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소크
‘제발 좋다고 해라.’
강현수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송하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송하나가 싫다고 하면?
술 대신 차라도 마시자고 할 참이었다.
애초에 술 이야기를 꺼낸 것부터가 투황을 떼어 내기 위해서였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투황이 자기도 차를 마시겠다며 끼어드는 거였다.
“난 좋아. 사실 아틀란티스 차원에 넘어와서 술을 먹어 본 적이 없거든.”
다행히 송하나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아, 그러네.”
강현수도 투황의 속내를 듣기 위해 마신 것을 제외하면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와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그럼 가자.”
강현수가 송하나와 함께 식당 겸 주점으로 향했다.
‘완전히 술판이구나.’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식당 겸 주점은 완벽한 술판으로 변모해 있었다.
강현수와 송하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송하나는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술을 좋아하나?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같이 마셔야겠네.’
송하나와 강현수의 친분은 상당히 깊다.
튜토리얼부터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했으니, 친분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래도 관리는 해 줘야지.’
또 술이란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종종 송하나와 술을 마시면?
그렇지 않아도 깊은 친분을 더 깊게 만들 수도 있고 송하나의 속마음도 알 수 있었다.
‘괜히 내가 모르는 불만 같은 게 쌓이면 곤란하지.’
강현수는 일단 가볍게 말을 꺼냈다.
요즘 강행군으로 사냥과 대련을 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은지, 스킬 랭크의 성장은 어떤지, 새로 얻은 검은 마음에 드는지 등등.
“사냥과 대련은 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 이곳은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참고 견뎌야지. 스킬 랭크도…….”
송하나가 편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네.’
송하나는 멘탈이 강했다.
또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와 승부욕도 강했다.
‘아틀란티스 차원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타입이지.’
강현수와 송하나는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꿔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강현수가 투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피랑은 어때?”
“내가 주피랑 으르렁거려서 불편하지? 미안해.”
“미안할 건 없지. 단지 궁금해서 그래.”
사실 송하나와 투황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송하나가 은근히 투황에게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비웃는 표정을 보인다든가, 말로 건든다든가.
“그냥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왜?”
“처음에 콧대를 높이고 너를 무시한 것도 그렇고. 항상 너를 함부로 대하잖아. 엄연히 파티장은 너고 무력도 네가 더 높은데. 거기다 대련으로 지도까지 해 주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스승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현수 너는 존대하고 주피는 반말이나 찍찍 갈기고 말이야. 그런 버릇 없는 행동이 어디 있어?”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말투만 까칠할 뿐.
투황은 강현수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언을 해 준 것, 야수왕의 장갑을 사 준 것, 대련을 해 주는 것 등등.
그건 평소 투황이 강현수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또 현수 네가 주피를 너무 싸고도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파티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무기부터 선물했잖아. 주피가 그대로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해?”
‘나 때문이었네.’
강현수는 송하나가 투황에게 시비를 거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싸움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강현수는 투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회귀 전 투황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있기에.
투황의 까칠한 말투가 귀엽기만 했다.
선물을 주면서도 옭아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하나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송하나는 튜토리얼부터 강현수와 함께했다.
반면 투황은 뒤늦게 파티에 합류했다.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공평하게 선물을 하나씩 준 것이지만.
먼저 들어온 파티 선배인 송하나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해.’
원래 세상살이 중 가장 힘든 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미안해.”
“아니,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는 그냥 현수 네가 걱정이 돼서.”
강현수의 사과에 송하나가 적잖이 당황했다.
“난 주피를 계속해서 우리 파티원으로 데리고 있고 싶어. 하지만 주피는 너랑 다르잖아. 언제든지 파티를 떠날 수 있어.”
“그렇기는 하지.”
송하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강현수의 입에서 ‘너랑 다르잖아.’라는 말이 나온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피랑 친해지라는 부탁은 하지 않을게. 사이가 나빠지지만 말아 줘.”
“응, 앞으로는 먼저 자극하지 않을게.”
송하나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단 한 건 해결.’
송하나는 지금까지 강현수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먼저 투황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야.’
두 사람의 사이가 어긋나지 않게 최대한 조율을 해야 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만큼 예민하고 다루기 힘든 것도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살황과 투황을 한 파티에 넣었다.
무난히 성장하면 최상위 랭커가 될 게 확실한 인재.
최상위 랭커들 중에서 살황과 투황은 무려 황의 칭호를 손에 넣은 네임드 플레이어다.
‘둘 중 하나도 놓칠 수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데리고 가야 했다.
강현수 자신을 위해서도.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 * *
“주피, 앞으로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요?”
강현수의 물음에 주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어차피 네가 파티장이잖아.”
“알았어. 앞으로는 편하게 말할게.”
“그래.”
강현수는 다음 날 일단 주피에 대한 말투부터 수정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송하나 입장에서는 걸렸을 수도 있으니까.’
송하나의 불만 사항 중에는 분명히 강현수의 존대도 있었다.
‘이제 불만이 좀 줄어들었겠지?’
강현수가 그렇게 생각하며 송하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뭐지?’
송하나의 표정이 어째 더 뚱해져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 * *
강현수, 송하나, 투황은 다시금 사냥에 열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몬스터 레벨이 너무 낮아.’
강현수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무란 왕국의 수도 굴라였다.
굴라는 무란 왕국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타국의 침략이나 몬스터의 공격에 대한 대비가 좋다.
그것도 모자라서 무란 왕국군이 주기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고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한다.
‘그러니 몬스터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던전이나 필드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마왕군이 이 세상에 흩뿌린 전초병이다.
무란 왕국의 수도 굴라는 플레이어의 성장을 위해 몬스터를 어느 정도 방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레벨 몬스터일 뿐이다.
‘제대로 된 사냥을 위해서는 소도시로 이동해야 해.’
아틀란티스 차원의 국가들은 전 차원에 퍼져 있는 몬스터를 모두 소탕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대도시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만 소탕할 뿐.
소도시의 경우 성벽에 기대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 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소도시로 가자.’
그래야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고 더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
‘투황이 살짝 걸리기는 하는데, 괜찮으려나?’
시골 출신인 투황이 수도 굴라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수도 굴라를 떠나는 걸 꺼려 할 수도 있었다.
‘한번 꼬셔 보자.’
201~300레벨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당분간은 여유가 있을 터였다.
‘어차피 301~400레벨 대회에 참가하려면 레벨을 올려야 해.’
레벨을 빠르게 올리기에는 수도보다 지방의 소도시가 유리했다.
그날 저녁.
강현수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일행을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야?”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송하나와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
“사냥터를 소도시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긴, 여기는 몬스터 수도 적고 레벨도 낮으니까. 난 좋아.”
송하나가 가장 먼저 찬성표를 던졌다.
“투황 너는?”
강현수의 물음에 투황이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좋은 사냥터를 알고 있나? 소도시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오히려 몬스터 레벨이 너무 높아서 사냥 속도가 더 떨어질 확률도 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조사해 놓은 곳이 있으니까.”
강현수는 일행이 광렙하기 딱 좋은 사냥터를 알고 있었다.
“그럼 나도 찬성이다. 그런데 혹시 너무 멀리 가는 건 아니겠지? 내 꿈은 무란 왕국의 모든 무투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다. 301~400레벨 대회 경기는 1년에 네 번밖에 열리지 않는다. 한번 기회를 놓치면 석 달을 기다려야 해.”
“완전히 오지로 갈 생각은 아니야. 공간 이동 게이트가 있는 대도시와 3일 정도 거리에 있는 소도시로 이동할 생각이야. 그러니까 301~400레벨 대회 참가를 놓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소도시 중 외진 곳은 공간 이동 게이트가 있는 대도시에서 도보로 몇 달 동안 이동해야 하는 곳도 존재했다.
‘내가 그런 곳으로 갈 리가 없잖아.’
투황의 무투 대회 참가는 강현수에게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베팅을 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그럼 그렇게 하겠다.”
결국 투황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내일 바로 이동하자. 오늘 밤 간단하게 짐 챙겨 놔.”
“알았어.”
“그렇게 하지.”
만장일치로 강현수 일행의 소도시 이동이 결정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강현수, 송하나, 투황이 짐을 챙겨 공간 이동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나도 궁금하다.”
송하나와 투황의 질문에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
“소크라는 소도시야.”
“소크?”
송하나는 처음 들어 본다는 표정이었다.
“거기가 어딘가?”
그건 투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무란 왕국 최북단에 위치한 소도시야.”
“최북단이라면, 엄청 추운 곳 아닌가?”
투황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그렇다고 들었어.”
강현수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들은 게 아니라 직접 가 본 적이 있었지.’
엄청나게 춥고 척박한 땅이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도 사냥을 꺼리는 곳이지.’
그 덕에 몬스터가 넘쳐흐를 정도로 풍족했다.
‘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일행이 광렙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냥터다.
또한.
‘거기서 꼭 얻어야 할 게 있지.’
소도시 소크.
춥고 척박하기에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
그 덕분에.
‘그게 무려 앞으로 3년 후에나 발견되지.’
문제는 강현수도 그것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점이다.
‘얼음 여왕이 사냥하다가 얻었다고 했으니까.’
강현수도 부지런히 사냥하다 보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크스로 세 명이요.”
강현수가 공간 이동 게이트 담당자에게 돈을 건네며 목적지를 외쳤다.
일단 북부의 대도시인 모크스로 가야 최북단 소도시 소크로 갈 수 있었다.
“속이 울렁거릴 수 있습니다.”
짧은 경고와 함께.
화악!
밝은 빛무리가 강현수, 송하나, 투황의 몸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