.
‘브레드 저놈이 괜한 말을 해서 유카가 호기심을 가졌잖아.’
평소에도 밉상 짓만 골라서 하는 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 버리고 싶지만.
‘힐러라서 참는다.’
힐러는 귀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대 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
골드로드상단의 상해보험 상품 판매 때문에 브레드의 돈줄이 끊기지만 않았으면?
브레드가 길드에 묶이는 몸이 되는 걸 싫어하지만 않았다면?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만든 소규모 파티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지켜야 해.’
파티 전력의 80% 이상을 골렘술사 유카가 담당하고 있다.
골렘술사 유카가 빠져나가면?
‘우리 파티는 끝장이야.’
전력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사냥 속도가 반의반 토박이 날 거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냥터의 수준도 낮춰야 해.’
그럼?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의 파티는 더 이상 빠른 성장이 불가능했다.
어쩌면 애써 모은 파티원들이 모두 떠나갈 수도 있었다.
“유카, 나랑 했던 약속 기억하지?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우리는 끝까지 함께하는 거야.”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다시 한번 골렘술사 유카를 단속했다.
“응! 그럴게!”
골렘술사 유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길드원들에게도 단단히 입조심을 시켜야겠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봐야 했다.
특히.
‘브레드의 입은 무조건 틀어막아야 해.’
탱커 플레이어 하야토가 열심히 입을 털며 파티원들의 정신교육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