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1화 (151/522)

# 151

발화 (2)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콰앙!

거의 반쯤은 울먹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던 왈레드는, 분노한 알프레드의 화를 피하기 위해 상체를 더더욱 낮게 숙여야만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죄, 죄송해요, 아버지…….”

“고작 그까짓 궐련 때문에 이 사달을 만들다니……!”

핑크 스왐프.

결국은 그 궐련이 문제였다.

하지만 핑크 스왐프라면 알프레드 또한 왈레드와 함께 맛있게 피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는 시레드나 왈레드와는 달리 핑크 스왐프에 대한 금단증상에 시달리지 않았다.

‘대체 왜?’

왈레드에게 들은 시레드의 증상이 맞다면 자신도 시레드처럼 힘들어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은 술이 좀 당기고 입이 좀 마르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핑크 스왐프의 지독한 중독성은 어디까지나 ‘독성’의 한 종류.

그렇기에 소드 마스터나 마도사, 상급 정령사 같은 실력자들에겐 당연히 중독 효과가 미미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상급 정령사인 왈레드는 핑크 스왐프의 금단 현상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왈레드 이놈은 시레드가 농락당했다는 것 때문에 찾아간 것이겠지. 그렇다면 시레드는?’

흥분한 나머지 왈레드를 다그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하지만 조금 진정되고 차분히 사태를 되짚어 보자 알프레드는 그제야 궐련에 중독된 시레드의 존재가 떠올랐다.

‘시레드가 위험하다!’

여전히 중급 정령을 다루고 있는 차남 시레드.

알프레드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시레드에게까지 닿자, 그는 황급히 시레드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시레드의 방에서 시레드를 발견한 순간, 알프레드는 차남의 상태를 보고 나직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 네놈은 대체 무얼 팔고 있는 것이냐?”

방 곳곳에 널브러진 술병들과 각종 궐련들, 그리고 제국에서 금지시켰던 향정신성 약품까지도 더러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의 끝에는 침대 앞에 반쯤 기댄 채 부쩍이나 야위어 있는 시레드 이더웨더가 있었다.

“히, 히히……히!”

제국에서 유일하게 핑크 스왐프2를 수령해 간 시레드 이더웨더.

그 또한 곧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은 중급 정령사였다.

그렇기에 그의 육체로 핑크 스왐프2를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웠다.

알프레드는 퀭한 눈매로 마약에 절어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 절망했다.

그리고 동시에 살면서 느꼈던 분노들 중 가장 거대하고 뜨거운 노여움을 느꼈다.

이에 알프레드가 시종들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지금 당장 황궁으로 떠날 터이니 마차를 준비해라!”

알프레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아이젠은 헨리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일주일의 휴가를 더 부여해 주었다.

이번 왈레드 사태로 인한 후유증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하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나도 탈이로군.’

자신을 아끼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너무 아껴도 문제였다.

이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알프레드를 자극하여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우는 난투극을 일으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다시 텐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반이 헨리에게 다가와 소식을 물었다.

“왈레드가 난리를 피웠다면서?”

“예, 그 덕분에 팔 한 짝을 잃었지만요.”

“그 팔, 네가 잘랐냐?”

“설마요? 혼자서 설치다가 ‘펑!’ 하고 터진 겁니다.”

“……혼자서 설치다가 팔이 터졌다고?”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헥터에 대한 존재를 밝히지 않았기에 굳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에 헨리가 화제를 전환시키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몸조리나 하라고 아이젠이 일주일의 휴가를 더 주었습니다.”

“일주일씩이나? 그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널 참 끔찍하게도 여기는군! 이러다 정말 사랑에라도 빠지겠어?”

“농담으로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시죠.”

“사랑이라……. 큭큭, 상상만 해도 웃기겠어. 그래, 그럼 그건 그렇고 직접 알프레드한테까지 찾아갔는데 뭐 좀 뚜렷하게 건져 낸 건 있냐?”

“아이젠이 알프레드에게 제대로 치욕을 주었으니 곧 입질이 올 겁니다. 그렇잖아도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알프레드이니 그놈 성격에 절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가만히 안 있으면? 그렇다고 네가 핑크 스왐프를 유통시킨 걸로 죄를 물을 순 없잖아?”

“죄를 물을 순 없죠. 그리고 자기 아들이 혼자 설치다가 팔이 터진 것에 대한 증인도 이미 확보해 둔 상태구요. 하지만 분풀이는 또 해야 할 테니 그렇게 되면 남은 선택지는 몇 가지밖에 없습니다.”

“남은 선택지라면…… 너, 설마?”

“그렇습니다. 저는 알프레드와 아이젠이 ‘영지전’을 일으키길 바라고 있습니다.”

영지전.

영지를 가진 귀족끼리 싸우는 명예로운 결투를 뜻했다.

보통의 영지전은 사전에 영지전을 벌일 것이라고 미리 윗선에 보고한 후, 적당한 룰을 정한 뒤에 결투를 벌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적 영토가 넓지 않은 소영주들이나 하는 행위였다.

왜냐면 아이젠이나 알프레드처럼 대후작씩이나 되는 귀족들의 경우엔 영지전 같은 결투를 벌이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알프레드의 입장에선 영지전을 제외한 별다른 복수의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헨리는 애초부터 영지전을 목적에 두고 이더웨더가의 남자들을 자극시켜 왔던 것이다.

“그 알프레드와 영지전이라…….”

대륙이 통일되고 제국이 평화를 맞이하면서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었다.

그렇기에 영지전 같은 전쟁을 표방한 행사는 좀처럼 보기가 힘들어졌는데 다른 사람들도 아닌 대후작들이 영지전을 일으킨다고 하니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싸움이 되겠군.”

“압도적이기만 하겠습니까? 저는 이번 기회에 사고사로 위장하여 알프레드의 목까지 확실하게 쳐 낼 생각입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 버려도 되겠어?”

“어차피 황제나 아서스에 비하자면 알프레드는 애피타이저 같은 놈입니다. 굳이 맛있는 식사를 코앞에 두고 애피타이저로 배를 채울 이유는 없죠.”

“하긴, 오베르야 첫 삽을 푸는 놈이었으니 이래저래 쓸모가 많았다지만 알프레드는 전혀 아니지.”

“그래서 말인데, 영지전이 끝나고 나면 우리도 슬슬 아이젠으로부터 ‘독립’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벌써 독립을 준비하겠다고? 그럼 아서스는 무슨 수로 잡고?”

“물론 아서스를 잡을 때까진 아이젠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어차피 우리의 최종 목적은 황제의 목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끝은 반란일 텐데, 슬슬 독립적인 세력을 키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독립적인 세력의 준비.

그 말은 곧 ‘진짜 전쟁’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헨리가 반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 형님께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예, 어차피 오합지졸은 열심히 모아 봤자 결국 오합지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더 이상 텐의 정보력은 못 미덥기도 하구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제법 괜찮은 정보망을 구축해 놓은 줄로만 알았더니, 무슨 날파리나 잡아먹는 거미줄 수준이었을 줄은…….”

텐에게 실력자의 수소문을 맡겨 놓았더니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놈을 건지지 못했다.

이에 헨리는 방법을 바꾸어 ‘숨겨진 실력자’가 아닌 ‘확실한 실력자’이되, 반처럼 숨어 지내는 ‘은둔자’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이에 헨리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인물 명단을 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제가 직접 작성한 명단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명단의 첫 번째 인물만큼은 반드시 찾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인물이라면……?”

첫 번째 인물이라는 말에 반은 서둘러 명단을 확인해 보았다. 이윽고 명단의 첫 번째 이름을 확인한 반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그럼,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혹시 모르니 힐링 포션은 넉넉히 챙겨 가시구요.”

“……알겠다.”

일부러 몸성히 다녀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때가 때이니만큼, 몸이 좀 상하더라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주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헨리에게 명단을 받아 든 반의 눈빛에 두근거림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 *

황궁에 도착한 알프레드는 곧바로 황제에게 ‘긴급 독대’를 신청했다.

이는 황제 다음으로 그 힘이 막강한 오직 삼대가문의 ‘문주’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였다.

알프레드가 독대를 신청하자, 이윽고 옷섶이 반쯤 풀어헤쳐진 황제가 투덜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알프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인사는 됐소. 그건 그렇고 알프레드 후작, 갑자기 무슨 이유로 독대를 신청한 것이오?”

황제의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궁녀 넷과 함께 대낮부터 후끈한 정사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삼대가문주와의 독대를 거절할 순 없었다.

삼대가문주가 신청하는 독대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반드시 만남을 받아들여야 하는 황제로서의 의무였다.

이에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벌게진 얼굴을 한 알프레드가 천천히 독대의 연유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혹시 핑크 스왐프라는 궐련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핑크 스왐프? 제국에 그런 궐련도 있었나?”

“아직 모르고 계셨군요. 핑크 스왐프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아이젠 후작이 샤하트라 왕국과 교역을 맺으면서 새롭게 들여온 샤하트라 궐련의 이름입니다.”

“뭣이? 샤하트라에서 새로운 궐련을 만들어?”

실버 잭슨 에드워드 2세.

그는 쾌락과 관련된 모든 것을 즐기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제국 최고의 쾌락주의자답게 궐련 또한 허구한 날 피워 대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나는 왜 처음 듣는 이야기지? 그리고 샤하트라와 교역이라니? 언제부터 샤하트라가 제국을 상대로 교역로를 열었단 말이오?”

“저번에 행해진 토벌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폐하.”

“그럼 무엇이 중하단 말이오?”

“현재 아이젠 후작이 들여온 그 핑크 스왐프라는 궐련 때문에 그것을 입에 댄 황궁 귀족의 대부분이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독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오?”

“폐하, 그것은 분명한 요물입니다. 그 궐련을 태우는 사람들은 처음엔 기분이 상쾌해지는가 싶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술이 당기고, 그 궐련이 없으면 더 이상 살지 못하는 몸으로 바뀝니다.”

“그것은 어느 궐련이든지 대부분이 다 그렇지 않나?”

“아닙니다. 저도 그것을 피워 보긴 하였으나 아무래도 핑크 스왐프에는 제국에서 금지시킨 향정신성 물질이 강하게 함유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 핑크 스왐프라는 샤하트라의 교역품이…… 궐련을 가장한 마약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미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출되고 있습니다. 당장 제 자식 놈만 하더라도 핑크 스왐프에 중독되어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있습니다, 폐하!”

결국 알프레드가 취한 방법은 바로 황제에게 고자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왈레드에게 들은 자초지종을 검토해 보니 명분상으로는 도저히 아이젠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 일은 반드시 되갚아 주마, 아이젠!’

그러나 명분이 없다면 명분을 만들면 되었고 활용할 무기가 없다면 새로운 곳에서 끌어다 쓰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알프레드는 과거에 아이젠이 오베르에게 그랬듯이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주기 위해 황제에게 독대를 신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잠자코 알프레드의 말을 듣던 황제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그것 참 이상하군.”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폐하?”

“말이 그렇잖소? 그대는 그것이 마약임을 알면서도 여태껏 자식이 마약에 중독될 때까지 방치했다는 것 아니오?”

“……예?”

“확실히 향정신성 물질은 법으로 금지시킨, 엄중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물질이기는 하지. 그렇다면 그대는 왜 처음부터 그것을 내게 알리지 않았지?”

날카로운 지적.

여태껏 황제가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에 알프레드가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 처음엔 저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자식 놈이 여위어 가고 주변의 소문을 접하면서 그제야 그것이 마약임을 의심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가지고 와 보시오.”

“피, 핑크 스왐프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나는 매일같이 그런 것들을 입에 달고 사니 내가 한번 직접 피워 보면 마약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아! 굳이 그대에게 시킬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핑크 스왐프를 교역하는 아이젠에게 직접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겠군!”

“폐, 폐하!”

“내 그대의 뜻은 잘 알겠네. 그러니 확실하게 조사한 후에 아이젠을 처벌하든 말든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이 되었는가?”

황제는 검술도, 마법도, 정령술도 익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왕족이라는 출생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를 만류하기엔 이미 너무나도 늦은 상황이었다.

지독한 애연가인 황제는 ‘샤하트라의 새로운 궐련’이라는 말에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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