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위대한 원정대 (2)
“제법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두 개의 태양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하비드강에 대재앙이 펼쳐졌다.
그러나 칸느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비드강 위에서 작렬하는 태양을 응시했다.
아니, 도리어 하품을 하며 하늘 위에 강림한 태양을 얕잡아 보았다.
겨우 저런 태양을 흉내 낸 기술 따위로 자신을 쓰러뜨릴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느가 얕잡아 보거나 말거나, 합쳐진 두 개의 재앙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열기가 미치는 모든 것에 작열하는 고통을 선사했다.
치지지직…….
수호 성법으로 펼친, 원정대를 감싼 결계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계 속에 있는 말들은 하나둘씩 혀를 내밀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원정대원들 또한 지독한 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지독한 더위가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원정대원 그 누구도 불평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감사함을 느꼈다.
저렇게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익어 죽는 것이 아닌 고작해야 더위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태양의 햇빛을 받은 하비드강 전역에 수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안개처럼 천천히 피어오르던 수증기는 이내 끓는 주전자의 주둥이처럼 거센 속도로 증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리고 눈에 띄게 강물이 줄어 가고 있는 것을 본 칸느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목적이 내가 아니었어?’
칸느는 착각하고 있었다.
하비드강 위로 쏘아져 올라간 두 사람의 태양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저 태양이 군림한 목적은 흡사 바다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드넓은, 이 하비드 강의 강물 전부를 증발시켜 없애 버리기 위함이었다.
“크큭, 내가 그렇게 되게 놔둘 성싶으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칸느는 서둘러 전신에 신력을 끌어 올렸다.
더 이상의 자만은 없었다.
칸느는 혹시 모를 실수로 아서스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쿠오오오!
칸느의 신력은 헤라볼라의 반지에 비유하자면 반지 여섯 개쯤에 달하는 신력의 소유자였다.
신력을 끌어 올린 칸느는 곧 강물을 향해 밧줄을 끄집어 올리듯 손짓했다.
그러자 평온하던 강물이 요동치며 곧 굉장한 크기의 용오름이 생성되었다.
생성된 용오름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마법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흡사 아쿠아 토네이도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칸느는 마치 물의 정령이라도 된 것처럼 그러한 용오름을 수십 줄기나 만들어 내 점점 더 크기를 불려 냈다.
세상을 태워 버릴 듯 작열하는 태양을, 하비드 강의 강물로 만들어 낸 용오름으로 꺼뜨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헤라리온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늦었어.”
그러나 칸느는 그런 헤라리온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지금은 눈앞의 태양을 전소시키는데 급급했기에.
이윽고 수십 줄기에 해당하는 굵직한 용오름이 채찍처럼 태양을 향해 뻗어졌다.
치이이익!
태양과 강물의 싸움.
폭발은 없었다.
대신 두 자연이 맞부딪히면서 굉장한 양의 안개가 뿜어졌다.
“윈드.”
휘이잉!
헨리는 손을 내저어 거치적거리는 안개를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자 여전히 태양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수십 가닥의 용오름들을 볼 수 있었다.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적어도 칸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칸느를 제외한 모두가 칸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
“뭐라고?”
이번에 중얼거린 것은 헨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똑똑히 들었다.
그래서 칸느는 매서운 눈빛을 하고서 헨리를 노려보았다.
흡사 짐승을 닮은 눈빛.
분명히 첫 출발은 인간이었으나 몇 차례의 진화를 거치면서 이젠 완전한 키메라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칸느는 더 이상 인간시절일 때의 눈빛은 지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헨리는 한낱 짐승의 눈빛 따위를 두려워할 사내가 아니었다.
헨리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칸느의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 내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턱짓으로 아래를 향해 가리켰다.
시선이 옮겨지는 칸느.
그리고 시선이 옮겨진 칸느의 얼굴에 곧 또 한 번의 경악이 드리웠다.
“이, 이런!”
칸느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르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하비드강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며 갈비뼈 같은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칸느는 비명을 닮은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헨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끝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헨리의 요청에, 바할드와 헤라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뽑아 든 칼을 지휘봉 삼아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게 일자를 그렸다.
그러자 하비드 강 위에서 끔찍한 재앙으로 군림하던 두 사람의 태양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할드의 기술, ‘일몰’이었다.
치이이익!
태양이 강물과 가까워질수록 하비드강 일대는 점점 더 불바다, 아니 불지옥으로 변해 갔다.
오죽했으면 오랜 세월 동안 강물 아래에 깔려 진흙처럼 질척거려야 할 흙바닥이, 샤하트라 사막의 모래처럼 바짝 마르다 못해 암석처럼 덩어리지기 시작했겠는가?
그러한 태양열의 여파는 성녀와 십이사도의 결계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하비드강의 모든 강물이 말라 버린 이상, 더 이상 뙤약볕 아래에서 미련스럽게 양산을 펼쳐 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헨리가 말했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헨리는 바할드와 헤라리온, 두 사람에게 뒤를 맡겼다.
그런 다음 마력의 송출을 방해하는 강물이 사라졌으니 곧바로 블링크를 시전해 대가뭄의 영역에서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됐군요.”
헨리를 비롯한 원정대 전원이 자취를 감추자 바할드는 그제서야 더욱 더 적극적으로 태양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태양이 하비드강 일대에 떨어진 순간, 칸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찬란한 광휘에 집어삼켜졌다.
* * *
태양이 하비드강으로 떨어지고 난 뒤, 헨리는 적당한 타이밍에 다시 원정대와 함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돌아온 원정대원들 중 현자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지도를 다시 그려야겠어.”
“지도뿐만이 아니야. 일대의 생태계를 책임지고 있던 하비드강이 사라졌으니 이제 이곳은 곧 빠른 속도로 죽어 갈 거야.”
“……내가 보기엔 여긴 이미 죽은 땅이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현자들이 남긴 감상평대로였다.
이제 이곳에는 강이라고 부를 만한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엄청난 크기의 크레이터만이 남아 있을 뿐.
바할드와 헤라리온은 그 크레이터의 중심부에서 원정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가 헤라리온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헨리의 물음에 헤라리온이 주변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이에 헨리 또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만한 자에게 딱 어울리는 말로로군요.”
“하하, 그놈이 오만한 것도 오만한 것이지만…… 저는 사령관님의 책략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전 단순히 여러분이 가진 능력을 떠올리고 부탁을 드렸을 뿐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은 순전히 지난 한 달간 전하께서 이룩해 내신 결과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할드 님이 없으셨다면 저 혼자서 이 넓은 강물을 모두 말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 일은 두 분이 힘을 합치셨기에 더욱 더 값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헨리는 지난 한 달간 피나는 노력 끝에 무신의 경지에 도달한 헤라리온의 근성을 칭찬했다.
실제로 헤라리온이 무신의 경지를 이룩하면서 가진 신력 또한 덩달아 폭등했다.
그 결과 전성기 시절의 헤라볼라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무력과 신력을 둘 다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칸느를 압도적인 신력으로 짓누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윽고 헤라리온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현자님들의 말씀대로 이 일대는 지옥이 되어 버렸군요. 척 보기에도 하비드강이 맡고 있는 역할이 제법 커 보였는데 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아무리 넓다고 해도 어차피 한낱 강물일 뿐입니다. 이런 강물쯤은,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 그 정도입니까……?”
“물론입니다.”
강물을 만든다.
누군가에겐 꿈같은 이야기를 헨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뱉었다.
이에 헤라리온의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전하, 표정에서 전하의 생각이 다 드러나는 듯합니다.”
“아, 이거 추태를 보였군요.”
“아닙니다. 제가 전하였어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땐 제가 샤하트라에 하비드강과 같은 거대한 강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전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헤라리온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헨리가 말했다.
“이 근방은 모든 일들이 끝나고 나면 한꺼번에 복구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출발해 볼까요?”
무슈에 남은 사람들을 비롯해 아서스가 인질로 잡은 목숨들만큼이나 헨리는 다른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질로 잡힌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 헨리는 그 무엇 하나도 아서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에게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죽음뿐이다, 아서스.’
웃으면서 말했지만, 헨리는 이번 약속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자신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아서스를 생각하니 다시 한번 진한 역겨움이 느껴졌다.
원정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미치겠군…….”
칼리번 요새의 후문에 설치된 망루.
여기서 말하는 후문은 ‘마물의 숲’과 연결된 문이 아닌 외부와 연결된 문을 말했다.
그래서 요새를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 예컨대 군수 상인을 비롯한 요새의 특수병들은 이 후문을 이용하여 외부로 드나들었다.
그런 후문에 설치된 망루 위에서 이셀란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키아아아!
-키에에에!
후문을 기점으로 요새 전체를 감싸 안은 성벽 아래로 마치 좀비를 연상케 하는 맹신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어느새 군집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성수를 비롯한 각종 종교 물품들을 사용해 보았지만, 저들의 근간은 언데드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성수나 은으로 된 무기 같은 신성계 물품이 저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대체 뭐냐, 저놈들은?’
보급을 받은 이후, 줄곧 요새 안에서 마물들과 맞서 싸웠기에 이셀란은 바깥의 사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끽해야 헨리를 통해 제국이 멸망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등장한 후문의 좀비 떼는 이셀란을 당황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것들이었다.
“부, 부사령관님. 이제 저희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장교 한 명이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이셀란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셀란조차도 사정을 잘 모르는데 그에게 방법을 묻는다고 한들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셀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두통이 일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새로운 마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징조가 보인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마물들이 폭주하고 있었고, 병사들 사이에선 제국이 멸망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헨리…… 대체 바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유능한 부관인 로안까지 헨리를 따라 자리를 비운 지금, 이셀란은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