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9화 (349/522)

# 349

단서 (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애초에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드라칸을 불러다가 족쳤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해답의 단서를 찾았다고 생각한 헨리는 곧바로 강령술을 준비했다.

자기 자신도 강령술로 제2의 인생을 얻었고 헥터를 비롯한 몇 명을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강령술을 발동시켰다.

그렇기에 헨리는 어렵지 않게 강령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1차적인 준비는 말이다.

헨리는 강령술식의 모든 준비를 끝마쳤으나 아직 한 가지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드라칸의 유품.

특정 영혼을 소환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물론 유품을 구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늘 그래 왔듯 스칼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니까.

곧이어 스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스칼이 불룩하게 나온 자신의 아랫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제 그만 슬슬 정산해 주는 게 어때?

“이번 거래만 끝마치면 한꺼번에 해 줄게.”

-좋아. 이번엔 뭐가 필요한데?

“드라칸 기억하지? 놈의 유품이 필요해.”

-난 또 뭘 준비하나 했더니, 그런 거였냐? 좋아, 이번 거래까지 해서 청구서를 준비할 테니 잔금 두둑이 준비해 두라고.

“좋으실 대로.”

스칼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더니 이내 곧 자그마한 펜던트 하나를 내밀었다.

-그거 아냐? 이 펜던트에는 재미난 사연이 있다.

“사연?”

-응. 드라칸이 아서스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때 아서스가 드라칸에게 충의의 증표로 준 게 바로 이 펜던트야.

“……쓸데없는 물건이군.”

-너한테는 그렇겠지. 하지만 드라칸에겐 소중한 보물들 중 하나였어.

“그래 뭐, 그 정도 정념이 깃든 물건이면 술식의 제물로 바치기엔 딱이겠네.”

-그렇지. 그럼 행운을 비마.

스칼은 펜던트를 남긴 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헨리는 받아든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을 자세하게 살폈다.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펜던트.

아티팩트는 아닌 것 같았다.

‘정말 단순한 증표인 건가?’

아서스가 워낙에 음흉한 놈이다 보니 무슨 꿍꿍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건 없었다.

마침내 마지막 준비가 끝났다.

헨리는 강령술식 중앙에 펜던트와 제물을 올려둔 뒤 주문을 외웠다.

“이리 나오거라.”

신이 된 후에 생긴 장점들을 꼽으라면 그것은 더 이상 마계어가 마계어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흑마술어와 마계어, 그리고 신어는 모두 같은 언어.

그리고 마계에서 마족과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능숙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된 헨리는 시답잖게 구분된 언어의 비효율성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주문을 외우자 제물과 헨리의 신력에 술식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강령술식 중앙에 허공의 틈이 갈라지며 명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는 일전에 마계와 명계가 같은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계에 직접 다녀와 보니 명계는 마계와 전혀 다른 곳이란 걸 깨달았다.

벌어진 명계의 틈으로부터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칸이었다.

드라칸은 진화를 이루기 전에 가졌던 길쭉하고 창백한, 귀신을 연상케 하는 외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곧 명계의 틈이 닫혔고 술식 중앙에 소환된 드라칸이 천천히 눈을 떴다.

헨리가 말했다.

“정신이 좀 드냐?”

-넌……!

“민망하게 뭘 놀라고 그러냐? 아무튼 오래간만이다. 그 빌어먹을 상판대기를 얼마나 보고 싶던지.”

헨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드라칸을 불러내 직접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드라칸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헨리가 능글맞게 인사를 건네자 드라칸의 눈 밑 살이 파르르 떨렸다.

생글거리며 웃던 헨리는 곧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밋밋해진 입술을 움직여 드라칸에게 말했다.

“바깥에 나돌아 다니는 맹신자들, 네 작품이라며?”

-그렇다.

“맹신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그걸 내가 말해 줄 것 같나?

“그래?”

역시나였다.

드라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됐다.

그러나 심정만 이해될 뿐, 심정에서 비롯된 놈의 행동들까지 이해해 줄 생각은 없었다.

헨리는 밋밋해진 입술을 비틀었다.

동시에 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내가 지금 너한테 부탁하는 입장으로 보여?”

-내 두 눈은 멀쩡하다. 그래서 너의 화난 모습이 똑똑히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대체 왜 너에게 그 방법을 알려 줘야 하지?

너무 당당하다 보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렇기에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헨리는 드라칸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헥터를 통해 죽은 영혼이 명계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태론 의미 없는 말싸움으로 늘어질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채찍을 보여 줘도 겁먹지 않는다면 당근을 보여 주는 수밖에.

헨리가 목소리에 힘을 빼고 말했다.

“태도가 몹시 당당하네. 넌 네가 한 일들에 대해 한 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마음대로 해석해라.

“그렇군.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지. 그런데 말이야……. 넌 혹시 네가 모시는 주군인 아서스가 나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뭐?

드라칸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몰랐던 모양이다.

이해는 된다.

죽은 아서스의 영혼이 명계로 흘러 들어갔다고 해서 두 사람이 만났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으니까.

헨리의 말이 계속됐다.

“아서스는 나한테 패했다. 그리고 난 인류 최초로 9서클의 경지를 이루었고 신들에게 인정을 받아 마법의 신이 되었다.”

-뭐, 뭐라고?

“들은 그대로다. 한 번 더 말해주랴?”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드라칸의 첫마디가 떨렸다.

시퍼런 영체 상태라 바뀐 안색은 볼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다.

굳이 안색을 보지 않아도 놈이 당황했다는 증거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헨리는 당황하는 드라칸에게 스칼에게서 받은 아서스의 펜던트를 내밀어 보였다.

“못 믿겠으면 직접 네 눈으로 봐라. 그리고 생각해라. 이게 지금 어떻게 내 손 안에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그리고…….”

헨리는 손바닥을 펼쳤다.

헨리가 손바닥을 펼치자 푸른 불꽃이 일렁이더니 이내 곧 푸른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들만의 고유한 신분증인 ‘마력패’였다.

헨리의 마력패는 블루 드래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 일컬어지던 블루 드래곤의 공식적인 두 번째 계승자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소환된 블루 드래곤은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에 비상했다.

그러더니 이내 곧 헨리의 손바닥에 푸른 불길을 토해 냈다.

뜨겁진 않았다.

이것은 순전히 헨리의 통제하에 이루어지는 행위들이었으니까.

쏘아진 불꽃은 이내 곧 거대한 원형을 만들어 냈다.

원형은 곧 심장이 되었고, 만들어진 심장 위에 아홉 개의 고리가 만들어 졌다.

아홉 개의 고리가 달린 푸른 심장.

헨리는 자신의 마력패인 블루 드래곤을 통해 자신의 마력 코어를 드라칸에게 보여주었다.

가진 힘을 보여준 헨리가 드라칸에게 물었다.

“이게 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겠지?”

-이, 이건……!

당당하기 그지없던 드라칸의 목소리가 그제야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떨리다 못해 촉촉하기까지 했다.

헨리는 9서클의 경지를 이룩했지만 로어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미 8서클의 경지만으로도 인류 최고가 되었고 마법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마당에 9서클과 차원의 힘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때가 되면 공개할 것이다.

정보는 아낄수록 좋은 것이니까.

그런 이유로 헨리가 9서클을 이룩한 사실을 알게 된 건 드라칸이 최초였다.

아홉 개의 서클이 그려진 헨리의 심장을 본 드라칸이 내적 혼란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야 될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입꼬리를 올렸다.

마법사에게 있어 9서클은 그저 꿈같은 게 아니었다.

신화였고 전설이었다.

모두가 한번쯤은 목도하고 싶은 그런 신화이자 전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이룩한 9서클이라 할지라도 모든 마법사들은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헨리를 배신하고 인류의 적이 되어 끝까지 항쟁했던 자신에게, 그것도 죽어 백골 한 점 없는 자신에게 신화와 같은 9서클을 보여 준 것만으로도 드라칸은 헨리에게 경의 이상의 감사함을 느꼈다.

드라칸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뱉을 말을 고르지 못해 그저 벌리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헨리는 드라칸이 다음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칸이 양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소서, 마법의 신이시여…….

“이제라도 알면 됐어.”

누군가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이 된다.

헨리의 아홉 번째 서클이 그랬다.

서클을 보여준 직후 180도로 태도가 바뀐 드라칸 앞에 헨리가 미소 지으며 섰다.

헨리가 물었다.

“자잘한 감탄사는 필요 없고. 그래서 도와줄 거지? 내가 저 빌어먹을 맹신자 문제 때문에 벌써 반년째 개고생 중이거든.”

문제의 해결이 코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헨리는 경쾌한 어조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드라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마, 마법의 신이시여. 저, 그, 그것이…….

“음?”

당황하는 드라칸을 보며 헨리 또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드라칸이 말했다.

-실은 저도…… 방법을 모릅니다…….

“뭐?”

헨리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떨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방법을 모른다니?

네가 맹신자들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헨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따지기 시작했다.

“모른다니? 그게 말이 돼? 독술사들도 해독제는 만들어 놓고 독을 만드는데, 하물며 마법사인 네가 왜 몰라?”

헨리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급한 마음과 더불어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칸의 대답은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실은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성공한 것인지라…….

“뭐라고?”

어이가 없었다.

헨리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자 드라칸은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 * *

-마스터, 평소처럼 지하 감옥에 수감해 두었습니다.

“……어, 그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신자 포획에 나갔던 클레버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클레버는 여느 때와 같이 맹신자 정리를 끝마친 후 헨리에게 활동 내역을 보고했다.

이에 헨리가 힘없이 대꾸했다.

클레버는 헨리의 기분이 처진 것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냥 눈치껏 물러나기로 했다.

클레버가 사라진 직후, 헨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유일한 희망이었던 드라칸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갑갑했다.

드라칸이라면 이 빌어먹을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해결은커녕 본인도 우연찮게 성공시킨 것이라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헨리는 한숨을 내쉬다 못해 고개를 떨구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드라칸의 심정은 이해됐다.

자고로 봉합이나 회복보단 절개나 파괴가 더 쉬운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맹신자는 드라칸 입장에선 만들기 쉬운 발명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드라칸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황이 역전됐고, 이젠 맹신자들을 되돌릴 백신이 필요했다.

헨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에 몸서리쳤다.

마음 같아선 시간이라도 되돌려 드라칸의 발명을 막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 빌어먹을 헛짓거리 따윌 더는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하지만 다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묘책이 떠올랐다.

“……잠깐, 시간을 되돌린다?”

그것은 부질없는 망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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