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25화 (125/522)

# 125

칼리번의 군부 상인 (4)

“프리징.”

쩌저적!

헨리는 생포한 파레곤을 아공간 주머니에 담기 위해 파레곤을 산 채로 얼렸다.

그런 다음 아공간 주머니에 녀석을 수납시킨 뒤,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여유가 좀 있군.’

생각보다 여유가 많이 남았다. 지금 당장 돌아가서 교역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해도 시간이 남을 정도로 말이다.

‘시간도 남는데 샘플용 재료나 좀 채취해 가야겠어.’

그래서 헨리는 남는 시간을 활용해 샘플용 블랙 티어에 들어갈 재료들을 직접 채취해 가기로 했다.

또한.

‘그리고 새 궐련에 들어갈 재료들도 좀 확보해 두고.’

헤라리온에게 부탁했던 새로운 형태의 궐련.

그리고 헤라리온에게만 알려 주었던 궐련으로 아서스를 무너뜨리는 법.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롭게 제작될 샤하트라 궐련에 ‘향정신성 물질’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향정신성 물질.

속히 마약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섭취하는 순간엔 아주 강렬한 쾌락을 선사했다.

하지만 강렬한 쾌락을 주는 만큼 중독성과 그 유해성이 막대하여 일반인들에겐 금지된 기호품이기도 했다.

물론 귀족이나 왕족 등 고위 계층에게는 허락됐다. 그러나 귀족들에게 허락되었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아주 약한 종류의 ‘향초’나 ‘궐련’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제국에서는 마약을 굉장히 엄격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귀족들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기호성과 샤하트라 공물에 대한 인기를 이용해 천천히 그들의 정신을 좀먹어 갈 생각이었다.

‘무릇, 쇠약해진 정신만큼 다루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물론 평소에 건강을 극도로 생각하는 아서스가 이 궐련을 피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궐련의 명성이 멍청한 황제의 귀에 들어가 그를 중독시키는 순간, 헨리는 오베르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아이젠을 이용해 아서스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후보들을 추려 볼까?’

해로운 마약이라면 이미 수십 가지에 달하는 조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마약의 경우엔 전략적으로 사용될 예정이었기에 은은하게 궐련에 녹여 낼 수 있되 절대로 의심받지 않을, 그런 종류의 마약이 필요했다.

‘뭐, 실험용 쥐는 충분하니 중요한 건 내 능력이겠지.’

실험용 쥐라는 말에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간만에 연금술 지식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으음…….”

이마를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셀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번에도 헨리를 꺾지 못했다는 분함이었다.

“제기랄, 이래서 어린놈이 장땡이라는 건가!”

침대에서 일어난 이셀란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았다.

술기운에 무의식적으로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셀란은 대충 가운을 걸쳐 입고서 거실로 나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헨리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넌 어째 멀쩡한 것 같다?”

“너무 멀쩡한 나머지, 교역에 필요한 서류들을 좀 준비해 봤습니다.”

“……벌써 말이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서류를 집어 드는 이셀란.

이에 헨리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형식적인 거래 품목과 함께 제가 요구로 하는 품목들을 기입해 봤습니다. 부사령관님께서 필요하신 물품은 나중에 천천히 보내 주시면 되고요.”

“교역 날짜는?”

“정기 교역일은 매달 첫째 날로 지정하되, 연락을 주시면 항상 유동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좋네.”

간밤에 파레곤과 부가 재료들을 모두 채취한 헨리는 그럼에도 시간이 남게 되자 교역에 필요한 서류들을 손수 준비하였다.

완벽하고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럼 이제 볼일은 끝난 건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온 김에 특임대나 로난 녀석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그래?”

“그럴까요?”

로난. 간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포람가의 재능 있는 양자이자 헨리가 처음으로 친분을 나눴던 남자.

이셀란의 권유에 헨리는 로난과 함께 가볍게 차나 한잔 나누기로 했다.

이에 이셀란이 말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예?”

쿵쿵!

그때였다.

시간을 확인하던 이셀란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더니 이내 곧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자는 로난이었다.

“두 분 다 잠은 편히 주무셨습니까?”

“역시 시간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군.”

이셀란은 일부러 전날 술자리에 로난을 부르지 않았다. 그 자리엔 꽤나 비밀스러운 대화가 오갈 예정이었으니까.

대신 아침 일찍 로난에게 방문할 것을 명령했고, 때마침 월차를 낸 로난은 사복 차림으로 이셀란의 관사를 방문했다.

씨익.

눈을 맞추는 헨리와 로난.

두 사람은 서로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너야말로 그대로야.”

헨리가 동기라고 인정하는 유일한 녀석이었다.

그는 헥터에게 검술을 배운 자신을 유일하게 끝까지 몰아붙였던 인물이었으니까.

로난은 여전했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 그리고 큰 키, 또한 사복 사이로 얼핏얼핏 비치는 거친 상처들.

그중에서 굳이 변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눈빛’이었다.

‘눈빛에 생기가 도는군.’

로난은 포람가에서 쓸모가 있는 양자로 살아남기 위해 평생을 의심하고 경쟁하며 투쟁심을 불태워 왔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은 교육대에서 첫 대련을 치를 때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로난은 눈빛에 생기가 물씬 돌고 있었다. 이를테면 여유와 행복, 그리고 웃음 같은 것들 말이다.

이에 이셀란이 말했다.

“딱히 갈 곳이 없다면 내 관사에서 쉬도록 해. 어차피 하루 종일 비어 있을 곳이니까.”

“숙취로 힘들어 보이시는데, 오늘 하루는 그냥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후, 집무실에서 티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쓰나?”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늘 기본을 지키는 그는 분명히 좋은 상사이자 훌륭한 군인이었다.

이윽고 제복을 착용한 이셀란이 헨리가 마련한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이윽고 이셀란의 마차가 떠났다. 그의 마차를 배웅한 뒤, 로난이 말했다.

“소식은 들었다. 아이젠 후작의 가신이 되었다면서?”

“너도 알고 있었냐? 하긴 부사령관님도 아시는 사실을 네가 모를 리가 없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다른 가문도 아니고 그 불같은 성격의 아이젠을 구워삶다니.”

“그냥 실력이지, 뭐. 내가 내세울 게 뭐가 있겠어?”

“하긴, 교육대 성적은 동기들 중에서도 네가 제일 좋았으니까. 그나저나 실력이라……? 어때, 말 나온 김에 간만에 대련이나 한판 붙을까?”

“갑자기?”

“뭐, 어때.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그리고 네 실력이 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 참! 레벨은 말하지 마. 직접 겪어 보고 판단할 테니까.”

“그러지, 뭐.”

그렇게 대련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관사병의 안내에 따라 이셀란의 집 지하에 마련된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목검을 집어 드는 두 사람.

어차피 단순한 대련이었고 둘 다 오러를 터득했으니 굳이 보검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윽고 목검을 들어 올린 로난의 몸에서 푸른빛 오러가 천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로난의 오러는 마치 뱀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렇게 튀어나온 오러들은 순식간에 정갈함을 선보이며 로난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역시 기본적으로 마스터는 이뤄 낼 줄 알았지.’

다른 이도 아니고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주었던 로난이었다.

그렇기에 못 본 지 고작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마스터의 경지는 손쉽게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헨리 또한 곧바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츠즈즈즛.

“음?”

헨리의 오러를 본 로난의 표정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녹색 빛의 오러.

그러나 로난은 어린아이처럼 질문하지 않았다.

입으로 묻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묻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시 넌 특별한 놈이야.’

한 번도 헨리를 이겨 본 적이 없었기에 로난은 항상 헨리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기이자 라이벌, 그리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 같은 존재.

헨리는 로난에게 그런 존재였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기대에 가득 찬 로난. 그렇기에 로난이 먼저 선공을 가했다.

‘온다!’

포람가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보법, 포람 스텝.

헥터 스텝처럼 공격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만 속임수보다는 거리를 좁히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다.

까앙!

두 개의 목검이 맞부딪쳤다. 그러나 그것들이 뱉어 낸 소리는 목검의 것이 아니었다.

‘역시!’

최소한 소드 마스터 중급은 될 법한 경지였다.

헨리는 저릿해지는 손끝의 감각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로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느낌! 역시 너도!’

마스터 특유의 정돈된 오러는 아니었지만 맞부딪힌 순간 로난은 알 수 있었다.

헨리가 가진 오러의 경도가 중급에 달하는 자신의 것과 비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카앙! 카앙! 까앙!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같이 서로의 공격을 맞받아쳐 냈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입꼬리가 점점 더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전희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쯤, 로난은 검을 크게 휘둘러 헨리와의 거리를 멀찍이 벌려 냈다.

그리고.

“이쯤에서 보여 주마.”

“여기서 더 보여 줄 게 있나?”

“당연하지. 나도 그동안 마냥 놀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

대답을 마친 로난은 검을 쥔 오른손의 손등을 이마에 붙여 보였다.

그러자.

휘오오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수련장 속에 미풍이 불어닥치며 로난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난은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려 목검의 남은 손잡이 부분 위에 오른손과 같은 방향으로 검을 쥐었다.

강해지는 바람.

그리고 헨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로난의 목검에 정갈하게 코팅되어 있던 오러가 투핸디드 소드처럼 점점 더 그 크기를 불려 나가는 것을 말이다.

“……!”

이에 로난이 말했다.

“진심을 다해서 막아라. 나도 진심을 다할 예정이니까.”

부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로난.

그러자 넓어진 오러가 크고 긴 잔상을 남기며 헨리를 향해 순식간에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이에 헨리는 회피하지 않았다.

로난의 오러가 가진 경도를 확인하였으니 한 번쯤은 자신의 오러를 마음껏 발산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라!’

츠즈즈즈즛!

헨리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고조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헨리의 영향을 받은 녹빛 오러 또한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기 시작했다.

유성처럼 위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로난의 검.

이에 헨리는 정면으로 그것을 막아서기 위해 목검을 흩뿌리듯이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

맞부딪힌 두 개의 검기를 주축으로 거대한 원이 형성되며 강력한 강풍이 발생했다.

저릿!

손목이 부들거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타오르는 두 개의 오러 속에서, 두 사람은 원수를 마주한 것처럼 죽일 듯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대치하기를 한참, 그때였다.

쩌적. 쩌저적.

쩌저저적!

“……!”

맞부딪힌 두 개의 목검으로부터 자잘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찌걱!

부웅!

두 개의 목검이 동시에 갈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갈라지진 않고 절반 정도만 쪼개졌다.

이에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후우.”

잦아드는 바람.

거친 숨소리.

그리고 두 사람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오러를 거두었다.

“제법인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로난이었다.

로난은 오러를 거두자마자 반쯤 쪼개진 목검을 내던지고 먼저 헨리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이에 헨리 또한 바닥에 목검을 내려놓고 시원스레 로난의 손을 붙잡았다.

“너야말로.”

서로에게 놀랐다.

반년 동안 어느 정도의 발전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성장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람과 동시에 로난은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내 검이 더 많이 붙어 있군.’

악수를 청하며 자연스레 헨리의 목검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자신의 목검보다 훨씬 더 많이 쪼개져 있음이 보였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로난이 먼저 어깨동무를 선보이며 말했다.

“가자. 대련은 이 정도면 됐으니, 가서 이야기나 좀 나누자고.”

“그러지.”

이윽고 두 사람은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수련장을 빠져나간 직후.

파삭!

허리가 반쯤 쪼개진 로난의 검이,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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