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81화 (381/522)

# 381

결초보은 (2)

지하에서 헨리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 줄줄이 뽑혀 나왔다.

해골 병사들이나 데스나이트, 거기에 메시아의 수발을 들던 후슬러와 메시아가 기거하는 신전까지 말이다.

장관이었다.

고구마들이 줄기에 엮여 줄줄이 뽑혀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냥 감상만 하진 않았다.

헨리는 뽑혀 나오는 것들 중 해골 병사나 데스나이트 같은 언데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도륙했다.

손쉬운 일이었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역중력 마법으로 떠오른 것들 중에 깜짝 놀란 표정의 후슬러가 보였다.

과거라서 그런지 후슬러 또한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반가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재회에 대한 해후는 잠시 뒤로 미뤄 두기로 하고 헨리는 후슬러가 보든 말든 연달아서 언데드들을 도륙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데스나이트를 처리했을 때, 후슬러의 얼굴엔 깊은 절망만이 드리웠다.

딱!

손가락을 튕겨 역중력 마법을 캔슬시키자 허공에 떠올랐던 흙더미들이 일시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오직 둘.

후슬러와 메시아는 아직도 허공에 떠 있었다.

떠오른 두 사람을 향해 헨리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헨리 앞으로 잠든 메시아와 후슬러가 당겨졌다.

후슬러가 말하기 전에 헨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

“뭐, 뭐?”

후슬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다시 보니 반갑다니?’

후슬러의 기억 속에 헨리는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헨리는 정말 반가웠다.

과거, 메시아는 헨리에게 죽었고 후슬러는 아서스에게 죽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랜 친우 같은 막역한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헨리의 반가움은 죽은 자를 다시 만난 것에 대한, 딱 그 정도의 반가움이었다.

헨리가 메시아를 저만치 멀리 떨어뜨려 놓은 후 말했다.

“자, 메시아는 저기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해 봐.”

“하, 하라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뭐긴, 네 주특기 있잖아. 펑하고 터지는 거.”

“그, 그걸 어떻게!”

“안 해? 안 할 거면 말고.”

후슬러가 가진 최후의 비기.

극악의 맹독을 동반한 자폭.

헨리는 베놈의 심장 덕분에 폭발에 휘말려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자폭을 시도한 후슬러는 사경을 헤매었다.

그런 후슬러를 엘라곤의 초회복술로 구해 주었고.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헨리는 일부러 도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엘라곤이 없어 혹시라도 후슬러가 자폭하기라도 한다면 후슬러의 죽음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으니까.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헨리에게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헨리는 최대한 자기 선에서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후슬러의 기를 최대한 꺾어 놓았다.

그리고 후슬러는 헨리는 예상대로 확실하게 기선 제압당해 기가 팍 꺾였다.

딱!

헨리가 손가락을 다시 튕기자 메시아와 후슬러가 헨리 앞으로 내려왔다.

메시아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헨리는 시선을 옮겨 후슬러에게 물었다.

“네가 후슬러지? 네프람 교단의 교주임과 동시에 메시아를 보필하는 유일한 교원.”

“그걸 어떻게?”

“너, 내가 누군지 몰라?”

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후슬러가 헨리의 얼굴을 한참이나 뜯어 보더니 이내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 헤, 헨리 모리스?”

“그래, 내가 바로 그 헨리 모리스다.”

이럴 땐 원래의 얼굴이 참 편리하다고 느낀다.

헨리는 골든과 더불어 현재 대륙에서 가장 ‘핫’한 인물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헨리를 알아본 후슬러가 짐짓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헨리가 재빠르게 말했다.

“쫄지 마, 너네 죽이러 온 게 아니니까. 오히려 너희를 구해 주러 왔다.”

“구, 구해 주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헨리임을 알아본 후슬러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경어가 튀어나왔다.

이에 헨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냐? 이렇게 꽁꽁 숨어 있는데.”

“그건 저도 잘…….”

“쯧쯧,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 봐라. 평화교의 교주가 너흴 팔아 넘겼어. 너희 메시아가 마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다음 마왕의 강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말이야.”

“……!”

후슬러가 더더욱 놀랐다.

대체 몇 번이나 놀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아직 놀랄 사실들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얼마 전에 베가루스를 처치하고 온 몸이지. 어때, 이제 감이 좀 와?”

거짓말이나 변명을 해 볼 새도 없이 헨리가 모든 사실들을 술술 언급하자 후슬러는 빠르게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두 눈을 감으며.

그러나 헨리는 그런 후슬러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래? 갑자기 웬 한숨? 못 들었어? 난 너희들을 구해 주러 왔다니까?”

“……예?”

“귀 먹었어? 구해 주러 왔다고. 아마 좀 있으면 평화교에서 파견한 성기사들이 너희들을 죽이러 올걸? 못 믿겠으면 계속 여기서 기다려 보든가.”

후슬러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친다.

헨리가 말했다.

“자세한 이야긴 자릴 옮긴 다음에 나누도록 하지.”

“자릴 옮기다니요? 저흴 대체 어디로…….”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헨리는 후슬러와 메시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번쩍!

자리에는 쑥대밭이 된 교단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빛이 번쩍였다.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연구실처럼 보였다.

후슬러가 불안한 기색으로 메시아를 꼭 붙들었다.

메시아는 척 보기에도 어려 보였다.

이제 겨우 소년이나 되었을까 하는 외모, 저 외모는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다.

헨리가 아서스를 상대할 신력을 얻기 위해 네프람 교단에 왔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으니까.

메시아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에서 깨지 않는 메시아를 보며 헨리가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잘도 자네.”

헨리의 중얼거림을 후슬러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알 수 없는 말보다 납치되듯 끌려온 이곳이 어디인지가 더 중요했다.

후슬러가 메시아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여긴 어딥니까?”

후슬러의 눈빛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아는 데다가 헨리의 신분도 잘 알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헨리가 대답했다.

“내 연구실.”

“……예?”

“귀 먹었어? 내 연구실이라고.”

헨리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연구실처럼 보이는 이곳은 실제로 헨리의 연구실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곳은 수도 린드버그의 황궁 옆에 지어진 마탑의 가장 꼭대기 층이라는 뜻이다.

그런 곳에, 헨리는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이다.

후슬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로 헨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헨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희, 살고 싶지 않냐?”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고 싶으냐는 물음에 후슬러는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슬러의 그 끄덕임을, 헨리가 흡족한 표정으로 보았다.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나랑 거래 하나만 하자.”

“거래……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래. 너희가 내 제안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목숨은 물론이고 너희가 마왕을 강림시킬 수 있을 때까지 안전하게 숨겨 주기까지 할게.”

“예, 예? 뭐, 뭐라고요?”

“넌 진짜 귀가 먹은 모양이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후슬러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얼마 전에 마왕을 쓰러뜨린 사람이 새로운 마왕의 강림을 돕겠다니?

헨리 입에선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곤 도저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니냐?”

“그렇긴 합니다만…….”

분명히 후한 조건이었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

대가가 후하면 그만큼 조건도 어려울 게 분명하다.

세상엔 공짜란 없으니까.

후슬러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제안, 수락한다는 의미지?”

“조건이라도 먼저 들어보면 안 될까요?”

“조건이라……. 좋아,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냥 말해 주지.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난 마신의 힘을 빌리고 싶어.”

“마신의…… 힘 말씀이십니까?”

후슬러의 눈살이 가늘어졌다.

정보가 어디까지 누설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단의 메시아가 마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더 감출 내용도 없었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대륙을 평정한 대마법사가 대체 무엇이 부족해 마신의 힘을 원하는지 말이다.

헨리가 말했다.

“어차피 말해 줘도 넌 모를 테지만 네가 없으면 메시아를 보필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말해 줄게. 너, 마물의 숲 알지? 혹시 그 끝에 가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숲의 끝에 가면 마계와 연결된 차원의 틈이 있어. 그걸 마계 쪽에선 차원 재해라고 부르는데 그걸 열고 닫을 수 있는 힘이 마신에게 있다.”

어차피 정보의 출처를 말해 줄 생각은 없다.

그래서 헨리는 마음 놓고 원하는 바에 대한 정보를 읊조렸다.

“내 요구 조건은 간단해. 그 틈을 마신이 닫아 줬으면 좋겠어. 그 틈 하나 때문에 매년 죽어 나가는 인명 피해가 장난이 아니거든.”

“으음!”

“으음은 무슨! 어차피 최근에 마왕이 죽어서 다음 마왕을 다시 소환하려면 몇십 년은 족히 걸리잖아? 그때까지 책임지고 메시아를 지켜 줄 테니까 틈 좀 닫아 달라고 해.”

다소 황당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상부상조의 의미가 담긴 제안이었다.

그러나 후슬러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했다.

아니, 현 상황에서 네프람 교단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사실 이런 기회랄 것도 없이 원래대로라면 대륙 평화를 위협했단 이유로 즉각 사형에 처해졌을 테니까.

하지만 후슬러는 네프람 교단의 교주이긴 하나, 실질적으로 마신과 교감하는 건 메시아였으므로 후슬러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후슬러가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헨리가 피식 웃으며 한쪽 벽면을 두드려 보였다.

똑똑-!

그러자 벽이 허물어지며 못 보던 문이 생겼다.

헨리는 자연스럽게 그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문 너머로부터 탑의 일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어느 거대한 저택의 내부 풍경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본 후슬러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헨리가 말했다.

“비밀 저택과 연결된 워프 게이트야. 당연한 얘기겠지만 저 안의 저택은 오로지 내가 허락한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지. 덧붙여서 이곳의 존재는 아직 나밖에 몰라. 너희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거든. 어때? 이만하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몸을 숨겨도 모를 것 같은데?”

고민하는 후슬러에게 헨리는 먼저 보상을 보여 주었다.

척 보기에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저택이었다.

후슬러의 눈빛에 지하에서 보내 왔던 지난날의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

그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생해 왔던가?

그러나 헨리의 제안만 받아들이면 헨리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편안하게 다음 마왕의 소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결심을 마친 후슬러가 말했다.

“메시아님께서 깨어나시면 무조건 설득해 내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확답을 받아낸 헨리는 두 사람을 비밀 저택으로 안내했다.

저택에는 새 의복을 비롯하여 각종 식료품과 술, 그리고 맑은 물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후슬러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 웃음이 마치 가난한 가정 주부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안내를 마친 헨리가 말했다.

“메시아에게 확답을 받아 내면 그걸 찢어. 그럼 곧장 찾아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호출지를 받아 든 후슬러가 자신 있게 외쳤다.

교섭을 마친 헨리는 다시 탑의 연구실로 돌아와 자신의 의자에 몸을 기댔다.

헨리는 푹신한 의자에서 기지개를 편 후 편안하게 다리를 꼬며 생각했다.

‘마신 놈, 이건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숲의 끝에서 마계의 틈을 다시 보았을 때, 번개처럼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떠올린 아이디어가 실제로 적용될지는 미지수였으므로 긴가민가하던 차였다.

그러나 현재까진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헨리는 편안하게 누운 자세에서 계획표가 적힌 노트를 꺼내 들었다.

남은 계획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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