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122화 (122/365)

첫 번째 선물 (4)

부정해 보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마족은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 가지고 있는 지성도 인간 이상이다. 그럼 충분히 세력 다툼이 벌어질 수 있어.’

하지만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일이 꼬여 버린다.

용왕 이지용이 마족과 계약을 맺은 건.

아틀란티스 차원의 절대자가 되고 싶어서였지.

마족들 간의 세력 다툼에 희생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그분께 여쭤보겠다.”

계약을 맺은 마족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산 제물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한데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소문에 밝은 상단과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꽤 많은 자금이 들 것 같은데, 진행할까요?”

“상단과 정보 길드? 믿을 수 있는 곳이야?”

“아틀란티스 전역에 지점을 두고 있는 골드로드상단과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의 정보 조직을 통합한 섀도다크길드에 의뢰할 생각입니다. 의뢰비는 비싸지만 정보의 정확도는 가장 높습니다.”

“그럼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 진행해.”

용왕 이지용은 이번에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돈 따위는 아무리 써도 아깝지 않아.’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용왕 이지용의 허락을 받은, 간부 박지훈이 몸을 돌려 길드장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큭큭큭!

길드장 집무실을 빠져나온 간부 박지훈의 머릿속에서 강현수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했다. 내가 개입할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아예 없었어. 훌륭하다.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주군.

이번 사건 조사의 최종 담당자가 된 간부 박지훈.

그는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용호길드의 두뇌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의 지략가이자 용왕 이지용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심복 중에 심복이었다.

하지만.

진짜 박지훈은 강현수가 용호길드를 습격하던 날 사망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도플갱어 1호가 대신했다.

-기대 이상이구나.

마족과 계약한 인류의 배신자 용왕 이지용이 같은 편인 마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용호길드의 자금을 아무런 문제없이 황금 군주 사에마알의 골드로드상단과 암왕 세실리아가 만든 정보 조직 섀도다크에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다음 계획을 진행하도록.

-예, 주군.

강현수가 용호길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이제 겨우 포장지만 뜯었을 뿐이다.

포장지가 다 벗겨지면?

진짜 선물이 나올 것이다.

* * *

‘생각보다 훌륭하네.’

강현수가 직접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지능이 떨어져서 좀 못 미더웠는데.’

예상외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도플갱어를 베이스로 만들어서 그런가?’

다른 소환수들과는 연기의 레벨이 달랐다.

강현수는 용왕 이지용이 어떤 마족과 계약을 맺었는지는 모른다.

도플갱어 1호가 죽은 박지훈의 기억을 흡수하기는 했지만.

박지훈이 계약을 맺은 대상은 작위도 없는 하급 마족.

그 하급 마족이 어떤 마계 귀족을 모시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박지훈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마룡일 확률이 높겠지.’

마룡이 아니라 다른 마족이라면?

계약자에게 용종 몬스터를 소환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능력을 줬을 것이다.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번거로울 테니까.

마계에 존재하는 모든 용종 몬스터는 마룡족의 지배하에 있다.

용종 몬스터에 대한 명령권도 마룡족이 가지고 있다.

즉, 용왕 이지용이 계약한 대상이 마룡이 아니라면?

‘용왕 이지용에게 스킬을 주기 위해 마룡에게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리지.’

계약자를 위해 그런 귀찮은 일을 벌일 마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마룡족은 마족 중에서도 그 직위가 상당히 높아.’

강현수는 마룡 카라스를 소환수로 만든 덕분에 마족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습득할 수 있었다.

특히 마족 중에서도 마룡 카라스가 속해 있는 마룡족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았다.

‘마룡족은 성체가 되면 대부분 마계 귀족 작위를 받지.’

태생 자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마족이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개체 수가 적어.’

일반적인 마족은 그 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개체 수 자체가 많으면 수천만, 적어도 수만 정도는 될 정도로 많다.

그러나 마룡족은.

‘다 긁어모아 봐야 1백 마리 남짓이지.’

마룡 카라스 같은 존재가 1백 마리나 있다는 건 엄청난 재앙이지만.

‘하나의 종으로서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숫자지.’

유전자 풀이 너무 적어 자연 멸종 되지 않는 게 신기한 수준이랄까?

‘마족 내부에서도 종족 간의 파벌이 있고 권력투쟁이 발생한다.’

마룡족과 친하게 지내는 마족이 있는 반면.

싫어하는 마족도 있다.

쉽게 말해.

‘단순히 용왕 이지용과 마족만 이간질시키는 게 아니라, 마룡족이 다른 마족 파벌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지.’

마족들 간에 내분이 벌어지면?

강현수로서는 작은 노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셈이 된다.

‘마룡족은 적이 많지.’

태생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마룡은 대부분 오만하고 독선적이다.

특히 태생이 하위종인 도플갱어 같은 마족들을 버러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버러지 취급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고.’

하지만 이번 도플갱어 군단의 침공은 마왕의 명령하에 진행되는 일이었고.

‘도플갱어 군단 자체가 마계 공작 중 한 명의 군세에 속해있지.’

잘만 이간질하면.

‘마계 공작과 마룡족을 정면으로 충돌시킬 수도 있어.’

도플갱어 1호에게 들은 정보와 마룡 카라스에게 들은 정보를 조합하니.

‘쓸 만한 계획이 술술 나오네.’

강현수는 회귀 전 평생을 마족과 싸워 왔다.

최종적으로는 마왕과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마계나 마족에 대한 정보는 거의 얻지 못했어.’

그건 강현수뿐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단 하나.

‘마족들에게 금제가 걸려 있었으니까.’

마왕군 입장에서는 아군의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소환수로 만들면 모든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지.’

죽었으니 금제가 발동할 일도 없고.

마족 소환수가 내뱉는 정보가 거짓인지 진심인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도플갱어 군단의 수장이 마계 귀족이었지.’

그놈을 잡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차원 게이트는 일방통행이고.

당연히 강현수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넘어 마계로 쳐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보를 계속 수집하고 아틀란티스 차원에 넘어온 마족과 마왕의 하수인 들을 잘만 이용하면.’

굳이 마계로 넘어가지 않아도.

‘마족들의 내부 분열을 유도할 수 있어.’

계획이 성공해 마계에서 마족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아군 전력을 소모시키지 않고 마족들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거기다 회귀 전에 인류가 당했던 일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격이 된다.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씨앗은 뿌렸다.

이제 강현수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성장할 수 있게 물을 뿌려 주는 것뿐이었다.

* * *

용왕 이지용은 산 제물을 바쳐 자신이 모시는 마계 귀족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번에 입은 피해에 대한 질책만 잔뜩 들었을 뿐.

‘뚜렷한 해답을 듣지는 못했어.’

그저 한번 알아볼 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용왕 이지용은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다.

‘알아보겠다라.’

그 말은 용왕 이지용이 모시는 마계 귀족과 대립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줄을 잘못 잡은 건 아니겠지?’

용왕 이지용이 모시는 마계 귀족이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다면?

‘나도 줄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버릴지도 몰라.’

스스로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인류를 배신하고 마왕군과 손을 잡았다.

그럼 당연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지.’

도플갱어 군단의 지원으로 첫 보상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시작부터 틀어져 버렸다.

그때.

“제가 기별을 넣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비켜!”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고.

덜컹!

용왕 이지용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용왕 이지용이 막 화를 내려 할 때.

“이번에 큰 망신을 당했다고 들었다, 인간. 제법 실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다짜고짜 용왕 이지용에게 비아냥거렸다.

“탈리만 남작님,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용왕 이지용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호길드는 도플갱어들이 몸을 숨길 장소를 제공해 주고 최대한 바깥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데 또 멋대로 나와 용호길드로 찾아온 것이다.

“인간 주제에 지금 나를 질책하는 것이냐?”

탈리만 남작이라 불린 이가 성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아닙니다. 일반 길드원들에게 들키지는 않았겠지?”

용왕 이지용이 탈리만 남작에게 짧게 대답한 뒤 간부 박지훈에게 물었다.

“예, 이곳에 오기까지 길드장님의 얼굴을 이용했기에 일반 길드원들은 탈리만 남작님이 길드에 들어온 줄도 모를 겁니다.”

간부 박지훈의 말에 용왕 이지용은 화가 끓어올랐다.

‘그럼 내가 집무실에 있는 줄 알고 있던 이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 아냐.’

마음 같아서는 탈리만 남작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는 게 죄지.’

용왕 이지용은 마계 백작과 계약했다.

하지만 용왕 이지용은 마계 백작의 계약자일 뿐, 마계 백작 본인이 아니었다.

당연히 마계 남작인 탈리만이 무례한 짓을 해도.

질책하거나 항의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감내할 뿐.

“왜 갑자기 찾아오신 겁니까?”

“지시를 내릴 일이 있다.”

“예?”

다짜고짜 찾아와 지시를 내린다는 말에 용왕 이지용은 속에서 열불이 터져 나왔다.

‘내가 자기 수하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지시를 한다는 거야.’

용왕 이지용과 계약한 마계 백작은 도플갱어들의 수장인 탈리만 남작과 협력해 세력을 키우라고 했을 뿐.

‘저놈의 지시를 받으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용왕 이지용이 생각하기로 자신과 탈리만 남작은 엄연히 동등한 관계였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탈리만 남작은 용왕 이지용을 자기 아랫사람 다루듯 행동했다.

거기다 지금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이나 길드원들의 얼굴을 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가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라는 곳을 이용해 우리 일족에 대한 비밀을 밝혔다고 들었다.”

“예, 저도 들었습니다.”

“그놈들을 쓸어버려야겠다.”

“예?”

용왕 이지용은 갑작스러운 탈리만 남작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크 나이트라는 존재가 카라스 남작을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거기다 이번에는 우리 일을 방해했지.”

“그건 그렇지만.”

“내 생각에 이번에 너를 습격한 놈 역시 다크 나이트가 확실하다.”

“예?”

“정체를 알 수 없는 네임드 플레이어가 등장했다고 하지 않느냐? 아틀란티스 차원을 다 뒤져도 그런 존재는 다크 나이트뿐이다.”

탈리만 남작의 말을 듣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용호길드가 마왕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다크 나이트가 알아차렸다면?

굳이 번거롭게 기습을 가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밝히기만 하면?

그게 진짜든 아니든 용호길드는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에 다크 나이트라는 존재를 제거해야겠다. 겸사겸사 다크 나이트들을 보호하고 있는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라는 곳을 쓸어버리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느냐?”

“그렇기는 한데, 다크 나이트의 전력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거기다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의 전력도 만만치 않고요. 또 싸움을 걸 명분도 부족합니다.”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쓸어버릴 수 있었으면 진작 처리를 했을 것이다.

규모는 용왕 이지용이 이끄는 용호길드가 월등히 더 크지만.

‘고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랭커 플레이어와 네임드 플레이어의 숫자는?

용호길드, 발해길드, 고려길드 모두 도긴개긴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명분은 내가 만들어 주겠다. 또한 이번 전쟁에는 나도 수하들을 이끌고 참전할 생각이다.”

탈리만 남작의 말에 용왕 이지용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탈리만 남작이 도플갱어라고는 하지만, 전투력만큼은 진짜다.’

마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

남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는 말은?

‘그에 걸맞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겠지.’

무란 왕국을 침공해 수많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를 학살한 마룡 카라스.

‘그도 남작이었어.’

또한 도플갱어들의 수장인 탈리만도 남작이다.

‘즉 저놈이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수백을 제거할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

뭐, 그 전투에서 결국 마룡 카라스도 죽기는 했지만.

애초에 발해길드와 고려길드는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수백 명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다.

설사 그런 실현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 건방진 마족 놈이 죽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지.’

문제는.

“탈리만 남작님은 마기를 제대로 사용하실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마족이 가지고 있는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 제약은 보유하고 있는 마기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커진다.

마계 귀족쯤 되면?

마기를 감춘 상태에선 자신이 가진 전체 힘의 1할도 채 드러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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