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56화 (56/365)

어부지리

‘생각보다 손쉽게 끝났어.’

송하나와 투황 모두 수락할 것을 확신했다.

왜?

미래 예지를 통해 자신과 함께하는 송하나와 투황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빨리 결정할 줄은 몰랐다.

특히 송하나는 몰라도 투황의 경우는 말이다.

‘말해 주지 않은 페널티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지휘관으로 임명된 플레이어는 강현수에 대한 충성심이 증가한다.

만약 그 페널티를 말했다면?

송하나는 몰라도 투황은 결정을 뒤집었을 수도 있다.

‘괜히 미안하네.’

송하나와 투황은 강현수를 믿었다.

그렇기에 강현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이렇게 쉽게 강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오히려 끊임없이 의심하며 강현수에게 온갖 제약을 다 걸었을 확률이 높았다.

방법은 많았다.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도 있고 신념의 서약을 맺는 방법도 있지.’

둘 모두 고랭크 아이템이라 무척 귀하기는 하지만.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쯤 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강현수는 송하나와 투황의 믿음을 이용했다.

인간불신.

강현수도 순수하게 송하나와 투황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회귀 전의 뼈아픈 배신의 기억이 그 결정을 막았다.

그 누구보다도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있기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편하네.’

송하나와 투황이 지휘관 임명 스킬을 받아들였다.

이제 이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송하나와 투황을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했던 강현수다.

그건 강현수의 트라우마이자 회귀 전 깊게 틀어박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다.

그렇기에 송하나와 투황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된 지금.

강현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다.

‘미래를 바꾼다.’

송하나와 투황.

두 사람 모두 회귀 전 마왕군과의 싸움에서 사망했다.

하나 이번에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죽더라도 강현수가 다시 되살릴 것이다.

죽을 운명을 비틀어 삶으로 인도한다.

그게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였다.

* * *

카발길드가 중화길드의 모든 사냥터를 점령했다.

그리고 중화길드의 마크를 단 플레이어가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척살했다.

“이러다가 중화길드가 망하는 거 아니야?”

“웃기는 소리. 그저 잠깐 밀리는 것뿐이야. 중화길드의 길드장님과 주력이 돌아오면 모든 게 끝난다고.”

루자베누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플레이어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전쟁과 사냥터 봉쇄는 큰 혼란을 야기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우리는 공격하지 않지?”

“그러게 말이야.”

사냥터에서 복귀한 플레이어들은 사냥을 나갔던 중화길드 플레이어들이 모두 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다 희생당한 이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0~200레벨대의 저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사냥터는 카발길드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지역이었다.

한데 카발길드의 공격을 받아 전멸했다.

그러나 중화길드 소속이 아닌 중소 길드나 파티 규모의 플레이어들은?

단 한 명도 공격받지 않았다.

“카발길드가 천사표이기는 하지. 첫 전투에서 중화길드 편을 들어 출전했던 중소 길드들을 모두 살려 줬잖아.”

“하긴 중화길드 놈들은 우리를 화살받이로 만들고 도망쳤지.”

“차라리 카발길드 편을 드는 게 이득 아닐까?”

“쉿! 조용히 해. 그 말이 중화길드 귀에 들어가면 끝장이라고.”

“그렇기는 하지.”

강현수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지.’

루자베누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첫 전투 이후.

카발길드는 루자베누 밖으로 나온 중화길드원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하지만 중소 길드 소속이나 파티 단위 플레이어들의 사냥은 용인했다.

‘분열이 가장 첫 번째 목표겠지.’

그 분열은 벌써 시작되었다.

아니,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이 멍청한 선택을 한 덕분에 더 빠르게 분열이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사냥터 통제는.

‘분열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지.’

중화길드는 사냥을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사냥을 허락받은 중소 길드가 어떻게 보일까?

‘카발길드와 내통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겠지.’

첫 전투에서 시간을 끌다 죽으라고 보낸 희생양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 역시 의심의 씨앗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족의 자부심이니 중화민족의 긍지니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성향이 있다.

그건 아틀란티스 차원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은 그 누구보다 더 단체보다 개인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있다.

지금까지는 중화길드의 이득과 루자베누에 있는 중국인 플레이어들의 이득이 맞아떨어졌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중화길드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길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중화길드는 중소 길드를 전쟁터의 화살 받이로 사용했다.

카발길드가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학살했다면?

살아남은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좋든 싫든 살아남기 위해 중화길드에 전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카발길드와 맞섰던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별다른 피해 없이 살아 돌아왔다.

거기다 사냥도 허용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중화길드와 카발길드가 다시금 전쟁을 벌이면 루자베누에 있는 중소 길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향하기는 하겠지만 싸우는 시늉만 할 확률이 높지.’

중화길드 역시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온전히 믿기 힘들 것이다.

‘가장 큰 장점이 반쯤 날아간 거나 마찬가지야.’

중화길드의 가장 큰 힘은 뭐니 뭐니 해도 엄청난 머릿수였다.

그 머릿수의 비중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보다 중화길드의 영향력 아래 있는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월등히 크다.

한데.

‘어리석은 선택으로 가장 큰 장점을 잃었어. 이러면 곤란한데.’

중화길드가 카발길드를 제거해 줘야 했다.

거의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더라도 어쨌든 승리해야 했다.

한데 지금 상황을 보자면.

승리는커녕 패배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도왕 경위강이 복귀하면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과연 그때까지 중화길드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카발길드는 루자베누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라메파질 왕국에 속해 있는 카발길드가 마이트어 왕국의 영토인 루자베누를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하면 라메파질 왕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발길드 놈들은 그런 걸 따지는 녀석들이 아니지.’

결정적으로.

‘작은 분쟁은 있겠지만 라메파질 왕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아.’

라메파질 왕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로크토 제국이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카발길드는 로크토 제국의 그놈과 한패야.’

로크토 제국에 존재하는 마왕의 하수인.

그놈이 은연중 카발길드의 편을 들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정체를 밝혀 버리고 싶은데.’

수많은 왕국들의 종주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크토 제국.

그런 로크토 제국 권력의 핵심에 마왕의 하수인이 존재한다는 건 인류에서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그 약점 때문에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놈의 정체를 밝히는 건 불가능해.’

아니, 정체를 밝히기는커녕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놈의 정적에게 접근해 약점을 알려 줄 수도 없었다.

‘일단은 카발길드부터.’

마왕의 하수인과 배신자 들.

그들 모두 강현수의 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강현수로서는 쉬이 상대하기 힘든 강적들이다.

그러니 지금은 차분히 힘을 모아야 할 때였다.

자신이 처단할 수 있는 적들부터 차근차근 박살 내야 했다.

* * *

강현수 일행은 평소처럼 태평하게 몬스터를 사냥을 했다.

중간중간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냥 가네.’

강현수 일행이 중화길드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하기 편하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중화길드가 어떻게 나오려나?’

중화길드가 루자베누에 처박혀 강제로 사냥을 금지당한 지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중화길드 입장에서는 엄청난 치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실리적으로 생각하면 중화길드 마크를 제거한 장비를 착용하고 사냥을 하면 그만인데.’

카발길드는 사냥을 하는 플레이어들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대충 보고 지나갔다.

당연히 중화길드 마크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화길드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진다.

특히 그렇게 사냥하다 안면 있는 중소 길드 플레이어를 마주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완전 개망신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첫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검귀의 사망을 제외하면 그리 큰 피해를 입은 건 아니다.

‘정면 대결이 아니라 게릴라라면 충분히 할 만한데.’

이곳은 카발길드의 사냥터가 아닌 중화길드의 사냥터.

당연히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보다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지리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말이야.’

강현수는 중화길드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서 빨리 루자베누에서 뛰쳐나와 게릴라전을 펼쳐 카발길드를 공격해 주기를 바랐다.

왜?

‘그래야 내가 도와주지.’

지금 사냥터에는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쫙 깔려 있다.

대다수는 500~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었지만.

‘분명히 위장한 놈들이 있을 거야.’

위장한 놈들은 700레벨대 플레이어들과 랭커급으로 이루어져 있을 게 확실했다.

왜?

카발길드는 회귀 전에도 비슷한 수법을 쓴 적이 있었으니까.

‘이건 일종의 낚시야.’

500~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풀어 사냥터를 점령한 것은 일종의 미끼다.

그 미끼를 물고 중화길드 소속의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위장하고 있던 카발길드 소속 700레벨대 플레이어들과 랭커들이 일제히 반격을 가할 것이다.

‘단독으로 움직일 수는 없어.’

이런 상황에서 강현수 일행이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를 공격한다면?

바로 포위되어 집중 공격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중화길드가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카발길드를 친다면?

강현수 일행도 얼마든지 날뛸 수 있었다.

‘문제는 중화길드가 카발길드가 던진 미끼를 무느냐 마느냐인데.’

강현수가 알고 있는 중화길드는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길드였다.

즉, 이런 탐스러운 미끼를.

‘절대 피해 갈 놈들이 아니지.’

첫 전투에서 대패해 떨어진 이미지도 회복해야 하고.

자신의 사냥터가 점령당했다는 치욕도 떨쳐 내야 했다.

사실 중화길드가 카발길드의 미끼를 물면?

또다시 대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건 강현수가 끼어들지 않았을 경우다.

‘내가 도움을 주면 충분히 균형의 추를 맞출 수가 있어.’

강현수는 균형의 추를 맞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강현수는 중화길드가 조금이라도 빨리 카발길드가 던진 탐스러운 미끼를 물기 바랐다.

‘도왕이 복귀하기 전에 최대한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에 피해를 누적시켜야 해.’

그렇게 해야지만.

중화길드와 카발길드 양쪽 모두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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