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8화 (348/522)
  • # 348

    단서 (1)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반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최근의 반년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새에 많은 것들이 바뀐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격동의 중심에는 남은 인류를 모아 새롭게 건국한 ‘모리스’라는 나라가 있었다.

    모리스.

    헨리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헨리의 성을 따서 지은 나라였기에 평범한 성씨였던 모리스는 이제 새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왕조가 되었다.

    모리스의 왕이 된 헨리는 낭독했던 건국 선언문대로 모리스 왕국의 국민들에게 왕국의 태평성대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반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무슈를 수도 삼아 새롭게 발돋움을 시작한 모리스 왕국은 문화와 종교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국민들의 대통합을 이뤄 냈다.

    대통합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식량난을 비롯한 국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적당한 선에서 치안을 유지해 주니 모든 국민들이 모리스의 정책에 따라 주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한 화합을 이루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모리스에서 이뤄 낸 여러 성과들이 남은 인류를 하나의 국민으로 만드는 것을 성공시켰다.

    왕이 부족함없는 식량과 치안을 보장해 주니 국민들에게 자정 작용이 생긴 덕분이었다.

    이렇듯 처음에는 혼란과 불안이 가득했던 모리스였지만 기근과 범죄가 척결되자 사람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발전으로 이어졌다.

    발전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식인 계층이었다.

    무슈에는 다양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원래부터 무슈에 기거하던 여러 분야의 장인들을 비롯해 피난민으로 흘러 들어온 음유시인이나 역사가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들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해결되자마자 곧바로 본래의 직업의식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재능을 기부했다.

    바야흐로 문화 발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기에 모리스에 기거하는 국민 그 누구도 현 시대가 태평성대라는 걸 의심해 마지않았다.

    도리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새로운 시대에 몸을 담가 너 나 할 것 없이 새 역사에 이름을 새기기 위해 모리스의 발전을 도모했다.

    여느 소설에나 나올 법한 행복한 결말이었다.

    적어도 헨리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말이다.

    헨리는 모리스 왕국의 유일한 권력이 되었지만 막상 왕국에 얼굴을 잘 비추진 않았다.

    식량난을 해결한 이후, 헨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소수의 마법사들과 함께 설탑에 틀어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마법사들의 상아탑 또한 모리스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의 편의성을 위해서라도 국민과 가까운 곳에 마탑이 있어야 한다는 헨리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마탑의 이름이 의탑(依塔)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편안히 의지하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헨리는 처음에 꾸렸던 세 개의 팀들 중 두 개의 팀을 의탑에 두고 오직 자신이 소속된 연구 팀만을 설탑의 출입에 허락했다.

    그렇기에 의탑이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의탑으로 연구실을 옮기지 않은 것이다.

    헨리는 그곳에서 반년 간 부하 마법사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오직 맹신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설탑 내부에는 피 냄새가 늘 가득했다.

    설탑 소속 마법사 전원이 의탑으로 이사하면서 한 층에 불과했던 맹신자 연구실을 탑 전체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 * *

    연구실에 헨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음.”

    헨리의 코끝에 고기 굽는 냄새가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실험에 실패한 맹신자를 순식간에 전소시켰기 때문이다.

    헨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대신 허공 가득히 펼쳐진 각종 실험 공식들을 눈으로 훑으며 다음 실험을 준비했다.

    곧이어 지하 감옥에서 새로운 맹신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끌려 올라온 맹신자는 맹신자 혼자서만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맹신자 특유의 기분 나쁜 신음도 없었다.

    헨리가 미동도 신음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조치를 취해 둔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미약한 신음에 아주 조그마한 발버둥이었지만,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헨리에게 커다란 정신적 대미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점차 마모되다가 종국에 닥칠 감정의 붕괴를 막기 위해 맹신자들을 완벽한 실험체로 탈바꿈시켰다.

    마치 아무런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말이다.

    “시작.”

    ‘다음’과 ‘시작’.

    딱 두 음절에 국한된 대화였다.

    헨리의 명령에 박제된 맹신자를 중심으로 다시금 광명이 폭발했다.

    실험 초창기에 보았던 나선형 빛무리와는 박력 자체가 달랐다.

    두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굉장한 크기의 광명이 폭발했지만 헨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맹신자를 응시할 뿐이었다.

    코끝에 탄내가 가득했다.

    이번에는 머리통이 폭발하지 않고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실패였다.

    “다음.”

    사각사각.

    헨리의 명령에 한쪽에서 펜촉으로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실험을 했으니 실험 일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록된 종이가 벌써 수백 뭉치였다.

    헨리는 명령과 함께 허공에 쓰인 글씨의 일부를 손으로 지웠다.

    실패한 공식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방금 막 좀 전의 실험 방법을 지운 직후였다.

    “실험체가 떨어졌습니다, 전하.”

    로어였다.

    반년 사이에 헨리의 호칭은 대마법사에서 전하가 됐다.

    물론 헨리는 전하라는 호칭보단 대마법사로 불리길 원했다.

    하지만 이것은 로어의 고집이었다.

    자신이라도 헨리를 전하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헨리조차 스스로가 한 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로어는 지하 감옥에 구비해둔 맹신자들이 바닥났음을 헨리에게 알렸다.

    이에 헨리가 대꾸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실험체가 떨어졌다는 말은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 없으니 일과를 마치겠다는 뜻이었다.

    인사말을 남긴 로어는 팀원들과 함께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로어가 이렇듯 서둘러 모습을 감추는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부턴가 헨리는 쓸데없는 사담을 나누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오랜 실험으로 많은 양의 심력이 소모됐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로어가 헨리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모리스로 이동하기 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헨리를 보며, 로어는 옛날에 죽은 초대 탑주를 떠올렸다.

    초대 탑주의 이름 또한 헨리 모리스.

    그 또한 연구에 몰두할 때면 지금의 헨리처럼 사담을 금하고 감정을 절제했기 때문이다.

    모리스에 도착한 로어가 설탑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쯧쯧, 우리에게도 짐을 좀 덜어 주시면 좋으련만.’

    사실 실험체로 쓰일 맹신자들이 바닥나면 밖에 나가서 또 포획해 오면 될 일이었다.

    바깥에는 여전히 맹신자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헨리는 그 일을 자신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러한 행위들이 누적되어 팀원들의 정신에 대미지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괜찮다고 몇 번이나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였지만 그럼에도 헨리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래서 헨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그나마 헨리가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이라 판단해 잠자코 지시에 따랐다.

    팀원들이 사라진 직후, 팀원들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헨리가 중얼거렸다.

    “오늘도 실패인가……?”

    벌써 반년째였다.

    헨리는 처음에 말했던 대로 새로운 왕국을 건국하고 왕국을 다스리는 데 쓰일 법률 제정과 기근 대책, 그리고 치안 문제 등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그 덕분에 따로 국교를 지정하지 않아도 헨리 자체가 새로운 종교가 되어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바야흐로 성군의 태평성대 시대가 열린 셈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계획했던 대다수의 것들을 이루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맹신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레버.”

    -예, 마스터.

    “오늘도 부탁할게.”

    -예, 알겠습니다.

    클레버는 진화를 마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그래 봤자 미믹이라는 종족 특성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무려 브릴린테를, 즉 마왕을 잡아먹은 최초의 마물이었다.

    더불어 권속은 주인이 가진 마력에 영향을 받는 존재.

    그러니 마력이나 무력 등 종합적인 능력을 미루어 보았을 때 클레버는 과거의 브릴린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해 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버는 헨리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아니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클레버가 엄청난 진화를 이뤄 냈다고는 하나 여전히 헨리가 가진 힘이 더 막강하였기에.

    헨리는 클레버에게 맹신자들의 수급을 부탁했다.

    온종일 맹신자들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맹신자들을 수급해 오기엔 정신적 피로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로어에 이어 클레버 또한 모습을 감추자, 헨리는 연구실 한쪽에 마련해 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뉘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저녁이다.

    평소 자정이 다 되어서야 일과가 끝나는 걸 생각하면 오늘은 꽤나 일찍 여유를 가진 셈이다.

    푹신한 의자에 던져 넣은 육체가 버터 녹듯이 늘어졌다.

    사실 몸은 그다지 피로하지 않았다.

    검술을 익힌 헨리의 체력은 일생을 통틀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하루 동안 체력 소모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하루 종일 서서 마력 분배를 하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진짜 문제는 머리에 있었다.

    원하는 것을 무(無)에서 얻으려 하니 주먹구구식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맹신자에게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법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어떤 연구든 간에 실험이 이루어지는 원리 자체는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실험 데이터가 쌓여 갈수록 헨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혹시 나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 든 생각이었다.

    실험을 함에 있어 부정적인 생각은 죄악에 가깝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법사는 그 어떤 위대한 발견도 이뤄 낼 수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실험 데이터가 쌓여 갈수록 이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는 맹신자에 있었다.

    헨리가 하고 있는 실험은 절개당한 감정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즉,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사라진 것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언가를 합성하거나 없애서 발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내야만 했다.

    이 실험이 실패하면 세상을 떠도는 모든 맹신자들을 모조리 죽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면밀하고 꼼꼼하게 맹신자들을 분석했다.

    그러나 맹신자들의 뇌를 아무리 정밀 분석해도 그 어떤 절개의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법 수식이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맹신자들은 말 그대로 맹신자들 그 자체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헨리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법 수식이나 신력, 그리고 수술 같은 아주 조그마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현재 헨리가 적용하고 있는 실험 방식이 맞는지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서스의 손에 죽어 나간 옛 동료들의 장례는 물론이고, 새로운 왕국, 그리고 남은 인류의 미래까지 모든 것들을 완벽에 가깝게 책임졌다.

    하지만 단 하나.

    오직 그 빌어먹을 맹신자들에 대한 문제만 해결하지 못해 매일같이 두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헨리는 허공에 띄워 둔 수많은 룬어들을 보았다.

    아직 적용해 보지 못한 술식과 공식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

    그러나 저 방법들 중에 헨리가 원하는 답이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실험을 멈출 수도 없었다.

    헨리는 문득, 할 수만 있다면 드라칸, 그 빌어먹을 놈을 불러다가 어떻게 맹신자들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캐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드라칸에게 직접?”

    소파에 던져 넣었던 육체가 반동과 함께 치솟았다.

    헨리는 위대한 발견의 단서라도 찾은 것처럼 미묘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몇 개월 만에 치솟는 입꼬리였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아무래도 단서를 붙잡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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