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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59화 (459/522)

2부. 59화

타격음, 마찰음, 폭발음 등등……

마치 천둥이라도 친 것처럼 꽤 많은 폭음들이 베이스캠프 안을 가득 메웠다.

그로 인한 흙먼지가 자욱했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때 바람이 휘몰아치며 잿빛 연기들을 단숨에 문틈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드러났다. 수많은 타격에도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헨리의 고귀한 자태가.

허공에 정렬되어 있던 얼음창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얼음창들은 장식품처럼 허공에 꼿꼿이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들리는 거라곤 이곳에 있는 수많은 이들의 심장박동 소리뿐인 건 착각인 걸까?

헨리가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여 줄 건 이게 전부인가?”

“이게 무슨…….”

론베르트는 좀 전에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일이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무려 수백 명이다.

그런 자신의 부하들이 겁주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은 건데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다니……

꿀꺽.

론베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헨리의 눈빛이 론베르트를 향했고 허공에 장식되어 있던 푸른 송곳이 일제히 론베르트를 향해 쏟아졌다.

화드드드득!

섬뜩한 피륙음.

어떤 이는 두 손으로, 어떤 이는 조용히 눈꺼풀을 내려 눈을 가렸다

처참한 몰골.

허공에 장식돼 있던 송곳 중 1할 정도가 론베르트의 몸에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방패는 그저 장식이었다.

그건 헨리의 얼음창을 네 발도 견디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났으니까.

“끄어어…….”

꽤 많은 얼음창이 론베르트에게 박혔다.

허나 론베르트는 살아 있었다.

회광반조?

아니.

일부러 급소를 피해 목숨에 지장이 가지 않는 곳만 골라서 찔러 넣은 것이다.

쿵!

론베르트가 쓰러진다.

목숨에 지장이 없다기엔 너무 많은 곳을 공격당했다.

헨리의 힘에 압도당한 클랜원들은 감히 자신의 수장에게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헨리는 그 침묵의 물결을 가르고 다가가 회복정 몇 알을 으깨 액체형 포션 안에 넣고 론베르트 위에 부었다.

치이이이……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살이 붙는다.

살에 박힌 얼음송곳은 진작에 캔슬했다.

“허어어!”

활어 꿈틀거리듯 론베르트의 숨이 트인다.

헨리가 염동력 마법으로 론베르트를 바로 앉힌 후 한쪽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잘 들어라. 난 너희가 하는 서열 놀이 같은 건 관심 없다. 난 최대한 빨리 거인의 근골을 찾아 이곳을 나갈 거다. 그러니 너희를 시작으로 이곳의 모든 세력을 내게 귀속시키겠다. 허나 그 귀속은 임시적일 것이며 서열 놀이가 하고 싶다면 내가 여길 나가고 난 뒤에 해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명령이다, 거절하면 죽일 수밖에 없는.”

건조한 얼굴로 조곤조곤 할 말을 전하는 헨리. 처음부터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자존과 약육강식이 적용된 세상에 대화로 모든 게 해결됐다면 처음부터 이런 사달도 나지 않았을 테니까.

론베르트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에 짓눌려 자기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네.”

헨리가 만족스러움에 미소 짓는다.

그런 다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후 론베르트의 몸을 훑어 그의 목에 걸린 특이한 문양의 목걸이를 떼어 손목에 휘감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끝에 저 멀리 숨어 있는 리미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염동 마법에 붙잡힌 리미르가 갈고리에 걸려 당겨진 것처럼 헨리 앞에 끌려 도착했다.

헨리가 론베르트의 목걸이를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거 하나면 다른 클랜 놈들도 알아보겠지?”

그 말에 리미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이제 안내해라. 다른 클랜의 베이스캠프로. 어디에 있는진 알고 있겠지?”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모른다고 했다간 론베르트 꼴이 날 듯 했으니.

“그리고 너.”

헨리의 시선이 다시 론베르트에게로 향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에 대한 교육을 똑바로 시켜 놓는 게 좋을 거다. 두 번의 기회는 없어. 내 시간은 너희 모두의 시간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비싸니까.”

“…알겠다.”

“가지.”

“아, 네, 넵!”

리미르가 황급히 헨리를 뒤따라 나선다.

*

이후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니, 지루하다 여겨질 만큼 같은 패턴이었다.

네 손가락.

세 손가락.

두 손가락에 이어 이곳의 최고 서열권자라 불리는 곳마저 모두 다 론베르트처럼 굴복시켰다.

새로운 베이스캠프에 이를 때마다 여왕의 눈으로 관조했지만 헨리가 기대하는 보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보석이 되지 못해 강바닥을 구르고 있는 자들.

자기들끼린 사금처럼 보일지언정 진짜가 보기엔 자갈에 지나지 않았다.

[ 시야 오브젝트를 확보하셨습니다. ]

[ 미니맵의 일정 구역이 영구히 밝혀집니다. ]

[ ……개의 새로운 시야 오브젝트가 추가됩니다. ]

허나 사금을 흉내 내는 자갈들을 거칠 때마다 헨리의 미니맵은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렸다.

이로써 확보된 시야 오브젝트의 수가 백오십을 넘는다.

마침내 마지막 클랜의 수장까지 굴복시켰을 때, 헨리는 이들을 모두 한 군데로 모았다.

그곳은 거인들의 무기고였는데 켜켜이 쌓여진 방패 아래는 그 어떤 거인도 눈치 채지 못할 훌륭한 집회 장소가 되었다.

헨리는 거대한 얼음기둥을 만들어 방패 아래 모인 자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수가 약 삼천.

기껏해야 일이천 정도일 줄 알았던 자갈들의 수가 꽤 된다.

헨리는 론베르트를 비롯한 각 클랜의 수장들을 한데 모아 그들 발아래 거대한 얼음기둥을 솟게 했다. 높이는 그들이 헨리를 올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만.

헨리가 말했다.

“내가 왜 너희들을 모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침묵.

침묵은 금이고 곧 긍정이다.

그들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헨리 모리스> 님이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파티 초대 메시지였다.

그들이 수락을 머뭇거리자, 헨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고 그러자 모두 수락했다.

수장들과 한 파티가 된 직후였다.

“현 시간부로 요새 전체를 수색한다. 목표는 두 가지. 요새 어딘가에 있을 출구와 거인의 근골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것. 내가 얼른 사라졌으면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찾는 게 좋을 거다. 서로간의 싸움은 허용치 않는다. 만약 발각되면 즉시 죽이겠다.”

“…….”

침묵하는 수장들.

대답하지 않는 게 저들이 내세우는 최선의 자존심일 것이다.

허나 헨리의 말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 중 헨리의 힘을 맛보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딱히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움직여라. 보고는 2시간마다 받겠다.”

거인들의 요새.

최초로 모든 세력이 규합하여 본격적인 수색에 나섰다.

*

- 출구를 찾았다.

수색을 시작한 지 약 반나절 뒤.

놀랍게도 플레이어들은 딱 반나절 만에 출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위치가 어디지?”

- 위치는……

곧바로 쏘아지는 좌표.

받은 좌표를 따라 이동하니 그곳에는 정말로 익숙한 형태의 차원문이 일렁이고 있었다.

[ 중층으로 향하는 출구입니다. 거인들의 요새를 벗어나 중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

친절한 아카이브의 설명까지.

진짜 출구가 맞았다.

헨리가 출구를 찾은 수장의 공을 치하했다.

“좋아. 넌 출구를 찾았으니 근골에 대한 단서를 못 찾아도 나중에 봐주도록 하지.”

“…그래.”

차마 무게감 없이 기쁜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지 짤막하게 대답하고 마는 녀석.

대신 옆에 서 있는 다른 녀석들의 안색이 흙색이 됐다.

“뭐해? 다들 빨리 안 찾고.”

그때, 론베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한손을 귀에 가져다 대며 누구와 대화를 나누더니 헨리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잠시 추적을 중지해야 될 것 같다.”

“왜지?”

“훈련소 병원 쪽에 어비스 갓이 침투해 들어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게 요새 안에 들어오기도 하나?”

“소형종은 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거든.”

“그래?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있다.”

헨리의 물음에 잠자코 있던 다른 수장이 입을 열었다.

“어찌 보면 우린 거인들과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 어비스 갓은…….”

“뒤는 설명 안 해도 된다.”

안 들어도 됐다.

어비스 갓은 모든 플레이어들의 미움을 받는 존재니까.

“그럼 그놈들은 내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지.”

“직접 말인가?”

“리더는 가장 앞에 서는 법이니까. 그리고 약해 빠진 너희한테 맡겼다가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귀찮은 일을 맡기는 것과 어려운 일을 떠넘기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는 리더로서 앞장섰다.

임시긴 해도 어쨌든 지금은 자신이 이 세력의 장이었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곳의 종말은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했다.

“소수만 추려서 간다. 나머진 추적 작업을 마저 하도록. 앞장서라.”

“알겠다.”

뜻밖의 종말과 만날 시간이었다.

*

훈련소 병원의 의약품 창고.

종말은 그곳에서 나타났다.

“오셨습니까.”

수장들의 등장에 종말을 감시하고 있던 클랜원들이 즉각 예를 갖췄다.

“놈들은?”

“저쪽에서 생성되고 있습니다.”

클랜원이 가리킨 곳을 보자 의약품 창고 구석에 내부가 검붉은색으로 일렁이는 갈라진 틈 같은 게 보였다.

종말은 그곳에서 기괴한 모양새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종말을 본 헨리는 즉각 여왕의 눈을 발동시켰다.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관조> 효과가 발생합니다. ]

금빛이 도는 눈.

그와 함께 헨리는 처음으로 종말에 대해 자세하게, 그리고 깊이 볼 수 있었다.

“…….”

생성된 종말은 다섯.

헨리는 얼마간 진중한 표정으로 종말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감상 끝에 조용히 화산검을 들었다. 그리고 즉시 종말을 향해 달려들었다.

[ <업화>가 발동됩니다. ]

칼날에 휘감기는 지옥의 불꽃.

그것은 기다란 꼬리를 그리며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것들의 몸에 기다란 사선을 그려 냈다.

이윽고.

“키에에에에!!”

다섯 종말의 몸에 절삭음과 함께 소화시킬 수 없는 지옥의 불꽃이 맹렬하게 피어올랐다.

화악! 화악! 화악!

불붙은 싸리비를 휘두르듯, 화산검을 크게 휘두를 때마다 그런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종말은 울부짖었고 얼마 뒤, 더 이상 종말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놈들은 모두 한줌의 재가 되었다.

“…….”

“…….”

“…….”

수장들은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소형종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어비스 갓은 어비스 갓.

자신들도 꽤 고전하는 존재가 바로 어비스 갓인데 그런 놈들을 저토록 쉽게 베어 낼 줄이야.

그러나 수장들의 입이 반쯤 벌어지건 말건, 헨리의 시선은 재가 된 종말들에게서 놈들이 기어 나온 벌어진 검붉은 틈새로 옮겨졌다.

틈새를 바라보는 눈.

그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헨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토록 하찮은 놈들을, 고작 에테르가 아닌 마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버텨 온 세월이 무색하고 야속할 정도로 허무한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온몸에 분노가 들끓었다.

가늘게 떨리는 헨리의 손이 또다시 화산검을 치켜든다.

그때였다.

[ <???>가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 합니다. ]

[ 초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그것은 벌어진 틈새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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