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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58화 (458/522)

2부. 58화

거대한 그물망.

물론 거인들이 보기엔 손수건의 반에 반도 안 되는 넓이였지만 확실히 보통의 플레이어 기준에선 거대한 그물망이었다.

그에 헨리는 순간적으로 서리풍을 뿜어 그것을 멀리 밀쳐냈다.

“이런!”

비속어와 함께 퇴각 신호가 귓전에 들린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뱀의 운명을 이식받은 후로 기감이 평소보다 몇십 배는 날카로워졌다.

헨리는 그들을 쫓았다.

의도가 어찌 됐든 그냥 지나치기엔 자신에게 드러낸 이빨이 괘씸했기에.

느껴지는 기운을 쫓아 몸을 띄워 보니 근처 협탁 위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 셋이 보인다.

헨리가 그들 앞에 먼저 도착하자 일순 세 사람의 몸이 굳었다.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위압> 효과가 발생합니다. ]

여왕의 눈이 가진 위압 효과 때문이었다.

위압이 발동됐다는 건 이들 셋의 수준이 헨리 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뜻.

그때 위압감에 몸이 굳어 있던 놈들 중 하나가 단검으로 제 허벅지를 찔렀다.

“큭! 다들 정신차려!”

“형님!”

“리미르!”

허벅지를 찔러 위압 효과에서 탈출한 놈의 이름은 리미르로 제법 괜찮은 정신력을 가졌다.

하지만 세상엔 정신력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

허나 기개를 높이 사 우선 가볍게 경고부터 해 주었다.

“살고 싶다면 미니맵을 공유해라.”

헨리의 미니맵 요구에 세 사람은 침묵했다. 그러다 리미르라 불린 남자가 상처를 부여잡은 채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미, 미니맵만 공유해 주면 정말 우릴 살려 줄 건가?”

“먼저 습격해 온 주제에 설마 내게 협상을 시도하는 건가?”

그 건방짐에 헨리는 날 것 그대로의 살기를 방출했다.

“히이익!”

막내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그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웅크린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무지를 깨달은 리미르가 처세를 바꾸었다.

“죄, 죄송합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미니맵.”

“드, 드리겠습니다.”

리미르는 조심스레 다가와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밀었다.

손목을 맞대서 거래하는 건 이번에도 같은 방식인 모양.

그런데 리미르의 손목에 익숙한 표식이 보였다. 나이트 플레이어의 표식이었다.

그래서일까?

헨리의 손목에 새겨진 크라운 표식을 보자 리미르는 자신들이 사람을 잘못 골랐음을 톡톡히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손목끼리 맞대자 거래가 이루어졌고……

화아!

헨리의 미니맵에 새로운 시야 오브젝트들이 등록되었다.

[ <76>개의 새로운 시야 오브젝트가 추가됩니다. ]

숫자도 무려 76개.

꽤 많다.

‘많이 모았군.’

거래가 끝난 직후, 리미르가 마른 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헨리의 처분을 기다릴 차례.

그러나 헨리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 한 것에 대해 질문해 왔다.

“너희, 요새 안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꽤 됐습니다.”

“꽤 돼? 그게 대답인가?”

살벌한 목소리.

그 물음에 즉시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올해로 2년째입니다.”

“그래? 좀 됐네?”

“그렇습니다.”

“그럼 규모는 얼마나 되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답이 느려진다.

그 말에 헨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중층 바로 직전 단계인 이곳에서 너희들 셋이 2년간 이곳에서 살아남았다고? 나이트 플레이어인 너희가?”

“…….”

정곡을 찔렸다.

헨리의 일침에 리미르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속 있지? 이름과 규모를 말해라.”

“저희는…… 미라클 체이서라는 클랜을 만들어 활동 중이고 규모는 300명 정도 됩니다.”

“많은 건가?”

“그래도 요새 안 클랜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듭니다.”

“다섯 손가락이라…….”

다섯 손가락이면 5위 정도는 된다는 말.

4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4위면 네 손가락이라고 표현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요새 안에 플레이어가 많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많군.’

잘됐다.

그렇잖아도 다섯 개의 시야 오브젝트를 확보하는 동안 플레이어들이 안 보여서 의아해하던 참이었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안내해라.”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신지…….”

애써 대답을 회피하는 리미르의 태도에 헨리가 도롱뇽 바늘을 꺼냈다. 그리고 리미르의 허벅지를 깊게 찔러 었다.

“끄아아아아아!!”

쓰러져 나뒹구는 리미르.

그 옆으로 동료들이 붙는다.

헨리는 바늘을 집어넣은 뒤 허멀트에게서 받은 액체형 힐링 포션을 꺼내 녀석의 상처 위에 부어 주었다.

포션을 부으며 헨리가 말했다.

“포션 부어 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귀 멀쩡한 거 아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러니까 너.”

“네, 넷!”

헨리가 옆에 붙어 있던 놈들 중 막내로 보이는 녀석에게 말했다.

“네가 안내해. 나머지 놈은 저놈 부축하고.”

“아, 알겠습니다!”

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저기야?”

“예, 그렇습니다.”

미라클 체이서의 베이스캠프는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심지어 입구는 웬 문틈이었다.

그때 문틈 입구에서 누군가 나왔고 나오자마자 리미르 일행에게 아는 체를 해 보였다.

“여,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 어엇!”

아는 체하기도 잠시.

녀석은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바로 뒷걸음질 쳤다. 허나 상황을 인식했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황.

뒷걸음질 치던 몸은 바로 반대쪽으로 돌아갔으나 그땐 이미 헨리에게 발목을 잡힌 뒤였다.

헨리의 염동 마법이 이름 모를 그를 질질 잡아끌어 네 사람 앞에 당겨 놓는다.

“어, 어떻게? 스킬 반응은 없었는, 읍읍!”

염동 마법으로 녀석의 입을 막은 후 홀드를 걸어 구석에 던졌다.

“가지.”

“네, 넷!”

문틈.

미라클 체이서의 베이스캠프로 가는 입구인 그곳은 마치 어느 협곡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협곡 같은 문틈을 지나서 들어가자 개미굴처럼 어두컴컴한 천장과 곳곳에 등불이 달린 묘한 세상이 헨리를 반겼다.

헨리가 물었다.

“여긴 요새의 어디쯤에 해당하지?”

“…식료품 창고 근처에 난 구멍입니다. 저희가 운 좋게 발견해서 오래 전부터 베이스캠프로 쓰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때였다.

부우우우!

낮은 뿔각 소리.

아무래도 누군가 헨리와 리미르 일행을 발견하고 적습 경보라도 울린 모양.

헨리는 리미르 일행을 인질 삼아 차분하게 녀석들의 행동을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활이나 새총 같은 각종 원거리 무기로 무장한 미라클 체이서의 클랜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300명이라더니 그 수가 척 보기에도 많다.

“다행히 의리는 있는 모양이군.”

말 그대로였다.

그래도 식구라고 의리는 있는 모양.

그도 그럴 게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견제하지 않고 진작에 리미르 일행과 함께 날려 버렸을 테니까.

그즈음 미라클 체이서를 이끄는 수장, 론베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어느 영웅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한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론베르트가 말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네놈은 누구냐?”

“내 이름은 헨리다.”

“헨리?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번에 들어온 건가?”

“그렇다.”

“그렇군. 난 론베르트다. 보시다시피 이곳 미라클 체이서를 이끄는 수장이지. 그럼 이제 용건이나 한번 들어 보지. 신출내기 플레이어께서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실까? 그것도 내 형제들을 인질로 잡아서 말이야.”

“네 형제들이 먼저 날 공격했다. 그래서 데려온 것뿐이다.”

“바로 죽이고 갈 길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본디 부하의 잘못은 상관이 책임져야 하는 법이잖아?”

“뭐? 크하하핫!”

헨리의 말에 론베르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져야 맞는 법이지. 근데 설마 이렇게 직접 데리고 오면 우리가 고개라도 조아릴 줄 알았나?”

“안 조아릴 건가?”

“재밌는 놈이군. 난 용감한 놈을 아주 좋아해. 하지만 멍청한 놈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헨리라고 했지? 너의 용기는 높이 사지만 더 이상 무모한 행동 말고 순순히 우리 애들을 놔줘라. 그럼 기개를 높이 사 내 죽이지는 않으마. 아니, 더 나아가 우리 형제로 받아 주지.”

그 말에 헨리가 웃었다.

론베르트.

과연 수장다운 호걸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통찰력은 떨어지는 모양.

헨리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관조> 효과가 발생합니다. ]

금빛으로 일렁이는 헨리의 눈.

그와 함께 베이스캠프를 가득 메우고 있는 클랜원들은 물론 론베르트의 레벨을 가늠했다.

“하.”

자기도 모르게 비웃음이 났다.

기감 자체가 약해 자기보다 약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형편없었다.

헨리는 염동 마법으로 리미르 일행을 들어 론베르트에게 던졌다.

그러자 직접 달려 나와 자신의 클랜원들을 받아 내는 론베르트. 론베르트가 세 사람을 내려놓으며 안위를 챙긴다.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대장, 근데 저놈, 보통 놈이 아닙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느낌이 그렇거든.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론베르트가 세 사람을 뒤로 밀어 놓고 앞으로 나와 물었다.

“내 부하들을 던져 줬다는 건 내 말을 수락하겠다는 건가?”

“반대다.”

“뭐?”

“너희가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가 할일이 좀 있는데 일손이 많이 필요한 참이거든.”

“그게 무슨…….”

“농담 같아?”

그 순간, 헨리를 기점으로 수많은 얼음송곳들이 유려하게 펼쳐졌다.

수백여 개의 얼음창.

그것을 본 클랜원들 상당수의 동공이 커지고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내 목표는 두 가지다. 거인의 근골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출구를 찾아 중층으로 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너희가 오랜 세월 여기에 붙어 있는 건 아직도 근골을 못 찾았기 때문이잖아? 설마 그 오랜 기간 동안 출구를 못 찾은 건 아닐 테고.”

정곡을 찔렀다.

허나 론베르트는 그 말이 도발이라 생각했는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우습다는 듯 되받아쳤다.

“괜한 도발을 하는군. 거짓말을 할 거면 좀 그럴 듯 하는 게 어때?”

그 말과 함께 얼음창들을 가리켰다.

“네놈의 기술에선 에테르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환상 스킬이라도 익혔나 본데 나한테 그딴 수작이 통할 성 싶으냐?”

그래도 감각까지 멍청이는 아닌 모양. 그러나 감각기관만 멀쩡했다.

“당연하지. 이건 스킬이 아니니까.”

“뭐?”

“너흴 상대하는 데 스킬씩이나 쓸 필요가 있을까? 이건 마법이라는 거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시던가.”

“자신감이 지나치군.”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감이라고 부르지 않아. 당연한 일이라고 하는 거지. 그래서 대답은?”

헨리의 물음에 론베르트가 침묵한다.

그러더니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방패 하나와 도끼 한 자루를 꺼내 치켜들었다.

“나는 미라클 체이서의 수장, 론베르트다. 이제 막 들어온 풋내기 플레이어인 네게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

“그래? 그럼 나도 네 말마따나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

론베르트가 그랬다.

멍청이와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그 순간.

“쏴라!!”

론베르트의 외침.

그리고 수많은 원거리 투사체가 헨리에게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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