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17화 (417/522)

2부. 17화

[ <2층 : 시작의 관 #82>에 입장하셨습니다. ]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아카이브의 것이었다.

이윽고 눈이 트였고 낯선 천장이 보였다.

천장은 나무 재질처럼 보이는 것이었는데 갈라진 틈 사이로 햇볕 같은 게 떨어졌다.

상체를 들어 올리자 헨리는 자신이 웬 나무 관 속에 누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관이 아니다.

시체를 넣는 그런 관.

그래서인지 기분이 께름칙했다.

헨리는 상체를 일으켜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2층 : 시작의 관 #82> ]

뒤에 붙은 #82.

이곳은 본층이라 불리는 2층이 분명하다.

하지만 뒤에 이런 넘버링 태그가 붙어 있는 이유는 여기가 수많은 2층들 중 82번 2층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비스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층수가 굉장히 많다는 걸 의미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본층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2층이 유난히 많은 건······

‘같은 출신지의 플레이어들을 한데 모아 놓기 위함이지.’

클레버의 기억에 따르면 퍼스트 플로어라 불리는 1층은 어비스 기준에서 ‘튜토리얼 존’에 해당했고.

본층이라 불리는 2층부터는 그 구분을 ‘최하층’이라 부르며 일종의 ‘필터링 존’이라 불렀다.

‘그리고 다음 층계인 ‘하층’부터가 진짜 탑의 세계인 셈이지.’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기 전, 우선 자신의 몸 상태부터 체크해 보기로 했다.

시작은 마력이었다.

휘오오!

전신을 휘감는 마력.

여전히 신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유기체가 된 몸의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 무거움.

별로 반갑진 않았다.

신이었을 적의 헨리는 공기만큼이나 가벼웠으니까.

헨리는 이어서 상태창을 띄웠다.

“상태창.”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최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강화D>

- 근력 : 34

- 체력 : 21

- 감각 : 17

- 에테르 : 29

- 어비스 포인트 : 10,025 ap

++

간단한 프로필.

특성이나 스탯 같은 건 그대로였다.

당연했다.

이건 플레이어로서 헨리가 튜토리얼 존인 1층에서 획득한 전리품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특성과 스탯에도 관심이 갔다.

클레버의 정보에 따르면, 결국 어비스에서 근본적인 강함을 좌지우지하는 건 스탯과 특성, 그리고 스킬이라고 했으니까.

물론 그 강함이란 것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도달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 전엔 있으나 마나 한 것.

그 말에는 심히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게 헨리는 자신보다 스탯 높은 지구의 플레이어들보다 월등히 강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종말이나 관리자 같은 자들을 뛰어넘기 위해선 스탯과 특성, 그리고 스킬의 업그레이드는 필수였다.

헨리는 이어서 새롭게 추가된 신분과 어비스 포인트 탭을 응시했다.

그중에서도 신분 쪽을 주시했다.

‘최하층민이라.’

이레귤러는 그렇다 쳐도 한때 천신이었던 자신의 신분에 최하층이라는 수식어가 붙자 기분이 묘했다.

허나 그런 게 중요할까.

중요한 건 내실이거늘.

헨리는 이어서 인벤토리를 확인했으나 인벤토리는 비어 있었다.

스킬창도 마찬가지였다.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얻은 특전 스킬을 제외하면 모든 스킬창이 비어져 있었다.

점검을 마친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틈 사이로 햇볕이 쏟아지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시야가 바로 서자 헨리는 푸르른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문을 나서자 헨리가 나온 문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헨리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여기가 평화촌이라 불리는 중립 구역이군.’

시작의 관이라 불리는 2층.

이곳을 부르는 별칭들은 많다.

평화촌, 중립 구역, 베이스캠프, 세이브 존 등······

클레버는 이곳을 중립 구역이라 불렀지만 지구에선 이곳을 평화촌이라 불렀다.

그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대뜸 말을 건 건.

고개를 돌려 보니 웬 오렌지색 머리칼에 오렌지색 안경을 쓴 아시아계 남자가 헨리에게 아는 체를 해 보였다.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뉴비?”

“뉴비?”

“그 왜, 어비스에 막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지칭하는 말 있잖아요.”

아아.

그러고 보니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클레버의 정보에서도 확인이 됐다.

헨리가 물었다.

“넌 누구지?”

“아, 저는 렌이라고 합니다. 백월 클랜의 스카우터죠.”

“스카우터? 클랜?”

낯선 단어들의 향연.

그 순간 클레버의 기억이 떠올랐다.

탑에는 길드라는 이름의 대형 단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하층에는 길드가 없고 그 하위 격인 클랜들만 존재하죠.

길드가 회사라면 클랜은 모임 정도의 느낌.

경우에 따라 클랜도 길드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순 있으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무튼 클랜이든 길드든 간에 그들의 공통된 목적은 모든 단체가 그러하듯 당연히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것.

그래서 스카우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머릿수를 늘리는 것만큼 세를 불리는 것에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없으니까.

‘근데 백월이라면······.’

지구에서 들어 본 적 있다.

정확히는 ‘만월’이란 길드의 영업용 클랜.

렌의 말이 이어졌다.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그건 왜 묻지?”

“그냥 통성명 같은 거죠, 뭐. 전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

책에서 본 적 있다.

한국의 옆 나라라고.

그렇기에 헨리도 대강 대답했다.

“한국이다.”

“아, 한국! 알고 보니 우린 이웃이었군요?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웃 나라 주민끼리 잘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아실진 모르겠지만 저희 백월 클랜은 그 유명한 만월 길드 소속이거든요.”

렌의 표정과 말투에 호의가 가득하다. 그렇기에 헨리도 예의 바르게 제안을 거절했다.

“마음만 받지.”

“에? 왜죠? 혹시 아는 곳이라도 있는 겁니까?”

자세하게 설명해 줄 이유는 없다.

헨리는 다시 거절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렌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저 아쉽다는 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그 자리에 서 있을뿐.

자리를 벗어난 헨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평화촌을 둘러보았다.

‘탑이라고 별로 다를 건 없군.’

평화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꽤나 평화로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플레이어들 간의 암묵적인 협약에 의거, 절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이곳도 그냥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즈음, 헨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왠 가게 앞에 멈춰 섰다.

[ 잡화점 ]

가게 현판에는 딱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이름이나 미사여구도 없는 세 글자 그대로.

그렇기에 들어갔다.

내부는 폐쇄적인 분위기의 바깥과는 달리 꽤나 밝았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주인장 호출을 위해 놓여진 조그마한 종이 있었는데 그것을 흔들자 이내 곧 안쪽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네, 어서오세요.”

이윽고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은 멜빵 바지와 빵모자를 걸친 앳되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헨리보다 키가 머리 하나쯤은 작았다.

가게 주인이 말했다.

“잡화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게 주인이 할 법한 전형적인 멘트.

그 물음에 헨리가 손가락에 찬 반지를 빼 탁자 위에 올렸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그것을 집어들곤 나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파시게요?”

“아니.”

“그럼요?”

“클레버가 보내서 왔다.”

“흐음?”

그 말에 남자는 반지를 탁자 위에 다시 올려 두었다.

그런 다음 눈살을 가늘게 찌푸린 후 카운터 밖으로 나와 가게 문을 걸어 잠궜다.

그런 다음 가게 문 옆에 달려 있는 웬 레버를 아래로 당겼고 그러자 가게문 바깥에 ‘영업종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작업을 마친 남자가 그제서야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야, 이걸 정말로 갖고 오시는 분이 있네요?”

조금 전과는 전혀 달라진 행동과 목소리.

그 말에 헨리가 말했다.

“네가 조커인가?”

“조커는 그냥 아무나 돌려 쓰는 별명 같은 겁니다. 제 이름은 브렌이구요. 이곳 최하층 세컨드 플로어의 82구역 지부장이기도 하죠.”

“그렇군.”

“안 놀라네요?”

“클레버가 전부 알려 줬으니까.”

“오우, 정말로 클레버의 말대로군요? 그럼 당신이 바로 그 헨리?”

“날 아나?”

“모를 수가 있나요. 그 친구가 당신 이야길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했는데.”

그 말에 헨리가 피식 웃었다.

클레버 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 거람?

허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브렌의 말이 이어졌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 친구의 계획대로 됐군요. 그럼 전 이제 그 친구가 부탁한 일들을 하면 되겠고요. 그전에 장소를 좀 옮길까요? 보아 하니 짧게 끝날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서요.”

헨리는 브렌의 권유대로 장소를 옮겼다.

마련된 장소는 자그마한 티 티테이블이 있는 곳이었는데 카운터 뒤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공간 스킬입니다. 좁은 곳도 넓게 쓸 수 있게 해 주는. 아공간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브렌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주었다.

“그럼 혹시 저랑 클레버가 속해 있는단체가 뭔지도 아세요?”

그 물음에 헨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모른다. 하지만 당신을 만나면 모든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

“역시 클레버네요.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언정 보안 약속만큼은 확실하게 지켰군요. 그런 의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우린 ‘혁명군’입니다.”

“혁명군?”

“예. 언젠간 이 빌어먹을 어비스를 뒤집어 버리잔 뜻에서 만들어진 단체인데······ 결성된 이유 때문에라도 혁명군 이외의 이름은 따로 붙이지 않았습니다. 괜히 이름 같은 걸 붙였다간 꼬리 잡히기 십상이거든요.”

혁명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브렌의 설명을 들으니 왜 클레버가 자신의 기억 속에 혁명군에 대한 정보를 남기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군.’

그래서인지 클레버가 더 대견하게 느껴졌다.

브렌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듣자 하니 당신은 클레버가 살던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이자 가장 강력한 존재이셨다고?”

“신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겠죠. 본층에 입장했다는 건 탑으로부터 새로운 육체를 받았다는 말일 테니까. 그래서 기분은 좀 어때요? 한때는 신이었는데 지금은 밑바닥 신세가 됐잖아요?”

은근한 표정.

허나 헨리는 장단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별로 유쾌하진 않다. 그나저나 서론이 길군. 잡설은 이쯤 하고 이제 그만 티켓을 줬으면 하는데.”

“성질도 급하셔라. 너무 까칠하신 거 아니에요?”

헨리의 퉁명스런 태도에 브렌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리곤 품에서 명함 정도 크기의 빳빳하고 하얀 종이 한 장을 헨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클레버가 부탁한 스테이지 지정 티켓입니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는 아시죠?”

“알고 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기대하고 있을 테니.”

헨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티켓을 찢었고······

[ <스테이지 지정 티켓>을 사용하셨습니다. ]

[ 지정된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

환한 빛무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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