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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황 (3)

“요리가 정말 맛있군요. 술이라도 한잔 곁들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강현수가 은근슬쩍 투황에게 술을 권했다.

‘마음을 여는 데는 술이 최고지.’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면 자신의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게 되는 법이다.

“술? 술은 좀…….”

투황이 머뭇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술을 드시기는 너무 어린 나이시죠. 쓴 술 대신 달콤한 주스를 주문해 드리겠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리긴 뭐가 어려! 난 성인이야! 나도 주스 대신 술 줘!”

동안은 평소 투황의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토인족이라는 종족에 대한 편견도 있지만 어려 보이는 얼굴 또한 자신의 실력이 저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현수가 독한 술을 주문했다.

“드시죠.”

그리고 투황에게 술을 따라줬다.

“술은 원샷인 거 아시죠?”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술잔을 말끔하게 비웠다.

그런 강현수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던 투황이 눈을 질끈 감고 술을 원샷했다.

강현수는 투황의 말을 들어 주며 계속 술을 권했고, 투황은 투머치토커의 기질을 100% 발휘해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면서 술잔을 비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강현수의 얼굴과 투황의 얼굴이 둘 다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수인들이 우리 토인족을 왜 전사로 인정하지 않는지 나도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야. 대부분의 동족들은 겁이 많거든. 또 싸움을 싫어해. 어떻게 보면 배려해 주는 걸 수도 있지. 과거 테라 왕국과의 전쟁 중에 국토의 절반이 불타는 상황에서도 토인족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후방 보급 임무만 시켰으니까.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는 거 아닌가? 성과를 냈으면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 줘야 하는 거잖아? 호인족은 다 용맹하고 토인족은 다 겁쟁이는 아니잖아? 겁쟁이 호인족도 있고 용맹한 토인족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왜 그걸 이해해 주지 않는 거야. 내 꿈은 무란 왕국군에 입대하는 거야. 군인이 돼서 직접 전장에 나가 토인족도 용맹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거라고. 알겠나?”

술을 마신 투황은 말이 정말 정말 많았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하지만 그 덕에 강현수가 모르던 투황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길드나 파티 가입을 거부한 건 왕국군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랬던 거군.’

길드도 종류가 다양하다.

무란 왕국인과 지구인이 혼합된 형태도 있고 무란 왕국인만으로 이루어진 길드도 있으며 반대로 지구인으로만 이루어진 길드도 있다.

지구인들은 토인족에 대한 편견이 적은 만큼 투황의 실력이라면 길드 가입은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꿈이 있으니까 거절한 거야.’

강현수가 말을 걸었을 때 단칼에 거절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서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길드나 파티 가입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투황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지.’

회귀 전 투황은 단 한 번도 무란 왕국군에 소속된 적이 없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토인족은 입대할 수 없다는 무란 왕국군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무란 왕국의 건국 전쟁 당시 토인족들이 대패한 전투에서 단체로 도주한 적이 있었지.’

호인족, 낭인족, 묘인족, 우인족, 서인족, 마인족 등등 수많은 수인족들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도주한 것은 토인족들뿐이었다.

그 이후 수인들은 토인족을 전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토인족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기도 하겠지.’

어차피 패배가 확정된 전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죽는 것보다는 도주하여 전력을 보존하는 게, 훗날을 도모하는 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 나은 판단이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적인 판단이 이성적인 판단을 억누를 때가 있는 법이지.’

무란 왕국의 건국 전쟁 당시의 상황이 그랬다.

그 사건 이후 수인족들의 수뇌부는 토인족이 전사라는 직책에 맞지 않는 종족이라고 판단했다.

아군을 버리고 도주하는 이들을 전장에 보낼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아마 그때 도주한 토인족들이 다시 전장에 보내 달라고 외쳤다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도주한 토인족들은 전장 이탈을 환영했다.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한 전장을 겪었으니 PTSD를 겪었어도 이상할 게 없지.’

그러나 그 선택 이후.

토인족이 겁쟁이 종족이라는 이미지가 깊게 박혀 버렸다.

또 훗날 건국된 무란 왕국에서 토인족은 군에 입대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생겨났다.

그 불문율 때문에 투황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선보여도 입대를 허락받을 수 없었다.

‘어차피 투황은 꿈을 포기하게 된다.’

그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투황은 무란 왕국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투황이 황의 칭호를 얻고 맹위를 떨치자 무란 왕국군에서 불문율을 깨고 공식적으로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나 투황은 거절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이해는 갔다.

들어가고 싶어서 사정사정할 때는 불문율이니 뭐니 하고 거절했다.

그 후 완전히 포기를 하고 미련을 버렸더니 불문율은 공식 규율이 아니라며 군에 들어오라고 한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안 가지.’

또 그 당시 투황은 이미 엄청난 활약을 펼쳐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산산이 부순 후였다.

‘아마 투황이 불리한 전장에서 홀로 적과 맞서 싸우며 전사한 이유도 자신이 깬 편견이 진정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겠지.’

강현수는 투황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또 꿈과 희망에 가득 차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현재 투황의 모습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포기하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러면 투황은 강현수에게 큰 반감을 가질 것이다.

결국 강현수의 입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네, 그 꿈 꼭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뭐야, 꼭 이루셨으면 좋겠다면서 표정이 왜 그래? 절대 안 이루어질 것 같다는 표정이잖아.”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투황이 강현수를 노려봤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강현수가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입에 발린 말을 하며 투황을 응원해 줄 수도 있다.

하나 그건 현실적으로 투황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래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은 법이지.’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쁘더라도 강현수에게 큰 반감을 가지더라도.

먼 훗날 다시금 강현수를 떠올리면?

‘그때 나에게 쓴소리를 해 준 사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준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결심을 굳힌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투황이 사나운 표정으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동안에 토끼 귀를 파닥거리면서 말을 했기에 상당히 귀여웠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이유야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무란 왕국군의 불문율. 무투 대회 4회 연속 무패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지만…… 무란 왕국군의 입장이 달라졌습니까?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까? 4회 연속 무패 우승이 아니라 5회, 6회 연속 무패 우승을 한다고 다른 이들의 시선이 바뀔까요?”

“그래서 포기하라고?”

“포기라기보다는 무란 왕국군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무란 왕국인과 지구인의 혼합 길드는 무란 왕국인들의 반발이 커서 입단이 불가능하겠지만…… 지구인들이 만든 길드는 입단이 가능하시지 않습니까?”

“그놈들도 똑같아. 내가 토인족이라는 이유로 보수를 형편없이 깎았다고.”

‘그런 일이 있었나?’

투황이 왜 훗날 길드와 무란 왕국군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몸값을 후려쳤구만.’

어차피 투황이 소속될 수 있는 곳은 지구인들의 길드밖에 없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몸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핑곗거리도 많았다.

지구인들만 소속되어 있는 곳이라서 수인을 받으려면 그만큼 몸값을 깎아야 한다.

토인족을 받으면 나중에 다른 수인을 받기 힘드니 몸값을 깎아야 한다.

토인족이 겁쟁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몸값을 깎아야겠다.

아마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투황의 몸값을 후려쳤을 것이다.

‘보는 눈이 없는 멍청이들이 사고를 제대로 쳤구나.’

무란 왕국군은 투황을 무시했고, 길드는 몸값을 후려쳤으니.

‘독불장군이 될 만했네.’

훗날 자신에게 다가와 알랑방귀를 뀌는 무란 왕국군과 길드를 투황이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혐오스러웠겠지.’

강직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진 투황의 입장에서 사람을 무시하고 후려치던 이들의 변화된 모습은 가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럼 정당한 대접을 해 준다면 파티에 들어갈 생각이 있나요?”

강현수의 물음에 투황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나한테 파티에 들어오라고 했었지?”

“네.”

“하하하, 그래서 이런 소리를 했구나.”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뭐?”

“저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꼭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야만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파티나 길드에 들어가서 좋은 동료를 만나 잘 성장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방식으로도 토인족에 대한 편견은 얼마든지 깰 수 있습니다.”

“…….”

투황이 입을 다물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겁쟁이 주제에 왕국군은 무슨!”

“토인족 따위에게 내 등 뒤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항상 전우들을 버리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토인족 따위는 믿을 수 없지.”

무란 왕국군의 군복을 입은 수인 셋이 목소리를 높여 토인족을 비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리고 뭐? 겁쟁이 호인족도 있을 수 있어? 그런 호인족은 존재하지 않아!”

호인족 군인은 투황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식당이 떠나가라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식이!”

분노한 투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맞다! 옳은 말을 했어!”

“겁쟁이 토인족은 있어도 겁쟁이 호인족은 없지!”

“어디 용맹한 호인족과 겁쟁이 토인족을 비교해!”

“토인족은 따위는 전사가 아니지!”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호인족 군인의 말에 호응해 목소리를 높였다.

‘수인들은 청각이 뛰어나지.’

아마 식당에 있는 모든 수인족이 강현수와 투황이 나눈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불만이 쌓였겠군.’

과거의 역사로 인해 토인족에 대한 편견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현수와 투황에게 뭐라고 할 용기까지는 없어 속으로 끙끙거렸으리라.

그러는 와중에 무란 왕국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니.

‘불만이 폭발한 거지.’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눈빛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역시 무란 왕국은 투황이 날개를 펼칠 만한 곳이 아니야.’

투황이 무란 왕국이 아닌 타국에서 활동했다면?

진작 이름을 떨쳤으리라.

‘실제로 투황이 황의 칭호를 손에 넣은 것도 타국에서의 활약 덕분이고.’

“이익!”

투황은 분노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차마 무란 왕국의 군인들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란 왕국의 정규군을 공격한다는 건.

무란 왕국에 반기를 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저쪽에서 먼저 덤벼들면 명분이 생기겠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저놈들은 군인 신분이니.’

한국이나 무란 왕국이나 군인들에게 적용되는 군법은 비슷했다.

“마음 같아서는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지만, 민간인과 싸울 수 없다는 규칙이 없으니 참는다. 그러니 썩 꺼져.”

호인족 군인의 말에 투황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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