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5화 (345/522)
  • # 345

    새로운 시작 (1)

    헨리가 말했다.

    “우선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로 뭉친다고?”

    “그렇습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야 바깥의 맹신자들 때문에 자잘한 문제들이 보이지 않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넘쳐나고 있을 겁니다. 그것도 사람 간의 갈등 문제로 말이죠.”

    “예를 들어 어떤 문제를 말하는 거지?”

    “난민 문제입니다.”

    “난민?”

    “예, 재앙을 함께 겪고 있으니 겉으론 티가 안 날진 몰라도 분명히 무슈로 합류한 피난민들과 기존의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박힌 돌과 굴러들어온 돌들의 불화.

    이것은 어느 집단이든 앓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그러한 사회 현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불화로 인해 생긴 자그마한 상처가 큰 상처로 번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르려 했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래서 피난민과 주민들을 하나로 뭉칠 방법은 뭐지?”

    질문한 것은 반이었다.

    반은 이런 문제에 대해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즈를 대신하여 어둠 속에서 앙켈만을 돌보아 왔으니까.

    반의 질문에 모두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헨리를 주시했다.

    헨리가 대답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

    “어차피 한 번쯤은 족보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아서스 그놈 때문에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멸망했고, 대륙의 중심이었던 제국도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나 세상이 어지러운 마당에 왕족, 귀족, 평민 같은 과거의 족보들이 다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긴 복수의 시간을 거치면서 헨리의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힘들게 대륙 통일을 이루어 냈으니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륙 통일은 그 누구도 이뤄 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헨리가 권력에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힘들게 달성한 위업이었으니 만큼 이젠 그 위업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며 여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권력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고 있다면 권력은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서스가 바로 그 증거였다.

    헨리는 아서스라는 지독한 놈을 겪으면서 권력 자체에 엄청난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굳이 자신이 권력을 손에 쥐지 않더라도 결국 누군간 권력에 눈이 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을 마친 헨리는 회장 안에 모인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헨리의 눈에 비친 사람들.

    모두들 좋은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헨리는 저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권력에 한해서만큼은 말이다.

    아서스나 다른 놈들도 처음엔 순한 양의 탈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헨리는 권력이란 놈에게 굉장히 진절머리가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해서 저들에게 그 티를 낼 순 없었다.

    어찌 됐든 저들은 헨리와 함께 고난을 겪고 여기까지 함께 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저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선에서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 중에는 헨리의 책임도 섞여 있을 테니까.

    좌중을 바라보던 헨리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엔 제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한번 통치해 보려고 합니다.”

    “으음…….”

    “……그렇군.”

    헨리의 선언에 모두들 낮게 신음했다.

    하나 동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다들 이 망해 가는 세상에서 어떡하면 다시 한번 태평성대와 같은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모두들 새로운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시국이 딱 적기였으니까.

    하나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이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또한 헨리 같은 업적이 비교 불가한 자가 버젓이 있는 이상 선뜻 그 이야기를 꺼내기는 좀 어려웠다.

    그런데 때마침 헨리가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적어도 헨리라면, 아니, 오직 헨리만이 저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꺼낼 자격이 있었으니까.

    헨리는 좌중의 반응을 살폈다.

    미간을 찌푸리거나 안색이 어두운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사실 이 자리에는 권력에 욕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권력에 욕심이 없는 것은 헨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스스로 감투를 선택한 까닭은 순전히 감투를 도구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막대한 권력이란 자고로 손에 넣기는 힘들지만 한번 쟁취하고 나면 많은 일들을 쉽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래서 헨리에겐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했다.

    납득되지 않을 일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그런 권력을 말이다.

    헨리의 말을 들은 마실라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그림 좋네요. 새로운 나라에 새로운 왕조. 덧붙여 그 왕조는 대륙 역사상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 이만큼 그림 좋은 왕조가 어디 있겠어요?”

    “시조가 신이라…… 듣고 보니 그렇군. 그림도 이만한 그림이 없겠어.”

    책사 마실라.

    그녀가 적막한 공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실라가 헨리의 선언에 긍정적인 근거를 덧붙여 주자 주위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헨리와 마실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실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이에 헨리도 옅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다들 찬성해 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왕좌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지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의례적이 질문이다.

    나중에라도 딴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 예상대로 회장의 그 누구도 헨리의 왕관을 탐내지 않았다.

    신이 인간들을 통치하고자 왕으로서 출마를 선언하겠다는데 감히 어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려 하겠는가?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됐네요. 그럼 여러분들의 의중은 잘 알았으니 빠른 시일 내로 새로운 나라의 건국 선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럼 이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이다음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헨리는 속도감 있게 회의를 진행했다.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헨리가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계획을 공개하는 자리가 더 맞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같았다.

    그렇기에 도리어 헨리의 다음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오히려 기대에 찬 눈빛들이었다.

    이 답 없는 세상에, 헨리가 어떤 번뜩일 만한 솔루션들을 내놓을지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헨리가 말했다.

    “우선 군사 조직을 개편할 겁니다. 새로운 나라의 건국으로 기존의 주민과 피난민들을 하나의 주민으로 엮어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형식적인 통합은 사실상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서 군사 조직을 개편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나라가 새롭게 건국된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나라가 멸망한 이 시국에 군대는 있으나 마나 한 조직입니다. 그래서 좀 새롭게 개편하고자 합니다.”

    “어떤 식으로 개편할 생각인가?”

    “국방(國防)보단 치안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할 생각입니다. 물론 군사 조직 자체는 축소시킬 겁니다.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군대는 쓸데없는 낭비니까요. 하지만 치안군은 좀 다릅니다.”

    치안군.

    난민들이 무슈로 대거 유입되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

    일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가 생존을 이유로 급하게 피난 온 자들이 바로 현재의 난민들이다.

    난민에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뒤엉켜 있다.

    그렇다 보니 서로 다른 상식과 문화권을 가진 이들이 무슈에서 평탄하게 지냈으면 하는 건 사실상 꿈에 가까운 일.

    그러므로 현재 무슈에서 골치가 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난민 범죄였다.

    헨리는 그들을 다잡고 각종 중경 범죄들을 예방해 줄 치안 인력이 필요했다.

    헨리가 군사 조직을 개편하려 하는 것은 모두 이를 위함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바깥 문제가 거대하다고 해서 내부의 작은 문제를 방치해 둘 수만은 없습니다. 큰 문제를 순서대로 해결하다 보면 결국 작다고 느꼈던 문제도 언젠간 크게 느껴질 테니까요. 그렇기에 제가 군사 조직을 개편하려는 건 쓸데없는 인력 낭비를 줄이고 당장 필요한 인력들을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헨리의 말에 맥도웰이 물었다.

    “치안군이라……. 좋아, 이름이야 뭐 그렇다 치고 결국 국군을 새로 뽑자는 거네. 그럼 치안군은 어떤 식으로 뽑을 생각인가?”

    “나라가 안정화되기 전까진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바꿀 생각입니다. 대상자는 새롭게 건국될 나라의 젊은 남녀들에 한해서 말이죠.”

    “새로운 국민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게 하겠다는 건가?”

    “예, 의무를 갖게 하는 것만큼 주인 의식을 심어 주기에 좋은 건 없거든요.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반드시 지급할 겁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이 비록 징병제이긴 하나 그들은 노예가 아닌 새로운 나라의 국민들이니까요.”

    “그건 마음에 드는군.”

    “물론 그와 관련된 자세한 제도를 만들어야 할 테니 한동안 좀 바쁠 것입니다. 그럼 다음 안건은…….”

    헨리는 이밖에도 문화나 종교 같은 대륙민들이 여태껏 영위해 오던 삶의 일부를 이용한 대통합의 방법들을 제시했다.

    자고로 뜻이 다른 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에는 문화와 종교만큼 효율적인 게 없었으니까.

    헨리는 새롭게 건국될 나라의 국교를 이야기하기 전, 성녀와 잠시 시선을 맞추었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개국 공신의 일원이니만큼 종교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쿨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헨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이에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라가 새롭게 건국됨에 따라 새로운 국교를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지. 난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종교는 몹시 중요한 것이니까.”

    대답한 것은 맥도웰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중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녀와 불카누스뿐이었다.

    그마저도 성녀와 불카누스가 모시는 신은 다른 신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말씀대로 종교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세울 나라에 따로 국교를 지정하지 않겠습니다.”

    “뭐?”

    “국교를 지정하지 않겠다니?”

    몇몇이 술렁였다.

    그러나 의외로 불카누스와 아이리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술렁임 속에서 마실라가 물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죽은 교황과 더불어 신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손에 넣으면서 많은 사실들을 느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거대 종교 단체는 권력이 됩니다. 하나 종교는 권력이 되어선 안 됩니다. 종교는 오직 신자들에게 안식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국교라는 제도를 이번에도 도입하게 되면 분명히 각 문화권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국교로 지정하기 위해 종교 전쟁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종교 전쟁을 첫 번째 이유로 국교의 도입을 반대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거대해진 종교는 곧 권력이 된다.

    처음엔 신자들의 신앙심으로 구축되었던 믿음의 탑이었을지라도,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게 되면 권력의 탑이 되어 버린다.

    헨리는 그것을 죽은 로스 교황을 통해서 보았다.

    그렇기에 왕권을 제외한 다른 곳에 그만한 권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제아무리 성녀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모두가 사뭇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헨리가 피식 웃으며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뭐, 지금 신이 직접 현실에 강림해서 이 세상을 구제해 보겠다고 나라까지 새로 세우는 마당에, 과연 어느 국민이 다른 종교로 눈을 돌릴 수 있을까요?”

    “크큭, 그것도 맞는 말이군.”

    “하긴, 왕이 곧 신이고, 신이 곧 왕인 마당에 국교가 무슨 소용이겠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모두들 여태껏 신이라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허상의 존재를 믿어 왔지만, 그러한 존재를 믿게 된 까닭에는 그 신의 사제들이 보여 준 기적의 힘들 때문이었다.

    예컨대 치유술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치유술이 기적이라고는 하나 그 기적의 덕을 본 사람은 전체 신도들 중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헨리는 달랐다.

    헨리는 마법의 신.

    근간 자체가 마법인 헨리는 과거, 제국이 건국되었을 때부터 쭉 마법으로 국민들을 이롭게 해 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다.

    소수만 혜택을 보던 다른 종교의 치유술과는 달리 마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니까.

    “아무튼 뭐, 그런 이유로 국교는 지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이제 대략적으로 알려 드릴 건 다 알려 드린 것 같네요. 그럼 이제부터 부족한 식량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헨리는 품속에서 씨앗 한 줌을 꺼내 들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럼 다음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감싸 쥔 후 나직이 읊조렸다.

    “고속 성장.”

    츠즛, 츠즈즛-!

    “……!”

    “……!”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됐다.

    헨리의 손길이 스치자 손톱만 했던 씨앗으로부터 길쭉한 옥수수 줄기들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흙 한 점, 물 한 방울 없는 테이블 위에서 말이다.

    헨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옥수수 줄기로부터 싱싱하게 자라난 옥수수 한 덩이를 즉석에서 수확했다.

    수확한 옥수수를 들어 올리며 헨리가 말했다.

    “식량 문제가 안정화될 때까지 소수의 마법사들을 제외한 모든 마법사들과 감축된 군인들, 그리고 사제들과 국민들 모두 농사에 투입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헨리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충분한 식량의 확보, 그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니까요.”

    헨리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계획 덕분에 때 아닌 대농경시대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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