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
업그레이드 (4)
“바실리포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설탑으로 이동한 헨리는 최상층부에 도착하자마자 연금학파의 수장 메이커 스워스를 불러냈다.
메이커는 두 동강이 난 바실리포를 집어 들며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으음, 수리는 가능하겠지만…….”
메이커는 말끝을 흐리며 긴장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렌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대마법사님이셔. 내가 어떤 진단을 내릴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고 검의 주인을 데리고 오신 게야.’
검의 수리는 생각보다 간단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도 그럴 것이 바실리포가 가진 본연의 ‘성질’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외형’이 파괴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알렌을 데려온 이유는 말 그대로 수리가 간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헨리 스스로도 기본적인 마검 수리가 가능하다는 뜻.
그렇다면 헨리는 이번 기회에 바실리포의 수리뿐만이 아니라 바실리포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알렌을 설탑에 데려온 것일 터였다.
마검을 수리하는 데에는 연금술사 한 명만 있으면 됐지만 마검을 강화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했으니까.
즉, 알렌은 바실리포를 한 단계 더 강화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재료라는 뜻이었다.
검을 살피던 메이커가 헨리에게 물었다.
“바실리포의 소유주이신 알렌 님과는 협의가 끝나신 상황이십니까?”
“응, 바실리포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이든 치르겠다고 했다.”
“좋은 각오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알렌 님,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에 알렌이 헨리를 한번 쳐다보았다.
이에 헨리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를 다독여 주었다.
“걱정 말고 다녀오시지요. 그리고 바실리포의 수리가 끝나면 마법사들이 알아서 무슈로 보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방을 빠져나갔고 이제 방에는 헨리와 하울,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방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헨리가 하울에게 말했다.
“하울.”
“예, 스승님.”
“그동안의 성과를 내게 보여 줄 수 있겠니?”
“성과라면…… 알겠습니다!”
사실 성과랄 것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하울이 제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천재 지망생이라고 해도 하울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케일을 통해 임의로 공격용 마법 몇 가지를 배웠다고는 하나……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헨리는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 마력을 공명시키는 하울의 진지한 태도를 지켜보았다.
우웅!
눈을 감고 마력을 끌어올리던 하울이 이윽고 눈을 떴다.
그러자 양손에 마력이 응집되더니…….
“……!”
하울은 양손에 각각 얼음과 불꽃을 틔워 보였다.
‘허?’
헨리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하울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더블 캐스팅이라 불리는 이중 연산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슷한 성질이 아닌 전혀 다른 두 성질의 마법을 동시에 구현해 냈다.
그러나 하울의 재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
하울은 이내 곧 두 손을 포갰다.
그런데 불과 얼음을 만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증기가 조금도 일지 않았다.
하울은 다시 손을 뗐다.
그러자 양손에는 처음에 보았던 불꽃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만.”
훅!
헨리의 명령에 하울은 재빠르게 양손의 마법을 거두어 보였다.
그런 후 군기 잡힌 군인처럼 뒷짐을 지고 허리를 편 후 바로 섰다.
“…….”
잔뜩 긴장한 얼굴로 헨리의 평가를 기다리는 하울.
그런 하울을 앞에 두고, 헨리는 좀 전의 재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헨리는 깊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더블 캐스팅도 모자라, 상극이 되는 두 속성 마법을 포갰음에도 불구하고 수증기 같은 아무런 자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하울이 자신의 마력으로 만들어 낸 마법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이놈은 천재가 분명해!’
재능을 측정하는 수정구 때도 그랬지만 하울은 진짜였다.
그리고 만약 헨리가 샤하트라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자신이 천재라는 것도 모른 채 늙어 죽어 갔을 비참할 운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헨리는 더더욱 기뻤다.
결국 하울의 운명은 자신의 행보 덕분에 발견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열심히 했구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확실히 너에겐 재능이 있어. 그래서 말인데…….”
지잉.
헨리의 말이 끝난 순간, 헨리로부터 호출을 받은 로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볍게 목례하는 로어.
로어의 등장과 함께 헨리가 말했다.
“나를 대신해 너를 가르쳐 줄 새로운 선생님이다. 샤하트라는 이제 마법 교육기관이 없으니 너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며 수련에 힘쓰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고 로어.”
“예, 대마법사님.”
“미리 일러 준 대로 잘 부탁한다.”
“예.”
헨리는 하울의 재능에 깊게 감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도리어 담백한 칭찬으로 마무리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하울이 가진 재능과 하울에게 임하는 태도 등을 로어에게 미리 일러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는 하울이 자신의 재능에 취해 자만하며 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로어와 약속했다.
언젠가 아서스를 쓰러뜨리고 헨리가 애초에 목표로 두었던 일들을 모두 마치고 나면 그때부턴 자신이 직접 하울을 가르치겠다고 말이다.
이는 헨리가 하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이기도 했다.
본래의 하울은 아서스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헨리가 임의로 육성시키던 살아 있는 전쟁 병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윽고 로어가 하울을 데리고 모습을 감추자 헨리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건 그 녀석뿐인가?”
계획의 대다수가 진행되고 있었고 불카누스가 부탁한 문제도 한 건 처리했다.
하지만 불카누스가 부탁한 건 알렌의 바실리포뿐만이 아니었다.
불카누스가 부탁한 것들 중에는 한 사람의 몫이 더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헥터.
아무리 날고 기는 장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불카누스 또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인간이 만든 장비는 헥터가 착용할 수가 없었다.
물론 헤라리온의 특수한 성법이 깃든다면 착용할 수도 있겠지만…… 헥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의 무구 제작을 유예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지금부터 헥터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헥터는 헨리가 가진 강력한 전력들 중 하나였으니까.
* * *
“……그래서 결론이 뭐야?”
“뭐긴, 갑옷 쪼가리 같은 것 말고 좀 더 내 본연의 힘을 확실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그런 육체가 필요하단 거지.”
다시 무슈로 돌아온 헨리는 헥터와 한참의 논의 끝에 헥터가 지금 무엇을 요구하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헥터의 요구는 간단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제대로 일깨워 낼 수 있는 ‘질 좋은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치른 몇 번의 전투를 통해 헥터는 자신이 본연의 힘을 모두 끌어올리지 못한 이유로 그릇된 육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
그러나 이에 대해선 헨리도 시원스레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 본인도 강령술로 다시 부활하긴 하였으나, 헨리는 지금의 육체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즉, 헥터가 말하는 문제를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지만 또 다른 문제는 과연 영체 상태인 헥터가 헤라볼라로부터 얻어 낸 성물의 힘이 제대로 사용이나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복잡한 문제였다.
‘그럼 일단은 헤라리온부터 만나야겠군.’
이는 헨리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헨리는 헥터와 함께, 여전히 남은 국정 문제를 처리하고 있을 헤라리온을 만나기 위해 샤하트라로 이동했다.
* * *
“아, 그런 문제가 있으셨군요.”
샤하트라에 도착하자 다행스럽게도 헤라리온은 수도의 문제를 대부분 처리하고 비람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헥터가 처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자마자 헨리와는 달리 곧바로 공감한다는 듯한 태도를 취해 보였다.
“해결할 수 있는 건가?”
헥터의 표정에 희망이 부풀었다.
그리고 헤라리온이 답했다.
“아뇨.”
“뭐?”
“과거의 저였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헥터 님을 다른 육체에 전이시킬 수 있는 권능은 야누스 신의 것이라서…….”
“그럼 그 말은……?”
“더 나은 육체는 고사하고 당장 쓸 육체도 만들 수 없단 얘기지.”
헤라리온 대신 헨리가 대답했다.
이에 헥터의 얼굴에 절망의 그늘이 드리웠다.
그 모습을 보고 큭큭 웃는 헨리.
하지만 현실적으로 놓고 보자면 이는 비단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큰일이네.’
세 사람 사이에 잠깐 동안 침묵이 드리웠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헨리였다.
“전하,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방법이랄 것까진 없지만…… 사실 헥터 님의 영혼을 새로운 육체로 전이시키는 건 비단 야누스만의 권능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게…… 이것이 권능이라기 보단 신력을 응용하여 부리는 일종의 성법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 성법의 응용이 가능한 신력이 있고, 사용이 불가능한 신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야누스의 신력은 되는데, 라의 신력은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그 성법의 응용이 가능한 다른 신은 누가 또 있습니까?”
“으음, 그건 저도 잘…….”
“……그렇군요.”
헨리는 곧바로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라리온은 한평생 두 신만을 섬겨 왔으니까.
‘이러면 큰일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더 어렵게 돌아가는 듯싶었다.
이에 헨리는 잠깐 동안 고민한 끝에 금방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군.”
“뭐가?”
“어쩌겠어? 지금 당장 우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리고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영혼 전이의 성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신력을 가진 새로운 신위를 찾아야겠지.”
“혹시 아는 신력자라도 있냐?”
“없어.”
“이런!”
“괜찮아. 어차피 남은 한 달 동안 나도 새로운 신위를 찾아야 하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아무튼 생각보다 일정이 좀 앞당겨지긴 했지만…… 지금부터 넌 나와 함께 새로운 신위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새로운 신위.
헨리는 어차피 새로운 신위를 찾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라볼라에게 들었던 대로 헤라볼라에게 받은 신물들만으로는 아서스를 상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아서스와 비견될 만한 새로운 신위를 찾아 그 신위의 대리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헥터는 덤 같은 것이지.’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한 달 동안 혼자서 이 잡듯이 뒤질 새로운 신위를, 헥터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헤라리온이 물었다.
“저, 헨리 님?”
“예?”
“혹시 지금부터 새로운 신위를 찾아다니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럼 혹시 그 여정에 저도 동참할 수 없겠습니까?”
“전하께서요?”
“예.”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단순한 호기심일 뿐입니다. 야누스와 비슷한 신력을 가진 신이 이 대륙에 또 존재한다면 그러한 신을 믿는 자들을 제 눈으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헤라리온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했지만 이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야누스와 비슷한 신력을 가졌다면 분명히 성향 또한 야누스와 비슷할 텐데,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신을 섬기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왕가가 야누스를 모시는 방법이 틀려 이 사달이 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그래도 이러한 배움의 태도는 왕으로서, 그리고 라의 대리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에 헨리가 대답했다.
“안 됩니다.”
“예? 이유가 뭐죠?”
“잊으셨습니까? 전하께선 한 달 내로 라의 검이 되셔야 한다는 걸.”
“……아.”
“배움도 좋지만 그것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나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샤하트라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하신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무슈로 돌아가시는 게 어떠실까요? 무슈에는 전하께 무예를 가르쳐 줄 아주 훌륭한 교사들이 전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헤라리온은 호기심을 잠시 뒤로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