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66화 (266/522)
  • # 266

    하늘이 무너져도 (1)

    무슈의 병원에서 마지막 빛의 고리들을 본 이후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 헨리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앙켈만, 아마리스, 소레국, 제방, 그리고 샤하트라.

    그렇게 다섯 개로 그칠 줄로만 알았던 도시의 파괴가 페이실링과 하이랜더, 그리고 비발디 타운까지 전멸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세인트 홀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도시들의 전멸했다는 뜻이었고,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제국을 지탱하는 중추들이 대부분 무너졌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국.

    이제 더 이상 아이니아 제국은 제국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운 나라가 된 것이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자면 아주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무너진 제국의 체제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도시와 시민들은 전멸했지만 도시의 수호를 맡겼던 인물들, 그러니까 맥도웰이나 바할드, 그리고 알렌의 목숨만큼은 건질 수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이미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초인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간신히 숨만 붙은 채로 살아남은 것이다.

    ……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그들의 몸에 새겨진 문자들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헨리는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그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초인적인 생명력에 감사했다.

    하지만 파괴되고 찢겨진 갑옷 사이에 드러난 그들의 맨살에는, 흐르는 핏물과 함께 사도들이 헨리에게 남긴 메시지들이 적나라하게 새겨져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한 달 뒤.’

    친위대의 몸에 새겨진 글씨는 ‘한 달 뒤’라는 짤막한 세 음절짜리 통보였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 메시지는 사도들이 한 달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왜 하필이면 한 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에 헨리는 한 달이 가지는 의미를 잠자코 생각해 보려 하였으나 이내 곧 그만두었다.

    대신 혹시나 싶은 마음에, 두스카인과 전 수도인 세인트 홀과 뮤즈리얼 같은 남은 대도시들을 다시 한번 모조리 둘러보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곳들은 아서스의 화를 피해 간 곳이었다.

    하지만 화를 피해간 곳보다 화를 입은 곳이 더 많았다.

    특히 화를 입은 곳들은 재기 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며, 그곳에 남아 있던 시민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앙켈만에서 보았던 것처럼 ‘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헨리는 마지막 빛의 고리가 생겨난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이며 생존자들과 남은 도시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들이 끝났을 때쯤, 헨리는 더 이상 육체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듯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는 꼬박 하루 가까이 잠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극단의 상황에까지 몰린 헨리의 육체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헨리를 도와 함께 움직이던 아크 메이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너무 많은 양의 마력들을 쉴 틈 없이 사용했다.

    자칫 잘못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모두들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그것은 과한 마법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였다.

    그리고 하루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때, 최소한의 체력을 회복한 헨리는 그제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아.”

    눈꺼풀을 들어 올린 헨리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긴 한숨.

    그 한숨 속에 녹아 있는 고뇌는 차마 한두 마디 말로는 감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눈을 뜨니 밝은 달이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다.

    헨리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에 몸을 일으켰다.

    사방이 고요했다.

    헨리가 눈을 붙인 곳은 무슈에 마련된 임시 거처였다.

    무슈에서 가장 큰 병원은 이미 폐쇄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다시 그곳을 병원으로 재활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살아남은 환자들, 그중에서도 좀비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환자들만을 추려 무슈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으로 옮겼다.

    물론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한 예방책도 단단히 구축해 두었다.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를 빠져나왔다.

    그런 다음 무슈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공간에서 술을 한 병 꺼내 든 후 마개를 열었다.

    퐁-!

    경쾌한 소리가 적막 속에서 울려 퍼졌다.

    헨리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체 원하는 게 뭐냐, 아서스!’

    환생한 직후부터 나름대로 공을 들이고 소중하게 여겨 온 도시들의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절멸했다.

    그리고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개중에는 벤트나 하즈, 텐과 같은 이제야 슬슬 허리를 펴는, 꿈같은 노후를 기다리는 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이젠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다.

    이젠 정말로 영면에 들고 말았으니까.

    헨리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몹시 미안했다.

    그들이 얼마나 비통하고 원통해하며 죽어갔을지, 그들의 심정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헨리는 한 번 더 술병을 입술로 가져다 댔다.

    목구멍을 타고 독한 양주가 흘러내렸다.

    썼다.

    지독하게 썼다.

    하지만 지독하게 쓴 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쓴맛을 느끼지 못했다.

    지독하게 쓴 술보다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이 더 쓰라리기에, 헨리는 고작해야 술의 쓴맛 정도로 인상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

    이윽고 헨리는 술 한 병을 금방 비워 냈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헨리는 얼큰하게 올라오는 술기운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들을 명상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된 이성 속에서 냉철함을 틔워 냈다.

    ‘확실히 많이 무뎌지긴 했어.’

    헨리는 최초로 환생했을 때의 다짐을 떠올렸다.

    자신의 비참한 말로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이젠 더 이상 힘을 얻는 것에 선악을 두지 않기로 했던 차가운 다짐을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된 성공과 늘어가는 확신, 그리고 희망으로 차오르는 미래에 자기도 모르게 독기가 무뎌졌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오만이었는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반성과 참회를 거듭하자 곧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감정을 다스리며 다시 초심을 되찾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처음에 가졌던 복수의 마음으로 말이다.

    이윽고 헨리는 차가워진 이성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과거와 현실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종합된 정보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서스가 데리고 있는 사도의 수는 총 아홉. 그중에서 내가 한 놈을 제거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여덟이다. 그리고 드라칸과 아서스까지 총 열 명. 이 열 명이 내가 쓰러뜨려야 할 적의 숫자다.’

    헨리는 지극히 기초적인 것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현재 남은 적의 수와 살아남은 도시의 수, 그리고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사람들 같은 정보들까지 모두 말이다.

    그리고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끝에 헨리는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사도를 제거하는데 성공했건만 어째서 맥도웰이나 바할드는 실패한 거지?’

    생각을 정리하던 끝에 깨달은 모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순수한 무력으로만 보자면 맥도웰이나 바할드가 헨리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사도들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고 몸뚱이에 낙인과도 같은 치욕을 맛보아야만 했다.

    헨리는 이 부분에서 지독한 모순을 느꼈다.

    ‘내가 상대했던 놈이 약한 놈이었나? 아냐, 놈은 이미 헥터를 쓰러뜨렸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이 약하다는 건 말이 안 돼.’

    만나 본 사도가 한 놈뿐이었기에 다른 사도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헨리가 쓰러뜨린 사도가 단순히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긴 고민이 지속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쉽게 납득할 만한 마땅한 추측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기랄……!”

    답답한 마음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헨리는 이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풀리지도 않을 문제, 억지로 붙들고 있어 봤자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밀린 일부터 처리해야겠군.’

    마음 같아선 좀 더 병실에 누워 회복에 치중하고 싶었지만 빈사 상태에 빠진 다른 사람들에 비하자면 헨리는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그리고 만약 아서스의 메시지가 헨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맞는다면, 헨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한 달밖에 없었다.

    그러니 헨리에겐 이젠 정말로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헨리가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헨리는 우선, 폐허가 된 샤하트라의 왕궁에 도착했다.

    그곳은 거슬렁거와의 전투로 이젠 정말로 왕궁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헨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거슬렁거와의 전투와 다른 곳으로 급히 이동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당시에 미처 데려오지 못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름 아닌 헥터였다.

    “헥터?”

    헨리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불안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헨리는 헥터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곳에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헨리의 눈앞에 푸른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오냐?”

    헥터 마이어.

    혹시라도 사도에게 해를 입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멀쩡했다.

    이에 헨리가 멋쩍은 미소로 헥터의 생존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헥터는 억지로 미소 짓는 헨리의 얼굴에 녹은 고단함을 읽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신도 밝은 모양새로 헨리를 맞이했다.

    헨리가 여전히 멋쩍은 표정으로 헥터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친 데는 없고?”

    “다친 곳은 없는데 박살 난 코룬은 있지. 이제 내게 남은 육체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

    “육체야 다시 만들면 되지, 뭐. 늦게 와서 미안하다,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

    “헤라리온은?”

    “위태롭긴 해도 숨은 붙어 있어. 곧 평화교의 사제들을 데리러 갈 예정이니 회복은 더 빨라지겠지.”

    “……거 듣던 중 다행이네.”

    헤라리온의 안부를 끝으로, 헥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에 헨리 또한 말을 아꼈다.

    그러기를 한참, 헥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헨리.”

    “왜?”

    “난 몹시 분하고 억울하다.”

    “이해해.”

    “아니, 넌 이해할 수 없어. 평생을 검의 길만을 닦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내 일격은 놈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으니까.”

    “닿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분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이 닿지 않았다니?’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헥터의 말이 계속 됐다.

    “말 그대로였다. 내가 휘두른 공격 하나하나가, 놈에게 닿는 듯하면서도 닿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의 내가 너희들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놈에게 물리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아니, 놈에게 물리력은 닿았다. 하지만 내 힘이 놈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흡수되듯, 아니 흘러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헥터는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이 느끼고 겪은 것들을 헨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헥터의 설명을 들어도, 헨리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의 공격은 거슬렁거에게 먹혔으니까.

    ‘나는 베었고, 헥터는 베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부터 어긋나니 서로가 서로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체 뭐지?’

    그리고 이러한 헥터의 말은, 헨리가 좀 전까지 고민하던 것과 몹시 흡사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 결코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헥터는 한동안 자신이 답답해하는 부분을 헨리에게 좀 더 어필한 후에야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었다.

    헥터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란 걸 말이다.

    이에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알겠다.”

    순순히 수긍하는 헥터.

    이윽고 헨리는 헥터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하기 전, 왕궁 아래에 펼쳐진 샤하트라의 수도인 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왕국의 심장부로 불리우는 왕궁이 폐허가 되고 왕궁을 유지하는 대부분의 관료들이 사망했다.

    이는 분명히 샤하트라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만큼 몹시 커다란 문제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헨리는 알지 못했다.

    샤하트라의 존망에 있어 왕궁이 하는 일이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그래서 막연한 불안감에, 헨리는 그저 샤하트라의 태양신, 라에게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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