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2)
강현수는 송하나가 사용하던 B랭크 장검을 탐식의 검에게 먹이로 주려다 멈칫하고는 투황에게 넘겼다.
“혹시 모르니까 야수왕의 장갑에 마력을 보내 봐.”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야수왕의 장갑에 마력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번 직접 잡아 봐.”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송하나의 것이었던 B랭크 장검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거 역시 성장형이 아닌 것 같은데?”
투황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다른 방법도 다양하게 시도해 보자.”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야수왕의 장갑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봤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골치 아프네.’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회귀 전 투황은 분명히 EX랭크 야수왕의 장갑을 주력 무기로 사용했다.
그 말은 야수왕의 장갑이 성장형 아이템이고 투황이 스스로의 힘으로 B랭크였던 야수왕의 장갑을 EX랭크로 성장시켰다는 뜻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성장시키는 거야?’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성장 방법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계속 노력해 보자.”
“알았어.”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긴 귀를 축 늘어트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뭐, 언젠가는 찾을 수 있겠지.’
수호의 반지도 성장 방법을 못 찾아 한참 골치를 썩였지만 결국 찾아냈다.
야수왕의 장갑도 마찬가지의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강현수는 송하나가 사용하던 B랭크 장검을 탐식의 검에게 먹이로 던져 줬고.
투황은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봤다.
‘그보다 슬슬 약속을 이행해야지.’
받아먹은 게 있으니 밥값은 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화끈하게 말이다.
* * *
꽈아아아앙!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에서 커다란 폭발이 터져 나왔다.
“쫓아!”
분노한 카발길드원들이 습격자들을 추격했다.
하지만 습격자의 숫자는 전처럼 소수가 아니었다.
무려 1백 명이 넘는 인원이 기습을 했다.
숫자가 많은 만큼 실력이 떨어졌기에 추격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도주하던 적이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재빨리 뒤따랐는데.
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다.
결국 두 번째 습격은 공격만 받다가 끝났다.
그런데 세 번째 습격에서도.
네 번째 습격에서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분명히 적에게 협조하는 첩자가 있다. 그놈들을 솎아 내!”
카발길드가 대도시 다이온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도 적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조사를 한답시고 죄 없는 이들을 체포한 꼴이 되었기에 민심만 악화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발길드는 성문을 완전 봉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습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오히려 민심만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냥도 못 하게 해, 습격도 못 막아, 죄 없는 이들을 잡아가기만 해, 성문 봉쇄로 상인들 출입도 막아.
당연히 그동안 쌓았던 좋은 이미지가 희석되고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만 늘어 갈 수밖에 없었다.
* * *
‘이놈들 지독하네.’
계속해서 도발을 하는데도 결국 다이온 성벽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강현수는 다시금 소환수들을 소환해 카발길드가 있는 다이온으로 보냈다.
다이온은 대도시다.
당연히 카발길드원들이 모든 성벽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스킬의 도움을 받으면 감시는 할 수 있었다.
성벽을 넘는 순간 감시에 걸리고 당연히 카발길드의 랭커들이 출동한다.
‘하지만 소환수는 인간이 아니지.’
강현수가 대도시 다이온 내부로 소환수들을 침입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지하 수로였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
작은 시골 마을 수준이라면 모르지만 다이온 같은 대도시의 경우 우물로는 식수조차 충족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필수적으로 강과 연결된 지하 수로를 뚫어 놓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지하 수로를 통과할 수 없지.’
지하 수로는 엄청나게 길다.
또 물로 가득 차 있다.
제아무리 체력 스텟이 높은 플레이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숨을 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대도시 다이온의 지하 수로는 고레벨 플레이어라도 익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길다.
하지만.
‘소환수에게는 상관없지.’
소환수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
당연히 호흡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은 제발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내일이 도왕이 도착하기로 예정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도왕 경위강이 나와 거래를 할 리가 없지.’
멸마창 진구평이 강현수와 거래를 한 이유는?
큰 공을 세울 만한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왕 경위강은 다르다.
굳이 강현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카발길드를 박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 정치적인 입지도 탄탄한 상태.
그러니 굳이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강현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조금 깊숙이 찔러 보자.’
그럼 뭔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다.
* * *
좌아아악!
지하 수로를 빠져나온 소환수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이미 반쯤 박살이 나서 폐건물 같아 보이던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커다란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사방에서 카발길드원들이 달려들었지만.
소환수들은 도주하거나 소환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몸을 피했다.
특히 검귀와 카발 1~4호의 경우.
서걱! 좌악!
자신에게 덤벼드는 카발길드원들을 학살하며 전투를 이어 나갔다.
‘이제 슬슬 빠질 때네.’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랭커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수가 검귀와 카발 1~4호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검귀와 카발 1~4호가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여기까지는 피해 규모가 좀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패턴이 똑같았다.
변화는.
카발 3호가 성벽에 도착한 후에 나타났다.
덥석!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플레이어 하나가 카발 3호의 다리를 움켜쥔 것이다.
콰직!
카발 3호의 다리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으스러졌다.
콰콰콰콰!
카발 3호가 오러를 뿜어내며 반격을 가했다.
탁!
오러를 머금은 검이 상대의 맨손에 붙잡혔다.
퍼석!
그리고 순식간에 박살 나 버렸다.
‘이놈은 뭐야?’
강현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카발 3호는 랭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환수다.
진짜 랭커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저렇게 손쉽게 제압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카발 3호가 다리를 포기하고 도주했다.
타악!
적이 카발 3호의 뒤를 추격했다.
‘일부러 도망치게 내버려 둔 거야.’
함정을 파고 있다면 거기까지 안내해 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저 정도면 화염의 기사 제이미랑 비슷한 수준인 거 같은데.’
어쩌면 화염의 기사 제이미보다 더 강할 수도 있었다.
‘다른 쪽도 비슷하네.’
카발 1호가 양팔을 잃고 도주 중이었다.
카발 2와 4호 역시 큰 부상을 당하고 도주 중이다.
카발 4호는 화염의 기사 제이미에게 당했지만 1호와 2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게 당했다.
‘역시 숨기고 있던 힘이 있었어.’
그리고 그 힘은 강현수의 예상보다 강력했다.
‘진구평이 감당할 수 있으려나?’
멸마창 진구평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기준으로 파 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화염의 기사 제이미급 강자가 셋.
거기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카발길드의 정예들까지 우르르 이끌고 오고 있다.
‘이미 중화길드의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럼에도 소환수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건?
중화길드의 함정을 깨부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힘들겠는데.’
멸마창 진구평으로서는 절대 감당할 수가 없었다.
‘뭐,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강현수가 약속한 건 카발길드의 정예를 다이온 성벽 밖으로 유인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추가 대가를 받고 도와줄 수도 있지만.’
강현수가 돕는다고 해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후불로 받기로 한 아이템부터 좀 챙겨야겠네.’
강현수가 검귀의 소환을 해제한 후 다시 소환해 멸마창 진구평에게 보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이끄는 카발길드와 멸마창 진구평이 이끄는 중화길드가 충돌하기 전에 수금을 완료해야 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약속한 보수를 내놔라.”
검귀에 말에 멸마창 진구평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카발길드의 정예들과 함께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 주지.”
멸마창 진구평은 쿨하게 A랭크 아이템 15개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우리를 도와줘야겠어.”
“대가는?”
“네놈들이 그렇게 원하던 S랭크 아이템을 주마. 그것도 두 개나. 일단 이건 선불이다.”
멸마창 진구평이 그 말과 함께 커다란 도끼 하나를 내밀었다.
‘울부짖는 폭풍.’
강현수도 알고 있는 S랭크 아이템이었다.
비주류이기는 하지만 분명 S랭크 아이템이 맞았다.
“좋다.”
검귀가 그 말과 함께 S랭크 아이템 울부짖는 폭풍을 받아 들었다.
“그럼 일단 선두에서 적들을 막아.”
그리고 멸마창 진구평이 말을 하는 도중에.
사아아악!
증발하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
멸마창 진구평이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카발길드원들을 유인하던 놈들이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멸마창 진구평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이 자식들이!”
먹튀.
도움을 주기로 하고 S랭크 아이템을 받아 놓고 그대로 튀어 버린 것이다.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카발길드와의 정면 승부.
확실한 승리를 장담한 이유는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도움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다.
한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어쩔 수 없지. 우리 힘만으로 해결한다.”
어차피 준비한 계획이 있다.
또 그간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게릴라로 카발길드의 힘이 엄청나게 깎여 나갔다.
그걸 감안한다면?
계획만 성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미안.’
강현수가 감시용으로 배치해 놓은 소환수의 시선으로 길길이 날뛰는 멸마창 진구평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짧은 사과를 했다.
‘그런데 네 함정에 빠져 주기에는 속이 너무 훤히 보여서 말이야.’
그간 절대 줄 수 없다고 버티던 S랭크 아이템을 선뜻 제공했다.
그리고 후불로 하나 더 준다고 한다.
‘절대 순순히 줄 놈이 아닌데 이런 짓을 하니까 너무 수상하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카발길드를 박살 내고 보수로 준 A랭크 아이템과 S랭크 아이템을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중화길드는 절대 상식적인 길드가 아니다.
‘아마 내 소환수들을 카발길드와 공멸시킬 생각이었겠지.’
선두에 서 달라고 한 걸 보면 확실했다.
운 좋게 소환수들이 살아남는다면?
그걸 절대 가만히 두고 볼 진구평이 아니다.
‘카발길드를 정리하고 곧바로 소환수들을 공격해 그간 본 손해를 모두 만회하려고 했겠지.’
뻔할 뻔 자였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대놓고 수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강현수도 멸마창 진구평을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면 속아 주기도 힘들었다.
저런 놈을 위해 막대한 스텟을 들여 만들어 낸 소환수들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멸마창 진구평이랑 중화길드 정예들이라면 충분히 좋은 재료가 되겠지.’
카발길드가 대승을 거두더라도 강현수는 충분히 얻을 게 있었다.
‘도왕 경위강이 복귀한 뒤에는 후방에서 카발길드를 공격해 주면 되는 거고.’
중화길드의 힘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어쩌면 도왕 경위강이랑 거래 트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시점에 멸마창 진구평을 ‘손절’ 한 건.
참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