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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327화 (327/522)

# 327

마법의 신 (2)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자 헨리는 그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키아아아아!

헨리는 짐승 같이 달려드는 야누스에게 오래된 습관 같은 발도를 내질렀다.

검이 채찍처럼 휘어지면서 오러를 뿜었다.

뿜어진 오러는 신력와 어우러져 황금빛 파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웬걸?

그 막강해 보이는 키메라의 육체가 칼질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소멸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허무한 나머지 헨리는 몇 번이나 야누스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아무리 이 잡듯이 뒤져 봐도 리자르크 언덕에 남은 것은 자신과 기절한 성녀, 단 두 사람뿐이었다.

헨리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끝이라고?”

정말로 끝이었다.

스스로 진화를 꾀던 키메라의 육체를 통해 현세에 완전한 강림을 꿈꾸던 야누스는, 새로운 육체에 자신의 신력을 완전히 불어넣기도 전에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던 육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헨리는 정말로 이 모든 것들이 끝나 종지부를 찍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실성한 사람처럼 제자리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쓸쓸하고 허무한 적막을 곱씹은 뒤 그제야 기절한 성녀를 데리고 무슈로 되돌아 왔다.

아서스와 야누스를 쓰러뜨렸다고는 하나, 아직 이 땅에는 해결해야 될 일들이 많았으니까.

헨리는 회상을 끝마쳤다.

그리고 여전히 얼빠진 표정의 로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주 계획이 없는 건 아냐. 난 사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어느 유치한 동화의 결말처럼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되돌아올 줄로만 알았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아서스가 죽고 야누스의 존재 또한 사라졌지만 그들이 이 땅에 남겨 놓은 흔적들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수많은 악몽들을 그려 내고 있잖아?”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뼈가 담긴 말이었다.

헨리의 말을 들은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의 말대로였다.

모두들 심력이 다할 때마다 막연하게 이 싸움의 끝에는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꿈꾸듯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아서스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땅에는 감정을 절개당한 맹신자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 죽은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서스가 죽은 이후의 세계는, 어쩌면 살아남은 이들이 풀어 나가야 할 커다란 숙제이자 오랫동안 지속될 지독한 악몽이기도 했다.

모두가 침묵 속에 고개를 끄덕이자,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던 성녀가 그제야 용기를 내어 말을 뱉었다.

“저…… 헨리 님?”

“예?”

“혹시…… 여신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요?”

“다른 말씀이라…… 딱히 성녀님께 전달해 드릴 말씀이나 현 사태에 대한 조언 같은 건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헨리가 간결하게 대답하자 약간이나마 기대를 품었던 성녀의 얼굴이 다시금 풀이 죽었다.

그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됐다.

그녀는 이번 싸움을 통해 여신의 종으로 살아왔던 수많은 이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가 아이린을 만나고 왔다는 말에 혹시라도 여신이 죽은 이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약간이나마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린은 그들에 대해선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헨리는 고개 숙인 성녀를 동정했다.

‘충분히 섭섭할 만해. 마음 같아선 아이린을 만나 따져 묻고 싶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라와 아이린은 분명히 헨리가 신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정작 신이 된 당사자는 신력을 얻어 아서스를 벨 수 있었다는 점 이외엔 딱히 달라진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신력을 다룰 줄 모르는 건가?’

아이린이나 라는 공간의 창조는 물론이거니와 바깥 세계의 시간까지 조율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헨리는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믿음에 대한 힘을 응용해 보아도 좀처럼 그런 종류의 권능을 발현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헨리 스스로도 의아했던 것이다.

“뭐…… 아무튼 간에 모두들, 이젠 눈엣가시 같았던 아서스도 사라졌으니 이제 칼 대신 남은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지만 남은 사람들끼리나마 힘을 합쳐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세상이라 하심은……?”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아서스가 만든 맹신자들에 대한 처리법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만약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할 시 최악의 경우엔 맹신자 모두를 죽여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 그런……!”

“그러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죠. 유라시아 대륙 인구의 6할이 맹신자가 되었으니 만약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아마 대륙 역사상 가장 크고 잔혹한 피바람이 불지도 모릅니다.”

섬뜩한 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맹신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 전까진…… 어쩔 수 없지만 무슈에 접근하는 모든 맹신자들을 얼리거나 가두는 방식으로 최대한 피해를 줄일 생각입니다.”

비록 수백만에 이르는 맹신자들을 화염 마법으로 태워 죽였던 헨리였지만, 그땐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그러한 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뭐,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자세한 계획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끝으로 헨리는 대화를 종료했다.

말을 마친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불카누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헨리에게 말했다.

“침소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제가 그리로 직접 모시겠습니다.”

“아뇨 침소는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쉬는 동안 전 어딜 좀 다녀올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불카누스 님.”

“예, 예?”

“저는 제가 비록 신이 되었다곤 하나 사실 인간이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어색하게 갑자기 경어 같은 건 사용하지 마시고 원래 하시던 대로 편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 하지만…….”

“명령이 아닙니다. 부탁입니다.”

헨리가 진심을 담아 불카누스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불카누스의 동공이 잠시간 흔들리더니 어색하게나마 대꾸했다.

“알겠습…… 아니, 알겠네…….”

“감사합니다.”

끝으로 헨리는 모두에게 가볍게 목례해 보인 후 회장을 벗어났다.

헨리는 회장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앞으로 몇 걸음을 걸어 나갔다.

그러자 주변 풍경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무영창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이었다.

‘신이 된 후로 마법 다루기가 좀 더 수월해진 것 같아.’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헨리가 느끼기엔 그랬다.

헨리는 바뀐 풍경을 확인한 후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칸의 눈’.

샤하트라의 유일한 왕조이자 죽은 칸들의 영혼이 안배된 비밀 장소였다.

헨리는 기억을 더듬어 헤라리온이 안내했던 발자취를 쫓아 영혼의 무덤이 숨겨진 커다란 벽면 앞에 설 수 있었다.

헨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무슨 수를 써도 신들을 만날 수가 없으니 그 신들 중 일전에 죽어서 라를 보좌하게 되었다는 헤라볼라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작정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단서라도 건지기 위해서.

헨리는 벽면 앞에 섰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 사용했던 주문의 발음이 아마…….’

헨리는 헤라리온이 벽면 앞에서 외웠던 주문을 떠올렸다.

사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읊조린 주문을, 그것도 시간이 꽤 지난 상태에서 기억해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헨리의 두뇌는 대륙에서 제일 명석했으며 명석한 만큼 기억력 또한 뛰어났다.

헨리는 기억을 더듬은 끝에 당시 헤라리온이 벽면 앞에서 읊조렸던 주문의 발음을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주문이 아마 dufjqns wmfrjdns gksrkdnl ehltlrlf qkfkqslek……였던가?”

우웅!

정확한 발음이었다.

헨리의 입에서 주문이 읊어지자 헨리의 신력이 벽면에 스며들며 전과 같은 새하얀 빛을 뿜었다.

쿠구구구-.

이채와 함께 동굴이 진동하며 이윽고 거대한 벽면 전체가 깔끔하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헨리는 갈라진 벽면 사이로 생겨난 길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다음 얼마간 고민하더니, 생겨난 길을 향해 말했다.

“이번엔 그냥 곱게 초대해 주는 게 어때?”

메아리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은 정확히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 샤하트라 사막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칸 부자가 자신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견을 제안한 후 헨리는 얼마간 칸들의 반응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자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익숙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알겠다.

음성이 울려 퍼지자,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헤라볼라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던져 본 제안이 보기 좋게 먹혀들자 헨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음성이 끝난 직후, 헨리의 눈앞이 청록 빛으로 물들었다.

그 색깔은 마치 해가 뜨기 직전의 세상이 가지는 색을 닮아 있었다.

눈앞의 길에 청록색이 덧씌워진 후, 헨리는 그제야 길목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헨리가 발을 디딘 직후.

털썩!

헨리는 전과 같이 다시 한번 기절하고 말았다.

* * *

“……제기랄.”

짧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직후, 헨리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분명히 얌전히 초대해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디가 얌전한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욕설과 함께 몸을 일으키자 눈앞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헤라볼라가 있었다.

헤라볼라를 발견한 헨리가 말했다.

“이게 네가 말한 얌전한 초대냐?”

“속은 놈이 잘못이지.”

“……망할 놈 같으니.”

안부 인사처럼 전하는 욕설이었다.

헨리는 곧 헤라볼라가 마련한 의자에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붙였다.

그런 다음 등받이에 등을 기댄 후 태연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는 알고 있지?”

“몰라.”

“농담하지 말고. 지금은 별로 농담할 기분이 아냐.”

“속고만 살았나, 넌 이야기하기 전에 거울부터 보는 게 좋겠다.”

“거울?”

“저길 봐.”

헤라볼라가 턱짓하자, 헨리는 그가 턱짓한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그곳엔 일전에 보았던 커다란 거울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전에 봤던 거울이잖아? 저건 갑자기 왜…… 아니, 잠깐만?”

헨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분명히 전에도 보았던 거울이라 무심결에 지나치려 했건만, 일순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헨리가 자신의 얼굴을 더듬으며 말했다.

“내가…… 없어?”

“그래, 헨리. 이곳은 내 영혼이 안치된 내 영혼의 무덤이다.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껍데기 같은 육신은 조금도 발을 들일 수 없으며, 오직 순수한 영혼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이지.”

“그래서? 지금 그거랑 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있지. 이곳은 오직 영혼만이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이 거울을 포함해 이 공간의 모든 것들이 내 신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런데 넌 더 이상 일개 인간이 지니는 영혼 같은 걸 가진 존재가 아니잖아?”

“……그럼 네 말은, 내가 신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네가 가진 신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뭐 그런 뜻이냐?”

“잘 아네. 딱 그거야.”

“그게 지금 무슨…….”

고작해야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 이토록 대접이 달라질 수 있다니, 헨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삼스레 자신이 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납득을 마친 헨리가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용건을 꺼냈다.

“좋아, 그럼 관점을 달리 생각해 보면 이제야 동등한 입장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 안 그래도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거든. 아니지, 내가 너보다 신력이 높으니 동등한 입장은 아닌가? 뭐 아무튼,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간단해. 난 지금 네가 모시는 신인 라를 만나러 왔다.”

“……알겠다. 하지만 그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물어봐.”

“얼마 전부터 헤라리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 내 아들놈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헤라볼라가 짐짓 굳은 표정으로 헨리에게 질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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