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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19화 (419/522)
  • 2부. 19화

    ‘여기가 하층로라는 곳이군.’

    이등변 삼각형 모양을 가진 82번 구역의 끝자락에 가면 하층로라 불리는 곳이 있다.

    하층로는 말 그대로 하층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었는데 최하층에서 하층으로 가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이곳을 통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하층로 앞은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못 하겠으면 포기해.”

    “아냐, 이번엔 확실하게 갈 수 있어.”

    “공략법은 다 외웠지?”

    “물론.”

    “신기록 한번 달성해 보자.”

    “그전에 뽑기나 잘하자고.”

    마치 온라인 게임의 레이드 파티들이나 나눌 법한 대화들.

    그들은 모두 무리 짓고 있었다.

    당연했다.

    게이트 하나만 클리어 하면 되는 1층의 튜토리얼 존과는 달리 본층인 2층부터는 게이트 하나가 아닌 ‘하층로’ 전체를 통과해야만 했으니까.

    그래도 하층로는 양반인 편이에요. 하층로는 도중에 포기하면 다시 평화촌으로 돌아올 수가 있거든요. 게다가 스테이지 구성도 다 똑같아서 공략법만 잘 숙지하면 재정비 후 다시 효율적으로 도전할 수가 있답니다.

    그러니 파티를 맺어 하층로에 도전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

    헨리가 하층로 앞을 지키고 있는 관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층로에 오르고 싶은데.”

    “흐음?”

    하층로의 관리자는 널찍한 밀짚모자에 눈밑까지 끌어찬 후드.

    얼굴은 차원의 구멍처럼 검었고 눈이 달려 있을 법한 곳에는 형형한 안광 두 개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대답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초행길인가?”

    “그렇다.”

    “하층로는 1존부터 9존까지 총 9개의 길이 있다. 숫자가 낮을수록 하층로와의 거리가 멀고 숫자가 높을수록 거리가 짧지. 당연히 난이도도 그에 비례한다. 초행자여, 어떤 길로 나아가겠는가?”

    관리자는 친절했다.

    그 물음에 헨리가 대답했다.

    “9존으로 하지.”

    그때였다.

    일순 주변이 조용해진 건.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던 플레이어는 물론 하층로를 다녀와 상처를 회복 중인 플레이어들까지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헨리를 보았다.

    그 반응에, 관리자가 재차 물었다.

    “정말 9존인가?”

    그에 헨리가 다시 한번 확답했다.

    “확실히 9존이다.”

    “음.”

    그 말에 관리자가 턱을 어루만진다.

    그러더니 특유의 친절한 성격을 발휘해 헨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가끔 자네 같은 자들이 있지. 거리가 짧다고 해서 9존에 도전하려는.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9존은 1존보다 최소 10배는 난이도가 어렵네. 물론 9존에서도 다시 귀환해 올 순 있긴 하지만 만약 한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다면 그땐 너무 원통하지 않겠는가?”

    참 친절한 관리자였다.

    어떤 관리자는 헨리를 탑에 입장조차 못 하게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괜찮으니 9존에 입장시켜 줘.”

    “음, 알겠네.”

    자신은 두 번이나 물었다.

    그럼에도 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플레이어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수밖에.

    헨리의 뜻을 접수한 관리자가 손을 들어 시스템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잠까아아안!!”

    손을 버둥이며 헨리와 관리자 사이에 나타난 이.

    다름 아닌 82번 구역에 처음 입장하자마자 만난 스카우터, ‘렌’이었다.

    “잠시! 잠시만요!”

    그 돌발 행동에 헨리는 빤히 쳐다보았고 헨리를 대신해 관리자가 물었다.

    “무슨 일이지?”

    “잠시! 잠시만 이 사람과 대화를 좀 나누겠습니다. 뉴비 씨 나 알죠? 백월 클랜의 스카우터 렌.”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허나 귀찮았기에 모른 척 했다.

    “모른다.”

    “거짓말! 그러지 말고 나랑 잠시만 이야기 좀 해요. 절대로 당신이 손해 볼 대화가 아니니까!”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필사적이었다.

    그래서일까?

    헨리는 그의 절박함에 조금만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헨리가 대화에 응하자 렌이 헨리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혹여 기습이라도 할 참인가 싶어 주변 기척을 읽어 들였지만 주변에는 자신과 렌을 제외하곤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헨리를 끌고 온 렌이 말했다.

    “뉴비 씨.”

    “내 이름은 헨리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헨리 씨! 당신 분명 소속이 있는 것처럼 말해 놓고선 왜 대체 혼자서 움직이는 겁니까?”

    뭐야?

    겨우 그런 걸 따지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건가?

    헨리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네 알 바는 아닐 텐데?”

    “그쵸! 내 알 바는 아니죠! 하지만 난 듣고 말았다구요. 관리자가 당신을 초행자라고 하는 걸. 내가 봤을 때도 당신은 뉴비 같았는데 정말로 초행자였을 줄이야. 아무튼 이야기가 길었는데 핵심만 말하자면 9존에는 절대로 가지 마세요.”

    “왜지?”

    “왜긴요!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거지! 아무리 봐도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입니다. 당신, 이대로 9존에 갔다간 바로 죽습니다.”

    더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귀찮았다.

    그래서 대답조차 않고 다시 관리자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렌이 헨리 앞을 가로막았다.

    “아, 진짜라니까요! 당신은 상식도 없습니까? 하층로의 9존은 절대로 도전하면 안 된다니까요? 공식적인 기록도 그렇잖아요. 지구에서 9존의 첫 번째 구역을 클리어 한 사람이 여지껏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다.

    헨리가 본 최신 헌터 상식 사전에 의하면 그랬다.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은 지구인도 아닐 뿐더러 설령 지구인이라 할지언정 타인과 자신은 다른 존재인 걸.

    하지만 렌이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이유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을 위한 마음.

    그 특유의 오지랖적인 성격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거겠지.

    그렇기에 마법으로 재우거나 물리적인 수단을 통해 기절시키고 싶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헨리가 말했다.

    “혹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아나?”

    “압니다. 한번 보는 게 백 번 듣는 것보다 좋다는 말이잖아요.”

    “난 여지껏 내 눈으로 직접 보아 온 것들만 믿어 왔다.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9존도 그리 할 것이다. 죽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더 이상 날 방해하지 마라.”

    “그건 곤란합니다. 저 또한 9존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리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럼 너도 따라와라.”

    “예?”

    “날 따라와서 내가 정말 위험하다 싶거든 직접 날 데리고 나와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신경 끄고.”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들러붙을 게 뻔하니까.

    그리고 대개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면 나가떨어진다.

    아무리 선의가 중요하다 한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렌은 달랐다.

    헨리의 말에 렌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바로 승낙해 버렸다.

    “알겠습니다. 그럽시다.”

    “뭐?”

    “난 위선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그러니 같이 갑시다. 당신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지구에서 제일 강하진 않을 것 같네요. 그러니 제가 직접 구해 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나 렌, 스카우터들 중에선 가장 도망을 잘 친다구요.”

    렌은 가짜가 아니었다.

    진짜였다.

    그렇기에 헨리도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맘대로 해라.”

    “좋아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 두는 건데 이 모든 건 순전한 내 호의일 뿐입니다. 절대로 당신을 우리 길드에 캐스팅 하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다.”

    이윽고 두 사람이 다시 관리자 앞에 서자 관리자가 헨리를 보며 물었다.

    “어쩌기로 했나?”

    “똑같다. 9존에 간다.”

    “하지만 저랑 같이요!”

    “으음, 결국 그리하기로 한 모양이군.”

    관리자는 두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가 렌에게 말했다.

    “대단한 선의로군. 자네의 행동에 존경을 표하지.”

    “해야 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마치 소방관처럼 말하는 렌.

    이윽고 관리자가 손을 들어 허공에 휘젓자 두 사람 앞에 아카이브 메세지들이 떠올랐다.

    [ <하층로 : 9존>에 입장합니다. ]

    귓가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들릴 무렵, 두 사람의 시야가 바뀌었다.

    *[ <하층로 : 9존>에 입장하셨습니다. ]

    [ 현재 위치는 <9존 1층>입니다. ]

    이윽고 시야가 바뀌었다.

    밝았던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

    그와 더불어 공기층 자체가 몹시 습했다.

    그래도 하늘은 밝았다.

    동그란 보름달과 수많은 별들이 전구처럼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기에.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렌이었다.

    렌이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아, 결국 오게 돼 버렸군요. 죽음의 숲에. 헨리 씨, 헨리 씨는 죽음의 숲에 대해 아십니까?”

    “안다.”

    “그래도 공부를 좀 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저보다는 덜 알 걸요?”

    렌이 죽음의 숲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헨리는 듣기 싫다는 듯 앞서 걸어나갔다.

    “아아! 헨리 씨! 막 멋대로 가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헨리 씨도 공부해서 잘 아신다면서요, 이곳 죽음의 숲이 어떤 곳인지!”

    죽음의 숲.

    당연히 안다.

    애초에 이곳에 온 것도 클레버의 조언 때문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슈아아아아!!!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파공음.

    헨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것을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러자 발 앞에 그것이 박혀 들었다.

    그건 창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쓰기엔 조금 짧은 감이 없는 그런 창.

    허나 이건 창이 확실했다.

    왜냐하면 헨리는 이것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까.

    “스피어 몽키.”

    한국에선 ‘창숭이’라 불리는 놈들.

    창숭이의 창이 눈앞에 박혀들자 렌이 호들갑을 떨었다.

    “끄아아앗! 창숭이! 창숭이에요! 이곳 죽음의 숲의 지배자인 창숭이가 나타났어요!”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정말 겁에 질려서 손사래를 치는 그런 호들갑이었다.

    그도 그럴 게……

    9존 1층에 도착하시면 자신의 꼬리에서 끊임없이 창을 뽑아다 쓰는 녀석들을 만나실 겁니다. 녀석들은 타고난 창잡이들이에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점은 바로 녀석들의 머릿수에 있죠.

    그때였다.

    “키이이이이이!!”

    높은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를 필두로 마치 늑대의 하울링처럼 여기저기서 창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으아아아! 옵니다! 와요!!”

    나무를 헤치고 대지가 울리는 소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수십 마리.

    하지만 실체는 수백 마리에 이를 것이다.

    “지금이라도 얼른 귀환해야 합니다! 여긴 숙련된 공대도 포기하고 꽁무늬를 뺀 곳인데 우리 둘이서 뭘 할 수가 있겠냐구요!”

    “겁 나면 혼자 가라.”

    “예?”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나가야 하니까.”

    이윽고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장대비 같은 창숭이들의 꼬리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흐리게 보면 마치 밤바다 위에 뛰어오른 날치 떼를 보는 것 같았다.

    허나 그것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창이었고 그 타깃은 헨리와 렌이었다.

    수십여 자루의 창이 두 사람에게로 쏟아진다.

    “안 돼!!”

    겁에 질린 렌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렸다.

    귀환을 쓰기엔 이미 늦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

    이질적인 평화로움.

    이상했다.

    분명 들려야 할 것이 들리지 않고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무언가 이상함에 렌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헤, 헨리 씨?”

    밝은 달빛 아래.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허공에 꼿꼿이 서 있는 수백여 자루의 꼬리창 행렬을.

    그리고 그 아래서 눈꺼풀을 좁힌 채 자신에게 날아드는 창 떼를 보고 있는 헨리를 말이다.

    그것은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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