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왕 경위강
‘푸짐하게 받아 왔네.’
강현수는 검귀가 가지고 온 아이템을 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먹어 치워라.’
탐식의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사아아아악!
탐식의 검이 탐욕스럽게 A랭크 아이템들과 S랭크 아이템을 먹어 치웠다.
‘SS랭크로 성장시키려면 얼마나 먹여야 하려나?’
아마 B랭크나 A랭크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으리라.
‘S랭크부터는 돈으로 구할 수도 없는데.’
A랭크까지는 상점에 매물이 좀 있는 편이다.
하지만 S랭크부터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평생 무기 개념으로 사용하기에 상점에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SS랭크로 아이템을 업그레이드시키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길드 내에서 거래하지.’
S랭크 아이템은 전략무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왕국군이나 거대 길드에서도 내부 거래만 할 뿐 절대 외부에 판매하지 않는다.
‘뭐, 어쩔 수 없지.’
파는 사람이 없다면.
‘강제로 빼앗아 오는 수밖에.’
거기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현재 거대 길드인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정예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 말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텅 비었다는 말이지.’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소환해 중화길드와 카발길드로 보냈다.
제대로 빈집털이를 해 볼 생각이었다.
* * *
‘또 사라졌어.’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갑자기 사라진 적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장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멸마창 진구평과 중화길드 정예가 눈앞에 있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전방에 있는 중화길드 놈들을 제압한 후 물어보면 그만이다.
콰콰콰콰콰!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검에서 붉은빛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모두 죽여라!”
카발길드와 중화길드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예, 길드 마스터!”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명령과 함께 카발길드의 정예들이 중화길드 정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 건방진 해적 놈들에게 중화의 힘을 보여 주자!”
“와아아아!”
멸마창 진구평의 외침과 동시에 중화길드의 정예들 역시 카발길드 정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앙!
두 거대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 선두에는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멸마창 진구평이 있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오러의 파편이 터져 나오고 화염과 뇌전이 넘실거리며 전장을 뒤덮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 스킬을 난사한다.
일반인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의 숨통을 끊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후방에서는 힐러들이 힐 스킬과 버프 스킬을 쉼 없이 시전하며 아군을 지원했다.
치열한 전투의 승기를 잡은 것은 카발길드였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필두로 한 4인의 활약.
그 넷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그 넷이 얼마나 강했는지 기세 좋게 나섰던 멸마창 진구평이 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꽁무니를 뺄 정도였다.
‘도대체 숨겨 놓은 힘이 얼마나 많았던 거야?’
멸마창 진구평은 적잖이 당황했다.
설마 화염의 기사 제이미급 강자가 셋이나 더 등장할 줄은 몰랐다.
“버텨라! 무조건 버텨!”
멸마창 진구평이 목이 터져라 지시를 내렸다.
장기전으로 가면 무조건 이긴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버틸 수 있을까?’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강력함을 보니 절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편 강제 강림 의식을 마친 3인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왜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이 없지?’
대원정을 떠났던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강제 강림 의식을 마친 3인을 만들어 냈다.
문제는 급하게 마족화를 진행했기에 육체의 균형이 보름 정도 후에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는 점이었다.
육체의 균형이 무너지면 마족화가 된 셋은 목숨을 잃는다.
그렇기에 보름 안에 무조건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의 목을 베어 버리고 중화길드를 멸망시켜야 했다.
한데 전장 어디에도 대원정을 떠났던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큰일이었다.
보름 안에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을 찾아 제거하지 못하면?
카발길드는 아무런 이득 없이 막대한 피해만 입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보름 후 카발길드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이놈들이라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멸마창 진구평과 중화길드의 정예.
이놈들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했다.
그리고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의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
그때.
작은 이변이 벌어졌다.
‘뭐지?’
무언가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마력과 체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다.
‘마력과 체력이 누수되고 있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재빨리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몸 상태를 살폈다.
‘뭐야?’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전투가 벌어지고 채 10분도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지치다니?
반면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몸 상태가 멀쩡했다.
‘이 자식들!’
전장이 되는 이곳에 무언가 수작을 부려 놓은 게 확실했다.
‘속전속결이다.’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야 한다.
그래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콰콰콰콰콰!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전신을 붉은빛 오러가 뒤덮었다.
그리고 그가 성난 사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젠장, 분명히 발동 중인데.’
멸마창 진구평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승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흡혈 필드였다.
흡혈 필드는 중화길드가 SSS랭크 던전인 흡혈왕의 던전을 엄청난 희생 끝에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 흡혈왕의 반지에 내장되어 있는 SSS랭크 스킬이었다.
흡혈 필드가 펼쳐지면 시전자가 지정한 아군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체력과 마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렇게 빼앗은 마력과 체력이 시선자의 능력치를 상승시켜 준다.
SSS랭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사기적인 효과였다.
하지만 흡혈왕의 반지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도왕 경위강의 명령으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흡혈 필드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꼭 산 제물이 필요하다는 점이지.’
더군다나 희생된 산 제물의 숫자와 능력치에 따라 흡혈 필드의 범위가 결정된다.
멸마창 진구평은 흡혈 필드를 구현하기 위해 생포한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 수백 명의 피와 살을 제물로 바쳤다.
이 일이 알려지면?
마족과 계약을 했다는 오해를 받고 인류의 반역자로 지목될 수도 있었다.
설사 오해를 풀더라도 같은 인간을 산 제물로 사용했다는 비난을 절대 피할 수가 없었다.
멸마창 진구평으로서는 나름 큰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진행한 것이다.
한데.
‘내가 상대조차 되지 않다니.’
흡혈 필드에 있는 수많은 적들의 체력과 마력을 빼앗아 강해진 멸마창 진구평은 당당하게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일기토를 벌여 승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염의 기사 제이미급 강자가 셋이나 더 나타나는 바람에 볼썽사납게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버티자. 버티면 이길 수 있어.’
멸마창 진구평이 이를 악물었다.
승리를 위해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비인륜적인 짓까지 저질렀다.
그럼 승리라도 거머쥐어야 하지 않겠는가?
* * *
‘저 미친놈.’
강현수는 멸마창 진구평이 벌인 짓을 보고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결박된 포로들을 데리고 오는 걸 보고 도대체 뭘 하려나 했는데.
‘설마 흡혈왕의 반지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사실 강현수만큼 흡혈왕의 반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회귀 전 흡혈왕의 반지로 인해 벌어진 혈사를 직접 목격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저건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야.’
SSS랭크 던전 보스였던 흡혈왕의 영혼이 들어 있는 반지였다.
흡혈왕의 반지를 계속해서 사용하면?
‘결국은 흡혈왕의 영혼에 잡아먹히고 말지.’
회귀 전 흡혈왕의 반지를 사용하던 플레이어는.
결국 흡혈왕에게 잡아먹혔다.
‘어쩐지 부활한 흡혈왕을 처단하는 데 왜 검존 주위천이 적극적으로 나섰나 했더니.’
회귀 전 부활한 흡혈왕을 처단한 건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검존 주위천이었다.
단순히 명예욕 때문에 나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알려질까 똥줄이 타서 그런 거였다.
‘회수해야겠어.’
저건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특히 흡혈왕의 반지가 카발길드의 손에 들어가면?
‘회귀 전보다 더한 혈사가 벌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강현수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공격하는 소환수들로 대대장의 시선 스킬 사용 대상을 바꿨다.
‘움직여라.’
강현수의 명령에 검귀와 카발 1~4호가 이끄는 소환수들이 중화길드와 카발길드를 습격했다.
‘속수무책이네.’
중화길드와 카발길드.
양쪽 모두 최정예들이 모두 동원된 상황.
길드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높아 봐야 300~400레벨 수준이었다.
당연히 검귀와 카발 1~4호들이 이끄는 강현수의 소환수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 쓸어 와라.’
강현수의 지시에 따라 소환수들이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창고를 털었다.
골드, 아이템, 스킬북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싹쓸이를 했다.
길드 하우스가 습격받아 창고가 털리고 있는 상황.
이 정도 사건이 터졌으니 당연히 난리가 났다.
또 그 소식이 전투 중인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기에 정예들을 빼낼 여력이 없었다.
카발길드는 최대한 전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고.
중화길드는 최대한 버티기 위해 조금의 전력 누수도 허락할 수 없었다.
한편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도 모자랄 판에 별동대를 동원해 텅 빈 길드 하우스를 습격한 중화길드의 행동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설마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이 빈집털이를 한 건가?’
심지어 이런 착각을 했다.
‘체력과 마력을 빼앗아 가는 함정을 이용하면 이 정도 전력으로도 우리 카발길드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카발길드를 얼마나 만만히 봤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는가?
‘그 오만을 산산이 부숴 주마.’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엉뚱한 오해를 하는 와중에.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은 이 정도 병력을 끌고 왔음에도 별동대에 랭커를 동원할 정도의 여력을 가진 카발길드의 저력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전투만 승리로 이끌면 모두 되찾을 수 있어.’
화염의 기사 제이미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저놈들을 제거한 뒤 복귀해서 도왕 경위강과 랭커들까지 처리하면 그만이야.’
이 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그래야 그간의 손해를 모두 만회할 수 있었다.
* * *
‘카발길드가 이겼네.’
전투 현황을 지켜보던 강현수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애초에 카발길드가 흡혈 필드라는 함정에 빠졌음에도 후퇴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
갑자기 등장한 화염의 기사 제이미급 강자 세 명.
그들이 카발길드가 함정에 빠졌음에도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도 의문이기는 하네. 후퇴하는 게 더 이득이었을 텐데.’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비롯한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 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500~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컸다.
‘이기는 건 확실하지만 굳이 큰 피해를 자초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이는 강제 강림의 부작용으로 화염의 기사 제이미급인 3인의 강자에게 보름이라는 시간제한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지만.
강현수로서는 그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회귀 전 강현수가 상대했던 카발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안정적으로 마족화가 끝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제한 같은 게 없었다.
하지만 강현수로서는?
그 차이를 알 방법이 없었다.
‘끝났네.’
랭커 둘과 네임드 플레이어 하나가 죽었다.
멸마창 진구평이 겨우겨우 버티고는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슬슬 카발길드 쪽에 보낸 소환수들을 철수시켜야겠네.’
강현수가 막 소환수들의 철수를 지시할 무렵.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칙칙한 회색빛 구름이 천둥번개를 내뿜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리고 칙칙한 회색빛 구름이 맹렬한 속도로 카발길드와 중화길드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환수의 시선을 통해 그 광경을 목격한 강현수가 눈을 번뜩였다.
칙칙한 회색빛 구름.
이는 한 플레이어의 상징과도 같은 색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네.’
칙칙한 회색빛 구름의 주인은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