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8
비운의 천재 (3)
죄.
양심과 더불어 오직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행위.
죄는 인간이 법을 만들면서 탄생했고 그로 인해 처벌이란 것도 만들어졌다.
처벌의 형태는 다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지은 죄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방법부터 지은 죄만큼 돈을 내야 하는 벌금형이나 자유를 박탈하는 금고형까지.
혹은 지은 죄가 너무 무거울 경우 평생의 자유를 박탈하고 주기적으로 매질을 하는 형벌도 있었다.
제국에선 그런 형벌을 무기징역이라고 부르며 아무리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있어도 절대로 사형만큼은 내리지 않았다.
그저 무기징역형을 내릴 뿐.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은 생각보다 고통의 무게가 덜한 가벼운 형벌이었으니까.
북부에 찬바람이 불었다.
이곳에는 대륙 역사상 단 한 번도 온풍이 분 적이 없으며 동시에 꽃 한 송이 핀 적이 없는 혹한의 땅이었다.
사람이 살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되지 않는 땅.
하지만 이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경비병 칼이 말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왜?”
“저기 저 앞에 사람 둘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무슨 소리야? 오늘은 보급 마차가 오는 날도 아닌데.”
“하지만 저길 봐.”
“저기 어디……. 어, 정말이네?”
두 경비병의 시선이 성벽 너머의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칼이 말했던 대로 정말로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뭐지?’
칼이 눈살을 찌푸리며 더 자세히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먼 탓일까, 아무리 자세히 보려 해도 보이지 않자 칼이 망원경을 꺼내려고 품을 뒤졌다.
“찾았다.”
“뭘 말인가?”
“망원경 말이야, 망원경. 당최 보여야 말이지.”
“나를 보려고 망원경을 찾은 건가?”
“나?”
칼은 누군가의 물음에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런데 망원경을 집어 들며 답하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칼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대, 대, 대마법사님?”
“모두들 잘 있었나?”
“추, 추, 추우우엉서어엉!”
희미하게 보이던 인영이 어느새 성벽 위로 옮겨져 있었다.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헨리와 드라칸이었다.
“발락은 안에 있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수고하도록.”
잔뜩 긴장한 병사들을 보며 헨리가 미소를 머금었다.
헨리는 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뒤 드라칸을 데리고 킬라이브에 입성했다.
킬라이브!
무기징역을 받은 최악의 죄수들만 가둬 놓은 대륙 제일의 형무소.
킬라이브는 제국이 건국됨과 동시에 지어졌으며 킬라이브가 지어짐으로써 대륙의 질서는 한층 더 바로서게 되었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헨리가 말했다.
“드라칸.”
“예, 대마법사님.”
“혹시 들리나? 여기 사는 죄수들의 비명이.”
헨리의 물음에 드라칸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희미하긴 했지만 간헐적으로 죄수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들립니다.”
“그렇지? 이곳 킬라이브의 죄수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만 모여 있지. 그래서 죽기 전엔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
“그럼 전 이곳의 죄수들을 연구용 실험체로 사용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어차피 쓰레기인 놈들이야.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이니 전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헨리가 드라칸에게 제시한 실험용 인간의 무한한 공급 방법.
그것은 다름 아닌 갱생이 불가능한 킬라이브의 죄수들을 실험체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이곳에 잡혀 들어온 놈들은 나열하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범죄를 저지른 최악의 쓰레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문해서 죽나, 노쇠해서 죽나,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마법 발전에라도 이바지하고 죽는 편이 훨씬 낫지.’
이것이 헨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킬라이브의 죄수들을 실험체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미래에서 얻은 것이었다.
미래의 드라칸은 킬라이브에서 죄수들뿐만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까지 가둬 놓고 인체 실험을 자행했으니까.
비록 영감을 얻은 곳이 끔찍한 기억이긴 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벌이지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는 것이 헨리가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킬라이브 내부에 진입하자 성벽에서 들리던 희미한 신음이 아닌,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이 본격적으로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본격적으로 들리자 헨리는 힐끗 드라칸의 얼굴을 살폈다.
드라칸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 봐라?’
드라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기쁨, 기대, 희망, 희열…….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는 입꼬리였다.
그래서 놀라웠다.
보통 킬라이브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끊임없이 들리는 죄수들의 비명에 겁을 집어먹거나 패닉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칸의 얼굴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되레 즐거워하고 있었다.
‘설마 설레는 건가?’
딱 그 표정이었다.
소풍 가기 전날의 아이의 표정.
하지만 심정은 이해됐다.
그동안 드라칸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암암리에 연구를 진행하다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런 마당에 죄수들의 비명쯤이야 드라칸에겐 실험용 쥐들의 비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충성!”
“충성! 대마법사님을 뵙습니다!”
대륙에서 헨리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불어 헨리가 8서클 대마법사라는 것도.
그렇기에 갑작스레 나타난 헨리에게 의아함을 표하기보단 모두들 경례를 올려붙이기에 바빴다.
헨리가 병사에게 물었다.
“국장님은 어디 계시지?”
“지하 3층에서 죄수들을 고문하고 계십니다.”
“그래?”
국장.
수감국 킬라이브의 관리자, 징벌왕 발락을 말하는 것이다.
3층이라니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
헨리는 드라칸과 함께 금방 발락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3층에 도착한 헨리는 발락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3층의 중심에 병사들이 진을 치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으니까.
헨리가 중심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우르르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병사들이 길을 트자 발락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대마법사님?”
그의 손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채찍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3층의 중심에서 공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죄수가 묶여 있었다.
헨리가 죄수를 흘깃 쳐다본 후 발락에게 인사했다.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십니다. 국장님.”
“대마법사님이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발락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진다.
헨리가 방문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국장님께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보다 근무 중이신 것 같은데 하시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제가 사실 이놈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사연이라도 있나 보죠?”
“사연이라 봤자 별거 없습니다. 이놈은 얼마 전에 잡혀 들어온 놈인데 무고한 여자들을 28명이나 납치해 사창가에 팔아 버린 아주 지독한 놈입니다.”
“저런, 확실히 이곳에 수감될 만하군요. 아, 그럼 혹시 국장님만 괜찮으시다면 국장님께서 직접 고문하시는 걸 곁에서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구경하시지요.”
고문 구경을 허락받은 헨리는 드라칸과 함께 발락의 업무를 지켜보았다.
발락이 두꺼운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따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가죽 채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살점이 거의 뜯겨져 나가다시피 했다.
살점이 뜯겨져 나간 자리에는 핏물이 금방 맺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죄수의 온몸 곳곳에 피멍과 핏물이 맺혀 있었다.
얼마간 고문을 관람하던 드라칸이 말했다.
“아쉽군요.”
“아쉽다니, 뭐가?”
“죄수를 저런 식으로 고문하면 얼마 가지 못해 죄수는 죽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좋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고문의 취지는 최대한 오랫동안 죄수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오랫동안 고통을 줘야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실감할 테니까.”
“음, 근데 제가 알기론 킬라이브에는 죄수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상주 중인 사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네. 죄수들은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방치해 두니까. 그게 저놈들의 운명이지. 그리고 죄수들을 치료하는 데에 사제라니, 그건 국가적인 낭비잖아?”
“그렇다면 더더욱 발전된 의료 마법이 필요하겠군요.”
“호오, 벌써부터 이곳의 청사진을 그리는 건가? 역시 자넨 참된 마법사야.”
여태껏 기회가 없어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런데 물고기가 바다를 만났으니, 이제 물고기에게 남은 일은 넓디넓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것뿐이었다.
“후우…….”
두 마법사가 고문을 관람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어느덧 고문이 끝났다.
죄수는 기력이 다해 묶인 채로 기절했으며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발락이 가죽 채찍을 병사에게 맡기고 자릴 옮길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드라칸이 앞으로 몇 발자국 나섰다.
그런 다음 피를 쏟아내는 죄수에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언블리딩.”
시동어를 외치자 따스한 빛이 새어나왔다.
새어나온 빛은 금세 죄수를 감싸 안았으며 빛무리에 감긴 죄수는 이내 곧 피를 쏟아내지 않게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발락의 눈동자가 커졌다.
“대마법사님, 이분은……?”
“후후,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입니다. 장소를 옮길까요? 드릴 말씀이 아주 많거든요.”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제 사무실에서 차와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지혈이 끝나자 드라칸이 손을 뗐다.
시체처럼 죽어가던 죄수의 표정에 편안함이 드리웠다.
그 모습을 본 발락이 여러모로 흥분했다.
흥분한 발락이 앞장서서 서둘러 걸음을 옮기자 헨리가 드라칸에게 엄지를 슬며시 들어 올려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는 저 당돌한 행위.
헨리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이에 드라칸도 쑥스러운지 옅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 * *
“인체 실험이라…….”
발락의 사무실에서, 헨리는 드라칸에게 제시했던 조건과 자신의 생각을 버무려 킬라이브에서 펼치고 싶은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무기징역수를 통한 인체 실험과 더 나은 고문 환경을 위한 의료반의 지원, 그리고 그로 인해 얻게 될 제국민들의 더 나은 의료 복지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점으로 헨리가 앞으로 펼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자 발락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변하는 표정들 전부가 놀라움이나 경탄, 기쁨과도 같은, 격렬한 동의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헨리가 말을 마친 직후였다.
“어떻습니까?”
“어떻고 자시고 할 게 있을까요? 역시 대마법사님이십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신 겁니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제 제자, 드라칸이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정책이었습니다.”
띄워 주기가 아니었다.
헨리가 말한 것들은 모두가 사실이었다.
헨리의 칭찬에 발락의 시선이 드라칸에게로 옮겨졌다.
경탄으로 가득 찬 시선.
드라칸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저런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묘하게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부담스러움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헨리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곳 킬라이브에 조그마한 탑을 하나 세우고 싶습니다.”
“탑이요?”
“예, 아무래도 인간학 마법사들을 이리로 이주시키려면 황궁 옆에 설치된 마탑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다른 분들도 아니고 이 혹한의 땅에 마법사님들이 와 주신다니 그 어떤 제국 기관이 그것을 거절할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헨리가 생각한 최종 정책.
그것은 이곳에 또 하나의 상아탑을 세워 본격적으로 의료 마법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지어질 탑의 이름은 ‘의탑’입니다. 오직 인간을 위한 의술만을 발전시킬 곳이죠. 그리고 이곳 의탑의 탑주는…….”
헨리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드라칸을 바라보았다.
드라칸의 경지는 이제 겨우 4서클이다.
하지만 미래엔 오직 인간학만으로 스스로 독학해 7서클의 경지를 이루는 기염을 토한다.
그 말인즉슨, 본인조차 스스로의 재능을 모르는 발견되지 않은 진주라는 뜻이다.
헨리가 말했다.
“바로 여기 이 친구입니다. 이름은 드라칸 로티크, 아마 저를 이어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