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이
꽈아아앙!
“뭐야?”
“습격이다!”
은을 통해 도플갱어들의 정체를 밝히는 방법이 알려진 후.
얌전히 은신처에 처박혀 몸을 숨기고 있던 도플갱어들은 뜬금없이 날벼락을 맞았다.
인간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인간들을 쓸어버리고 은신처를 옮기자!”
“굳이 인간들과 충돌하는 것보다는 용호길드가 알려 준 비상 탈출구로 도망치는 게 나아!”
“일단 탈리만 남작님께 이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자!”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도플갱어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러던 중.
“저놈들 용호길드 소속이잖아?”
“그놈들이 왜 우리를 공격해?”
“진짜야! 보라고!”
도플갱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장본인이.
은신처를 제공해 준 자신들의 협력자 용호길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 놈들이 배신을?”
“도대체 왜?”
도플갱어들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일단 살기 위해 용호길드와 맞서는 선택을 했다.
은신처 자체를 용호길드가 제공했고.
비상 탈출구도 모두 막혀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편.
인간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당연히 도플갱어들의 수장인 탈리만 남작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놈들이 정말!’
탈리만 남작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내가 토벌대 손에 죽기를 바랐던 거냐.’
탈리만 남작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용호길드는 이미 다크 나이트의 습격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의심은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다크 나이트가 용호길드와 도플갱어 군단의 공생 관계를 파고든다면?
용호길드는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거기다 도플갱어 군단은 지금까지 큰 활약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용호길드의 도움만 받고 있는 상황.
‘우리를 희생양 삼아 위기를 극복하시겠다.’
자신의 위치를 토벌대에게 제보한 당사자가 바로 용호길드다.
‘내가 토벌대와 다크 나이트에게 죽었다면?’
용호길드는 마족 토벌의 1등 공신이 된다.
그것도 모자라 용호길드가 도플갱어 군단을 단독으로 공격해 토벌하면?
‘놈들은 의심을 완전히 벗고 영웅이 된다.’
탈리만 남작의 입장에서는.
용호길드가 자신들의 입지와 이득을 위해 탈리만 남작과 도플갱어 군단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탈리만 남작의 두 눈에 혈광이 번뜩였다.
* * *
“도플갱어들의 본대와 충돌했다고?”
“감시하는 놈들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의 보고에 용왕 이지용이 얼굴을 찌푸렸다.
용호길드 내부에 잠입한 도플갱어와 감시하는 도플갱어만 제거하려 했는데 일이 커졌다.
“그리고 급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뭐지?”
“탈리만 남작이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에게 패해 큰 부상을 입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하, 자신만만하게 나서더니만.”
용왕 이지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위장 능력을 잃은 도플갱어 군단을 그나마 보호해 주던 이유가 뭔가?
바로 탈리만 남작의 무력 때문이었다.
한데 다크 나이트와 토벌대를 쓸어버려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당해 버리다니?
“그리고 다크 나이트의 수장에게 척마혈신이라는 칭호가 생겼습니다.”
“신?”
용왕 이지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칭호라는 건 절대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만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가능해.’
특히 어정쩡한 칭호가 아니라 왕, 황, 신 같은 최상위 칭호의 경우.
섣불리 붙였다가는 오히려 당사자에게 득이 아니라 실이 되어 버린다.
왕실과 황실에서 문제를 삼을 수도 있고.
대중에게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룡 카라스 남작을 쓰러트린 것도 있고 도플갱어의 수장인 탈리만 남작을 이긴 것도 있고 해서.”
“그걸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납득했다는 말이야?”
“척마혈신이라는 칭호가 처음 퍼져 나온 곳이 바로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입니다. 토벌대의 수장인 검살존과 적염제가 척마혈신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윗사람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존의 칭호와 제의 칭호를 가진 이들이 먼저 꼬리를 내렸단 말이지?”
“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검살존과 적염제가 척마혈신 앞에서 눈치를 보며 설설 기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용왕 이지용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새롭게 신의 칭호를 받은 강자.
그럼 탈리만 남작이 패배한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용호길드와 다크 나이트의 관계였다.
‘우리 용호길드를 습격했던 놈들이 정말 다크 나이트라면?’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심증은 가지만 증거는 확보하지 못해 비밀리에 기습을 한 걸 수도 있다.
‘증거가 나오면 용호길드는 끝장이야.’
당연히 길드 마스터인 자신의 목숨도 위험했다.
설사 증거가 없더라도?
‘심증만으로도 위험해.’
그 전까지도 다크 나이트의 위용이 드높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정체불명의 야인 집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려 신의 칭호를 가진 이가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테라 왕국 중 극히 일부 지역에만 퍼진 만큼.
‘아직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아니지.’
칭호는 영원하지 않다.
실력이 떨어져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고.
강제로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또 만인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칭호의 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로크토 제국의 검살존과 적염제가 고개를 숙였어.’
그럼 공신력이 올라간다.
‘최소한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에서는 척마혈신이라는 칭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크 나이트의 수장이 얻은 척마혈신이라는 칭호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게.
그에게 고개를 숙인 검살존과 적염제의 명예를 똥통에 처박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신의 칭호를 가진 이들의 수는 고작 열 명.
그들이 가진 사회적 위치와 권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로크토 제국의 황제조차도 신의 칭호를 가진 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못했다.
그저 부탁을 할 뿐.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용호길드가 탈리만 남작과 도플갱어들을 처단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뭐?”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의 말에 용왕 이지용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그분께서 납득하실 거라고 생각하나?”
용왕 이지용과 계약한 마족은 탈리만 남작을 비롯한 도플갱어들과 힘을 합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데 힘을 합치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을 하라니?
“우리 용호길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하면 이해해 주실 겁니다. 거기다 도플갱어 군단은 이미 패퇴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놓쳤다고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탈리만 남작을 포기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거기다 우리 용호길드는 탈리만 남작 휘하에 있는 도플갱어들을 공격했습니다.”
“그건 놈들이 먼저 우리 용호길드 소속 플레이어를 죽이고 위장해서 그런 거잖아. 전투가 커진 것도 그놈들이 도망쳐서고.”
“합리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또 우발적인 사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오만한 탈리만 남작이 그걸 이해해 줄까요?”
용왕 이지용이 얼굴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리가 없겠지.”
“애초에 패배한 탈리만 남작은 자신의 실책을 축소하기 위해 우리 탓을 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다크 나이트의 실력과 로크토 제국 토벌대의 존재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 주지 않아서 패배한 거라고요.”
“그러고도 남을 놈이기는 하지.”
한데 그런 상황에서 용호길드가 도플갱어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럼?
자신이 패배한 책임을 용호길드에 묻기 더 용이해진다.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지금 와서 우리가 물러나서 사과한다고 탈리만 남작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길길이 날뛰겠지. 어쩌면 나를 죽이려 할 수도 있겠군.”
그리고 용왕 이지용의 모습을 빌려 용호길드를 장악하려 할 수도 있었다.
“싸워야 합니다.”
“좋다. 하지만 그 전에 그분께 보고를 올려…….”
“안 됩니다!”
“뭐?”
“그분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어차피 그분도 마족이고 탈리만 남작도 마족입니다. 마족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비천하고 하등한 종족.
그게 마족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분에게 우리 인간 계약자들은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노예일 뿐입니다. 과연 그분이 노예들의 안위를 위해 동족의 희생을 용인해 주실까요?”
그럴 수도 있다.
마족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니까.
특히 용왕 이지용의 계약자인 마룡족의 경우.
하위 마족인 도플갱어들을 휘하에 있는 용종 몬스터들보다도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건 이지용이 알 수 없는 정보지.’
강현수는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의 눈과 귀를 이용해 상황을 전부 확인하고 있었다.
또 필요할 때에는 적당히 개입해 코치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일단은 저질러야 한다고 해.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일단 저질러야 합니다.”
“으흠, 혹시 그분이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이지용은 별다른 재능이 없었고.
계속해서 노력할 의지도 없었으며.
좋은 직업도 얻지 못했다.
그런 그가 용왕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고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마족과의 계약 덕분이다.
마족에게 버림받는다면?
용왕 이지용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카발길드는 박살 났고 마룡 카라스 남작은 죽었습니다. 또 탈리만 남작 역시 패퇴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족들이 우리를 버릴 수 있을까요?”
“그렇기는 하지. 우리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
용왕 이지용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사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
아틀란티스 차원에 존재하는 마왕의 하수인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하나 가지고 절절매겠는가?
‘사라지면 다시 계약하면 그만이고.’
다른 마왕의 하수인을 이용해 플레이어에게 접근해 계약을 제의하면?
얼마든지 추가로 마왕의 하수인을 늘릴 수 있다.
단지.
‘마족도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를 뚫고 플레이어와 계약을 하는 건 적잖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
즉, 마왕의 하수인들을 잡아 죽이면 죽일수록.
‘영구적으로 마족들의 힘을 줄일 수 있어.’
그러나 그것 역시.
용왕 이지용이 알 수 없는 정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이 우유부단한 놈.’
마족과 계약한 놈답게 욕심은 많으면서 리스크를 지는 건 두려워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플레이어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고.
일반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불로소득?
그 불로소득을 만들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노력과 투자는 필요하다.
주식을 하든 코인을 하든.
자신의 돈과 시간이 휴지 조각이 될 리스크를 져야 한다.
하다못해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서도 복권을 구매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리스크도 지지 않는데.
엄청나게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건.
‘사기꾼들뿐이지.’
어떻게 보면 용왕 이지용 역시 마족이라는 사기꾼에게 낚인 호구에 불과했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탈리만 남작은 마계 귀족이야.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용왕 이지용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그럼 원하는 대답을 해 줘야지.’
강현수가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에게 의지를 전달했고.
그 의지에 따라 간부 박지훈으로 위장한 도플갱어 1호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진퇴양난입니다. 거기다 탈리만 남작이 도착해 도플갱어들과 합류하면, 오히려 우리가 불리해집니다. 일단 탈리만 남작이 오기 전에 도플갱어들을 전멸시키시죠. 그리고 허락하시는 즉시 제가 통신기를 가진 정보원을 통해 도플갱어들의 은신처를 발견해 공격 중이라는 사실을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에게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뒷일은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해결해 줄 겁니다.”
“탈리만 남작이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에게 허튼소리를 하면?”
“마족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는 도플갱어들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공격한 장본인입니다. 설사 조사를 하더라도 우리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버티기만 하면 된다.
뒷일은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의 토벌대가 책임져 줄 거다.
마족의 말은 신용이 없다.
이 달콤한 꼬임에.
“좋아, 그렇게 하지.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용왕 이지용이 넘어갔다.
역시.
‘마족에게 넘어간 호구다운 선택이야.’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 용호길드와 탈리만 남작이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용왕 이지용이 기다리는 다크 나이트와 로크토 제국 토벌대의 지원은.
‘예상보다 많이 늦을 거야.’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말이다.
아, 물론 빨라질 수도 있다.
용호길드가 강현수의 예상보다 빨리 전멸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