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3화 (3/365)

살황

‘회귀 전에 저놈 손에 죽었던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저놈이 원인 제공을 한 건 확실해 보였다.

방금 전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해 목숨을 잃었든.

그게 아니라면 부상을 입고 아이템을 빼앗겼든.

어차피 결과는 같았을 테니까 말이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

강현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두 번째 튜토리얼은.

플레이어들의 내분과 몬스터의 습격으로 뿔뿔이 흩어져 홀로 힘겹게 생존한 게 전부였다.

내분의 원인이 저놈이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살렸어.’

죽을 뻔했던 왕귀형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의 목숨을 구했다.

그것도 꽤 극적으로 말이다.

여성의 눈에는 고마움이 가득했다.

“이 새끼가!”

물론 그 대가로 눈앞에 있는 사내의 적의를 얻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지.’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죽어!”

강현수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본 사내가 살기 어린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정상적인 놈은 아니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날이 시퍼렇게 선 장검을 몬스터도 아닌 사람에게 휘두른다?

그건 방금 1차 튜토리얼을 거친 현대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경험이 있구나.’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없는 이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눈빛이었다.

휘익!

강현수의 검이 가볍게 움직였다.

서걱!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아아아악!”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손! 내 손!”

검을 들고 있던 사내의 오른쪽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강현수의 검이 말끔하게 사내의 오른쪽 손목의 근육과 힘줄 그리고 인대를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저 정도로 죽지는 않지.’

뛰어난 리더의 업적을 얻는 조건은 두 번째 튜토리얼의 동료들을 모두 생존시키는 것.

‘반병신이 되더라도 생존만 시키면 그만이지.’

5분 뒤에 죽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어도 숨통만 붙어 있으면 뛰어난 리더 업적을 얻을 수 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두 번째 튜토리얼 업적이 아니었다면?

사내의 손목 대신 목을 베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강현수의 뒤쪽에 있던 여성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목소리는 덜덜 떨렸고 두 눈에는 은은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곳을 주시하고 있던 다른 두 사람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겁이 많네.’

자신에게 살의를 품은 상대를 죽인 것도 아니고 부상을 입혀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하나 그 모습조차도 저들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얼마 전까지 현대인으로서의 일상을 누려 왔던 이들이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괜찮으세요?”

강현수가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여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네, 괜찮아요.”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강현수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여성의 눈에 피어올랐던 은은한 공포가 사라졌다.

대신 자리한 것은 강현수에 대한 고마움.

‘나쁘지 않아.’

검을 들고 있던 사내에게 당당하게 대항했던 모습.

현대인으로서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빠르게 회복하는 정신.

검을 들고 사람을 베었던 강현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움을 품고 있는 마음.

‘키울 맛이 나겠어.’

훗날 강해지는 게 확실한 왕귀형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저런 정신과 마음을 품고 있다면?

최상위 랭커를 넘어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너, 너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그때 사내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오른 손목을 붙잡고 악을 쓰듯 외쳤다.

두 눈에 서린 독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강현수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예 양손을 잘라 버릴까?’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상 그 정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저놈의 기는 확실하게 꺾을 수 있다.

문제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선이었다.

겨우 손목을 베는 정도로 시선을 피하고 강현수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양 손목을 잘라 버린다면?

강현수를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분명히 문제를 일으키겠지.’

일단 적당히 경고를 해서 명분을 쌓는다.

그러고도 듣지 않으면?

전에 했던 경고를 명분 삼아 양손을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두 번째 튜토리얼이 끝나면 아예 말끔하게 목을 잘라 버려도 되고.’

귀찮기는 하지만 두 번째 튜토리얼을 함께할 동료들의 호감.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뒤에 있는 여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귀찮음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강현수가 입을 열어 경고를 하려는 찰나.

철컥!

여성이 화살 장전을 마친 석궁을 사내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리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더 지껄여 봐.”

독기가 가득 섞인 여성의 한마디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내의 입이 쏙 하고 들어갔다.

‘점점 더 마음에 드네.’

상황 판단이 빨랐다.

여성은 강현수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석궁을 재장전했다.

그 후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망설이지 않고 석궁을 겨눴다.

만약 사내가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면?

석궁에서 날아간 화살이 사내의 이마를 꿰뚫었을 수도 있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송하나라고 해요. 나이는 23살이에요.”

여성이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송하나?’

여성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강현수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살황.’

수많은 랭커와 네임드 플레이어의 숨통을 끊은 전설적인 암살자 플레이어.

‘동명이인? 아니면 동일인?’

살황은 암살자답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감췄다.

알려진 정보는 여자라는 것.

송하나라는 이름의 한국 출신 플레이어라는 것.

단 두 개에 불과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송하나가 살황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전 강현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21살입니다.”

강현수가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강현수의 나이를 들은 송하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 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전 대학생이에요. 현수 씨는?”

“저도 대학생입니다. 취미는 검도고요.”

“검도요?”

“네, 10년 넘게 꾸준히 배워 왔는데, 이렇게 써먹을 일이 생기네요.”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뿐 아니라 다른 두 명 역시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문외한인 그들이 보기에도 강현수의 검 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아니지.’

현대에서 검도를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회귀 전 30년간 검을 휘두른 경험이 있었다.

“전 최우석이라고 합니다. 올해 27살이고 취업 준비생입니다.”

“전 박지명이에요. 올해 24살이고 대학생입니다.”

두 명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자기소개를 했다.

“오성혁. 29살. 건달이었다.”

그때 손을 다친 사내도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쏠렸다.

“지혈 좀 도와줄 수 있어? 혼자서는 좀 힘들어서 말이야.”

오성혁이 태연한 표정으로 최우석과 박지명을 향해 말했다.

그 모습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상황 판단이 빠른 놈이네. 상당히 뻔뻔하기도 하고.’

오른 손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상태로 일행과 헤어진다면?

오성혁은 두 번째 튜토리얼 도중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빨리 좀 도와줘!”

오성혁이 최우석과 박지명을 압박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초조한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나이가 가장 어린 강현수가 일행의 리더가 된 것이다.

“도와줄까요?”

강현수가 송하나에게 물었다.

“일단은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송하나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최우석과 박지명이 오성혁에게 다가가 지혈을 도왔다.

“괜찮으시겠어요?”

강현수가 송하나를 떠봤다.

“네, 두 번째 튜토리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동료가 한 명이라도 많은 게 좋을 거예요.”

“뭐, 그렇기는 하죠.”

동료라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게 좋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동료라면 말이다.

‘너무 순진한데.’

살황이 아니라 단순한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그때 송하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지만 사슬 갑옷에 방패까지 있으니까 검을 빼앗고 선두에 세우면 꽤 쓸모가 있을 거예요.”

‘순진하지는 않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냉정했다.

검을 빼앗고 사슬 갑옷과 방패만 가진 사람을 선두에 세운다?

그건 살아 있는 사람을 고기 방패로 쓰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고작 두 번째 튜토리얼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가질 수 있는 독심이 아니었다.

‘동일인인가?’

“저 사람이 생존하는 데도 그게 더 유리할 거예요. 분명히.”

송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독한 말과 달리 마음이 쓰이기는 하는 모양이다.

‘나쁘지 않아.’

단순히 냉정하고 독하기만 한 동료는 필요 없었다.

냉혹한 독심과 따뜻한 마음.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두 가지가 공존해야 했다.

그래야 적에게는 냉혹하고 동료에게는 헌신적인 플레이어로의 성장이 가능하다.

‘살황이 맞든 아니든, 지금은 현대인 물도 안 빠진 애송이일 뿐이야.’

강현수는 송하나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부스럭!

그때 수풀에서 작은 소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수풀로 향했다.

캬아아앙!

성난 포효 소리와 함께 황소만 한 크기의 블러드 울프가 오성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악!”

오성혁의 치료를 돕고 있던 최우석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히익!”

박지명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셋 중 유일하게 침착한 대응을 한 사람은 바로 오성혁이었다.

퍼억!

오성혁이 왼팔로 방패를 들어 올려 자신을 공격한 블러드 울프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부상당한 오른손으로는 검을 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휘익!

퍼억!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가 블러드 울프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송하나가 석궁을 발사한 것이다.

캬악!

화살에 맞은 블러드 울프가 송하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퍼억!

그때 오성혁이 방패를 휘둘러 다시금 블러드 울프의 주둥이를 후려치며 어그로를 끌었다.

오성혁과 송하나가 블러드 울프를 공격하는 동안 최우석과 박지명은 벌벌 떨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넷 중에 쓸 만한 건 둘 정도인가.’

문제는 쓸 만한 둘 중 하나가 이미 사고를 쳤고 훗날 또 사고를 칠 확률도 농후하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가장 중요한 인물인 송하나가 오성혁처럼 안하무인이거나 최우석이나 박지명처럼 겁이 많았다면 꽤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하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튜토리얼은 무난히 해결할 수 있겠어.’

강현수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무렵.

“이 망할 놈의 새끼들아, 당장 공격하지 못해!”

블러드 울프의 공격을 받아 내던 오성혁이 최우석과 박지명을 닦달했다.

하지만 그 둘은 엉거주춤하게 일어섰을 뿐 선뜻 무기를 휘두르지 못했다.

“앞으로 사고 치지 않을게, 제발 도와줘!”

오성혁이 강현수를 바라보며 외쳤다.

“현수 씨, 일단은 힘을 합쳐야 해요!”

송하나도 강현수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전투가 벌어졌어.’

두 사람이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면?

강현수는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끼어들면?

시스템은 강현수가 파티 사냥을 했다고 간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튜토리얼에서 꼭 얻어야 하는 것 중 하나를 잃게 된다.

‘차라리 뛰어난 리더 업적을 포기하는 게 나아.’

강현수는 말끔하게 오성혁의 목숨을 버렸다.

‘송하나만 챙겨서 이곳을 떠난다.’

강현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푸욱!

송하나가 두 번째로 발사한 석궁의 화살이 블러드 울프의 눈을 관통했다.

캬악!

쿠웅!

성난 기세로 날뛰던 블러드 울프가 짧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즉사한 것이다.

“헉헉헉!”

블러드 울프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낸 오성혁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휴우!”

석궁을 재장전해 두 번째 화살을 날려 블러드 울프의 숨통을 끊은 송하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섯이 힘을 합쳐 잡아야 할 녀석을 둘이서 상대했으니.’

힘들 만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대가도 컸다.

블러드 울프의 사체가 흩어지며 잔존 마력이 뿜어져 나와 송하나와 오성혁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허공을 주시하며 무언가를 누르는 듯한 행동을 했다.

‘레벨 업을 한 건가.’

블러드 울프의 평균 레벨은 3~5.

0레벨인 두 사람이라면 한 마리만 잡아도 충분히 레벨 업이 가능했다.

‘목숨을 건 대가를 얻었네.’

저 두 사람은 방금 전보다 강해졌다.

‘반면에 저 둘은.’

최우석과 박지명.

그저 벌벌 떨며 구경만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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