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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95화 (495/522)

2부. 95화

세상에 마치 태양이 사라진 듯 어비스에 어둠이 닥쳤다.

헨리는 즉각 발광 마법을 사용해 사위를 밝혔다.

“이게 무슨…….”

관리국에 다시 빛이 들어오자 플레이어들은 모두 세이버가 위치해 있을 지하를 보았다.

그러나 세이버는 이제 없었다.

빛을 잃고 텅 빈 공동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장도 죽었다.

거울용도 죽었으며 그에 따른 시스템 알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고장 난 것 같군.”

“정전이라도 난 것 같아.”

말 그대로였다.

전력을 잃은 전자제품처럼 어비스는 빛을 잃은 채 작동을 멈춘 듯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극독왕이 물었다.

그 물음에 개척왕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나도 모르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다른 곳도 이러려나?”

“확인해 보면 되지.”

행동은 즉각 옮겨졌다.

그리고 얼마 뒤, 헨리의 눈앞에 각지로 흩어진 파티원들의 메시지가 솟구쳤다.

- 하이엔드도 정전이야.

- 염가원도 마찬가지다.

- 빙화연도.

아무래도 ‘정전 현상’은 상층 전체에 적용된 모양.

클레버가 말했다.

- 상황이 이러면 상층뿐만이 아니라 아래층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 확인해 볼 가치가 있겠어.

-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페널티가 붙을 텐데?

- 쯧쯧, 관리국도 날린 마당에 그깟 페널티가 무슨 소용이야?

- 그것도 그렇군.

파티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에 어둠이 닥쳤지만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놀이가 생긴 것처럼 그 누구보다 신나 했기 때문이다.

파티원들은 관리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즉각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후원 혹은 상층에서의 유람에 질린 그들이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쁜 소식들이 들려 왔다.

- 중층도 정전이야!

- 중층로도!

- 층지기 놈들, 다들 본부와 교신되지 않는지 얼빠진 표정들을 짓고 있군.

- 크하하, 그렇군. 아래층에서 근무하는 놈들은 운 좋게 이번 침공에서 살아남았겠어!

그때까지 헨리는 클레버와 함께 세이버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탑의 밑바닥 층인 최하층까지 내려갔을 때,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 최하층 도착! 그러나 이곳도 마찬가지다, 모든 곳이 정전이야.

이로써 탑 전체가 정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빙제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말했다.

- 근데 단순히 빛만 잃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시스템 알림이 전혀 뜨질 않아.

- 음?

- 그러고 보니?

- 하지만 파티 메시지는 작동하잖아?

- 음……

뭘까?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때, 헨리의 눈앞에 탁하게 빛나는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헨리 모리스 플레이어, 반갑습니다. 난 <마스터>입니다. 당신과 단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부디 초대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

메시지를 본 헨리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건 단순한 아카이브 알림 같은 게 아니었다. 무려 ‘마스터’로부터 직접 온 메시지였다.

헨리는 고개를 틀어 클레버를 보았다.

클레버는 명령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헨리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 메시지는 헨리에게만 온 모양.

헨리가 말했다.

“클레버.”

“예, 주인님.”

“마스터에게서 초대 메시지가 왔는데 아무래도 나한테만 온 것 같구나.”

“주인님한테만요?”

“그래.”

헨리는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마스터가 숨겨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딱히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 클레버가 고개를 기울였다.

“수상하네요. 왜 주인님만 초대한 걸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혹시 주인님이 가장 요주의 인물이란 걸 알아서 주인님만 초대해 주인님을 제거하려는 속셈이 아닐까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일리는 있다.

근데 그럴 것 같진 않았다.

무려 국장이 벌벌 떠는 ‘마스터’인데 그런 지체 높은 존재가 설마 그런 짓을 할까?

아무리 보는 이가 없다지만 보통 그 정도 지위쯤 오르는 인물이라면 스스로의 품격 때문에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신분이 높을수록 자존심과 체면에 목숨 거는 법이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클레버가 말했다.

“혹시 모르니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그 말에 헨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나만 초대를 받았으니 초대에 응한 후 향후 동태를 보고 널 부르도록 하마.”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클레버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헨리는 메시지를 터치해 초대에 응했다.

그러자 일순 시야가 금빛으로 물들었고 헨리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다시 시야가 되돌아 왔을 때, 헨리는 큼직한 크기에 사방이 유리로 된 어느 집 앞에 서 있었다.

유리의 집 문은 열려 있었는데 마치 들어오라고 열어 놓은 것 같아 헨리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식물원처럼 관상용 식물들이 가득했는데 중심에는 둥글고 하얀 원형 테이블과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먼저 와 있는 손님도 있었다.

그런데 그자의 모습을 본 헨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옛날에 주신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짓거릴 하는군.’

그도 그럴 게 헨리를 반긴 자의 모습은 다름 아닌 헨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마스터로 추정되는 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헨리 모리스 플레이어님. 저는 당신을 초대한 마스터입니다.”

“불쾌한 외견이군. 의도는 모르겠지만 실패한 것 같으니 본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데.”

“앗, 그런가요. 하핫, 죄송합니다.”

그 말에 마스터가 허공에 손을 젓더니 검정색 양복에 새하얀 가면과 새하얀 장갑을 찬 모습을 새롭게 보여 냈다.

“나름대로 격식을 차린 건데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아! 참고로 얼굴을 가린 이유는 저희 종족은 따로 얼굴이란 게 없어서 말입니다.”

‘종족?’

흥미로운 키워드..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차가 내어져 왔으나 차에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네가 어비스의 주인인가?”

“예, 그렇습니다. 제가 어비스의 주인입니다.”

“진짜 이름은 뭐지? 마스터가 진짜 이름일 리는 없을 테고.”

“맞습니다. 마스터는 코드 네임입니다. 제 진짜 이름은…… 하하, 발음해도 어차피 모르실 겁니다. 저희 종족의 발성기관이 좀 남달라서요.”

핑계처럼 들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고 별로 쓸데없는 걸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래서, 왜 날 보자고 한 거지?”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제안?”

“예, 하지만 제안을 드리기 전에 먼저 이것저것 알려 드릴 게 있는데…… 우선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말을 잇던 마스터가 돌연 고개를 숙였다.

의외였다.

뻣뻣할 줄 알았던 놈이 머리부터 숙이다니.

마스터의 말이 이어졌다.

“저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우스를 침공한 것도 그렇고 당신이 아끼는 권속인 클레버가 고생한 것을 보고 여러모로 화가 많이 나셨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사과드리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당신의 신경을 거슬리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분명한 사과였다.

재발 방지도 약속했고.

하지만 묘하게 무언가 결여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보여 주기식의 형식적인 사과 같은 그런……

마스터의 말이 이어졌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 이름을 걸고 가우스의 영원한 안전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노여움을 풀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 가우스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네?”

“난 아직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왜 네놈이 먼저 건방지게 나서서 보상을 약속하느냔 말이다.”

“그게…….”

순간 당황하였으나 마스터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재차 질문했다.

“그럼 어떤 보상을 원하실까요?”

“어비스를 해체해라.”

“네?”

“무슨 이유로 이딴 짓거릴 벌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즉각 어비스를 해체해라. 네놈 하나 때문에 대체 몇 사람이 고통 받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그건…….”

헨리의 다그침에 마스터가 난처한 듯 뒤통수를 긁적인다. 그러더니 이내 곧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저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요.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나게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지 않습니까?”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다고?”

“당신에 대해선 아카이브를 통해 쭉 보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정이 많은 사람이지요.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베풀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 본인의 여유도 없는 상황에선 그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네놈도 포식자이고 절대자이니 네가 행해 온 것들이 마땅하다?”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게도 개인적인 사정이란 게 있어서요.”

“그 사정이 뭔데?”

“별로 재미없는 이야긴데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당신의 이해만 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드릴 순 있습니다만…….”

그 말에 헨리의 눈이 좁혀졌다.

무턱대고 공격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제법 논조도 맞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들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가 말했다.

“들어 보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 소개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저는 차원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차원 종족들 중 하나인 ‘메르키스’ 족입니다.”

“메르키스?”

“네네, 차원계에는 참 많은 이종족들이 있습니다. 저희도 그런 이종족들 중 하나인데 저희 메르키스인들은 다른 종족들과는 다른 점이 몇 개 있습니다.”

“뭐지?”

“저희들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예, 저흰 어느 날 어느 이름도 모를 이차원 세상에 지성체로서 갑자기 탄생합니다. 그리고 본능을 각인받게 되죠. 바로 동포를 만나야만 한다는 본능을요.”

“누가 그런 본능을 심어 준 거지?”

“모릅니다. 탄생과 함께 갑자기 그런 본능이 깨어납니다. 이상하죠? 하지만 그게 본능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본능이 깨어나고 나서부턴 처음부터 알고 있던 지식들을 활용해 동포 찾기에 나섭니다. 바로 ‘어비스’를 통해서 말이죠.”

“왜 굳이 어비스를 활용하는 거지?”

“제 동족이 어떤 차원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뭐?”

“차원계는 넓습니다. 우주나 바다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넓은 곳 어딘가에는 저와 같은 동족이 갑자기 생겨났을 겁니다. 그래서 차원을 수집하는 수밖에 없어요. 차원을 마구잡이로 수집하다 보면 언젠간 저처럼 어비스를 운영하는 동포를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아님 이제 막 깨어난 동포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

헨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 이 모든 짓거리들이 사실은 동포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헨리가 물었다.

“그럼 조용히 동포만 수색하면 되지, 왜 굳이 침공까지 감행한 거지?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건 어비스를 키워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차원계의 크기가 커질수록 다른 차원을 끌어당기는 힘도 더 커진다는 사실을? 하지만 보통의 세상들은 어비스에 편입되길 원하지 않아 하고 그렇다 보니 마찰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화를 시도해 보긴 했고?”

“초반 몇 번은 했었죠. 하지만 모두들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헨리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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