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94화 (94/365)

암왕 (2)

강현수는 소환수를 보내지 않고 직접 암왕을 찾아갔다.

직접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기도 했고.

‘현재의 암왕은 나를 이길 수 없다.’

스스로가 가진 힘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다.

암왕 세실리아.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의 손녀이자 차후 로크토 제국의 황제가 되는 로디우스 2세의 딸.’

그러나 세실리아의 존재 자체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건.

‘그녀가 로디우스 2세를 암살하고 황위 쟁탈전에 참전한 후였지.’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내전이 강대한 로크토 제국이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것까지 현 로크토 제국의 황제 로디우스 1세에게 밝힐 수는 없었지.’

그 말을 하는 순간.

암왕이라는 존재는 탄생하지도 못한 채 소멸하고 말 것이다.

‘망국의 황녀가 암왕이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지.’

그것도 로크토 제국 멸망의 방아쇠를 당긴 어리석은 인물이라 조롱받던 황녀 세실리아가.

‘암흑 속에서 인류를 위해 헌신한 암왕이었을 줄이야.’

그때는 강현수도 엄청나게 놀랐다.

‘막아야 한다.’

로크토 제국이 회귀 전처럼 내전으로 인해 허무하게 멸망하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설사 회귀 전과 같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건 내전이 아닌 마왕군과의 전쟁 때문이어야 해.’

그렇기에 강현수는 암왕을 만나러 왔다.

하지만 설득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생아였지.’

암왕 세실리아의 어머니는 신분이 비천하디비천한 노예였다.

‘아버지도 책임감이 없었고.’

망나니 황태자 로디우스 2세는 자신의 딸을 전혀 챙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죽여 없애 자신의 치부를 지우려고 했다.

세실리아는 그나마 현 황제인 로디우스 1세의 자비 덕에 목숨을 건졌다.

할아버지인 로디우스 1세가 손녀딸인 세실리아를 보호하고 챙겨 준 것이다.

‘보호하고 챙겼다고는 해도 사실상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관리를 한 것에 불과하지.’

로디우스 1세는 손녀딸인 세실리아를 황제의 직속 비밀 군사 조직인 섀도 가드의 수장 브리번 남작에게 맡겼다.

섀도 가드는 황제의 숨겨진 힘임과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황실의 치부를 처리하는 청소부였다.

브리번 남작은 황제의 명에 따라 세실리아를 자신의 양녀로 들였다.

‘그게 전부였지.’

지위를 인정받기는커녕 황실 명부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근위 기사와 시녀를 배정받지도 못했다.

세실리아의 공식적인 신분은 남작가의 영애.

그것도 운 좋게 남작가에 입양된 평민 출신 고아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마 섀도 가드라는 조직 자체가 세실리아에게 넘어갈 줄은 황제인 로디우스 1세조차도 몰랐겠지.’

사생아라고는 하나 황제의 직계.

섀도 가드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차기 황제인 로디우스 2세와 그 자식들이 워낙 개차반 쓰레기이기도 했고.’

세실리아에게 장악당한 섀도 가드는 로크토 제국의 생존을 위해 유능한 이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귀족들을 포섭했다.

‘사실 포섭보다는 협박이었을 확률이 높지.’

당시에는 황제의 사생아가 어떻게 황위 쟁탈전에 뛰어들어 내전을 벌일 정도의 세력을 모았는지가 큰 의문이었다.

그 때문에 권력을 잡고 싶은 귀족들이 명분상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니었지.’

세실리아가 바로 암왕이었다.

섀도 가드라는 조직을 기반으로 세실리아는 아틀란티스 최고의 정보 조직을 만들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운 거지.’

섀도 가드는 황제의 비밀 군사 조직이기에 어느 정도 정보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황실의 청소부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조직이었어.’

그런 섀도 가드를 아틀란티스 최고의 정보 조직으로 만든 건.

‘순수하게 세실리아 개인의 능력이었지.’

아마 지금쯤 세실리아는 섀도 가드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황제에게 들어가는 정보를 차단하고 있을 터였다.

‘정보 조직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을 거고.’

시간이 흐르면?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정보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텐데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미래를 봤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래를 봤다구요? 궁금하네요. 미래에는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나라는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나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비록 로크토 제국을 멸망시킨 어리석은 황녀라는 비웃음을 받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로크토 제국을 멸망시킨 어리석은 황녀라. 그게 사실이라면…….”

세실리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래의 나는 대단하네요. 어쨌든 보잘것없는 황실의 사생아가 이 거대한 로크토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갖췄다는 뜻이니.”

“하오나 로크토 제국이 내전으로 인해 어이없이 멸망했기에 힘없는 수억 명의 백성들이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마왕군의 손에 죽었나이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의 입가에 피어올랐던 미소가 사그라졌다.

“그대는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건가요?”

챙!

세실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카로운 칼날들이 강현수의 몸을 에워쌌다.

“아닙니다.”

강현수의 대답에도 몸을 에워싸고 있던 칼날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왜 날 찾아온 거죠?”

“최근 황태자가 남작 영예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실리아의 아름다운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세실리아의 친부인 황태자.

그는 아버지인 로디우스 1세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세실리아를 노리고 있었다.

죽여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성장한 세실리아의 모습을 보고 음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정말 개망나니를 넘어서는 망종에 인간쓰레기지.’

로디우스 2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선황이었던 로디우스 1세의 후궁들을 범했다.

거기다 그것도 모자라 부인인 황후의 모친과 자매들을 범하기도 했다.

귀족들의 부인이나 영애를 범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예쁘다는 소문만 나면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범한 것이다.

아마 발정 난 개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게 용하지.’

세실리아가 로디우스 2세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반란이 일어나 황실 자체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세실리아를 제외하면 자식들도 아비를 쏙 빼다 박았고.’

사실 그 정도로 막장이 아니었다면?

사생아인 세실리아가, 그것도 친부인 선황을 암살한 패륜아가 황위 쟁탈전에 뛰어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몸을 피하실 생각이시지요?”

세실리아는 아직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친부인 황태자를 피해 몸을 숨기는 선택을 한다.

“정말 미래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남작 영애께 힘을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힘을 준다고요?”

“예.”

“도대체 어떤 힘을 준다는 거죠? 상대는 로크토 제국의 황태자예요.”

황제의 비호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지르면 끝이다.

이미 일이 벌어지면?

황제는 황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세실리아를 제거하는 것.

황태자는 큰 꾸중을 듣겠지만.

그게 끝이다.

황제로서도 대체제가 없는 황태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황손 중에 유능한 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제 아비를 쏙 빼닮아 똑같은 개망나니였다.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의 핏줄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방계 황족 중 유능한 이를 양자로 들이고 황태자를 버리는 것.

하나 아무리 개망나니라고 해도 황태자는 황제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방계 황족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현 황태자와 그 자식들은 숙청당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신다면 황태자의 숨통을 끊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세실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황태자의 경호 체계는 황제보다는 못하지만.

어디까지나 황제에 비해서일 뿐.

대륙 최고의 암살자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탄탄했다.

“물론입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세실리아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도우려고 하는 거죠?”

다크 나이트가 황제에게 로크토 제국의 멸망을 언급했지만.

그 원인으로 세실리아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지금은 힘을 주겠다고 한다.

원하면 황태자를 죽여 주겠다고 한다.

세실리아는 궁금했다.

모든 인간은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하면 다크 나이트의 욕망이 무엇이기에 자신을 돕는다는 말인가?

“당신의 존재 자체가 인류에게 커다란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현수의 말을 세실리아는 진실이라고 판단했다.

하나 그건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세실리아는 강현수의 눈 속에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당신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갖고 싶은 거군요.”

‘역시.’

세실리아의 답변을 들은 강현수는 만족했다.

역시 암왕.

상대의 속을 그 누구보다도 잘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날 로크토 제국의 황제로 만들 생각인가요? 그리고 그런 날 이용해 로크토 제국을 지배할 생각이고?”

“그런 계획을 세운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당신을 얻고 싶은 이유는 단순한 혈통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뭐죠?”

“당신의 능력.”

“제 능력요?”

“어린 나이에 황제의 눈을 피해 섀도 가드를 장악하셨죠?”

“그래요.”

“그리고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일 터이고요.”

“내가 미래에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되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벌인 일 때문에 인류 전체에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지기도 했지요.”

만약 세실리아가 빠르게 황위 쟁탈전을 종결시키고 승리했다면?

로크토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간의 인간쓰레기 황제로 인해 입은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고 인류의 든든한 방패이자 선봉장으로서 활약했으리라.

‘아마 회귀 전의 암왕 세실리아도 그런 그림을 그렸겠지.’

하나 황위 쟁탈전은 쉽사리 종결되지 않았고 점점 판이 커져 결국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로크토 제국의 멸망을 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개입한다면 사정이 달라지지.’

암왕 세실리아가 로크토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리고 그 암왕 세실리아를 수하로 만든다면.

로크토 제국과 인류 전체에 크나큰 홍복이 될 것이다.

세실리아 또한 암왕이라는 칭호 대신 로크토 제국 최초의 여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되리라.

“당신의 제안을 거절하면? 절 죽이실 건가요?”

세실리아의 물음에.

“그건 제가 해야 할 질문 아닐까요?”

강현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칼날들을 가리켰다.

“모두 물러가라.”

“하오나.”

“물러가라고 했을 텐데.”

“충.”

강현수의 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칼날이 사라졌다.

그리고 호위들이 완전히 물러났다.

“장난은 그만두시죠. 무력으로 당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세실리아는 강현수의 태연한 태도와 자신감 있는 눈동자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칼날이 코앞에 있음에도 태연하다?

담력이 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신감일 수도 있겠지.’

또한 무란 왕국에서 벌어졌던 일로 인해 드러난 다크 나이트의 무력이라면?

호위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름 섀도 가드의 최정예들로 뽑았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니.’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는커녕 로크토 제국의 근위 기사나 거대 길드의 간부 들도 어찌하기 힘든 전력에 불과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준다면, 당신의 것이 되어 드리지요.”

스윽.

세실리아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종이는.

‘영혼의 계약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을 걸고 맺는, 절대 어길 수 없는 계약.

‘드디어 나왔네.’

영혼의 계약서를 바라보는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