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지각의 대가 (5)
같은 시각.
제방과 소레국에도 아서스가 보낸 사도들이 방문했다.
그들의 이름은 칸느와 리드카인.
두 사도는 나르바가 그랬던 것처럼 정중하게 정문으로 입국을 시도했다.
그리고 두 사도를 맞이한 두 개 나라의 같은 반응을 보였다.
“네놈은 누구지? 정체를 밝혀라.”
두 나라의 문지기들이 물었다.
이에 두 사도는 각자의 이름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칸느.”
“내 이름은 리드카인.”
그리고.
“위대한 대륙신, 아서스 님의 율법을 전파하러 왔다.”
아서스의 율법.
즉, 종교인들의 말로 해석하자면 전도를 하러 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신분패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비웃음뿐.
그래서 제방과 소레국의 문지기들은 직업 정신에 걸맞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신분패가 없다면 들여보내 줄 수 없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에 두 사도들은 각자 판이한 반응을 보였다.
먼저 칸느는…….
“이상하네……. 왜 위대하신 아서스 님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 거지?”
라며 문지기들의 우매함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드카인은…….
“역시, 드라칸 님의 말씀이 맞았어. 저놈들은 무지한 개돼지 같은 놈들이야. 그러니 더더욱 가르침이 필요하겠어.”
라며 전도에 대한 열의를 더더욱 불태웠다.
반응은 판이했지만 결과는 곧 하나로 귀결되었다.
두 사도는 아서스에게 명령을 받았고 어찌 됐든 그 명령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두 사도에겐 명령을 수행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힘이 있었다.
이에 칸느와 리드카인이 말했다.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무지한 것……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의 죄다.”
콰아앙!
두 사도는, 굳게 닫힌 성문을 단 일격에 박살 내고 말았다.
* * *
광명이 응집됐다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페이실링의 최고 지휘권자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렌과 워커, 그리고 마실라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페이실링의 시청 앞.
그곳이 바로 알렌과 마실라가 공무를 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 앞에 도착한 직후, 세 사람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처럼 가득히 쌓여 있었고, 그 아래로 핏물이 흘러나와 지독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의 산은 페이실링의 시청보다도 거대했다.
마치 죽은 키메라 군단의 시체 무덤을 보듯, 시체의 산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높이의 시체 무덤을 보고 알렌의 얼이 빠져 있을 무렵, 모두의 귀에 낯선 음성이 들려 왔다.
“어, 왔어?”
“……!”
무덤의 위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자 넋이 나갔던 알렌은 황급히 제정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사자 갈기처럼 노란 머리가 풍성하게 난, 제복을 입은 낯선 남자가 시체의 산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안녕?”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 자연스럽고도 여유로운 인사에, 알렌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타악!
이윽고 남자는 시체의 산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엄청난 높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착지했다.
그런 다음 옷깃에 묻은 먼지를 두어 번 털어 보인 후, 알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가워. 너는 이름이 뭐니?”
제복과 한 세트인지, 남자는 하얀색 장갑을 낀 오른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알렌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이에 알렌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한번 헛웃음을 내뱉었다.
손은 잡지 않았다.
태연하게 그의 손을 붙잡기엔 놈의 몸에서 너무나도 짙은 피비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렌은 놈의 악수에 응하는 것 대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인사는 됐고. 저기 시청 옆에 저거, 네놈 짓이냐?”
“응, 내가 한 일인데?”
“이유는?”
“저 녀석들에겐 신앙심이 없더라고. 그래서 아서스 님의 가르침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존재의 의의를 거두어 줬지.”
“존재의 의의라…… 그렇군.”
아서스.
혹시나 싶었지만 남자의 입에서 막상 그 불결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알렌은 더 이상 자신의 분노를 억제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알렌은 한 가닥뿐인 이성의 끈을 간신히 유지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자신의 뒤편에 선 워커와 마실라에게 말했다.
“워커.”
“예.”
“마실라를 부탁하마.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는 즉시 마실라와 함께 대마법사님을 찾아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알렌!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알렌은 워커에게 마실라를 부탁했다.
이에 마실라가 놀란 얼굴을 하고서 알렌의 명령을 거부하려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책사는 부관의 손아귀 힘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에 알렌이 마실라에게 말했다.
“마실라.”
“어, 어?”
발버둥 치는 마실라에게 알렌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탓에, 도리어 흥분하던 마실라가 당황하고 말았다.
이윽고 알렌이 말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 잠시 피신해 있어. 늘 그랬던 것처럼.”
“알렌……!”
“그럼 워커, 부탁한다.”
“예.”
알렌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 워커는 마실라를 들쳐 업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후 알렌은 그제야 다시 등을 돌려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에 남자가 알렌에게 물었다.
“방금 뭐 한 거야?”
“늘 하던 걸 했지. 그럼 우린 못 다한 이야기나 마저 나눠 볼까?”
“못 다한 이야기라…… 그렇게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으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겠다고?”
“몸의 대화도 이야기에 속하지. 그리고 너, 네가 바로 아서스가 보낸 선물인지 뭔지 하는 놈이지?”
“똑똑하네. 하지만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아서스 님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불렀다간 신벌을 받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츄아아아!
남자의 경고에 알렌은 허리에서 즉시 마검 바실리포를 뽑아 들었다.
그런 다음 환한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아서스 개×끼.”
“하?”
화아아악!
순간 열풍이 불어닥치듯, 남자로부터 엄청난 열기의 풍압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그리고 남자의 눈이 두 배쯤 커졌으며 웃고 있덥 입꼬리가 사라지고 미칠 듯한 살기를 가득 담아 알렌을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지껄여 봐, 뭐라고?”
“못 들었어? 다시 한번 말해줄까? 아. 서. 스. 이. 개. ×. 끼. 야.”
남자의 요구에 알렌은 음절마다 또박또박 끊어서 다시 한번 아서스를 욕했다.
그리고 아서스에 대한 욕설이 알렌의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남자는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알렌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알렌이 저만치 날아가 어느 이름 모를 건물에 부딪쳤다.
콰쾅!
그리고 알렌이 건물에 부딪힌 순간, 충격을 견디지 못한 건물이 무너지며 무덤처럼 알렌을 덮쳤다.
우드득, 우드득.
그러나 남자는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뚜렷하게 이글거리고 있는 알렌의 생명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보아하니 네놈이 바로 페이실링의 수장인 알렌이라는 놈인가 보군.”
빙글거리던 경어는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아랫사람을 보는 듯한 거만한 말투가 남자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시온, 위대하신 아서스 님의 아홉 사도 중 하나다. 아무래도 네놈에겐 단 한줌의 신앙심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군.”
사도 시온은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형벌을 집행하는 망나니처럼 지독한 살기를 전신에서 뿜어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콰득, 콰드득-!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들썩거렸다.
순간 부서진 벽돌들이 우르르 치솟더니, 그곳으로부터 알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온이라…….”
알렌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일그러지다 못해 형체조차 없어졌어야 할 시온의 펀치였지만, 알렌은 먼지가 잔뜩 묻은 것 이외엔 한없이 멀쩡해 보였다.
“그놈도 참 웃기네. 대공작에, 황제에, 이젠 신까지 흉내 내려 든다고?”
“흉내 따위가 아니다. 그분은 이 대륙을 지배하실 단 하나뿐인 신이시다.”
“지랄하네, 퉤!”
바닥에 침을 뱉는 알렌.
침 속에는 약간의 핏물이 섞여 있었다.
‘사도라고 했나? 아서스 그놈, 뭔진 몰라도 엄청난 놈을 부하로 들인 것 같군.’
좀 전의 일격이 녀석의 진정한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놈은 이미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알렌은 놈의 죄를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렌은 마검 바실리포를 고쳐 쥔 뒤, 시온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 한번 증명해 봐. 아서스가 개새끼인지 아닌지를 말이야.”
알렌의 도발에 시온은 사자 갈기 같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다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용병 놈들의 대가리라 그런지 네놈 대가리도 무식하구나. 네놈은 특별히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채로 평생을 속죄 속에 살게 해 주마.”
“좋으실 대로.”
번쩍!
일순간 시온이 사라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알렌의 앞에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안녕?”
콰드득-!
시온의 주먹이 알렌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 * *
“좋구나……!”
아서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나 대리석 욕조에 가득 담긴 것은 한낱 물 따위가 아니었다.
피.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 갓 짜낸 신선한 핏물이었다.
사방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피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아서스는 한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은 너도나도 만족스러워서 마치 포도주에 취한 여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만족스러워 하시니 다행입니다, 폐하.”
“하하, 드라칸. 언제까지 나를 폐하라고 부를 참이야? 황제 놀음은 진즉에 끝났다고. 이젠 그냥 아서스 님이라고 불러.”
“죄송합니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사이에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사도들이 일을 잘해 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신앙심이 잔뜩 느껴져.”
“축하드립니다, 아서스 님.”
아서스는 전신에 끓어넘치는 신력에 더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력.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신이 신도들의 믿음을 통해 가지게 되는 힘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신은 그러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대리자를 인간들 중에 골라 친히 신의 권능을 빌려 주었다.
아서스는 야누스의 대리자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헤라리온이 야누스의 유일한 대리자가 되어야만 했지만, 몇 세대에 걸친 칸 왕가의 거짓 제물과 야망 없는 왕들의 성격 탓에 야누스는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과거 호시탐탐 자신의 힘을 탐냈던 아서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좀처럼 아서스와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야누스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셔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스가 칸의 왕비인 셀렌을 매개로 자신의 신전에 들어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제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야누스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야누스는 셀렌과 연결된 아서스의 정신에 침투했다.
그리고 아서스의 두 눈에 자신의 은총인, ‘신흔(神痕)’을 새겼다.
신흔은 곧 신물이 되었고, 신물은 곧 야누스와 아서스 사이의 교접을 이루게 해 주는 대화의 창구가 되었다.
그리고 야누스는 이로 인해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신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서스라는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신도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서스를 편애하지는 않았다.
야누스는 그저 헤라리온 일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서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아서스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헤라리온의 거짓 제물과 드러내지 않는 야망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증명을 말이다.
이에 야누스는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서스를 어여삐 여겼고 급기야 아서스에게로 완전히 마음을 기울이고 말았다.
그 결과, 야누스의 은총을 잃은 헤라리온은 야누스의 신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야누스의 신력을 잃음과 동시에 신물 또한 신력을 상실하고 말았고, 그 탓에 헤라리온은 더 이상 죽음의 힘을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아서스는 점점 더 거대한 신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죽음의 박탈’과도 같은 죽음의 권능은 물론이고, 공간을 접어 이동하고 상대의 물리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러한 힘들을 말이다.
“신력…… 최고야……!”
그러나 아서스는 만족하지 않았다.
아서스는 야누스로부터 더더욱 큰 힘을 얻기 위해, 야누스가 원하는,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분출했다.
설령 자신의 욕심을 위해 대륙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고 한들 말이다.
아서스는 점점 더 신위에 취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