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강화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상당히 빡빡했다.
교관들은 훈련병들을 가차 없이 굴렸다.
말을 듣지 않거나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들은 존재했다.
바로 특별한 고유 스킬을 가졌거나 남다른 전투 센스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이었다.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교관은 그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웠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십 명이 뭉쳐서 생활하는 숙소를 떠나 독방을 배정받았다.
따듯한 물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고 생필품도 풍족했다.
그뿐 아니라 식사의 질 역시도 좋았다.
훈련병 전용 식당이 아니라 교관 전용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러워 죽겠다.”
“난 왜 좋은 고유 스킬을 못 가지고 있는 거야.”
“그거야 네가 지구에서 너무 평범하게 살아서 그렇지.”
훈련소의 플레이어들은 특별 취급을 받는 플레이어들을 부러워했다.
원래 먹고 자고 씻는 사소하면서도 기본적인 차별이 가장 기분 나쁜 법이었다.
‘미리부터 목줄이 채워지는 게 뭐가 좋다고.’
하나 강현수는 달랐다.
회귀 전 특별 취급받았던 플레이어 중 하나였기에.
그들이 받는 눈에 보이는 특별한 혜택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불이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훈련소에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고 왕국군이나 거대 길드로 스카우트된 이들은 왕국군이나 거대 길드에 입단하는 순간 족쇄가 채워진다.
자유를 잃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전장의 소모품이 될 뿐이야.’
정말 정말 특별한 고유 스킬과 전투 센스를 갖췄다면?
소모품에서 유용한 도구 정도로의 승급은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길드의 중진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황소욱은 어떻게 보면 난놈이었다.
불과 5년이라는 시간 만에.
소모품에서 유용한 도구로 승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 길드의 간부로까지 성장했으니까 말이다.
‘나중에는 길드장까지 해 먹지.’
황소욱의 삶은 인간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말단 길드원으로 입단한 자가 길드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거다.’
황소욱은 정당한 방법만 고집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온갖 더럽고 비열한 방법을 다 사용했다.
그렇게 희생된 이들 중 하나가 바로 회귀 전의 강현수였다.
‘일단은 네놈의 고유 스킬부터 가져가 주마.’
강현수는 황소욱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리고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노력한 결과.
황소욱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황소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교육생 하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카우트 제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 죽여 버리고 싶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서 황소욱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참자.’
아직 강현수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튜토리얼의 모든 업적을 클리어해 강한 힘을 얻었지만.
거대 길드의 간부에 오를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황소욱을 죽이기는 힘들었다.
설사 황소욱을 죽일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참아야 했다.
훈련병이 교관을 죽인다?
발각되는 즉시 사형이었다.
‘내가 회귀한 이유는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서가 아니야.’
전쟁을 끝마치고.
지구로 귀환해 가족들을 만난다.
그게 강현수의 마지막 목적이었다.
‘일단은 스킬부터. 레플리카.’
강현수가 레플리카 스킬을 사용했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 – E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신속 – S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스킬 신속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2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실패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레플리카, 레플리카.’
강현수가 연속적으로 레플리카 스킬을 발동시켰다.
애초에 한 번에 황소욱의 고유 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레플리카의 랭크가 F에서 E로 상승하며 총스택이 여덟 개로 늘어났다.
충전 시간도 1시간 줄어든 7시간으로 변했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시도한다면?
충분히 황소욱의 고유 스킬을 획득할 수 있었다.
황소욱이 가지고 있던 일곱 개 스킬들이 레플리카 스킬로 복사되고 삭제되기를 반복했다.
‘벌써 마지막이네.’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마음이 초조해졌다.
스택이 겨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강현수는 차분하게 황소욱을 대상으로 레플리카 스킬을 시전했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 – E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스킬 강화 – S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스킬 스킬 강화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2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성공했다.’
드디어 황소욱의 고유 스킬인 스킬 강화를 손에 넣었다.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확인해 보자.’
강현수가 서둘러 스킬 강화의 정보를 확인했다.
[스킬 강화 – F랭크]
-액티브 스킬
-레플리카 스킬입니다.
-경험치를 소모하여 스킬 랭크를 상승시킵니다.
-쿨타임 : 30일
‘역시.’
황소욱을 최강의 플레이어로 만들어 준 바로 그 스킬이었다.
스킬 랭크는 상승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랭크가 낮을 때는 비교적 쉽게 오르지만 C랭크만 가도 성장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쿨타임이 긴 스킬일수록 성장시키기가 더 어려웠다.
‘회귀 전에는 아주 개고생을 했지.’
E랭크인 레플리카의 스택 충전 시간은 무려 7시간.
랭크를 올려도 스택 충전 시간은 겨우 1시간씩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긴 스택 충전 시간 때문에 강현수는 회귀 전 레플리카 스킬 랭크를 올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스킬 강화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경험치를 소모하면 스킬 랭크를 올릴 수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으로 스킬 랭크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거지.’
남들은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죽을 고생을 해도 오르지 않는 스킬 랭크를 몬스터만 사냥하면 올릴 수 있다?
상당히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단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쿨타임이 너무 길어.’
무려 한 달.
그 말은 한 달에 한 번만 스킬 강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랭크를 올리기가 쉽지 않겠어.’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쿨타임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번 사용하면 30일을 기다려야 한다.
두 번째 단점은.
‘경험치를 소모하면 레벨이 하락한다는 거지.’
레벨이 떨어지면?
기존에 레벨 업을 통해 올렸던 스텟이 초기화된다.
‘이것도 전형적인 왕귀형 스킬이야.’
경험치를 스킬 랭크 상승에 투자해야 하니 남들보다 레벨 업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면?
필수 스킬의 랭크를 EX까지 성장시키고 레벨을 올리면 그만이다.
그럼 동 레벨의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월등히 강해질 수 있다.
‘황소욱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어.’
스킬 강화 랭크가 아직 S랭크라는 게 그 증거였다.
‘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황소욱은 절대 모든 경험치를 스킬 강화에 쏟아붓지 않았다.
예를 들어 황소욱이 현재 500레벨이라면?
스킬 강화의 쿨타임이 도는 동안 레벨을 올려 510레벨을 만든다.
그 후 10레벨 정도의 경험치를 스킬 강화에 쏟아붓는다.
이러면 당연히 다른 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스킬 랭크만큼은 압도적인 속도로 올릴 수 있다.
‘앞질러 주마.’
5년이라는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강현수는 일인소대라는 유일무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일인소대의 직업 스킬인 소대 구성.
‘소대 구성을 하기 위해서는 스텟이 필요하다.’
현재 강현수는 30레벨을 올리는 동안 얻은 스텟 300을 모두 소대 구성 스킬에 쏟아부었다.
쉽게 말해 레벨은 30인데 스텟은
와 동일했다.
칭호로 얻은 스텟이 없었다면?
강현수는 갓 첫 번째 튜토리얼을 시작한 플레이어와 다를 바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
‘나한테는 스킬 강화의 페널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레벨 업을 통해 올린 스텟이 증발한다는 게 스킬 강화의 최대 단점이다.
하나 강현수는 애초에 레벨 업을 통해 올린 스텟을 소대 구성 스킬에 모두 소모했다.
레벨이 하락하는 것을 제외하면 손해 볼 게 없었다.
결정적으로.
‘레벨이 하락하는 건 나한테 이득이야.’
의 레벨 업이 빠를까?
아니면 3
의 레벨 업이 빠를까?
당연히 똑같은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의 레벨 업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0레벨이 30레벨이 되나 1000레벨이 1030레벨이 되나 레벨 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스텟은 동일했다.
스킬 강화의 페널티.
소대 구성의 페널티.
큰 페널티를 가진 두 스킬이 레플레카 스킬을 통해 하나로 합쳐지면.
서로가 가진 페널티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한번 해 보자.’
[레플리카 스킬 스킬 강화 – F등급을 시전합니다.]
[얼마만큼의 경험치를 소모하시겠습니까?]
‘내가 보유한 모든 경험치.’
강현수의 선택과 동시에 스킬 강화 스킬이 발동했다.
[현재 보유 중인 모든 경험치를 소모해 레플리카 – E랭크의 등급을 상승시킵니다.]
[스킬 강화가 F랭크에서 E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가 E랭크에서 D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레벨이 0으로 하락하였습니다.]
“큭큭큭.”
강현수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킬 강화는 고작 F랭크 스킬이다.
그것도 E랭크 레플리카로 만들어진 스킬이기에 본래 효과의 20%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레플리카 스킬의 등급이 E랭크에서 D랭크로 상승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용 와중에 F랭크였던 스킬 강화가 E랭크로 성장했다.
이유는 단 하나.
무려 30레벨에 달하는 경험치를 소모시켰기 때문이리라.
‘쿨타임도 줄어들기는 했네.’
30일이었던 스킬 강화의 쿨타임이 27일로 줄어들었다.
‘레플리카 스킬은 내 근본이야.’
레플리카 스킬이 D랭크로 성장함에 따라 만들 수 있는 레플리카 스킬의 숫자가 7개로 늘어났다.
레플리카 스킬의 효과도 20%에서 40%로 증가했다.
그뿐이랴?
스택도 12개로 늘어났고 스택 충전 시간도 6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일단 레플리카 스킬을 EX랭크까지 성장시킨다.’
그게 1차 목표였다.
그 와중에 어차피 사라질 스텟은 모두 소대 구성에 투자한다.
‘이걸로 기본 밑바탕이 완성됐어.’
회귀 후 강현수가 노렸던 필수 직업 하나와 필수 스킬 하나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강현수가 아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최강이라 불렸던 플레이어들의 특별한 스킬.
그 스킬들을 모두 손에 넣어야 했다.
* * *
1주 차가 끝나 갈 무렵.
강현수와 송하나가 만났다.
훈련소의 숙소만 나뉘어 있을 뿐.
교육은 동일한 커리큘럼에 의해 운영되었다.
훈련소에 적응해 지리 파악이 된 이상 훈련병들끼리 못 만날 것도 없었다.
“최대한 능력을 감추는 게 좋아 보여요. 아니, 아예 평균 이하의 성적을 유지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평균 이하의 성적을 유지하라고요?”
“네.”
“알겠어요.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송하나의 물음에 강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부터 하고 이유를 묻는 송하나의 태도가 너무 이뻐 보였다.
“특별 대접을 받는 이들의 대우와 스카우트 조건이 너무 좋으니까요.”
“그게 이유가 되나요?”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교관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 있다.
왕국 소속, 거대 길드 소속, 중소 길드 소속.
그들은 서로 경쟁 관계였다.
그런 만큼 실력이 뛰어난 훈련병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그 정도 노력은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건 세상의 진리였다.
하지만 그 진리를 깨친 이들은 몇 없었다.
대부분이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운이 좋았다.’, ‘내가 뛰어나서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왕국과 길드는 한국으로 치면 정부와 사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진짜 정부와 사기업은 아니죠.”
그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자비가 없다.
“그들이 손해 볼 거래를 할까요?”
그럴 리가 없었다.
투자한 것 이상으로 뽑아먹으려 할 것이다.
“그렇지는 않겠죠.”
송하나도 강현수의 말을 이해했다.
그들은 절대 자선사업가가 아니었다.
깨끗한 직업윤리를 가진 이들도 아니었다.
사실 강현수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왕국군과 거대 길드 소속 교관들 중 일부가 송하나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 주면 왕국군이나 거대 길드에 입단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송하나는 여자였고.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송하나는 그 제안에 깔끔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여자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보장됐다며 안심했다.
그러나 송하나는 교관들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설사 약속이 지켜지더라도 그런 더러운 거래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우리 힘으로 해 보죠. 정 힘들면 그때 왕국군에 들어가거나 거대 길드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하나 씨와 제 실력이면 언제든 원하는 곳에 골라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네요. 현수 씨 말대로 할게요.”
송하나의 대답에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