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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85화 (485/522)

2부. 85화

[ <염왕>의 <염룡>을 기억합니다. ]

[ 지금부터 <염룡>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남은 사용 횟수는 3회입니다. ]

이어서 아카이브의 친절한 알림이 뒤따라 붙었다.

그 뒤로 염왕의 얼굴이 보였다.

더 없이 놀란 얼굴이었다.

헨리는 놀란 염왕의 얼굴 앞에 칼을 가져다 댔다.

“계속할 건가?”

따로 스킬이나 힘은 주지 않았다.

그저 상징적으로 칼을 가져다 댔을 뿐.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효과는 충분했다. 염왕이 적잖은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어떻게…… 한 건가?”

“스킬이다. 새로 획득한.”

“방어 계열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어?”

“아직 결판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이라 하는 건 좀 너무 하지?”

그 말에 염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는 말이었다.

봐주지 않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라니.

하지만 자신이 자랑하는 궁극의 스킬, 염룡까지 이런 식으로 단숨에 파훼해 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염왕이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호기심 앞에 장사 없다고, 패배를 인정하마. 이제부턴 네가 3위다.”

염왕의 패배 선언.

그 말에 어비스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아카이브가 요란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 <플레이어 : 염왕>은 <플레이어 : 헨리 모리스>에게 패배한 것을 인정합니까? ]

[ 인정할 경우, 상층 내 랭킹 순위에 변동이 생깁니다. ]

확인 사살.

그러나 염왕은 대수롭잖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그러자 헨리 앞에 꽤 많은 양의 아카이브 알림들이 떠올랐다.

[ 축하합니다! <플레이어 : 헨리 모리스> 님은 <플레이어 : 염왕>을 꺾고 이 시간부로 상층 랭킹 3위에 랭크되셨습니다! ]

[ 랭커의 특전이 부여됩니다. ]

[ 랭크전을 할 때 각종 혜택들이 부여됩니다. ]

[ 지금부터 후원이 가능합니다. ]

[ 플레이어님의 사유지에 영광스러운 휘장이 걸립니다. ]

……

너무 많아서 읽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두세 번째 줄 이후부턴 그냥 무시하고 스킵해 버렸다.

헨리가 검을 거두며 말했다.

“너무 쉽게 승낙하는 것 아닌가?”

“비밀만 알아낼 수 있다면야.”

“알아내서 다시 덤비려고?”

“그런 식으로 쟁취한 명예가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행히 염왕은 명예를 아는 자였다.

물론 헨리는 그가 다시 덤비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랭크전 자체에 흥미를 잃었으니까.

“그보다 이제 알려 주기나 하지 그래? 패배한 마당에 내 입으로 말하긴 뭣 하지만 사실 내 염룡은 랭킹 1위이자 삼재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그 개척왕조차도 버거워하는 기술이거든.”

그게 그 정도로 강한 스킬이었나.

그렇게 들으니 거울용이 왜 최악의 재앙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윽고 경기장처럼 둘러싸여 있던 불의 장벽이 꺼졌고 헨리는 직접 의자를 만들어 염왕을 앉히며 말했다.

“거울용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거울용? 그 삼재앙 중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그 거울용?”

“그래.”

“거울용과 만난 거랑 네가 가진 스킬이 무슨 상관…… 너, 설마?!”

염왕이 설마 하는 눈으로 헨리를 보았다.

설마가 사람 잡지.

헨리가 씩 웃어 보이자 염왕은 여지껏 보여 준 얼굴들 중 가장 놀란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았다.

“탑에게서 받은 특전으로 거울용의 드래곤 미러링이라는 스킬을 복사했다. 어떤 스킬인지는 설명 안 해도 잘 알겠지?”

“아…….”

이 와중에 안도가 약간 섞인 감탄.

순간 거울용이라도 사냥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킬 복사라니.

그렇다면 사실상 거울용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도 그럴 게 무협지에선 고수들의 싸움은 대개 한 합 혹은 한 끗 차이로 판가름이 날 때가 많다고 한다.

어비스도 마찬가지.

어비스의 랭커들 중 하이 클래스에 접어든 존재들의 경우, 가진 에테르가 비슷하게 강대해 웬만해서는 승부가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아이템이나 스킬의 상성으로 승부가 갈렸는데 그래서 거울용이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것.

염왕은 눈을 감았다.

“왜 그러지?”

“부러워서 그런다, 이놈아.”

“음.”

부럽다는데 어찌 할까.

염왕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이제 다음 행보는 무어냐?”

“3위가 됐으니 위에 두 놈을 꺾어야겠지?”

“이유는?”

“최상층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상층은 제패하고 도전해야 하지 않겠어?”

“너…… 아직도 그런 소릴 하는 게냐?”

“그럼, 농담인 줄 알았나?”

그 소리.

바로 최상층에 도전한다는 소리였다.

당시의 염왕은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여태 최상층에 가 봤다는 플레이어도, 그곳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았다는 플레이어조차도 없었다.

차원상을 비롯한 탑에서 꽤나 오래 살았다는 이들 모두에게 물어도 대답이 같은데 어떻게 농으로 듣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염왕도 농담 겸 떠도는 소문 전달 겸 해서 몇 마디 거들어 준 적은 있었다.

“방법은 있고?”

“그때 나한테 말해 준 방법에 대해 기억하나?”

“내가?”

“그래. 전에 우스갯소리로…….”

“자, 잠깐만. 설마 진짜 그걸 하겠다고?”

그 방법.

그건 일전에 염왕이 지나가듯 해 준 말이었다. 거의 반절은 농담으로 해 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헨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 의견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도 보았다.

염왕은 황당한 눈초리로 헨리를 봤다.

그러나 헨리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헛웃음이.

“나참…….”

근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단순했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염왕이 물었다.

“그래서, 그 계획은 혼자 행할 건가?”

“함께하려고?”

그 말에 염왕이 몸을 앞으로 젖히자 의자째로 헨리 앞으로 당겨졌다. 염왕이 헨리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함께하겠다면? 받아는 주고?”

“강자가 함께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내 뒤통수만 노리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들 뒤통수 노리는 아비가 어딨나? 크큭, 재밌겠군. 참 재밌겠어. 이거 간만에 가슴이 다 뛰는 것 같아!”

“2인자는 누구지?”

“바로 2위 자리도 탈환하려고?”

“노닥거려서 좋을 건 없잖아?”

“쯧쯧, 아서라. 나는 방심으로 어떻게 운 좋게 이겼다곤 하지만 2위부터는 좀 힘들 게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설마 거울용의 비전 스킬 하나만으로 모두를 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냐?”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염왕은 의견이 달랐다.

“아니. 넌 절대로 못 이겨. 나 같은 경우에야 방심도 했다지만, 솔직히 말해 드래곤 미러링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이상 너한테 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거든.”

일 리가 있었다.

아직 염왕이 드래곤 미러링이 어떤 스킬인지 잘 모른다고 가정해도 그 밑천이 탄로 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리라.

침묵은 금이라고 헨리가 무언의 긍정을 표하자, 염왕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트레이닝을 좀 하자꾸나.”

“트레이닝?”

“네 계획이 정말로 그것이라면 더더욱 기본기를 단련해야겠지. 그리고 너의 기본은 업화이고 어비스에서 가장 불꽃을 잘 다루는 것이 나이니 만큼 너는 더더욱 내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트레닝을 통해 너는 더 강해져야 한다. 드래곤 미러링이 없어도 나를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전문적인 훈련과 충분한 노력, 그리고 오랜 시간만 있다면 염왕은 분명히 헨리가 자신을 뛰어넘는 차세대 염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헨리에겐 무한한 성장을 가능케 해 줄 뱀의 운명과 거인의 근골이 있었으니까.

그 말에 헨리 또한 동의했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에.

“그러지.”

“흐흐, 또다시 인고의 시간이 되겠구나.”

염왕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화르륵!

“크으으으윽!!”

몇 배는 더 뜨거워진 불꽃이 또다시 헨리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

빙화연.

어비스에서 가장 깊고 시린 땅.

빛 한 점 들지 않는 그곳에는 숨결조차 얼어붙으며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오직 하나, 그곳을 다스리는 빙제뿐이었다.

조인족인 빙제는 둥지에 알을 품듯, 대부분의 일과를 잠으로 보낸다.

이번에는 석 달쯤 잠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로부터의 침공 같은 건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상층을 주름잡는 수많은 랭커들 중 아주 오랜 기간 동안 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빙제가 몇 달 만에 드디어 잠에서 깼다.

노곤했다.

오늘은 어제와 같았고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다.

그러던 차, 간만에 아카이브 알림 하나가 떴다.

빙제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그것을 읽었다. 그러다 문장의 몇 음절도 넘어가기 전에 화들짝 놀라 눈이 떠졌다.

“이게 무슨…….”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눈을 비비며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만년 3위를 유지해 오던 염왕이 4위로 밀려나고 처음 보는 이름이 갑자기 염왕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놀란 빙제는 다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염가원으로 향하는 티켓을 꺼내 찢었다.

웬만해선 덥고 기분 나빠서 안 가는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염가원에 발을 들이자마자 염가원의 불꽃들이 빙제를 본능적으로 제지했다.

그러나 염왕이 불꽃들을 물리며 빙제를 맞이해 주었다.

염왕의 느긋한 모습에, 빙제가 꽥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일이냐! 네놈이 지다니?!”

“시끄럽구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뒷북질이야? 닭대가리 티내는 거야, 뭐야?”

“그보다 왜 이렇게 태평한 거야? 당장 설명부터 하지 못해?!”

두 사람이 이리 투닥거릴 수 있는 이유는 아주 친한 사이여서 그런 것이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탑의 하이랭커 자리를 유지해 왔으니까.

빙제의 성화에 염왕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턱짓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는 뜨거운 지옥불 속에서 가부좌 자세로 명상에 잠겨 있는 헨리가 있었다.

“저놈은 또 뭐야?”

“내 제자.”

“제자? 네놈에게 제자가 있었어?!”

“후원으로 아래층에서 낚아 올린 놈이지. 키우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

“후원이라면 그때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천년전쟁을 뒤집어 놓았다는?”

“그래, 그놈.”

“흥, 그래 봤자 신입 나부랭이지. 그런 것보다 헨리 모리스인지 뭔지 하는 놈에 대해서나 이야기해라. 그놈은 뭔데 널 꺾은 거지? 그리고 넌 왜 살아 있는 게냐?”

“쟤가 걔야.”

“뭐?”

“쟤가 걔라고. 날 꺾은. 물론 기연과 기회가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날 꺾은 거긴 하지만…… 이제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게 됐다.”

“그게 무슨 소리냐?”

빙제는 염왕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얼린 닭대가리를 위해, 염왕은 특별히 그간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거울용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서.

그래서일까?

이야기가 약간 부자연스러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빙제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다음 상대가 나다? 그래서 저렇게 죽어라 훈련시키고 있는 거고?”

“이제 거의 막바지야. 저번과는 달리 이번엔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니까.”

그때였다.

번뜩!

헨리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헨리는 여러 개의 아카이브 알림을 볼 수 있었다.

[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

[ <업화>의 등급이 한계치를 넘어 플레이어님에게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진화합니다. ]

그것은 각성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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