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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황 (4)

‘위험하다.’

군인인 이상 300레벨이 넘기는 하겠지만.

투황의 전투 센스라면 그 정도 레벨 차이는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었다.

“술도 적당히 마신 것 같은데 그만 가죠.”

강현수가 투황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으득!

투황이 어금니를 악물고 분노를 참아 냈다.

“큭큭큭, 역시 토인족답게 꼬리를 잘 마는구나.”

그 모습을 본 호인족 군인이 다시금 투황을 조롱했다.

투황의 분노가 다시 폭발하려는 순간.

강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이, 머저리, 그럼 네가 먼저 덤벼 봐.”

“뭐?”

“군복을 방패처럼 휘두르고 있으면서 입으로만 나불거리지 말고 먼저 덤벼 보라고. 왜, 겁이 나서 못 덤비겠냐?”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해! 겁이 나긴 누가 겁이 난다는 말이냐!”

“그럼 덤벼.”

강현수의 말에 호인족 군인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나 그뿐이었다.

“겁쟁이답게 꼬리를 잘 마네.”

강현수의 말에 호인족 군인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건방진 놈!”

호인족 군인이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 들고 강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퍼억!

투황의 주먹이 호인족 군인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커억!”

털썩!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호인족 군인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놈이?”

“죽여 버려!”

흥분한 두 명의 수인족 군인이 강현수와 투황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퍼억! 퍼억!

그 둘 역시 순식간에 투황의 주먹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으으으으.”

“끄으으응.”

군인 셋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끙끙거렸다.

‘저놈들, 뭐가 저렇게 약해? 아니, 투황이 강한 건가?’

움직임을 보면 레벨이 낮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상당히 부족해 보였다.

‘뭐,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기도 했으니까.’

투황은 맨손 격투 전문이다.

반면 저들은 무기술을 주로 다루는지 주먹질이 무척이나 어설펐다.

“이 자식들이, 감히 기습으로 무란 왕국의 정규군을 폭행해!”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던 호인족 군인이 분노한 눈빛으로 강현수와 투황을 노려봤다.

“어?”

투황이 살짝 당황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투황은 무란 왕국군에 입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미래의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무란 왕국군을 두들겨 팼으니.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토인족의 이미지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또 주변의 눈초리도 결코 호의적이지가 않았다.

상대가 먼저 덤벼들었기에 법적으로 투황은 죄가 없다.

하나 법이란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많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 투황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면?

오히려 투황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당황한 투황을 대신해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

“기습은 개뿔. 네놈들이 먼저 덤벼들었잖아.”

“난 너에게 덤벼든 것이다! 그 와중에 저놈이 기습을 한 것이고!”

“패배한 주제에 왜 그렇게 혀가 길어? 그럼 저 둘은 뭔데?”

“어쨌든 난 기습에 당한 것이다!”

호인족 군인이 억지를 부렸다.

“그럼 정정당당하게 다시 한판 붙어 볼래?”

강현수의 말에 호인족 군인이 입을 다물었다.

말은 기습이니 어쩌니 했지만.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발언이었을 뿐이다.

호인족 군인은 투황과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기만 있었어도.”

호인족 군인이 무기 핑계를 대며 구시렁거렸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그보다 너희 이제 어떻게 하냐?”

“뭐가 말이냐?”

“그렇게 무시하던 토인족 하나에게 셋이 덤벼서 깨졌는데,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 나겠다.”

강현수의 말에 호인족 군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끙끙거리며 일어나던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망신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입단속 잘해라. 가시죠.”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투황의 어깨를 잡고 식당 밖으로 향했다.

“괜찮을까?”

투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당연히 괜찮죠. 망신당하기 싫어서라도 필사적으로 숨길 겁니다. 애초에 저놈들이 먼저 덤벼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소문은 나겠지. 내가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투황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아예 소문이 안 날 수는 없겠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이번 일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군부 내부에서 투황을 안 좋게 보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나요?”

“뭐, 그렇기는 했지.”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뛰어난 실력을 입증했음에도 계속 무시당하고 조롱받기만 했다.

그간은 계속 참았는데 이번에는 시원하게 되갚아 줬다.

당연히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네?”

“나 대신 나서 줘서 말이야.”

“저 때문에 괜히 일이 커졌는데요?”

“그래도 고마워. 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줬어. 그리고 네 덕분에 속 시원하게 그놈들을 패 줄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

“그럼 우리 파티에 들어와 주세요.”

“고민해 볼게.”

“네?”

투황의 대답에 강현수가 화들짝 놀랐다.

그저 한번 던진 말일 뿐이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다.

한데 고민해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정말이시죠?”

“그래.”

“하하하, 저는 붉은 여우 여관 305호에 묵고 있습니다. 절 만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

“붉은 여우 여관? 거기는 최상급 여관이잖아. 돈이 많나 보네.”

“덕분에 두둑하게 벌었으니까요.”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 근처 여관에 묵고 있으니까 데려다줄게 가자.”

“굴라 출신 아니셨나요?”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현수는 타 차원의 인간이자 테라 왕국에서 얼마 전에 무란 왕국으로 넘어온 이방인이다.

그에 반해 투황은 초창기부터 계속해서 무란 왕국의 수도인 굴라에서 활동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굴라 출신인 줄 알았다.

한데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니?

“난 루피 출신이야. 굴라로 올라온 건 무투 대회에 참가해 이름을 날리고 무란 왕국군에 입대하기 위해서고.”

“아!”

루피는 토인족들의 고향으로, 인구의 대다수가 토인족이다.

“가자. 밤길은 위험하니까 내가 보호해 줄게.”

투황의 말에 강현수는 살짝 당황했다.

‘날 보호해 준다고?’

그러고 보니 투황이 식당에서 주먹을 쓴 것도 강현수가 공격당하는 상황에서였다.

‘혹시 날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강현수가 투황에게 보여 준 모습은 결승전을 구경하고 배당금을 타 가는 것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자기한테 업혀 가려는 사람인 줄 알았나 보네.’

강현수가 투황을 파티로 끌어들여 그 덕을 보려고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강현수의 제의를 고민해 보겠다고 하다니.

‘아직 어려서 그런지 호구력도 넘치는구나.’

파티는 길드에 비해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막말로 오늘 만나서 사냥하고 내일 헤어지는 경우도 흔했다.

‘고민해 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분명히 여관으로 찾아올 거야.’

투황은 자신이 강현수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냥을 통해 그 신세를 갚으려 할 게 분명했다.

‘뭐, 그 후 적당히 신세를 갚았다고 생각하면 파티를 떠날 생각이겠지.’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닐 거다.’

투황에게 자신과 송하나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강현수만 해도 현재의 투황보다 강했다.

송하나도 강현수의 도움으로 온갖 업적을 주워 먹어 엄청나게 강해졌다.

‘송하나가 투황보다 강할 확률이 더 높아.’

버스를 태워 주러 갔는데 자신이 버스를 탔다는 걸 알게 되면?

‘당황하겠지.’

또 놀랄 것이다.

강현수와 송하나가 투황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싸울 동료로서 영입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좋아.’

강현수는 투황이 오기만 하면 두 번 다시 도망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릴 결심을 굳혔다.

“무란 왕국의 밤거리는 위험해.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혼자 다니지 말라고. 알겠지? 저번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강현수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도 투황은 투머치토커의 기질을 여지없이 발휘하며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주 내용은 무란 왕국의 밤거리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아틀란티스 차원의 치안은 지구 그중에서도 한국의 치안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를 통틀어 치안력이 가장 좋은 나라가 한국이다.

그에 반해 아틀란티스 차원의 치안력은 최악.

지구의 중세 시대보다 못할 정도였다.

‘밤이 되면 온갖 범죄가 난무하지.’

그렇기에 아틀란티스 차원의 일반인들은 해가 지면 외출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건 일반인들 기준이지.’

플레이어들의 경우는 밤을 딱히 꺼릴 필요가 없었다.

평범한 인간과 차원을 달리하는 신체 능력과 스킬을 가진 초인이 바로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사삭!

‘이건 경우가 다르지.’

어둠 속에서 일단의 무리가 빠른 속도로 강현수와 투황을 포위했다.

움직임의 속도 자체가 절대 일반인 수준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다. 누구지?’

강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를 노리는 건가? 아니면 투황?’

강현수는 무란 왕국으로 온 이후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사냥만 하고 여관방에 처박혀 있었을 뿐이다.

‘투황을 노리는 건가? 그게 아니면 아까 그 군인들인가?’

상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런 건 잠시 후에 알 수 있겠지. 이번 기회에 점수나 따자.’

투황이 개인적으로 원한을 맺고 있는 이들이든 아까 그 군인들이든 상관없었다.

‘이번에 확실하게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자.’

강현수가 진짜 실력을 선보이면?

투황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누구냐!”

투황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늦은 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게 강도 말고 또 있겠냐? 둘 다 가진 거 다 내놔.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마.”

‘강도?’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플레이어들은 몸값이 비싸다.

단순히 사냥만 해도 꽤 큰돈을 벌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플레이어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단체로 모여 강도 짓을 한다?

‘수지 타산이 안 맞잖아.’

무란 왕국의 법은 꽤 엄하다.

강도 짓을 하다 발각당하면 최소한 감옥에서 10년은 썩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그만한 리스크를 지고 강도 짓을 하려면?

목표 금액이 최소한 수십만 골드 수준은 되어야 한다.

‘수십만 골드.’

강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배당금.’

무투장 직원이 상당히 큰 목소리로 강현수가 큰돈을 벌었다는 걸 떠들었다.

‘무투장 직원과 한패? 아니면 단지 그때 무투장 직원의 말을 듣고 나를 노린 건가?’

어느 쪽이든 상대가 강도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자세한 정보는 직접 잡아서 물어보는 게 낫겠지.’

강현수는 강도들을 감옥에 처넣을 생각이 없었다.

모조리 죽이고 쓸 만하다 싶으면 소환수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강도 따위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투황이 분노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강현수도 전투를 준비했다.

그때였다.

“내가 포위망을 뚫겠다. 그 틈에 전력으로 도망쳐라. 추격하는 놈들은 내가 막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투황이 작은 목소리로 강현수에게 말했다.

‘철저히 비전투 인원 취급이네.’

투황 입장에서는 약자인 강현수를 도망치게 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강현수를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강현수의 대답에 투황이 얼굴을 찌푸렸다.

“네 실력을 과신하지 마. 전투가 벌어지면 난 너를 지켜 줄 여력이 없어.”

투황의 말에 강현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타악!

앞으로 튀어나가 검을 휘둘렀다.

좌아악!

은은한 달빛 아래 붉은 피 분수가 흩뿌려지며 밤하늘을 수놓았고.

“아아악!”

“커억!”

수많은 적들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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