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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74화 (274/522)

# 274

뜻밖의 조력자 (3)

‘그런 말도 안 되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진실의 폭포 속에서 헨리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키메라와 같은 존재라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헨리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있던 헤라볼라가 말했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받아들여야 해, 헨리. 너는 이능에 의해 다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네가 사도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거야. 가진 신력의 크기가 비슷하거든.”

“…….”

다시 한번 단정 짓는 헤라볼라의 말에, 헨리는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받은 충격이 꽤나 컸던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존재도 아니고 여러 생물들을 혼합해 만든 키메라와 같은 취급을 받았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헨리가 충격을 받든 말든 헤라볼라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너는 사도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 그 힘이 언제까지 유효할진 나도 몰라. 그도 그럴 게 사도들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 아마도 지금쯤이면 아서스 그놈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손을 썼을 테지.”

요컨대, 지금 헤라볼라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신력 싸움이란 이야기였다.

무력의 크기와는 별개로, 그 무력이 상대에게 얼마나 온전히 적용될 수 있는지는, 얼마나 많은 양의 신력을 가졌느냐의 차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그 신력이 부족하여 헨리는 아서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 것이었다.

“얼굴을 보아 하니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된 것 같네.”

헤라볼라는 얼어붙은 헨리의 얼굴이 부쩍 즐거운지 빙글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헨리의 당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헨리는 헤라리온처럼 유약한 사내가 아니었으니까.

헨리는 곧 다시 정신을 차렸고 냉정하게 마음을 먹었다.

이성을 되찾은 헨리가 말했다.

“나쁜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키메라와 동급으로 취급할 수 있냐? 됐어, 어차피 기연으로 다시 살게 된 이상, 나는 내가 괴물이 된 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힘을 얻는 것에 선악을 두지 않기로 한 것.

헨리는 처음에 했던 다짐을 다시금 되새겼다.

이에 헤라볼라가 김이 샜다는 듯 다시금 칭찬해 주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래야 내가 아는 헨리답지. 걱정했잖아, 혹시라도 네가 자기혐오에 빠져 미쳐 버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흰소리 마라.”

“큭, 좋은 기세야. 어쨌든 그럼 이제 슬슬 두 번째 질문을 받아 보실까?”

“두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을 하기엔 첫 번째 질문을 통해 얻은 답변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딱히 물어볼 것이 없었다.

헨리는 첫 번째 질문을 통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들의 대부분을 해결하였으니까.

그리고 뇌리의 한쪽에는 여전히 자신이 키메라와 같은 존재라는 충격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헨리가 선뜻 질문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자 그 모습을 본 헤라볼라가 말했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네. 그럼 내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방향을 정해 주지. 헨리, 너는 우리들의 신물을 모두 가져간다고 해도 결코 아서스를 이길 수 없어.”

“뭐라고?”

“말해 준 그대로야. 사도를 비롯한 아서스 곁을 보필하는 놈들까진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아서스 그놈은 이기기 힘들다는 이야기야.”

“왜지? 설마 이번에도 신력의 문제인가?”

“맞았어. 사도들은 기껏해야 신력을 나누어 받은 정도지만, 아서스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놈은 야누스의 신위를 잇는 단 하나뿐인 대리자잖아?”

“그럼 놈은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데?”

“간단해 너도 그만한 신위를 가지면 돼.”

“신위를 가지라고?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래 신을 믿지 않겠지. 넌 마법사잖아? 여태껏 마법과 마법으로 성장해 온 네 자신을 믿었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신앙심을 가질 수 있겠어?”

신의 권능, 즉 이능의 덕을 보았다 하더라도 덕을 보는 것과 신을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헤라볼라 또한 그 차이를 뚜렷이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헨리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알면서 무슨 수로 나에게 신위를 가지라고 권하는 거냐?”

오죽했으면 헤라볼라가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에 헤라볼라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대륙 최고의 두뇌라더니, 이럴 땐 꼭 멍청이 같다니까?”

“뭐?”

“이 바보야, 잘 생각해 봐. 세상에 하나뿐인 신위를 가진 대리자가 있다면, 너도 세상에 하나뿐인 신을 찾아 그 신의 대리자가 되면 되잖아.”

“아까부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한텐 신앙심이 없다니까? 게다가 그런 신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나더러 찾으라는 거야?”

“그건 네가 찾아야지. 하지만 헨리, 생각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해. 그리고 그 신들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우릴 지켜보고 있다고?”

“그럼, 당연하지. 당장 네가 알고 있는 신만 해도 셋이나 되잖아? 라, 야누스, 그리고 성녀 아가씨가 모시는 아이린이라는 신까지 말이야. 한번 잘 생각해 봐. 과연 네가 살면서 본 신들의 수가 한두 명일지 말이야.”

헤라볼라는 마치 열린 결말 같은 조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직후.

“이런, 이제 시간이 다 된 모양이로군. 내 아버님께서 손주 놈에게 충분히 덕담을 해 주신 모양이야.”

“뭐라고? 헤라볼라! 난 아직!”

“아니, 난 충분히 조언해 준 것 같아. 그러니 나머지는 네가 한번 생각해 봐. 그리고 내가 빌려준 신물에 대한 대가도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그럼 내 아들놈을 부탁할게. 아 참, 그리고 신앙심이라는 거, 생각보다 별 것 없어. 네가 진심으로 믿는 것, 그게 바로 신앙이자 믿음이야. 그럼 내 아들을 좀 잘 부탁할게, 헨리.”

“헤라볼라!”

번쩍!

헨리는 희미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헤라볼라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헨리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마법사님……?”

상반신을 일으키자 눈앞에는 놀란 표정의 헤라리온이 자신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헤라리온을 발견한 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젠장, 헤라볼라 놈! 이딴 식으로 끝을 맺어 버리다니!’

헤라볼라는 분명히 답을 주었다.

하지만 헨리는 헤라볼라가 준 답안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짜증이 났다.

이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헨리를 보며 헤라리온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전하께선 어째, 멀쩡해 보이시는군요.”

“아뇨, 저도 마법사님과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님보다 제가 먼저 정신을 차렸을 뿐이지요.”

“그렇군요. 근데 여긴…….”

헤라볼라의 말대로 헤라리온 또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린 후, 뒤늦게 사태파악에 나선 헨리는 주위 환경이 처음에 발을 디뎠던 석면의 안쪽이 아님을 인지했다.

두리번거리는 헨리를 보며 헤라리온이 말했다.

“무덤의 문은 닫혔습니다. 아마도 어른들께서 저희를 내보내 주신 모양이에요

“……전하께선 무덤에서 누굴 만나셨습니까?”

“저는 조부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전하의 선친을 만나 뵈었습니다.”

“제 아버님을요?”

“예, 그리고…….”

헨리는 헤라볼라가 말한 대로 자신의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는 헤라볼라가 말했던 대로 정말로 없던 물건들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헨리는 그것들을 꺼내 보았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열 개의 반지들이었다.

“마법사님, 그건!”

“헤라볼라가, 아니 전하의 선친께서 그러시더군요. 전하를 잘 부탁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사용한 신물들은 사용 후에 반드시 반납하라더군요.”

헨리의 설명에, 헤라리온은 짐짓 감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헤라볼라가 남긴 열 개의 반지들을 손에 쥐어 보였다.

“이 짙은 신력들…… 정말이네요. 아버님께서 착용하시던 반지들이 확실합니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금반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물이라고 하니 소중하게 보관키로 했다.

그러나 신물과는 별개로 헨리는 여전히 헤라볼라의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헤라볼라 녀석,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 주든가! 왜 그런 쓸모없는 조언을 남겨 가지고…….’

시간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헤라볼라는 자신이 알려 줄 만한 건 전부 다 알려 주었다고 했으니까.

남은 건 헨리 스스로 찾는 것이라고 했는데…….

헨리는 그놈도 참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놈, 내가 아서스를 상대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입게 되는 건 자기 아들이 될 텐데.’

헤라볼라, 역시 오랜만에 봐도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윽고 헤라리온이 말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제 조부님께서 헨리 님께 이걸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조부님께서요?”

헤라리온 역시 조부로부터 무언가를 받은 모양이다.

말을 마친 헤라리온은 곧 품속에서 조그마한 달걀 같은 것을 꺼내 놓았다.

“계란?”

계란.

생긴 것이 딱 계란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 계란 같이 생긴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한테 이걸 왜?’

헤라리온의 조부라면 헤드자온이라고 불리는 칸의 초대 왕이다.

하지만 그는 헨리 보다도 나이가 많아 헨리와는 조금의 일면식도 없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손자도 아닌 왜 하필 헨리에게 이런 계란을 남긴 것인지 헨리는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계란을 받아든 헨리가 물었다.

“이것 말고도 조부님께서 제게 남기신 말씀은 없으십니까?”

“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헨리 님께 못난 아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못난 아들요?”

헤드자온의 아들 헤라볼라.

그런 헤라볼라를 못난 아들이라고 칭하며 헨리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헨리는 그런 헤드자온의 말에서 그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자신에게 주었는지 한번 추측해 보았다.

‘헤라리온과 헤라볼라의 관계만 봐도 뭔가 자식이 싸질러 놓은 걸 아비가 치운다는 느낌이 강한데 말이지……. 헤드자온, 당신은 대체 나한테 무얼 사과하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지금 당장 고민해서 나올 법한 답안은 아닌 것 같았다.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수확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그럼, 다시 무슈로 돌아갈까요?”

“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수확을 얻었다.

아서스 문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도를 비롯한 드라칸은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헨리는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그럼 이제 남은 한 달은 아서스에 대항할 새로운 신위를 찾는 것뿐이겠군.’

헨리의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 * *

-캬오오오!

마침내 샤하트라 산맥에 기거하던 마물들의 대부분이 능선을 넘는데 성공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마물들은 설레는 마음과 함께 폭주했다.

그리고 그 폭주의 희생양은, 자연스레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유지하던 산맥 근처의 마을들이 되었다.

“저, 저게 뭐야!”

“도, 도망쳐!”

“으아악!”

마물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학살, 그리고 포식.

학살과 포식은 비단 산맥의 마물들 중 강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산맥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마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산맥에선 약자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만큼은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산맥 너머에는 마물들이 없었고 기껏해야 인간과 짐승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약자들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약자들은 간만에 맛보는 포식자의 위치에 취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먹었다.

그리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산맥의 마물들은 더더욱 먼 곳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 새로운 먹잇감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들은 영역을 넓히고 넓혀 새로운 지역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 영역의 이름은 샬롯 고원.

그리고 샬롯 고원에는 지금, 유래 없는 포식자가 새롭게 군림하고 있었다.

산맥의 포식자와 고원의 포식자.

두 개체의 격돌이 한 걸음 더 바짝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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