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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187화 (187/522)

# 187

동맹국 (1)

황제가 죽고 유라시아 제국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대륙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들 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방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제국이 무너질 만한, 이렇다 할 전쟁 한번 일어나지 않았기에 의아함은 더더욱 컸다.

하지만 황궁에서 기거하던 시종들이 대륙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그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었다.

“뭐? 황궁이 사라져?”

“제국이 망했다고?”

“그럼 우린 어떡해?”

“제기랄, 대륙에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불겠군.”

어떤 이들은 곧 벌어질 혼란을 두려워했고 어떤 이들은 한바탕 일어날 전쟁을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은 꽤나 위험하긴 해도 어찌됐든 한몫 단단히 잡기 좋은 시기임에는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제국이 망함과 동시에 제국에서 발행한 화폐나 어음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대신에 금이나 쌀 같은 원시적인 것들에 대한 가치가 대폭 상승했다.

대륙 전체에 혼란의 때가 도래한 듯했다.

수도가 대륙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으니 대륙 전역에 퍼지는 소문의 속도도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식이 소문만큼이나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아이니아 제국?”

“아서스 대공작이 세운 나라라고?”

소식의 시작은 아이니아로 전향한 귀족들이 유라시아 제국의 명패를 없애고, 아이니아 제국의 명패를 단 것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명령을 받은 아이니아 제국의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지민들을 한데 모아 놓고 새롭게 탄생한 아이니아 제국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물론 영지민들이야 누가 황제가 됐든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윗대가리가 누가 됐든 간에 그들의 일상이 바뀌는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서스의 정책은 달랐다.

아서스는 기존에 거두어들이던 유라시아 제국의 세율을 20% 낮춤으로써 제국민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오오! 역시 대공작님, 아니 황제 폐하는 다르셔!”

“아서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세금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 진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세금을 인하시킨 것과 더불어 아서스는 부정부패의 척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야지만 인하된 세금만으로 국정 운영에 차질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인하된 세금과 부정부패의 척결에 대한 ‘진짜 속사정’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당시의 세금은 원래 아서스가 전 제국의 대공작이던 시절에 국무회의에서 아서스가 직접 의견을 내 올려 놓았던 세금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 올린 세율은 40%였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인 셈.

게다가 그 당시에도 세금을 올리기 전에 개국공신파가 부정부패의 척결에 힘쓰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국정 운영에는 차질이 없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보여 주기식 쇼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서스는 어떻게 하면 초창기에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제국이 이제 막 출범한 지금, 아서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전 제국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이미지’였으니까.

* * *

“다들 잘 알아들었지?”

“물론입니다, 대마법사님.”

짧게 끝날 줄로만 알았던 회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어져 무려 세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세 시간의 회의 중 허투루 쓰인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예!”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회의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아서스가 새로운 제국을 건국한 지금, 아서스가 미처 흡수하지 못한 지역들, 예컨대 전 제국의 동맹국들에게 재동맹을 체결하자는 사절단을 보내는 것이었다.

‘아서스 그놈이 아무리 새로운 제국을 세워 봤자 고작해야 대륙의 60%가 영토의 전부일 것이다. 왜냐하면 놈은 대륙 정벌을 통해 제국을 세운 게 아니니까.’

유라시아 제국이 대륙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까닭은 통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대륙 전체를 정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서스는 달랐다.

아서스는 황제의 목을 취하고 그 휘하에 있는 귀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비교적 평화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 작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하지만 피를 적게 흘린 만큼, 골든 잭슨이 그랬던 것처럼 대륙 전체를 손에 넣을 순 없었다.

그러므로 아서스가 새로운 제국을 건국한 지금, 아서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직 소식이 채 전해지지 않은 다른 동맹국들에게 다시 한 번 동맹을 권유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동맹국들이 가지는 영토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그 크기는 대략적으로 대륙의 30% 정도.

나머지 10%는 마물의 숲이나 살게라 같은 쓸모없는 땅들이 대부분이었으니 30%가 맞는 계산이었다.

그러니 헨리는 그 30%를 쥐고 있는 동맹국들을 아군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최소한 아서스의 동맹국, 즉 적으로는 돌리지 말아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힘들어질 테니까.’

동맹국.

동맹국은 말이 좋아 동맹국이지, 헨리가 대륙 정벌을 나서던 때에 끝끝내 왕국 전체를 와해시키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말아야 했다.

‘샤하트라는 이미 내 수중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곳은 네 곳.’

제국에는 다섯 개의 동맹국이 있다.

먼저 헤라리온이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막의 ‘샤하트라’.

그리고 왕국 전체가 강인한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두스카인’.

다섯 개의 동맹국 중 가장 작은 영토를 가졌지만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수 민족의 ‘소레국’.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동대륙인들로 구성된 ‘제방’.

마지막으로 온전히 여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여인들의 나라, ‘아마리스’.

이에 헨리는 샤하트라를 제외한 네 개의 나라에 학파장들을 사신으로 파견했다.

헨리가 적어준 각기 다른 내용의 ‘서신’들을 들고서 말이다.

이외에도 헨리는 사신으로 파견된 네 명의 학파장들 외에 생물학파의 수장인 아가스와 연금학파의 수장인 메이커에게 각기 다른 임무들을 부여해 주었다.

“로어.”

“예, 대마법사님.”

“그럼 나는 샤하트라에 다녀올 테니, 그동안 설탑의 지휘를 부탁할게.”

“염려치 마십시오. 대마법사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이사를 말끔히 끝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듬직하군.”

샤하트라에는 일부러 학파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헤라리온과 친분이 있는 곳이니 만큼 헨리가 직접 가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텔레포트.”

7서클이 된 헨리는 아크 메이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볍게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지잉!

헨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이동학파의 수장, 링키 블락이 경탄스러운 눈빛으로 헨리가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오오……! 저게 바로 대마법사님의 이동 마법……!”

링키가 헨리의 마법에 감탄하자 다른 학파장들 또한 눈빛을 번뜩였다.

하루 빨리 7서클로 각성해 내겠다는 일념을 말이다.

* * *

“제가 왔습니다, 전하.”

“오, 헨리 공!”

사막에 위치한 샤하트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소식이 늦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궁의 그 누구도 굳이 사막으로 기어들어 갈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헨리는 여전히 땡볕에서 검무를 펼치고 있는 헤라리온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 미소를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헨리 공,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왜 없겠습니까? 전하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도 좋아할 소식이요?”

“그렇습니다.”

“하하, 그것 참 기대가 되는군요. 그럼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요? 그 소식이 무엇인지?”

“제국이 망했습니다.”

“예?”

“황제도 죽었습니다.”

“예?”

“그리고 아서스가 새로운 제국을 건국했습니다.”

“예에에?”

딸그랑!

마지막 말에 헤라리온은 그만 손에 쥐고 있던 목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헤라리온은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곧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사실을 되물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헨리 공?”

“모든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이제 ‘공’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이젠도 죽었습니다.”

“예에?”

충격에는 끝이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이었다.

“결국 아서스가 반란을 일으켜 대륙의 새로운 패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황제가 죽었고 제국이 멸망했을 뿐입니다.”

“그럼 이제 대륙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전하를 찾아온 것입니다. 전하, 머지않아 아서스가 세운 새로운 제국으로부터 사신이 파견되어 올 것입니다.”

“아서스 측에서 말입니까?”

“예, 제 예상이 맞는다면 유라시아 제국이 멸망했으니 동맹국으로 분류되어 있던 나라들을 포섭하려 들 것입니다.”

“흠, 그건 좀 의아하군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아서스 입장에서 굳이 동맹국들을 다시 포섭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서스의 목적이 황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면 목적은 이미 이루었지 않습니까?”

“당연히 욕심 때문이지요. 그는 이미 대륙을 손에 넣은 대제국의 대공작을 지냈던 몸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새로운 제국의 황제가 된다고 한들, 대륙 전체를 손에 넣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아서스 그 작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겠군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아서스 제국의 동맹 제안을 거절하면 결과는 뻔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아서스는 이번에야 말로 완벽하게 샤하트라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동맹국으로 남지 못한 나라의 결과는 뻔하다.

그 나라의 왕족과 귀족들의 씨가 멸족되고 왕국은 자유도시쯤으로 신세가 전락되어 시장직을 통해 제국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도시는, 특히 샤하트라의 경우엔 평생 동안 특산품 생산이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헤라리온은 잠시 전쟁에서 패한 자신의 나라의 끔찍한 미래를 떠올렸다.

상상만 해도 역겨운 미래였다.

이에 헤라리온이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동맹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전하께선 그러실 생각이 없죠.”

“그렇습니다.”

헤라리온은 이미 아서스에게 당한 것이 있는 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와 손을 잡고 아서스의 몰락이라는 대의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아서스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제아무리 자존심 없는 똥개라 할지라도 고개를 내저을 일이었다.

적어도 헤라리온은 그랬다.

“하지만 저희가 과연 아서스 제국의 총공세를 버텨 낼 수 있을까요?”

“왜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거에는 제 아버지가 계셨지만……. 지금은 사막 최고의 검이었던 베네딕도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반란을 진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력도 아직 보완을 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선 새로운 힘을 손에 넣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힘 말입니까?”

“바로 저라는 힘을 말입니다.”

헤라리온의 걱정에 헨리는 가볍게 대꾸했다.

이에 헤라리온의 표정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스쳤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선 이미 아서스와 동맹을 맺기 전에 저와 동맹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감동적인 대답이었다.

그러나 감동과 현실은 별개였다.

이에 헤라리온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든든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헨리 님이 뛰어난 인재라고 한들 어떻게 헨리 님과 저, 둘이서만 그 많은 대군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둘이 아닙니다, 전하.”

“예? 그럼 누가 또 있습니까?”

“동맹국이라면 샤하트라 이외에도 네 군데나 더 있지 않습니까?”

“네 군데? 헨리 님, 설마?”

“그렇습니다. 저는 남은 네 곳의 동맹국을 모두 모아 하나의 연합국을 만들 생각입니다.”

‘연합국!’

제국과 연합국의 싸움.

그것이 바로 헨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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