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82화 (382/522)

# 382

결초보은 (3)

“없습니다!”

“없다고?”

젊은 성기사의 보고였다.

정말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흔적은 발견됐다.

있어야 할 곳이 사라지고, 대신 난장판이 된 흔적들뿐이었지만 말이다.

로거의 얼굴이 아연실색이 됐다.

“도망친 흔적도 없단 말이냐?”

“예, 지금 필사적으로 찾고 있긴 하나 그 행방이 워낙에 묘연한지라…….”

“허, 이를 어찌할꼬!”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에 로거의 얼굴이 더더욱 구겨졌다.

단 한 번도 로스 교주를 실망시켜 본 적이 없던 그였기에 짜증이 치솟았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어떻게 알고 도망친 거지?’

소식이 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더불어 네프람 교단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간 이들은 다름 아닌 로거의 성기사 부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 네프람 교단의 전력은 그 누구보다도 로거가 잘 알았다.

‘후슬러 그놈이 실력 있는 흑마법사라곤 하지만 마법사와 흑마법사는 다루는 마법 자체가 다르다. 더불어 툭하면 잠드는 꼬맹이까지 데리고 있는 마당에…….’

로거는 머리가 아파 왔다.

남은 흔적들을 미루어 보건데 분명히 이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 순간, 로거의 머릿속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잠깐. 혹시 도망친 게 아니라 습격당한 거라면?’

그렇다면 말이 된다.

이토록 잘게 부서져 죽은 언데드들은, 도망치기 위해 일부러 교단에서 부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습격에 의한 패전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건 그것대로 골치가 아팠다.

네프람 교단의 존재는 평화교 내에서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슬러뿐이긴 해도 혹시 모를 기습에 쉽게 당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게 해 두었다.

그 증거가 바로 언데드들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문득 로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황궁에서?’

황궁에서 알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로거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현재 대륙 내에서 네프람 교단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병력은 극히 드무니까.

‘안 돼, 그것만은 제발……!’

불안해진 로거는 여신에게 기도했다. 부디 자신의 예상이 틀렸기를 바라면서.

* * *

며칠 뒤, 예정대로 제국 건국을 알리는 성대한 건국식이 시작됐다.

골든은 황좌에 앉았고 실버는 제국의 하나뿐인 황태자가 되었다.

황좌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황후를 새로 들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골든은 끝까지 권유를 거절했다.

관심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모두가 최초의 대륙 통일을 이뤄낸 골든의 위대함을 칭송했고, 지혜로운 대마법사 헨리를 찬양했다.

이때만큼은 헨리도 계획을 잠시 미뤄 두고 진심으로 건국식을 즐겼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추억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기쁨을 즐기게 된 좋은 날이었으니까.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가 되던 날, 축제의 흥이 조금 식은 어느 때에 헨리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후슬러로부터 호출 신호가 온 것이다.

헨리는 한달음에 탑의 꼭대기로 이동했다.

그리고 비밀 저택과 연결된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헨리의 등장에 후슬러가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후슬러의 곁에는 과거에 헨리가 죽였던 메시아가 잠에서 깨어난 채로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교섭이 끝난 모양이네.”

“물론입니다. 메시아님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헨리의 시선이 붉은 눈동자를 가진 메시아에게로 옮겨졌다.

척 보기에도 어린 소년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 하나 덕분에 네프람 교단을 대표하는 메시아가 되었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이 있다면 저 어린 외모가 수십 년 뒤까지도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헨리를 응시하던 메시아가 말했다.

“너.”

메시아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헨리를 가리켰다.

초면에 반말이라…… 메시아라는 지위를 믿는 것일까?

그러나 헨리는 그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어린 객기에 웃음이 터졌다.

헨리가 웃든 말든 메시아의 말이 이어졌다.

“마신이 차원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마신도 헨리가 이런 제안을 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메시아가 궁금하다고 해서 헨리가 알려 줄 의무는 없었다.

혹 애초에 그 사실이 정말로 궁금했다면 고개를 좀 더 숙여 예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안 알려 줄 건데?”

“뭐?”

“나는 너한테 그런 호기심을 허락한 적이 없단다, 아이야. 네가 마신과 교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그 사실이 궁금했다면 좀 더 예를 갖추는 게 어떨까?”

말 속에 뼈를 담아 전했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헨리의 말에 메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펼쳤던 손가락을 굽힌 뒤 팔을 내렸다.

그 광경을 본 후슬러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헨리가 후슬러에게 말했다.

“후슬러, 그럼 이제 숲에 더 이상 마물이 나타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수고했어. 내 제안은 그게 전부이니 약속대로 새로운 마왕이 강림할 때까지 여기서 지내도록 해. 필요한 게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내게 말하도록 하고.”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혹시나 하는 얘기지만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일 일이 없으니 시중을 들어 줄 언데드를 제외한 그 어떤 언데드의 제작도 불허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헨리의 당부에 후슬러는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말해. 교단 생활이 지겨우면 새 삶을 살게 해 줄 테니.”

저들의 신앙심이 변절될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헨리는 다시 저택을 빠져나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런데 문득 잊고 있었던 궁금증 하나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 참, 근데 혹시 말이야.”

“예, 대마법사님.”

“지금 너희들이 마신과 협의하에 준비하고 있다는 마왕.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이었다.

헨리는 이미 몇 명의 마왕들을 미래에서 보고 왔으니까.

헨리의 물음에 후슬러가 우물쭈물거리며 메시아의 눈치를 봤다.

메시아가 그런 후슬러를 빤히 쳐다보더니 후슬러에게 물었다.

“알려 주고 싶어?”

“관계를 나쁘게 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알겠어. 대신 이름만이야. 어차피 이름 따윈 알려 줘도 상관없을 테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까탈스러운 척하긴 해도 아직 어린애는 맞나 보다.

건방지긴 해도 자신을 보필하는 유일한 어른, 후슬러에게 많이 의지하려는 게 보였다.

메시아가 말했다.

“그레텔이야.”

“그레텔…… 그레텔?”

“그래, 그레텔. 이 이상은 알려 줄 수 없어.”

메시아가 좀 전의 복수라도 하려는 듯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메시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고 헨리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그레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마신이 애정을 담아 키우던 마왕이 있다더니, 그 마왕이 설마 그레텔일 줄이야.

헨리는 뜻밖의 이름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대답은 그 정도면 충분해.”

궁금증이 풀렸다.

호기심을 충족시킨 헨리는 다시 등을 돌려 비밀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레텔이라…….”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그레텔은 확실히 반가운 이름이다.

하지만 아직 쌓지도 않은 헨리만 아는 정 때문에 순순히 강림을 도와줄 순 없었다.

그레텔은 마족으로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마왕의 신분으로 이 세계에 강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군일 땐 든든한 놈이지만 적군일 때는…… 생각만 해도 귀찮아지겠군.’

그레텔은 본 드래곤 수십 기를 시장의 싸구려 마술사가 비둘기를 부리듯이 부리는 진짜 마왕의 면모를 지닌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그레텔에 대한 새로운 대처 방안이 필요할 듯싶었다.

헨리는 탑 꼭대기 층을 빠져나왔다.

마탑에서 황도까지 이어지는 대로에서 바라본 수도 린드버그는 여전히 건국 축제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다.

헨리는 기쁨에 취한 제국민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국민들의 미소는 헨리가 참 보고 싶었던 미소였다.

헨리는 저 미소가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진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헨리 모리스 님?”

누군가 헨리의 이름을 부른다.

여자 목소리다.

그 부름에 헨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하마터면 딸꾹질을 할 뻔했다.

“헤, 헬라?”

“어머,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군요.”

헬라.

헨리가 겪은 미래에서 그를 도와주다가 말년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철의 여왕.

그녀에겐 여러모로 미안한 것들이 참 많았다.

헨리는 문득 이 여자가 왜 여기서 튀어나오게 된 건지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건국식에는 대륙 전쟁 중에 동맹을 약속했던 나라들의 왕도 초대했기 때문이다.

헬라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헨리 님을 한 번 더 뵙고 싶어서 마탑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운이 좋았네요. 마탑에 가기도 전에 헨리 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저를 만나러 오셨다고요?”

“예. 헨리 님이 워낙에 바쁘셨어야 말이죠. 그냥 안부 인사나 드릴 겸해서 술 한잔하고 싶었어요.”

“술, 술요.”

그녀의 손에는 큼지막한 술잔 두 개가 쥐여 있었다.

술잔에 담긴 술의 빛깔이 영롱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혀로 아랫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제 잔, 받아 주실 거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과거에 그녀와 약속했던 것들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헨리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내심 미안해졌다.

고심 끝에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여왕님.”

“호호, 역시 대마법사님다우세요. 그럼 우리 이렇게 길에서 이러지 말고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잔을 나눌까요? 저는 이 기회에 마탑 내부를 좀 구경해 보고 싶은데…….”

헨리가 선뜻 술잔을 받아들자 헬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팔로 헨리의 팔을 휘감았다.

목적이 다분한 스킨십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이번만큼은 그녀의 뜻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마탑을 구경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신나라!”

그녀의 눈가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 * *

하루가 지났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헨리는 헬라의 손아귀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침대에 곤히 잠든 헬라를 내버려둔 채 헨리가 건물을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 죽는 줄 알았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다.

하지만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어젯밤보다 더욱 끔찍한 아침 방어전이 헨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기에 일찍이 그녀로부터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거리 곳곳에 술에 취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는 제국민들이 보였다.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헨리는 건물을 빠져나와 마탑으로 돌아왔다.

의자에 몸을 기댄 헨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헬라라니…… 생각지도 못했어.’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미안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안한 마음을 털어 낼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헨리는 문득 동맹국의 다른 왕들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군.’

헬라 덕분에 떠올릴 수 있었다.

헬라를 비롯한 헨리와 최후에 최후까지 함께 했던 다른 동맹국들의 왕들을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로부터 한참이나 과거였으니 다른 왕들이 동맹국들을 통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번 입었던 은혜를 모른 척할 생각은 없었다.

‘동맹국들부터 돌아야겠군.’

생각지도 못한 할 일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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