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23화 (123/522)

# 123

칼리번의 군부 상인 (2)

꿀꺽꿀꺽.

끝난 줄로만 알았던 환영식은 술자리에서 그 두 번째 막을 시작했다.

시작은 가볍게 막거스의 불타는 위스키였다.

헨리는 가득 채워진 첫 잔을 가볍게 비워 낸 다음 이셀란에게 다시 술을 부어 주며 물었다.

“황궁 쪽 정사에는 관심이 없으신 줄로만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크크크,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 여쭤보는 것입니다. 사실 기밀 유지에 신경을 좀 썼거든요.”

“웃긴 놈, 나는 새로 들어온 병사들 덕분에 알았다.”

“신병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것도 오스카의 사병이었던 놈들한테서 말이다.”

“오스카의 사병이라면…… 아!”

헨리는 그제야 이셀란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됐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경로는 간단했다.

토벌이 진행되기 전, 지친 병사들에게 얼음물과 먹을 것을 베풀었던 헨리의 미담은, 토벌에 참여했던 병사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토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병대를 무리하게 확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공성 탑을 날려 먹는 등 큰 손해를 입은 오스카는 결국 후작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스카의 말로는 뻔했다.

오로지 백작들의 사비로 진행되었던 승작전은 토벌이 끝난 뒤에도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했고, 그에 불어난 사병대를 유지할 수 없었던 오스카는 결국 자신의 사병대를 해체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뒤늦게 입대한 사병들에겐 날벼락이 떨어졌다.

혹시라도 후작가의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안고 제국군이라는 정규직을 버린 것이었는데, 한차례의 토벌이 끝나마자 해고당하고 말았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용병이 되어 먹고살든가, 혹은 재입대를 신청하는 대신 삼대사선 같은 오지에서 근무를 하든가.

그렇게 칼리번으로 흘러들어 온 병사들에 의해 헨리의 이야기가 이셀란에게까지 전달된 것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역시 세상 좁은 것이 느껴지는군.’

칼리번 요새 같은 오지에까지 헨리의 소문이 닿았다면 다른 곳은 안 봐도 뻔했다.

굳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제 아이젠에겐 든든한 새로운 가신이 생겼다는 소문이 은근하게 퍼졌을 터.

이야기의 출처를 확인한 헨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제 미담이 여기까지 퍼졌을 줄은 몰랐군요.”

“미담은 개뿔이나, 그나저나 아이젠이라니? 그놈은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놈인데, 대체 어떻게 꼬셔 먹은 것이냐?”

이셀란의 물음에 헨리는 사실의 일부만을 밝혔다.

사실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드러낼 필요도 없었으니까.

물론 이야기의 유연성을 위해 오베르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했다.

“뭐? 그 오베르도 네가 잡아 처넣은 것이라고?”

“저는 단지 증거만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직접 잡아넣은 것은 아이젠 후작님의 업적이죠.”

“그게 그거잖아? 네가 아니었다면 아이젠 그놈은 죽을 때까지 만년 백작 신세였을 텐데 말이야.”

“뭐, 어찌 됐든 지금은 대후작이 되었으니 말씀드린 것처럼 나름대로 출셋길은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학학학! 그래! 네가 아이젠 그놈 밑에 있다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출세가 목적이라면 거기가 더 나은 자리이긴 하지.”

아쉬워하긴 했지만 질투는 하지 않았다.

호탕하게 웃어젖힌 이셀란은 다시 한 번 건배를 한 후 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술을 훔쳐 내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잘나가는 놈이 뜬금없이 웬 주판질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혹시 아이젠 그놈이 돈을 적게 주더냐?”

“아뇨, 그냥 말 그대로 마물의 숲에서 나는 재료들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네가 확실히 출세를 하긴 했구나. 겨우 네놈 한 놈의 욕심으로 군부 상인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하, 이건 단지 그냥…….”

“흥,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네가 무엇 때문에 숲의 재료를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부 상인 자리를 위장용으로 쓸 만큼 이곳의 물건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아들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과연, 이셀란은 이셀란이었다.

그는 무지막지한 힘과는 별개로 부사령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셀란이 말했다.

“좋다! 그럼 넌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거래를 할 땐 값을 제시받기보다는 원하는 걸 먼저 요구하는 게 더 편치 않겠습니까?”

“상단 하나 운영한다더니 혀까지 주판 놀음을 하는군. 좋다, 그렇다면 너는 내 직속 상단이 되어라.”

“직속 상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직속 상단.

다른 곳과 거래를 하지 않고 오로지 이셀란과 단둘이서만 거래를 하는 이셀란 전용 상단을 뜻했다.

이에 헨리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혹시 요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그래, 그리고 그 일은 순전히 나만 알고 있는 개인적인 일이다.”

무릇 칼리번의 부사령관 정도라면 요새의 안팎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스러운 직속 상단을 꾸리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요새에는 들켜선 안 될 어떠한 사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저도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여쭙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할 거래에선 대금을 치르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물품들을 맞교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다! 돈이라면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보여 주기식의 장부는 만들어야 하니 생활 잡화를 취급하는 마차 거래를 주로 삼되, 진짜 물건은 아공간 주머니로 교환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돈보다는 물건이 필요했고, 서로가 원하는 목적이 같았으니 협의는 쉽게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

‘드디어 독이 든 성배, 블랙 티어를 만들 수 있겠군.’

블랙 티어.

악마의 눈물, 혹은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는 이 신비의 영약은 오직 마물의 숲에서만 발견되는 재료들로 조합할 수 있는 신비의 영약으로 헨리가 7서클 시절에 우연히 발견한 조합식이었다.

블랙 티어는 조합식에 따라 그 효과가 전부 달랐지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기존의 다른 영약들에 비해 그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

이를테면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조합식의 경우, 미라클 블루의 경우엔 평생 단 1회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블랙 티어의 경우엔 섭취량에 제한이 없었다.

또한 섭취자가 가진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것이기에 가진 마력의 양이 높다면 얼마든지 그 효율성을 드높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영약임에도 불구하고 마탑에 시판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블랙 티어는 섭취할수록 신체가 오염되어 가고 전신에 맹독이 깃들게 된다. 그리고 그 효과가 완전히 스며들기까지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지.’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

섭취하는 순간 괴물 같은 성장력을 얻을 순 있었으나, 그 힘을 오래도록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찌어찌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 후유증이 막심하여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에 블랙 티어는 헨리가 우연히 발견하긴 하였으나 그 위험성을 알고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금지된 영약이었다.

그런 영약을 헨리는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자신에게 사용하고자 했다.

‘과거라면 몰랐을까, 베놈의 심장을 섭취한 지금의 나라면 괜찮겠지.’

솔직히 헨리도 안전을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바짝 성장하기 위해선 불가능도 가능하게끔 만들어 내야만 했다.

자신은 인류의 그 누구도 이루어 내지 못한 8서클의 영역에 도달한 유일한 마법사였으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달,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든 아크 메이지가 되어야만 한다.’

황궁에서 마력 회복을 돕는 전생의 장신구들을 되찾아 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보물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단순한 명상만으로는 마력 수급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그래서 헨리는 다소 위험하더라도 블랙 티어를 선택한 것이었다.

“더 할 말이 남았나?”

“아뇨, 이젠 정말로 먹고 마실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학학학! 좋다! 그럼 이제부터 슬슬 본격적인 술판을 한번 벌여 보실까!”

퐁!

이셀란의 괄괄한 웃음과 함께 두 번째 병의 코르크가 뽑혀 나갔다.

* * *

밤이 깊었다.

결국 이셀란은 이번에도 헨리를 술로 이길 수가 없었다.

“역시 젊은 놈의 간은……!”

쿵!

거대한 이셀란의 거구가 앞으로 쓰러지며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식탁 위에서 울렸다.

이에 헨리는 과거에 그랬듯이 그를 들어 올려 침실로 던져 넣은 뒤, 병사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했다.

“난 어느 방을 쓰면 되지?”

“2층 오른쪽 끝에 있는 손님방을 쓰시면 됩니다. 잠자리 준비를 마쳐 놓았으나 혹시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날이 늦은 이유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하루 정도는 묵고 갈 생각이었다.

헨리는 병사의 안내에 짧게 대꾸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깨끗하고 넓은 방이었다.

방에 들어선 헨리는 가진 짐을 풀고 침대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명상이었다.

헨리가 명상을 시작함에 따라 무니아의 귀걸이 같은 것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헨리의 주위로 그려지는 무형의 원.

스스스슷.

음주를 즐기는 내내 마력을 순환시켜 알코올을 분해하긴 하였으나, 몸속의 알코올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됐군.’

그렇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명상을 마친 헨리는 이윽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간만의 밤나들이로군.’

이셀란에게 재료들의 수급을 약속받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병사들로도 충분히 수급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

금지된 약물인 블랙 티어를 제조하기 위해선 아주 중요한 ‘핵심 재료’ 한 가지가 필요했다.

‘그 녀석이 아마 4급 구역에 있던 놈이었지?’

1급 구역에 가까워질수록 마물의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또한 발을 딛고 있는 대지는 물론이고, 공기 중에 섞여 있는 독소 또한 훨씬 더 강력해진다.

게다가 헨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4급 구역 내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몹시 희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이셀란이 잠든 틈을 타, 직접 재료를 수급키로 했다.

‘슬슬 움직여 볼까?’

퉁!

가볍게 발을 구르자 ‘군중 속의 고독’을 포함한 각종 은신 마법들이 시전되었다.

딱!

이어서 헨리는 손가락을 튕겨 문고리에 단단한 잠금 마법을 시전했다.

‘대충 반나절 정도인가?’

주어진 시간은 대략 반나절.

그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후웅!

헨리는 창문을 열고 가볍게 담을 넘었다.

그리고 한층 더 빨라진 속도로 순식간에 요새를 가로질러 마물의 숲으로 향했다.

탁탁탁탁!

오러를 터득한 이후, 신체 능력이 한층 더 향상된 것만 같았다.

헨리는 순식간에 후방의 방어선에 도착했고 플라이를 통해 1차와 2차 성문을 뛰어넘어 마물의 숲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다.

“간만이군.”

달빛이 내려쬘 때, 숲에 사는 마물들의 힘은 한층 더 강력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헨리는 더 이상 노 오러 유저가 아닌 ‘소드 익스퍼트’에 해당하는 뛰어난 검사였으니까.

‘간다.’

다시 시작된 질주.

헨리는 제집처럼 드나들던 마물의 숲의 지리를 떠올리며 순식간에 8급과 7급 구역을 지났다.

그리고 어느덧 6급 구역에 도달했을 때쯤.

-음머어어어!

익숙한 울음소리. 그리고 2미터에 달하는 거구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마물들.

반인반우의 마물, 타우로스였다.

‘타우로스라…….’

5급 구역으로 지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길목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수십 마리의 타우로스들이 떡하니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멀리서 타우로스 무리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은신 마법을 거두어 들였다.

“캔슬.”

스스슷.

어둠 속에 녹아 있던 인영이, 환한 달빛을 받아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헨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순식간에 타우로스의 이목이 헨리에게로 몰렸다.

철컥!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헨리.

헨리는 상체를 낮추고 검집에 손을 올리면서도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리고.

“음머허허허헝!”

인간을 발견하여 흥분하는 타우로스들.

그리고 그 타우로스들 사이로 몸을 내던진 헨리는 허리춤에 얹어 두었던 손을 내뻗었다.

서걱!

칼이 휘둘리고 어둠 속에서 녹색 섬광이 번쩍였다.

헨리의 질주에는 여전히 제동이 없었다.

앞서 나가는 헨리를 쫓아 길게 늘어지는 녹색 섬광.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방의 청룡을 떠올리게 했다.

철컥!

검을 휘두른 헨리는 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후두두둑!

탁탁탁탁!

일정하게 유지되는 발소리.

그리고 그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에는 매가리 없이 흩어진 타우로스의 상반신들이 낙엽처럼 가득히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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