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꼬리잡기 (6)
‘흠…… 이를 어쩐다?’
헨리는 고민했다.
성격 같아선 늘 하던 대로 시원하게 헨리의 제자라고 둘러대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이셀란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헨리는 더더욱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이 길어질수록 두통만 유발될 뿐,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르기로 했다.
“전 사실 돌아가신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 님을 스승님으로 둔 유일한 직계 제자입니다.”
“뭐?”
“사실입니다. 덕분에 전 지금 스승님을 이어 대륙에서 유일한 7서클 대마법사가 되었습니다.”
“……!”
담담한 헨리의 고백에 모두가 털을 쭈뼛 세웠다.
7서클 대마법사라니?
그런 엄청난 사실을 이리 담담히 말해도 된단 말인가? ……라는 표정들이었다.
이에 이셀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스는 이 사실을 아느냐?”
“모르십니다.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일체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근데 대체 어떻게 대공께서 너에게 마법을 가르쳤다는 것이지? 내가 아는 대공은 시간을 굉장히 귀히 여겨 초 단위로 인생을 사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과장되긴 하였으나 얼추 맞긴 했다.
전생의 헨리는 8서클에 진입한 이후로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매일을 서클 증진에 힘썼으니까.
이에 헨리가 답했다.
“꿈입니다.”
“꿈?”
“예, 8서클의 마법 중에는 상대의 꿈속에 들어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마법이 있습니다. 스승님은 이것을 ‘드리밍’이라고 불렀는데 매일 밤 주무실 때마다 그 마법으로 저를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렇군…….”
이셀란은 쉽게 수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가 아무리 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한들, 이셀란은 마법에 대해선 조금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드리밍은 헨리가 즉석에서 지어낸 마법이었다.
이셀란을 포함한 모두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번엔 로난이 물었다.
“그럼 그 녹색의 오러도 마법과 관련이 있는 거냐? 아, 아니지…… 것입니까?”
헨리가 7서클 대마법사임을 밝혀서 그런 것일까?
어색함을 느낀 로난이 급히 호칭을 정정했다.
이에 헨리가 웃으며 대꾸했다.
“응, 맞아. 그리고 한 번 동기면 영원한 동기지,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말을 높이고 그래?”
“하지만 난 이제 포람의 성을 버렸으니 신분적으로도 평민이기도 하고…….”
“흰소리 말고 하던 대로 해.”
“그래.”
헨리의 단호한 지적에 로난은 다시금 말투를 정정했다.
이외에도 헨리는 연합국을 형성하여 아이니아 제국과 맞서려던 사실이나, 새로운 마탑인 설탑을 세운 일들과 같이 여태껏 자신이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물론 아서스가 키메라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들까지 말이다.
그리고 설명의 마침표로는 모두에게 입단속을 부탁했다.
“뭐…… 솔직히 말해서 발설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모두들 저의 정체에 대해선 말씀을 삼가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아서스 측에선 저에 대한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럼 니첼 사령관님께선 지금 즉시 하이랜더 지방으로 이동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지금 이 시간에도 비축해 두었던 보급 물자는 빠르게 소비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제가 근처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칼리번과 하이랜더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헨리가 텔레포트로 도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이윽고 잠자코 듣고 있던 이셀란이 말했다.
“헨리.”
“예, 부사령관님.”
“네가 아서스 그놈과 맞서싸우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내 진즉에 도움을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렇잖아도 아서스 그놈, 옛날부터 심히 거슬렸던 참이거든.”
“그래도 부사령관님 같은 분이 이곳을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저희 같은 사람들이 속 편히 세력 싸움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뭐, 각자가 짊어질 운명이란 게 있는 거니까.”
여태껏 정치 싸움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이셀란이 오늘따라 유독 아서스에 대한 적개심을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서스가 키메라 같은 비인륜적인 일에 손을 대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셀란이 말했다.
“그럼 나도 들은 것이 있으니 너에게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알려 줘야겠군.”
“정보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가 전부터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것들?’
헨리는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쉿! 조용히 따라오너라.”
헨리가 알은체를 해 보이자 이셀란이 가만히 입술에 검지를 갖다붙였다.
그리고 니첼과 시선을 한 번 주고받은 뒤, 로난과 함께 방을 벗어났다.
* * *
도착한 곳은 요새 내부에 설치된 신전의 지하였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며 이셀란이 말했다.
“성수나 말뚝, 은으로 된 밧줄 등등…… 네가 내게 군부 상인의 자격을 달라고 하면서 내가 요구한 것들 대부분이 지금 보여 줄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걷는 내내 이셀란이 서두를 깔았다.
덕분에 헨리의 궁금증은 점점 더 증폭되어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하자 이셀란이 말했다.
“마법사가 있으니 굳이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되겠군. 헨리?”
“예.”
딱!
이셀란의 요청에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깊숙한 지하를 밝히는 눈부신 광휘의 구체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광휘의 구가 사위를 밝힌 순간, 헨리는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보고 감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혹시 대공께서 이것들에 대해 가르쳐 주셨느냐?”
지하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쇠창살들이 감옥처럼 뻗어져 있었다.
아니, 그것은 ‘쇠’창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은으로 된 창살이었다.
그리고 은 창살 안에는 마치 어둠으로 빚어진 듯한, 끈적거리는 점액질들이 마치 생명체처럼 꾸물럭거리고 있었다.
“검은 양수……!”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이건 요새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검은 양수’란 것이다.”
검은 양수.
그것은 말 그대로 임산부가 생명을 잉태했을 때 뱃속 가득히 품고 있는 생명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 색이 검다.
그리고 세상에서 양수의 색이 검고 저렇게 액체가 아닌,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마왕……입니까?”
“그래. 검은 양수는 마왕의 출현을 알리는 최악의 징조들 중 하나지.”
마물의 숲 1급 구역의 끝에는 마계와 연결된 ‘마계의 틈’이라는 차원의 틈이 있다.
헨리는 전생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그것을 닫으려 하였으나, 겨우 8서클의 힘으로는 문을 닫기는커녕, 차원 자체가 가지는 속성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마물들의 힘이 부쩍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리치 나이트를 포함해 좀처럼 보기 힘든 진화종 녀석들까지 틈만 나면 여러 구역을 넘나들며 포식을 일삼고 있다.”
모두가 새로운 마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최악의 징조들이었다.
이에 헨리는 몰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짚었다.
‘하필 이럴 때……!’
마왕은 죽지 않는다.
아니, 죽여도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운 마왕이 마계의 틈에서 넘어오거나 마물의 숲 어딘가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저지하고 감시하기 위해 제국에선 칼리번 요새라는 대륙 최고의 특수군을 설립한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로어 길리언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네 말대로 마탑의 주인이 너로 바뀌었다면 당연히 너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이렇게 알려 주는 것이다.”
헨리는 그제야 왜 숲의 안쪽에서 이셀란을 만났던 건지, 모든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셀란은 칼리번 요새의 최고 무력.
그래서 다른 이가 아닌, 이셀란 스스로가 직접 마왕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어서 이셀란이 말했다.
“뭐……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수십 년 전에 마왕이 생겨났을 때, 난 그 당시에 백 명의 병사들을 부리는 백부장의 자격으로 마왕 토벌전에 참여했었다.”
“그러셨습니까?”
기억에 없다.
당시의 이셀란은 헨리에게 기억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였으니까.
“그래, 우연한 기회로 참전한 것이긴 했었지. 아무튼 그때의 나는 대공과 선대 황제 폐하의 활약상을 보고 다짐했었지. ‘아! 나는 평생 이곳에서 대륙을 수호해야겠다!’라고 말이야.”
“…….”
“그런 이유로 그동안 나는 새로운 마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새롭게 편성된 칼리번 요새에서 힘을 기르고 마왕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런 내 관점에서 봤을 때, 빠르면 몇 개월 내로 새로운 마왕이 탄생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몇 개월…….”
그것은 헨리 또한 동감이었다. 그 마왕 토벌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이셀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이가 바로 헨리였으니까.
“헨리, 새로운 마왕이 탄생하게 되면 나 혼자선 절대로 막을 수가 없다. 그러니 네가 대공의 진짜 직계 제자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수개월 내로 목표한 바를 이루어라. 그래야지 그때부터 새로운 마왕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이셀란은 제법 뻔뻔스럽게 헨리에게 책임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굳이 이셀란이 책임을 지우지 않아도, 마왕에 관해서라면 헨리 또한 당연히 다시 최전선에 설 생각이었다.
삼 개월.
그런고로 헨리가 새로운 마왕의 탄생을 제대로 저지하기 위해선 최소 삼 개월 내로 아서스를 무너뜨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두어야만 했다.
‘끄응, 이거…… 생각지도 못한 시간 제약이 생겨 버렸군!’
아서스 한놈을 상대하는 것도 귀찮은 마당에 이제는 시간 제약까지 생겨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제약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연합국을 형성한 이상, 헨리 또한 전쟁을 길게 끌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삼 개월! 딱 삼 개월 안에 아서스를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부사령관님을 돕겠습니다.”
“좋은 각오로군.”
이에 이셀란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헨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좋아, 그건 그렇고, 혹시 너만 괜찮다면 이번 전쟁에서 로난을 한번 기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부사령관님!”
“조용.”
마왕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셀란은 뜬금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로난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발하려 들었으나 이셀란이 그것을 저지했다.
헨리가 물었다.
“제가 굳이 로난을 기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무슨? 내가 가장 아끼는 부관을 너에게 빌려줌으로써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라는 뜻이다.”
“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확실히 전 십검들을 휘하에 두고 있긴 했지만 인재란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으니까.
이에 헨리가 가볍게 승낙했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로난을 빌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헨리, 너까지!”
“시끄러워! 이게 다 부사령관님의 깊은 뜻이 있는 거니까.”
덕분에 헨리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로난을 부하로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럼 이것 외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어. 아 참, 그리고 만에 하나 아서스가 보급을 거절한다면…….”
“그땐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정적인 보급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든든해서 좋군.”
빈말이 아니었다.
조금만 무리한다면 헨리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헨리는 니첼, 로난과 함께 하이랜더 지방으로 텔레포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이잉!
칼리번 요새 앞에 새로운 인물이 짤막한 광휘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끄응, 가뜩이나 스크롤도 부족한 마당에…….”
요새 앞에 도착한 자의 이름.
그의 이름은 킹턴 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