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86화 (186/522)
  • # 186

    끝과 시작 (8)

    “메이커! 메이커!”

    생물학파의 수장, 아가스가 황급히 회복 마법을 사용해 메이커의 심장을 마사지했다.

    이에 메이커의 숨이 다시 돌아오자 로어가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

    “대마법사님, 그게 사실입니까?”

    “물론이지.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그, 그런 겁니까……?”

    로어의 물음에 헨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미 8서클까지 도달해 본 경험이 있는 헨리에게 그전 단계인 7서클로의 진입은 생각보다 쉬운 것이었다.

    ‘처음에나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게다가 헨리는 전생과 현생, 즉 두 번이나 7서클로 각성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다른 아크 메이지를 7서클로 각성시키는 것은 조건만 맞아떨어진다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에 모두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다른 대가도 아닌 무려 7서클로의 증진이었다.

    평생을 수련해도 발끝자락에 닿을까 말까한 미지의 영역.

    그들에게 7서클이란 바로 그런 영역이었다.

    꿀꺽.

    스스로 이뤄 낸 각성이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든가 하는, 그런 하잘것없는 자존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자신들은 이미 한 번의 각성을 경험하여 신체적 나이가 젊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충분히 노년의 나이였다.

    게다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삶이 바로 마법사의 인생.

    그러한 삶 속에서 7서클로의 각성에 대한 욕심은 알량한 자존심보다 한참이나 위대한 것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물론 증진이라는 대가는 모든 일이 끝난 후에나 이루어질 거야. 그러니 그전까지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협조해 줘야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마법사님.”

    “그래? 그럼 로어는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어때? 다들 동의해?”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로어였다.

    이에 헨리는 원탁의 마법사들과 시선을 한 번씩 교환했다.

    모두의 눈동자에 강렬한 긍정의 표시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들 동의하는 것 같네.”

    반대하는 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발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헨리의 제안을 뿌리치기란 어려울 것이다.

    헨리는 모두의 의지를 확인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스승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마탑의 규율은 잘들 지키셨나?”

    “물론입니다. 마탑의 그 누구도 마탑의 규율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본인들은 그렇다 쳐도 아랫사람들까지 확실하게 지켰다고 보장할 수 있나?”

    “그건…….”

    가벼운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촌철살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생의 헨리가 주로 사용하던 화법이었다.

    헨리는 전생에 제국의 대현자라고 불렸지만 오랜 전쟁 생활로 인해 성격이 그리 인자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대공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군. 젊은 대공의 현신이라고 해도 믿겠어.’

    이에 로어와 학파장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헨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죽은 헨리의 실루엣이 내비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대답들이 없어?”

    헨리의 되물음에 로어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대마법사는 갑자기 왜 마탑의 규율을 들먹이는 것일까?

    무언가 알고 저러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닐까?

    로어는 오랫동안 학파장들과 휘하 마법사들에게 충고해 온 입장으로서 저것은 필시 자신들을 꾸짖기 위해 꺼낸 말임을 확신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신경 썼지만 저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대마법사님께서 알려 주시겠습니까?”

    역시 로어였다.

    이에 헨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마탑에 아서스와 내통하는 마법사가 있다.”

    “예? 아서스와 말입니까?”

    “응, 내가 최근에 키메라를 만난 적이 있거든.”

    “……!”

    키메라.

    그 한마디에 학파장들의 이목이 연금학파의 수장, 메이커 스워스에게로 몰렸다.

    이에 메이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대답했다.

    “왜? 뭐? 난 아니야!”

    메이커는 쏟아지는 의심들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금체는 마탑의 허가가 나야지만 출입을 할 수 있는 마탑의 귀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 또한 메이커를 변호해 주었다.

    “그래, 메이커의 말이 맞아. 아직 범인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 그리고…….”

    헨리는 고개를 살짝이 옆으로 젖혔다. 그리고…….

    “나는 키메라가 연금체라고 한 적이 없어. 내가 본 키메라는 사람이었거든.”

    “……예?”

    “사, 사람, 말씀이십니까?”

    또 한 번의 충격.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운 존재를 창조시키는 것이 연금학파에서 말하는 키메라의 기본이다.

    그런데 헨리가 본 키메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것은 명백히 마탑의 윤리를 저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

    이에 가장 먼저 분노한 이는 다름 아닌 생물학파의 수장, 아가스 드루이드였다.

    쾅!

    “인간 키메라라니! 대마법사님! 그 키메라, 인간이 확실했습니까?”

    “응, 확실해. 게다가 내가 본 키메라는 하나가 아니야. 둘이다.”

    “두, 둘씩이나 말입니까?”

    “너희들도 잘 아는 인물이다. 한 명은 제국 육검인 모드레드 하이랜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알프레드 후작의 장남, 왈레드 이더웨더다.”

    “모, 모드레드가!”

    “왈레드라면 그 정령사!”

    좌중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인간 키메라의 정체는 죄수나 평민도 아닌 무려 황실 기사와 대후작의 아들, 즉 이름 있는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내뱉어야 할지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기에 차라리 입을 꾹 다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침묵을 깨뜨리고 울분을 표출한 것은 다름 아닌 전직 부탑주, 스탠 하디라디였다.

    “지금 당장 마법사들을 모두 소집해서 심문해야 합니다!”

    스탠 하디라디.

    그는 6서클의 아크 메이지로 연금학과 생물학, 두 개의 전문 학위를 가지고 있는 속칭 ‘더블’이면서, 두 분야 모두에서 인정받는 권위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학과 생물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에게 인간 키메라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이에 로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스탠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 정도 실험이 있었다면 필시 흔적이 남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여태껏 들키지 않은 것인지……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마법사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스탠을 필두로 익명의 위반자에 대한 욕지거리들이 쏟아졌다.

    이에 헨리가 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을 조용히 시킨 후 말했다.

    “소용없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범인은 이미 마탑을 떠났다. 아까 전에 모든 마법사들이 게이트를 탑승할 때 확인했지.”

    “예? 범인을 알고 계셨습니까?”

    “응, 놈의 이름은 ‘드라칸 로티크’. 인간학파의 마도사다.”

    “드라칸!”

    쾅!

    아가스가 원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학이라면 생물학파에 소속된 세부학파.

    게다가 마도사급 마법사라면 아가스도 당연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놈! 그놈이 기어코!”

    아가스는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아가스의 사연을 듣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말부터 늘어놓았다.

    “이는 아서스의 오른팔인 알프레드 후작으로부터 들은 확실한 정보다. 그리고 그놈은 황궁 내부에 ‘역탑’이라는 개인 상아탑을 세워 삼대가문으로부터 실험체를 공급받았다고 하더군.”

    “황궁!”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그 누가 감히 황궁 안에 또 다른 상아탑을 세울 줄 알았겠는가?

    헨리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가 역탑을 찾았을 땐 이미 깨끗하게 흔적을 지운 뒤였다. 그리고 최근에 만나 본 키메라의 상태를 미루어 보건데 놈은 이미 ‘키메라 시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상황이었다.”

    “그, 그런!”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아서스는 키메라뿐만이 아니라 금지된 인간학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군대를 만들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내놓는 이야기마다 가히 충격적인 사실들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알프레드로부터 들은 것들이기에 출처가 확실한 정보들이었다.

    ‘자기 아들이 그렇게 됐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 같지만.’

    말 그대로였다.

    알프레드의 허락 하에 왈레드에게 키메라 시술이 이루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

    드라칸이 알프레드 몰래 왈레드에게 키메라 시술을 진행한 것이었다.

    게다가 뒤늦게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알프레드는 키메라 시술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내비쳤다.

    ‘뭐, 내 알 바야 아니지만.’

    헨리는 이외에도 샤하트라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한 진실 같은, 자잘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까지 모두 읊어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원탁의 마법사들의 낯빛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여태껏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해 제국의 정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활 마법 따위나 만들고 있을 게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모두 들은 스탠이 나지막이 과거를 후회했다.

    하지만 헨리는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이번 일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미래였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대들이 죽은 스승님의 뜻에 따라 생활 마법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황제가 죽고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곧 대륙에 전쟁의 바람이 불어닥칠 텐데 생활 마법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직 멀었군.”

    “예?”

    “마법을 군사용과 생활용으로 나눈 게 누구지?”

    “예?”

    “대답해라. 마법을 군사용과 생활용으로 나눈 게 누구지?”

    “그건…….”

    “바로 인간이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마법은 사용하기에 따라 군사용이 될 수도 생활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쓸데없는 마법은 없다.”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스탠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물론 헨리도 스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헨리가 뒷말을 덧붙였다.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럼 지금부터 너희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려 주도록 하지.”

    딱!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원탁 위로 대륙의 지도가 떠올랐다.

    * * *

    “축하드립니다, 폐하!”

    대관식이 끝났다.

    아서스는 하이랜더 지방을 새로운 수도로 삼고 제국의 이름을 ‘아이니아’라고 명명하였다.

    왜 제국의 이름을 ‘아이니아’로 지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순히 아서스의 뜻이었다.

    아서스는 아이니아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서 모두에게로 군림하였다.

    물론 새로운 제국을 개국했다고 해서 대륙 전체를 통치하는 황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아서스의 영역에 속하지 못한 것들 중에는 헨리가 연합시킨 ‘자유도시’들이라든가 ‘샤하트라’ 같은 왕국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 제국 귀족의 대부분을 휘하에 두게 되었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토가 아이니아 제국의 영토로 바뀌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영토의 크기가 대륙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니 아서스가 건국한 제국은 정말로 ‘제국’이 맞는 셈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권력의 교체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예컨대 샤하트라와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속국 같은 곳들 말이다.

    그러나 아서스는 그들이 걸림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불만을 품고 항쟁해 봤자 놈들은 60%에 속하지 못하는 소수 세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서스는 그들이 가진 약점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서스는 새 제국의 황제이기 전에 유라시아 제국의 모든 기밀을 열람할 수 있었던 ‘대공작’이었으니까.

    아서스는 새롭게 제작된 왕관을 머리에 이고서 황좌에서 일어났다.

    그런 후 자신을 바라보는 숱한 귀족들을 향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명을 내리도록 하겠다.”

    줄곧 경어를 사용하던 아서스는 황제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경어의 사용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황제가 된 아서스의 첫 명령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대륙 전역에 아이니아 제국의 건국을 공표하도록 하겠다. 대공들은 아직 이 사실을 접하지 못한 왕국에 서신을 보내도록 하고 순순히 속국이 되겠다고 하는 나라에겐 자비를, 그렇지 않은 나라에겐 일말의 자비도 없음을 알리도록 해라.”

    “예!”

    “그리고…….”

    아서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대륙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에게 ‘척살령’을 내리도록 하겠다. 만약 항복하는 자가 있다면 생포하도록 하고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라.”

    “예!”

    아이니아 제국력 1년.

    아서스의 본격적인 대륙 정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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