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01화 (301/522)

# 301

위대한 원정대 (3)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어.’

두 명의 사도를 해치운 직후 헨리는 생각했다.

어쩌면 고전하게 될 상대는 애초에 사도들 따위가 아닌 아서스 단 한 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말이지.’

아서스가 말한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사실 헨리는 걱정이 많았다.

헤라리온은 무신의 경지에 오르며 죽은 제 아비만큼 강해짐과 동시에 신력이 충만해졌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 또한 헤라볼라에게서 받은 반지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신력은 확보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7현자를 비롯한 부학파장들과 헨리는 아직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억지로나마 서클을 증진시키긴 하였으나 순수한 마력이 신력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7현자의 존재는 이번 여정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겉절이 신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이들을 동행시켰다.

7현자가 비록 적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원정대에게만큼은 여러모로 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건 대체 어디로 간 거지?’

헨리의 생각은 곧 일전에 잃어버린 물건으로 옮겨졌다.

헨리가 잃어버린 물건.

그것은 다름 아닌 헤드자온으로부터 받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달걀’이었다.

헨리는 달걀, 아니 진주를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헨리도 몰랐다.

정말 말 그대로 어느 순간부터 품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는 마법을 비롯해 정령 스칼의 힘까지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진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진주의 행방을 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칼을 동원해서까지 찾을 수 없는 물건은 헨리로서도 찾을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헤라리온에게 알려 미리 사과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달걀을 돌려주어야 한단 말은 없었지만 어찌 됐든 귀중한 왕의 선물을 잃어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사령관님, 전방에 수상한 자가 보입니다.”

‘수상한 자?’

말을 모는 동안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바로 뒤에서 바짝 붙어 달리고 있던 반이 거수자를 발견했다.

이에 헨리가 손을 들어 원정대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긴…….’

주변 지형은 특별할 게 없는 여느 평범한 골짜기였다.

그리고 원정대는 골짜기 사이에 난 길을 질주하고 있었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음 목적지인 하른 성이 보여야만 했다.

이동을 멈춘 후, 헨리가 홀로 제이드를 몰고 나와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강화된 시력으로 길 한복판을 턱하니 막고 있는 존재를 살폈다.

‘꼬리?’

거수자는 인간 여자로 보였다.

아니, 멀리서 본 실루엣은 분명히 인간 여자였다.

하지만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한 후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충류의 그것과도 같은 길쭉하고 굵은 꼬리를 볼 수 있었다.

찡긋.

그리고 그 순간, 헨리는 꼬리 달린 여자와 눈이 마주치면서 그녀에게 윙크를 받았다.

기분이 불쾌해진 헨리가 말했다.

“사도네요.”

“사도입니까?”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인간의 몸에 꼬리가 있진 않을 테니까요.”

헨리는 그녀의 윙크를 받고서 부쩍 불쾌해진 표정으로 사도의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헨리가 사도의 등장을 알릴 때쯤, 팔짱을 끼고 윙크를 날리던 여자는 그제야 여유롭게 팔짱을 풀면서 천천히 원정대 쪽으로 걸어왔다.

“반가워. 내 이름은 아일라라고 해.”

아일라.

헬라를 비롯한 아마리스 전체를 멸망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꽤나 격식 있는 어투로 조곤조곤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정대원들 전부가 그녀의 인사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벌써 세 명째라지? 거슬렁거에 리드카인, 그리고 칸느까지. 그럼 내가 네 번째가 되는 건가?”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죽은 사도의 숫자를 헤아렸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 분노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장사치가 셈을 하듯, 무미건조하게 수를 헤아릴 뿐이었다.

“그렇다.”

아일라의 물음에 반이 대답했다.

그러자 아일라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먼저 죽은 세 명 다음으로 약할 것 같아서 네 번째로 등장했다고 생각하면 크나 큰 오산이야. 알았지?”

“글쎄, 그건 직접 겪어 봐야 알겠는데?”

“패기 넘쳐서 좋네. 역시 아서스 님께 부탁드려서 순번을 바꾸길 잘했어. 안 그랬으면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너희들이 죽을 것만 같았거든.”

“지나친 자신감이군.”

“그 또한 겪어 보면 알겠지? 자, 그럼 긴말할 것 없이 한 판 붙어 보자고. 아서스 님께 듣기로는 너희들은 반지 같은 걸로 우리가 가진 신력의 크기를 가늠한다면서? 미리 말해 줄게. 내가 가진 신력의 양을 맞추려면 적어도 반지 10개는 가지고 와야 할 거야.”

‘역시 지켜보고 있었군.’

아일라는 앞서 죽은 사도들의 죽음과 원정대원들이 사용하는 반지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이 가진 신력의 크기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를 통해 헨리는 아서스가 원정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고 더욱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충고, 새겨듣도록 하지.”

아일라는 솔직한 인물이었다.

더불어 그녀는 사도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강력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다른 사도들에 비해 호전적인 성향이 꽤나 강해서 아서스에게 부탁해 순번까지 바꿔 가며 일찌감치 원정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아일라가 말했다.

“다들 기뻐해도 좋아. 난 어떤 놈처럼 함정 같은 건 조금도 설치해 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와 대결할 땐 마음 놓고 오롯이 대결에만 집중하면 돼.”

그녀는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오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오만은 칸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오만이었다.

“꽤나 예의 바른 전사네요. 마음에 들었어요.”

말을 내뱉은 것은 알렌이었다.

그는 아일라에 대해 솔직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모두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저 말은, 자신은 반지 10개짜리 신력을 가졌으니 모두가 한꺼번에 덤비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러기엔 제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알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제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제가 모두를 대신해 그녀를 쓰러뜨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만 허락해 주신다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반지를 잠시만 저에게 빌려주시겠습니까?”

“신력을 몰아 달라?”

“그렇습니다.”

알렌의 제안에 아홉 기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에 킹턴이 말했다.

“난 반대야. 겨우 저런 얕은 도발에 넘어가서 굳이 위험 확률을 늘리자고?”

안전함을 추구하는 킹턴다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맥도웰의 의견을 달랐다.

맥도웰은 알렌의 의견에 몹시 찬성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난 찬성이야. 확실히 우린 아서스의 처치라는 대업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저깟 사도 하나 처리 못 해서 겁을 낸다면 애초에 이런 여정 따윈 의미가 없지. 그리고…….”

맥도웰이 살기가 잔뜩 드러난 눈빛으로 아일라를 흘겨보며 말했다.

“사도한테 패배하는 굴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 알렌! 그렇기에 난 찬성한다. 그러니 우릴 대표해서 저 도마뱀 같은 녀석을 썰어 버리고 와라!”

“감사합니다, 맥도웰 님.”

“자, 나는 찬성이고. 다른 사람들 의견은 어때? 다들 솔직히 말해 보라고.”

킹턴은 분명히 합리적인 이유를 근거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지만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건 오히려 맥도웰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킹턴은 원정대 내에서도 입김이 별로 세지도 않은 인물이었으므로 결과는 금방 맥도웰이 바라는 대로 흘러갔다.

맥도웰이 헨리에게 물었다.

“사령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그리고…… 뭣하면 저희가 투입되면 되니까요.”

“하긴 기사도는 기사랑 싸울 때나 발휘하는 것이니까.”

헨리의 의견에 맥도웰이 자의로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결과는 금방 도출되었다.

이에 알렌은 자신을 제외한 아홉 명으로부터 아홉 개의 반지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헨리가 열 개의 반지를 실로 엮어 튼튼한 목걸이로 만들어 주었다.

목걸이가 된 반지를 목에 건 알렌이 말했다.

“다들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금방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알렌은 원정대에게 가볍게 목례한 후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아일라가 말했다.

“모두가 한꺼번에 덤비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자존심이란 게 있나 보구나?”

“당연하지! 명예가 없는 기사는 시체나 다름없으니까. 내 이름은 알렌이다. 그전에 너에게 한 가지만 묻지. 아일라, 너는 한 달 전에 어느 나라를 멸망시켰지?”

“한 달 전? 아아, 포교 활동을 말하는 모양이네. 아마 그때 내가 갔던 나라 이름이 ‘아마리스’였나?”

“아마리스…… 그렇군. 철혈여제를 죽인 게 바로 네놈이었어.”

“철혈여제? 아, 그 생기 넘치는 여자애 말하는 거지? 걔 참 쓸 만하더라. 그 애가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아서스 님께 혼날 뻔했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그게…… 내가 실수로 아마리스의 백성들을 모두 죽여 버렸거든. 그래서 그 여자애한테 말했지. 여왕이면 너의 생명력을 나누어 백성들을 살리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세상에나, 무려 삼천 명이나 살려 냈지 뭐야?”

삼천 명.

헬라가 자신의 생명력을 희생하여 살려 낸 아마리스 백성들의 숫자였다.

물론 자의가 아닌 아일라에 의해 억지로 살려 낸 숫자였지만, 그래도 일개 인간이 삼천 명이나 되는 시체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했다는 건 분명히 대단한 힘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일라가 헬라에게 행한 행위는 한없이 잔인하고 지독한 짓이었다.

말인즉슨 삼천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다시 부활하는 동안 아일라가 천천히 헬라의 생명력을 빼앗으며 그녀를 죽여 갔다는 말이 되었으니까.

아일라의 생생한 첨언을 들은 알렌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알렌이 말했다.

“……그렇군.”

짧은 기간이긴 했어도 함께 전장을 누볐던 사이였다.

그사이에 제법 친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헬라는 좀처럼 보기 드문, 알렌의 취향을 자극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병원에서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 알렌은 내심 헬라 또한 멀쩡히 살아 있기를 기대했다.

“그렇단 말이지……?”

알렌이 말꼬리를 흐렸다.

이에 눈치 빠른 아일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너, 혹시 그 아이한테 감정이라도 있었던 거야? 저런……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어느 기사의 짝사랑 상대를 보내 버렸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해 줄 테니.”

“뭐?”

“농담이 아니야. 잘 봐.”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던 아일라는 이내 곧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나 곧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꼬리를 움직였다.

아일라의 꼬리가 그녀의 뒤통수와 정수리를 지나 앞으로 휘어졌다.

그러더니 곧 할미꽃이 꽃망울을 틔우듯, 꼬리 끝부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쉿.”

알렌은 그 말도 안 되는 기괴함에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아일라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붙이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일라의 꼬리는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꼬리는 곧 성인 한 명만큼이나 비대해졌다.

비대해진 꼬리는 곧 뱀이 집어삼킨 먹이를 토해 내듯, 끈적거리는 체액과 함께 무엇인가를 뱉어 내기 시작했다.

꾸물럭, 꾸물럭, 츄웃!

침을 뱉듯 꼬리 밖으로 뿜어진 그것.

그것은 다름 아닌 헬라의 시체였다.

“……!”

“……!”

체액으로 범벅되어 뱉어진 헬라의 시체는, 곧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그 끔찍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원정대가 그런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아일라는 입술에 붙였던 검지를 떼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녀의 손가락이 경쾌하게 튕겨졌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헬라의 시체가 두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그리고 눈을 뜬 헬라가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죽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었던 철혈여제, 헬라.

그녀가 맹신자가 되어 다시금 이 세상에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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