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1화
“와, 진짜 죽을 것 같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탑의 최상층에 세워진 새 관리국.
일처리를 마치고 온 재하와 렌이 쓰러지듯 직원 휴게소 소파에 쓰러졌다.
그 광경에, 먼저 와 쉬고 있던 마스가 보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재하와 렌이 찌릿 마스를 째려보았다.
따지고 보면 처리해야 될 업무량이 많은 건 다 마스 때문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눈빛을 느낀 마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그렇게 보시면 부담스럽습니다만.”
“아휴, 됐어. 그나저나 책 보고 있었네, 뭐 보고 있었냐?”
“아아, 이거 말입니까.”
최근 마스는 이차원의 서적을 읽는 것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원래도 타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스였으나 어비스 주인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론 옛날처럼 이차원을 마음대로 엿볼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생긴 취미였다.
마스가 말했다.
“‘율카카’라는 세상의 식문화에 대해 저술된 책입니다.”
“율카카?”
“거긴 또 어디야?”
“외탑 4층 7번 구역에 위치한 차원입니다.”
“너, 기억력이 좋구나…?”
“최근에 집중 케어했던 곳이라서요.”
헨리가 어비스의 주인이 된 이후, 탑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구역의 구분이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탑에는 이제 내탑 구역과 외탑 구역이 생겼다는 것.
내탑은 기존의 어비스가 부르던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의 체계로 운영되며 기존의 어비스 시스템을 즐기고 싶은 플레이어들을 위해 어비스 오리지널로 두었고.
외탑은 어비스의 보호를 받되 독립적으로 차원을 운영하고 싶은 곳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구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율카카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곳인 외탑 소속 구역인 셈.
식문화 이야기에 렌이 관심을 보이며 마스의 옆에 앉았다.
“그래서, 율카카에선 뭘 주로 먹는데?”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뼈가 주식입니다.”
“…뼈?”
“예.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특이할 수 있으나 율카카는 뼈와 피, 그리고 털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네요.”
“와…… 그게 가능해?”
“율카카인들은 그렇답니다.”
그 말에 재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장과 살코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버린다는 거지? 그걸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얼마나 많은데.”
“맞습니다. 라멘이라던가, 돈카츠라든지…….”
“…참 일본 출신답네.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맨날 나랑 상도국밥 가잖아?”
“그건 그냥 제가 신 상을 맞춰 주는 것뿐입니다. 전 국밥도 좋아하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마스가 말했다.
“그 국밥이란 거, 맛있습니까?”
“음? 너 국밥 안 먹어 봤어?”
“지구의 음식은 아직 하나도 안 먹어 봤습니다만.”
“그래? 근데 너 밥을 먹긴 하네?”
“사실 먹을 필요는 없지만 취미의 일환으로 가끔 즐기곤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 중에 하나가 바로 식문화에 대한 것이니까요.”
“으음, 하긴 메르키스족은 삼대욕구가 없다고 했지?”
“삼대욕구? 그게 뭡니까?”
“수면욕, 성욕, 식욕.”
“아아, 네 없습니다. 저는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되는 몸이니까요.”
“확실히 안 자도 되는 건 부럽지만 식욕도 없다는 건 좀 안타깝네요.”
렌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재하가 다소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잠은 이제 너도 스킬 한 번이면 딱히 안 자도 되지 않냐…?”
“그렇긴 하지만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또 잔뜩 먹고 나서 잠들 때랑, 막 일어나서 먹는 아침밥도…….”
“…그건 그냥 먹기 위해 자는 거 아냐?”
“아무튼 그런 의미로 마스를 데리고 지구에 한번 갖다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밥 먹으러?”
“예, 그렇습니다. 마침 퇴근 시간이기도 하고 어차피 두 분 다 퇴근하고 따로 약속 같은 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중요한 건 마스의 의사였다.
재하가 마스를 쳐다보자 마스가 오호호 웃으며 기뻐했다.
“전 환영입니다! 여지껏 항상 혼자서만 밥을 먹어 봐서 지구의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기대가 됩니다!”
“어? 너 맨날 혼밥 했던 거야? 그럼 안 되지. 말 나온 김에 바로 가자. 근데 가서 뭐 먹지?”
“당연히 라멘 아닙니까?”
그 말에 마스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 먹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도 상도국밥에 가서 돼지국밥을 먹어 보고 싶습니다. 듣기로는 주인님도 가끔 들리신다고.”
“아아, 그렇지. 스승님도 이따금씩 오시긴 하시지.”
“쳇,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이번에는 상도국밥으로 하고 다음번엔 라멘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자고.”
타협이 이루어진 세 사람은 함께 퇴근해 지구로 향했다.
*청담동.
지구에 온 세 사람은 평범한 모습들로 변신한 뒤, 단골 가게인 상도국밥을 찾았다.
“네, 어서 오세요.”
“세 명이요.”
“편하신 자리 앉으시면 됩니다!”
지구 시간으로 3시.
일부러 3시에 방문했다.
탑의 관리자라면 이 정도 시간 조절쯤은 껌이었으니까.
마스가 물었다.
“지구 시간으로 3시면 점심때도 아닌데 왜 하필이면 3시에 방문한 겁니까?”
“그래야 사람이 적으니까.”
“이상하군요. 책에서 봤는데 음식은 여럿이서 먹어야 더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왜 일부러 사람 적은 시간에 오는 겁니까?”
“그건 아는 사람들이랑 먹을 때가 그런 거고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봤자 시끄럽고 자리 좁기밖에 더해? 난 지금처럼 조용할 때가 좋아.”
“아하.”
실제로도 재하는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 3시쯤 늦은 점심을 먹는 걸 좋아했다.
물론 보통의 식당이라면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 걸려 있는 곳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국밥집에는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 그래서 재하가 국밥을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마스가 메뉴판을 보며 물었다.
“저는 잘 모르니 메뉴 추천 좀 해 주십시오.”
“여긴 다 맛있어. 난 주로 돼지국밥 따로로 먹어. 사이즈는 특.”
“따로는 뭡니까?”
“밥을 따로 준다는 거야. 아니면 국에 밥이 말아져서 나오거든.”
“아하, 따로 먹으면 더 맛있습니까?”
“난 처음엔 먼저 김치랑…… 에잇,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나랑 똑같은 걸로 먹어. 렌, 넌?”
“전 순대국밥 특으로 먹겠습니다. 만두도 시킵니까?”
“좋지.”
“이모, 주문할게요!”
렌이 주문을 했고 이윽고 밑반찬들이 나왔다.
밑반찬으로 나온 건 겉절이와 깍두기, 그리고 된장과 청양고추였다.
마스가 밑반찬들을 보며 말했다.
“다 처음 보는 것들뿐입니다.”
“먹어 봐, 내가 상도국밥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가 김치를 잘해서니까.”
“김치가 뭡니까?”
“어후, 씹…… 밥 한번 먹을 때마다 일일이 다 설명해야겠네. 그냥 이차원 자료 다운로드 받는 게 어때?”
“…알겠습니다.”
관리자들은 수많은 차원들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 미리 준비해 가는 차원에서 그 세상의 지식을 다운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윽고 다운로드가 끝나자 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이 집 김치 맛이 기대가 됩니다.”
“그래,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하네.”
재하는 우선 잘 익은 겉절이를 보기 좋게 모아 한입에 먹었다.
그러자 잘 익은 겉절이 특유의 우적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입 안 가득 자극적인 양념장이 퍼졌다.
“음, 이 맛이지.”
그에 마스도 따라서 겉절이를 먹었다.
“음, 이런 맛이군요. 김치는.”
“정확히는 겉절이지. 이 집 겉절이 잘해. 저번에 여쭤보니까 직접 담그신다고 하시더라.”
“공장에서 나온 건 맛없습니까?”
“것도 맛있긴 한데 그래도 이런 식당에서 직접 담근 게 더 맛있지.”
“그렇군요. 근데 렌 씨는 왜 안 먹습니까?”
마스의 물음에 렌이 각자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난 매운 거 잘 못 먹어.”
“아하, 한국에선 그런 사람을 맵찔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럼 렌 씨는 맵찔이인 것입니까?”
그 말에 렌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운로드 받은 자료가 비교적 최신 자료인가 보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맵찔이 렌 씨도 한번 먹어 보십시오. 매우면 밥을 더 먹으면 된다고 한국의 유명인이 그랬습니다.”
“그건 맞지.”
재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윽고 국밥들이 나왔다.
새카만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져서 나온 새하얀 국밥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국밥이 나오자 재하가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으며 말했다.
“크으, 이거지. 내가 이 맛 때문에 여길 오는 거지.”
그 모습을 본 마스가 물었다.
“재하 씨는 아무것도 안 넣습니까? 자료에 따르면 국밥에는 이것저것 넣어 먹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넣을 거야. 근데 이렇게 국물 맛을 먼저 보는 게 예의지. 너도 한번 먹어 봐.”
“특이한 예의군요. 동방예의지국이라 그런가…… 알겠습니다.”
후룹.
재하의 제안에 마스가 국물 한 숟갈을 떠먹은 직후였다.
“으음.”
“어때? 맛있지?”
“뜨거워서 아무 맛도 안 납니다.”
“이래서 이차원인들이란…… 원래 뜨거움 속에서도 맛을 찾고 뜨거워도 시원하다고 해야 진정한 한국인인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렌을 봐.”
“크허, 시원하다!”
귀화만 안 했을 뿐이지 재하와 오랜 한국 생활로 사실상 명예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렌이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국물에 새우젓과 부추를 넣기 시작했다.
대한은 거기에 더불어 깍두기 국물도 추가로 넣었다.
지켜보던 마스가 물었다.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 게 다르다고 하던데 정말이군요.”
“취향 차이지, 너도 이래저래 한번 다르게 먹어 봐. 국밥은 그 맛으로 먹는 거니까.”
“으음.”
그 말에 마스가 테이블을 살펴보더니 고추 찍어 먹는 된장 그릇을 들었다.
“아니, 그건 안 돼.”
“이건 왜 안 됩니까?”
“…노멀 하게 먹자, 노멀 하게. 우선은 새우젓만 넣어서 먹어 봐. 그런 다음에 다대기도 한번 넣어 보고. 참고로 다대기는 이거야.”
“알겠습니다.”
재하가 대신 새우젓을 넣어 주었고 그제서야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마스의 눈이 둥그레 변하더니 이번엔 깍두기 국물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어때, 맛있지?”
“맛있는 것 같습니다. 여태 꽤 많은 이차원 식문화를 접했지만 신선한 맛이군요.”
“다른 차원은 어떤데?”
“율카카는 보통 사냥한 사체에서 나온 것들을 식기구로 씁니다. 예를 들면 두개골에…….”
“그만. 안 말해 줘도 될 것 같아.”
이윽고 주문했던 만두가 나왔다.
“만두가 딱 6개네. 인당 2개씩 먹으면 되겠다.”
“이게 만두라는 거군요.”
“만두에 대해서 알아?”
“다운받은 자료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이 만두란 건 사람의 머리와 닮은 구석이 있군요.”
“…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모르셨습니까? 만두는 지구의 중국이란 나라의 제갈공명이란 자가 강을 건너기 위해 사람 머리 대신 제사 음식으로 쓴…….”
“그만그만. 어디서 받은 자료인진 모르겠는데 만두의 유래는 한두 개가 아니라 꼭 그거라고 단정 지을 순 없어. 아니, 그나저나 어떻게 만두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부터 하지? 외국인이라 그런가? 렌, 너도 그랬어?”
“외국인을 바보로 아는 겁니까? 일본에도 교자는 있습니다. 이건 외국인 문제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외계인 문제입니다.”
“…그래, 밥이나 먹자. 그리고 앞으론 마스를 좀 부지런히 데리고 다녀야겠어.”
“감사합니다. 재하 님.”
다시 식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