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선물 (3)
강현수가 용왕 이지용을 상대로 다시 레플리카 스킬을 사용하려 할 때.
“길드 마스터를 구해라!”
용호길드의 길드원들이 속속 합류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불한당들을 제거해라!”
덤으로 대도시 베슬퍼실의 치안을 관리하는 테라 왕국의 정규군까지 들이닥쳤다.
‘이만 가 봐야겠네.’
죄 없는 이들을 죽일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괜히 드잡이질을 벌여 봐야 발목만 잡힐 뿐이다.
대다수가 300~400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지만.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거기다 전투가 길어지면?
중소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나 테라 왕국군 소속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합류할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어.’
강현수가 몸을 피하려고 하자.
“이놈, 어딜 가느냐!”
지금껏 몸을 웅크리고 있던 용왕 이지용이 강현수에게 덤벼들었다.
‘바보 같은 놈.’
움직이면 방어력 세 배 증가 효과가 사라진다.
강현수가 용왕 이지용의 주력 스킬 중 하나인 용인화의 단점을 몰랐다면?
공격 대신 방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괜히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공격을 가하느니.
그 시간에 용왕 이지용의 공격을 막고 도주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플리카 스킬이 제대로 발동한 탓에 한 번의 시도만으로 용인화 스킬의 레플리카를 만들었던 강현수는.
휘익!
방어 대신 공격을 선택했다.
강현수가 휘두른 검이 용왕 이지용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큭!”
용왕 이지용이 몸을 비틀며 팔로 목을 보호했다.
그 때문에 목을 베어 내지는 못했지만.
좌악!
팔 하나는 잘라 낼 수 있었다.
“아아악!”
용왕 이지용이 비명을 지르며 잘린 팔의 단면을 움켜쥐었다.
휘익!
강현수가 다시 검을 휘둘렀지만.
서걱!
방어력 세 배 증가 옵션이 다시 발동했는지.
옅은 상처밖에 나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상태에서 야수화 스킬을 중복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또 야수화 스킬을 중복으로 사용하면?
마룡갑 역시 체형에 맞게 변하기에 강현수가 수인족이라는 오해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산군 강림 같은 스킬은 극히 드무니까.’
테라 왕국 입장에서는?
용호길드 테러의 배후가 무란 왕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은 테라 왕국과 무란 왕국 사이가 더 벌어질 거야.’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은 피해야지.’
용왕 이지용의 실력을 확인한 이상.
‘굳이 용호길드의 본진에서 제거할 필요는 없어.’
사냥을 나오는 틈을 노려 제거하는 게 베스트였다.
-퇴각.
강현수가 명령을 내리자 소환수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망친다!”
“저놈 잡아라!”
용호길드의 길드원들과 테라 왕국의 정규군이 강현수와 소환수들의 뒤를 추격했다.
하지만.
사아아악!
추격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는 소환수들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로 간 거야?”
“분명히 이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넌 저쪽으로 가 봐, 난 이쪽으로 갈 테니까.”
“알았어.”
용호길드의 길드원들과 테라 왕국의 정규군이 골목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소환 해제된 소환수를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이제 내 차례인가.’
강현수가 악몽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손에 넣은 EX랭크 스킬 달의 그림자를 발동시켰다.
슈욱!
강현수의 몸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고.
“분명히 이쪽으로 왔는데?”
“막다른 골목이잖아?”
“벽을 넘었을 수도 있어. 올라가 보자.”
뒤늦게 도착한 용호길드의 길드원들과 테라 왕국의 정규군이 애꿎은 벽을 기어 올라갔다.
‘대단하네.’
그간 테스트를 위해 달의 그림자를 사용해 보기는 했지만.
실전에 적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그뿐 아니라 용호길드의 길드원 중 하나가 강현수의 몸을 그대로 통과하기까지 했다.
‘역시 공간 계열답네.’
강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산책하듯 느긋하게 움직여 포위망을 벗어났다.
‘성공했으려나?’
이 정도 시간을 끌어 줬으면 충분히 성공했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성공했나?
강현수가 최근 대대장으로 임명된 도플갱어 1호에게 물었다.
-예, 성공했습니다, 주군.
-모두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확답을 듣기는 했지만.
‘살짝 불안하네.’
강현수는 이번 습격에서 고위 간부들을 노렸다.
그리고 죽은 간부들의 대역으로 도플갱어들을 투입시켰다.
‘도플갱어를 소환수로 만드니까 이게 좋네.’
소환수는 생전의 모습을 회복한다.
대충 보면?
죽은 사람이 부활했다고 믿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살아 있는 사람 특유의 생기가 없었다.
또 왠지 모르게 인공적인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기에 현실적으로 대역은 무리였다.
하지만.
‘도플갱어는 다르단 말이지.’
태생 자체가 남을 흉내 내기 위해 탄생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도플갱어들은 대대장이든 중대장이든 소대장이든 외형이 살아 있는 사람과 똑같았다.
문제는.
‘지능이 떨어진단 말이야.’
그나마 가장 지능이 높은 대대장들조차도.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그게 끝이란 말이지.’
자기 의지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고.
즉각적인 임기응변 능력이 떨어졌다.
대대장이 이 정도면 그보다 더 지능이 낮은 중대장이나 소대장 그리고 분대장은 어떻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플갱어들에게 기억 흡수라는 스킬이 있다는 점인데.’
기억 흡수는 죽은 상대의 잔존 마력을 받아들이며 생전의 기억 일부를 흡수하는 스킬이었다.
도플갱어들은 기억 흡수 스킬 덕분에 자신이 변한 대상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놈들이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제대로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진짜 도플갱어였다면 무리 없이 소화했겠지만.
소환수 도플갱어는 지능이 떨어진다.
‘전원 대대장이었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지능 하나만 보고 전투력이 떨어지는 도플갱어들을 대대장에 임명하기에는.
스텟 손실이 너무 컸다.
‘대대장 하나와 중대장 20기를 투입시키기는 했는데, 잘할 수 있으려나?’
가장 중요한 건 유일한 대대장인 도플갱어 1호의 역할이었다.
‘소환수들끼리는 유기적인 연대가 가능해.’
강현수는 도플갱어 1호 아래 모든 도플갱어들을 몰아넣어 대대를 만들었다.
투입된 도플갱어 2호부터 21호는 모두 도플갱어 1호의 지시를 받는 중대장들이었다.
그 말은.
‘지능이 높은 도플갱어 1호가 도플갱어 2호부터 21호까지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말이지.’
막말로 도플갱어 2호부터 21호가 판단력이 필요한 수준 높은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도플갱어 1호가 상황을 전해 듣고 대신 대화를 나눠 줄 수 있었다.
마치 강현수가 검귀를 이용해 지금은 수하가 된 멸마창왕 진구평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처럼 말이다.
도플갱어 1호의 지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나서야지.’
강현수가 대신 대화를 나누면 그만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용호길드는 도플갱어를 걸러 내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을 거야.’
테스트가 진행되면?
마력으로 이루어진 소환수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소환수는 피를 흘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같은 편인 도플갱어가 용호길드에 위장 잠입할 일은 없으니 테스트가 진행될 확률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했다.
‘네놈들도 한번 당해 봐라.’
회귀 전.
도플갱어 군단으로 인해 테라 왕국 곳곳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을 당시.
용호길드는 대외적으로 자신들도 도플갱어들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이었지.’
용호길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일 거다.’
다른 길드는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용호길드에서만큼은.
‘수많은 문제가 생기게 해 주마.’
강현수는 달의 그림자 스킬을 발동시킨 상태로 용호길드의 본거지인 대도시 베슬퍼실을 떠나 발해길드의 본거지인 대도시 베록커토로 향했다.
* * *
야밤에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용호길드는.
길드 마스터인 용왕 이지용이 부상을 당하고 간부들이 대거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용호길드는 테라 왕국의 3대 길드 중 하나였고.
스스로 3대 길드 중에서도 최고라고 자부해 왔다.
한데 고작 야습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범인들이 모두 도주했다는 사실이었다.
“용의자로 의심되는 놈들은 모두 조사했어?”
용왕 이지용이 신경질적인 태도로 조사를 맡은 간부인 심복 박지훈을 닦달했다.
“예.”
“결과는?”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모두 병력이 움직인 정황이 없습니다.”
용호길드를 습격한 이들은 소수였지만.
전원 네임드 플레이어로 추정되었다.
가장 큰 용의자는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발해길드와 고려길드였지만.
발해길드와 고려길드 소속의 네임드 플레이어들은 일절 움직인 흔적이 없었다.
“대역을 세웠을 수도 있잖아.”
“설사 대역을 세웠다고 해도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던 주력 스킬이 너무 다릅니다.”
심복 박지훈의 말에 용왕 이지용이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을 공격했던 자는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하지만.
‘테라 왕국에는 핏빛 오러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네임드 플레이어가 없어.’
더군다나 그 핏빛 오러는 마력을 흩어 버리는 효과와 상처 치유를 막는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스킬을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주변 왕국에 그런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설사 네임드 플레이어가 아니라 해도.
진작 소문이 났을 것이다.
‘아니, 주변 왕국 수준이 아니라 아틀란티스 전역에 소문이 쫙 퍼졌겠지.’
하지만 용왕 이지용은 그런 특별한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 대한 소문을 접한 적이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자신을 공격한 네임드 플레이어가 정체를 감추기 위해 주력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주력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왕 이지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신급 칭호를 가진 플레이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좋은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하지 않을 리도 없고. 사용하지 않고 네임드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렇기에 더 아리송했다.
정체불명의 네임드 플레이어는 도대체 왜 용호길드를 습격했으며 왜 자신을 노렸단 말인가?
‘설마 우리 정체를 알아차렸나?’
그랬다면 공론화를 시켜야지 왜 기습을 가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그때.
“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용의자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뭐? 그게 누구지?”
심복 박지훈의 말에 용왕 이지용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마족입니다.”
“뭐?”
용왕 이지용이 반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용종 몬스터들은 길드 마스터에게 절대복종합니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으드득!
용왕 이지용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용종 몬스터를 소환하고.
소환된 용종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이지용에게 용왕라는 칭호를 선물해 준 힘은.
마족과 계약한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 전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일이다.
“습격자가 마족이라면 용종 몬스터들이 길드 마스터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됩니다.”
마족은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
용종 몬스터도 몬스터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플레이어 중에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강자는 존재할 수 없지만, 차원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마족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심복 박지훈의 추측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우리는 마족과 계약을 맺었어! 같은 편이라고! 그런데 왜 날 습격해!”
“우리가 계약을 맺은 마족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마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으흠.”
심복 박지훈의 말에 용왕 이지용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